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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문구의 이야기

작자/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며칠 전 출장차 요녕성의 수중현(綏中縣 쑤이중현)에 갔다. 마침 시간이 남자 현지 친구가 우리를 구문구(九門口) 만리장성 여행에 초대했다. 장성 남단 중간쯤에 이르자 한 중년 남자가 “호한솔완주(好漢摔碗酒)”라는 술을 팔았다. 그는 무던하고 열정적이며 말을 시원스럽게 했다. 마침 점심시간이었는데 반잔의 술을 마시자 자홍색 얼굴이 흥분으로 넘쳐흘렀고 득의만만해 보였다. 그와 배짱이 좀 맞는 것 같아 동행하던 형이 그와 대화를 나누는 김에 좀 쉬기로 했다.

자연히 술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는 자랑스런 표정으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구문구는 하북과 요녕의 경계에 있다. 남자의 집은 하북 경계에 있는데 구문구에서 멀지 않은 산골이었다. 할아버지는 대장장이였는데 솜씨가 좋고 친절했다. 마을이 워낙 외진 곳이라 외출이 어려웠기 때문에 마을의 각종 농사도구, 미장 공구 등을 모두 할아버지가 맡아서 수리했다. 이웃 사람들이 요구만 하면 할아버지는 기꺼이 가서 성심껏 도와주었다.

1949년(역주: 중공이 정권을 잡은 해) 이후 이곳에도 각종 운동이 시작되었고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선량한 할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이 서로 싸우며 고통스런 것을 보고는 바른 말을 했다. “이렇게 가다간 백성들이 밥을 먹지 못하겠구나.” 이때부터 할아버지는 묵묵히 한동안 일만 했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그의 아버지(아들)를 불러놓고 말했다. “나는 얼마 살지 못할 것 같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일부 도구를 만들어둘 테니 네가 잘 보존했다가 마을 사람들이 잘 쓸 수 있게 하거라.” 얼마 후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남겨놓은 이 도구들은 마을 사람들에게 요긴하게 쓰였다.

남자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마을에서 덕망이 높았기 때문에 인민공사가 시행된 후 아버지는 사람들의 추천으로 생산대장이 되었다. 일이 있으면 자연히 나서서 고생하고 근면 성실하게 일했다. 마을에서 공산당에 입당하라고 하자 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신을 믿고 선악에 보응이 있음을 믿습니다.” 하면서 입당하지 않았다.

나중에 문화혁명이 시작되었다. 4가지 낡은 것 타파, 미신타파 등으로 마을의 옛 물건 신상이 다 훼손되었다. 이런 일은 조상 대대로 신을 존중하던 마을 사람들에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평소 행실이 좋지 않던 일부 마을 사람들이 득세하며 소동을 일으켰다.

마을 산에 맑은 샘이 있었고 샘 옆에 돌로 조각한 용이 있었다. 아무도 언제 누가 이것을 깎았는지 모른다. 샘은 바위에 있으며 면적이 넓지 않으며 샘물의 이 솟는 구멍이 보이지 않으나 늘 마르지 않았다. 그가 어렸을 때 늘 친구들과 함께 샘 옆에 가서 놀았다.

문화혁명이 시작했을 때 한 조반파가 산에 올라가 샘물 옆의 용머리를 쳐부수어 산 아래 용담 못 속에 던져 버렸다. 얼마 안 되어 큰 홍수가 터져 하북에서 요녕으로 통하는 길이 전부다 물에 잠겨 통행할 수 없게 되었다.

그곳 사람들은 두 산 사이에 삭도(索道 케이블)를 설치해 줄을 잡고 물을 건너야 했다. 하루는 용머리를 부순 사람이 강을 건넜다. 앞에 여러 사람들이 다 건너갔는데 이 사람이 줄을 잡고 중간에 갔을 때 밧줄이 끊어져 떨어져 죽었다.

용머리가 부서진 후 맑은 샘도 말라버렸다. 아버지는 이를 내내 아쉬워했다. “용은 신이 아닌가? 어찌 사람에게 모욕을 당한단 말인가?” 그래서 용담 못에 가서 용머리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못이 너무 깊어 건져 올릴 수 없었다.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고 먼 산길을 걸어 요녕에 가서 양수기를 빌려왔다. 결국 물을 다 빼내고 용머리를 산 아래에서 위로 옮겨 공경하게 잘 안장했다.

사람들은 용머리가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분분히 달려와 제사를 드렸다. 한 아이가 장난으로 용머리를 손바닥으로 때렸다. 당시 누구도 주의하지 않았는데 하산할 때 일이 생겼다. 큰 말벌떼가 갑가지 날아오더니 다른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유독 용머리를 때린 아이만 미친 듯이 쏘아댔다. 아이는 머리와 얼굴을 가리고 황급히 도망가다 산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

오래지 않아 맑은 샘물은 다시 솟아나왔다. 단단한 돌 구덩이에는 또 맑은 물이 가득했다.

1980년대 말 어느 해에 큰 가뭄이 들었다. 많은 강과 하천이 다 말랐고 밭에 댈 물도 없었다. 주변 일대에 많은 관정을 뚫었으나 물은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가 집 마당에 작은 우물을 팠는데 두 촌 굵기의 관에서 깨끗하고 달콤한 물이 끊이지 않고 쏟아져 나왔다. 마을 주민들과 이웃 마을 사람들이 다 와서 물을 길어가 급한 불을 끌 수 있었다.

나중에 소위 개혁개방이 되자 이 남자의 집에서 우물물로 술을 빚었다. 이것이 바로 “호한솔완주”로 향이 그윽하고 깊은 맛이 우러나 인근에서 유명해졌다. 이는 적지 않은 수입을 가져다주었다. 이야기가 끝나자 술도 다 마셨고 건장한 남자는 얼굴이 불그레해져 득의만만하게 말했다. “이것을 바로 선에는 선한 보응 악에는 악한 보응이라 하지요. 사람은 반드시 선을 행하고 덕을 쌓아야 합니다!”

동행한 노형이 그에게 세상 도가 쇠락한 원인을 말해주고 파룬따파의 진상을 말하며 삼퇴를 해주었다. 동시에 그더러 조상들처럼 선량한 마음을 유지하라고 하면서 위난이 닥칠 때 “파룬따파 하오 쩐싼런 하오”라는 생명의 법보를 기억하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원문위치
: http://www.zhengjian.org/node/2439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