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중국 수련생
【정견망】
달마는 인도의 고승으로 남북조 시기 중국에 와서 법(法)을 전했다. 보통 중국 선종(禪宗)의 초조(初祖, 시조)로 불린다. 달마는 중국에서 신적을 드러낸 적이 있는데 장강을 건널 때 배를 타지 않고 언덕에 갈대 하나를 꺾어서 이 갈대 잎 위에 서서 건너 “갈대 하나로 강을 건너다(一葦渡江)”는 전설을 남겼다. 나중에 소림에 온 후 한 천연 동굴을 자신이 입정해서 수련하는 곳으로 정하고 석벽을 마주하고 다리를 틀고 정좌하여 장장 9년이나 앉아 있었다. 지금까지도 그림자가 벽에 남아 있다. 또 인간세상을 떠날 때 더욱이 “신발 한 짝으로 서쪽으로 돌아가다(只履西歸)”는 이야기를 남겨놓았다.
달마가 법을 다 전한 후 “동냥이 끝나고 법을 전할 사람을 얻어” 후계자가 생기자 곧 앉아서 원적했다. 사람들은 이에 웅이산(熊耳山)에 장례 지내고 정림사(定林寺)에 그를 위한 불탑을 세웠다. 달마의 원적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었다. 하지만 동위(東魏)의 송운(宋雲)이란 사신이 서역에 사신으로 갔다가 장기간 돌아오지 않아 달마가 세상을 떠난 일을 알지 못했다. 2년 후 송운이 서역에서 낙양으로 돌아왔다. 도중에 총령(蔥嶺 파미르고원)을 지날 때 달마가 한손에 지팡이를 짚고 손에는 짚신 한 짝만 들고 승복을 걸치고 맨발로 서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두 사람이 만난 후 송운이 달마를 알아보고는 얼른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대사께서는 어디로 가십니까?” 달마는 “저는 서천으로 갑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또 “경성으로 돌아가시면 나를 봤다고 말하지 마세요. 잘못하면 화를 당할 겁니다.” 두 사람은 말을 마치고 각자 동서로 헤어졌다. 송운은 달마가 그에게 농담을 했다고 여겨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경성에 돌아온 후 황제에게 교지를 복명할 때 그가 오는 도중에 총령에서 달마를 만난 일을 언급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동위의 효정제(孝靜帝)는 화를 벌컥내며 송운을 꾸짖었다. “달마가 우문(禹門)에서 죽어 웅이산에 장사지낸 일을 온 세상이 다 알고 정림사에 탑까지 지었는데 너는 어째서 총령에서 달마를 보았다고 하느냐, 죽은 사람이 어찌 살아나겠느냐? 이는 분명 임금을 속이는 일이다. 어찌 이런 도리가 있느냐?” 말을 마치고 시위들에게 송운을 대전 밖으로 쫓아내 감옥에 가두라고 명령했다. 며칠이 지난 후 효정제는 송운이 임금을 속인 일을 심의하기 위해 송운을 대전으로 불러 물었다. “네가 총령에서 달마를 만났다는 일은 대체 어찌된 일이냐, 사실 대로 말하라.”
송운은 있는 그대로 말했다. “황상에게 품하온데 총령에서 달마를 만났습니다. 조사는 맨발이었고 한손에 지팡이를 짚었으며 손에 짚신 한 짝만 들었습니다. 승복이 바람에 펄럭이며 서쪽으로 급히 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서천으로 돌아간다고 하면서 저더러 아무 말도 하지 말라면서 만약 말을 하면 화를 당할 것이라 했습니다. 신은 그것을 농담으로 잘못 알고 주군에게 상주했던 것입니다. 오늘 사실대로 말한 것은 구구절절 진실입니다. 감히 황상을 속이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효정제는 그 말을 듣고 반신반의하며 진짜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대전에서 여러 신하들도 의논이 분분했다. 이때 어떤 이가 말했다. “달마가 세상에 있다면 사람들이 다 알텐데 어찌 죽은 사람이 돌아옵니까? 송운이 범한 죄는 임금을 속인 것이니 법에 따라 조치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달마가 서쪽으로 돌아가는 것을 송운이 보았다는데 감옥에 갇혀서도 어찌 하늘을 속이겠습니까. 기왕 참과 거짓을 구분하기 어렵다면 관을 열어 조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라고 건의했다.
효 정제는 이 건의를 받아들여 사람을 시켜 달마의 묘를 파보게 했다. 관을 열어보니 관이 텅 비어있었으며 그 속에는 시체는 없고 다만 짚신 한 짝만 남아 있었다. 이에 송운은 누명을 풀게 되었고효정제는 정림사(定林寺) 이름을 공상사(空相寺)로 고쳐 이를 기념했다.
현재 소림사 복도 내에는 한덩이의 《달마가 짚신 한짝으로 서쪽으로 돌아가다(達摩只履西歸相碑)》 라는 비가 있으며 네 구절의 시가 새겨져 있다.
達摩入滅太和年熊耳山中塔廟全不是宋雲蔥嶺見誰知只履去西天
달마가 태화년에 입멸하여웅이산에 탑과 절을 세웠네송운이 총령에서 보지 않았다면한 짝 신으로 서천 간줄 그 누가 알랴
달마가 서쪽으로 돌아간 신기한 이야기는 매우 널리 유전되어 역대의 여행자들이 많은 찬송의 시사를 남겨놓았다. 명나라 만력 연간에 김충사(金忠士)는 《제달마면벽(題達摩面壁)》이란 칠언율시를 지었다.
渡江一葦浪花飛九載跏趺坐翠微面壁已知僧入定巢肩亦是鳥忘機無生色相俱成幻有漏人天總悟非何事宋雲蔥嶺見少林風雨悵西歸
갈대 하나로 강을 건너니 파도가 날리고산속에서 구년을 가부좌했네면벽으로 스님이 입정함을 알았으니어깨의 새둥지를 새도 잊었구나무에서 생긴 색과 상이 환을 이루나누락 있는 사람 하늘 모두 깨닫지 못하는구나어쩐 일로 총령에서 송운을 만나소림 풍우는 창연히 서역으로 돌아가누나
달마는 수행하여 득도한 고인이다. 송인이 그를 보았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 송운은 그의 말을 믿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감옥에 며칠 갇히는 화를 당했다. 물론 새옹지마처럼 바로 이 때문에 후인들에게 달마가 짚신 한 짝을 가지고 서쪽으로 돌아갔다는 신적을 남겨놓아 중원문화를 풍부히 했다.
지금은 역사의 관건적인 시각이다. 수많은 수련인들이 매우 높은 경지에서 중공의 죄는 하늘에 사무치며 하늘에 의해 도태되는 역사의 결말을 알고 있다. 그들은 자비심으로 위난이 오기 전에 사람을 구하기 위해 중공의 당단대 조직을 퇴출해 중공 조직의 일원으로서 중공에 연루되어 화를 당하지 말라고 한다. 과거 송운은 달마의 경고를 믿지 않아 며칠간 감옥에 갇히는 고생을 당했다. 현재는 사람들이 “하늘이 중공을 멸하니 당단대에서 탈퇴하여 평안을 보위하자”는 경고를 듣지 않으면 미래에 큰 난이 올 때 후회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자료출처:《전등록(傳燈錄)》 등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46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