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중국 수련생
【정견망】
이덕유(李德裕 787-850)의 자는 문요(文饒)로 당나라 말기의 유명한 대신으로 명문세가 출신이다. 그의 부친 이길보(李吉甫)도 재상을 지냈다. 이덕유 본인은 헌종 목종 경종 문종 4대에 걸쳐 대신으로 있었다. 문종 때 잠시 재상을 지낸 적도 있다. 그러다 당 무종이 즉위한 후 재차 재상이 되어 권력을 장악했고 적극적으로 무종의 멸불(滅佛) 정책을 집행했다.
당시 그의 권위와 세력이 아주 컸는데 진귀한 보물 수집을 좋아했다. 때문에 당시 조정이 있든지 재야에 있든지, 무릇 그에게 선물을 보낸 사람들은 많은 경우 온갖 방법으로 각종 희귀한 보물을 구해 그에게 보냈다.
그는 쉬는 날이면 종종 조정의 재상과 대신들은 초청하여 연회를 열었다. 어느 한번 연회에서 마침 혹서기였는데 날이 매우 더웠으며 대지는 찜통같이 뜨거워 견디기 힘들었다. 점심때인 정오가 되었는데 대신들은 모두 관복을 갖춰 입고 있었기에 오직 부채질만 하고 있었다. 이때 사람들은 모두 좀 시원한 곳을 찾아갈 궁리만 하고 있었다. 연회가 시작되자 사람들이 방으로 안내 받았는데 즉시 매우 넓고 사방 벽에 고사 명화가 걸려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뜨거운 걱정은 어쩔 수 없었다. 술을 한 잔씩 쭉 들이키고나자 점점 뜨거운 줄을 모르게 되었다. 잠시 쉬고 나니 그저 시원한 바람이 늦가을처럼 불어왔다. 술안주는 매우 풍성하여 해가 질 때까지 실컷 놀다가 파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문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실외는 바람이 불같이 뜨겁고 구름은 연기 같이 뜨겁게 타는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다. 모두 이상하게 느꼈다. 호기심 많은 사람들은 편지를 보내어 사람을 시켜 이것이 어찌된 일인지 알고 싶어 했다. 대답은 화분에 물을 가득 채워 한 마리 백룡껍질을 그 속에 담궈두어 자리에 두었습니다. 그래서 실내가 이렇게 시원한 것입니다. 이것은 용껍질의 기이한 효과입니다. 이 용피는 신라 스님이 바닷속에서 얻은 것인데 이덕유에게 바친 것입니다.
당 무종은 멸불정책을 편지 몇 년이 되지 않아 그는 죽었다. 불법을 신봉하는 선종(宣宗)이 즉위하자 그 다음날 당 무종이 멸불하는데 힘을 쓴 이덕유를 남방으로 쫓아보냈고 또 각종 이유를 들어 그를 더 강등시켰다. 이덕유는 필생 많은 보물을 모았는데 남방으로 갈 때 이 백룡피를 포함하여 모두 배에 태우고 타고 가다 악계(惡溪, 오늘의 매강하)를 지날 때 배가 물에 빠졌다. 그는 잠수를 잘하는 곤륜노에게 물에 들어가서 찾으라고 했다. 그러나 찾지 못했다. 이덕유는 보물을 잃고 매우 슬퍼 시를 지었다.
비바람에 해와 달이 어둡고
안개 파도가 악계(惡溪)를 어지럽히니
준령을 지나며 눈물 흘리며
북쪽의 한매(寒梅)를 향해 흐느끼네
오래지 않아 이덕유는 당시 황량한 해남의 애주에서 죽었다.
이덕유의 이 백룡피(白龍皮)는 물속에 잠겨 오늘의 에어컨처럼 온도를 낮추어 실내에 서늘한 바람이 불게 할 수 있고 에너지도 소모하지 않았으니 정말 신기하다. 이 세상에 과학으로 해석할 수 없는 일이 많은 것 같다. 과학은 단지 사람들이 자연을 인식하는 방법일 뿐이며 결코 진리와 같지 않다. 과학에 대한 맹신은 오히려 인류의 진리에 대한 인식을 방해가 된다. 이덕유가 당 무종의 멸불 정책을 지지하여 죄업을 지었기 때문에 악보를 받아 관직을 잃고 그가 필생 수집한 보물을 잃었으며 마침내 생명까지 잃었다.
이덕유의 교훈은 멸불은 절대 해서는 안 될 것임을 알려준다. 오늘날 세계에 널리 펴져 있는 파룬궁은 기공형식으로 전해진 불가(佛家)의 상승 수련법이며, 진정한 불법(佛法)이다. 나라와 국민에 이롭고 수련인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당시 공산당 두목 장쩌민은 질투심에서 박해했다. 많은 대중들도 무지 중에 그것을 따라 거대한 죄를 지었으며 회개하지 않으면 반드시 보응을 받아 겁난에 처할 것이다. 이덕유의 종말은 그들에게 귀감이다. 파룬궁 수련생이 일어서서 파룬궁의 진상을 알려주는 까닭은 중생을 구하려는 것이고 세인들에게 불법에 대해 죄를 짓지 말고 큰 난을 피하라는 것이다.
자료출처:《태평광기(太平廣記)》, 《도악계야박로도(到惡溪夜泊蘆島)》 등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462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