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육원
【정견망】
법사(法師) 장도릉(張道陵)의 아내는 성이 손(孫)씨다. 부부는 함께 용호산(龍虎山)에 은거하면서 삼원묵조(三元默朝)의 도를 다년간 수행하여 누차 감응이 있었다. 당시 장천사(張天師)는 황제(黃帝)의 용호중단(龍虎中丹)의 술을 얻어 연단에 성공했는데 형체와 그림자를 분리시킬 수 있어서 앉아 있으면 그림자가 없었다. 천사는 파양에서 숭고산(嵩高山)에 들어가 《제명지술(制命之術)》이라는 책을 얻어 지팡이로 귀신을 부를 수 있었다. 연단이 완성되고 또 20여년이 지났다. 법술의 운용이 더욱 정묘하게 된 후 촉 지역의 각 명산에 돌아다니며 직접 가르침을 행했다.
한편 부인은 강동에 머물며 수진양성하여 도가 깊어졌다. 한나라 환제(桓帝) 영가(永嘉) 원년(151년)에 촉으로 가서 양평화에 거주하며 금액환단(永嘉)을 연마했다. 태을원군(太乙元君)이 전수한 황제의 방법을 따라 몇 년 후 단이 완성되어 형체를 변화하고 날아다니는 등 못하는 일이 없었다.
환제 영수(永壽) 2년(156년) 병신년 9월 9일 장도릉의 아내와 장천사는 중간에 있는 낭중의 운대에서 신선이 되어 백일 비승하여 지위는 상진(上真) 동악부인(東嶽夫人)이 되었다. 그들의 아들 장형(張衡)은 자가 영진(靈真)인데 그들의 뜻을 계승하여 수련했고 영제 광화 2년 을미년 정월 23일 양평에서 신선이 되어 백일 비승했다.
손자 장로(張魯)는 자가 공기(公期)인데 한나라 왕조의 국운이 쇠하여 중원이 혼란할 때 양주, 익주 2주의 장관 및 진남장군(鎮南將軍)이 되어 한중에서 군정을 다스렸다. 조조가 영제의 명령을 발포하여 그에게 작위를 내렸다.
얼마 안 되어 유장이 촉을 잃고 유비가 병사를 일으키자 장로는 탁형(托形 형체를 가탁함)하여 사망한 것처럼 하여 귀진하여 몸을 숨겼다. 당초 그 아내가 화중에 있었는데 원근의 사람들이 모두 그녀를 공경하고 신봉했으며 예배하러 온 사람이 시장처럼 북적대었다. 부인은 산자락 아래 샘을 하나 만들어 자기에게 절하러 온 사람들이 샘물로 목욕을 하고 나서 도에 들어 조용히 수련하도록 했다. 그곳 샘물은 해예수(解穢水 더러움을 푸는 물)라고 불리는데 지금도 그곳에 있다. 《여선전》
중국인들은 장도릉에 대해서는 꽤 많이 알고 있으나 그의 부인에 대한 기록은 아주 드물다. 그들이 부부가 된 연분은 아마 수련의 연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465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