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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이야기: 분신술로 신적을 드러낸 도사

작자/회귀

【정견망】

도가수련에는 특징이 하나 있는데 바로 일부 도사는 득도한 후 세간에서 잠시 머무는 시기가 있다. 그 목적은 일부 소원을 마치기 위함이다. 많은 도사들은 또 동시에 여러 지방에 출현할 수 있다. 옛날 밀레르빠(密勒日巴)가 제자들과 헤어질 때도 이렇게 했다. 아마 이것은 일종 분신(分身)하는 신통과 유사할 것이다.

이문(李汶)은 조정에서 관직에 있을 때 도사들과 교류를 즐겼다. 도사 이산인(李山人)은 이문의 관아에 임시로 거주했는데 이문은 그를 매우 존경했다. 이문의 장자는 이름을 원윤(元允)이라 했는데, 먼저 양양(襄陽) 위(韋)씨와 혼인을 언약했다. 그래서 경성에서 양양까지 멀리 집을 떠나 결혼하러 갔다. 출발한 후 이산인이 이문에게 말했다. “아드님의 노정에 재난이 있는데 내가 도와줄 수 있습니다. 다만 잠시 다른 사람과 왕래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아주 청정한 환경이 필요합니다.”

이문이 그렇게 하라고 하여 이산인은 다른 곳에 머물렀다. 한참 시간이 지나 이산인이 나와서 이문에게 말했다. “아드님의 재난이 이제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그가 타던 말이 죽고 따르던 하인 하나가 죽었으며 그는 몸에 피가 좀 흘렀습니다. 그 외에 큰 손실은 없습니다.” 이산은 반신반의하여 사람을 양주로 보내 가는 길에 조사해보라고 했다. 사자가 확실한 소식을 가지고 돌아와 말했다. “중간에 큰 다리를 지나는데 다리가 무너져서 공자님의 말이 죽었고 따르던 하인도 한명 죽었습니다. 공자의 뺨과 턱 사이가 나무에 걸려 피가 좀 났으나 곧 완쾌되었습니다.” 이문은 대단히 놀랐다.

나중에 이산인이 홀연히 이문에게 작별하며 말했다. “저는 오랫동안 여기에 문객으로 있었습니다. 죽을 때가 되었습니다.”하며 매우 괴로워했다. 나중에 이산인을 아는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같은 날에 이산인이 자기 집에 와서 고별하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이산인은 처음 이문의 가족에게 고별할 때 말했다. “제가 일이 좀 있어서 삼공자에게 알려야 합니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는 “15년 후 곤명지 곁에서 어떤 집 아이의 얼굴에 작은 상처가 있는 것을 보면 제가 환생한 것인 줄 아세요.”하고 떠났는데 이후에 그는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출처: 《원화기(原化記)》)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469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