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대륙수련생
【정견망】
윤지평(尹志平)을 말하면 사람들은 아마 어느 무협소설에서 품행이 단정치 못한 인물로 생각할 것이다. 사실 그것은 단지 소설가가 역사 인물의 이름을 차용해서 썼을 뿐이다. 사실 윤지평은 실존인물이며 도교 전진교(全真教) 수련자다. 한때 사부인 구처기(邱處機)를 따라 연경(燕京, 지금의 북경)에 들어가고 나중에 대설산에서 칭기즈칸을 만난 18명 수행제자들 중 수제자였다. 그는 평생 여색을 멀리하고 명리에 담담했으며 도덕이 고상했다.
스승의 뒤를 이어 전진교 장교(掌教)가 된 후에는 도관을 크게 건립해 전진교 교세가 날로 흥성해져 ‘제자와 신도가 천하에 두루 퍼지고 조야에 성망이 높아’졌다. 몽골 제3대 칸이었던 원나라 정종(定宗, 1246~1248년 재위 오구데이 칸의 장남인 귀위크 칸)은 특별히 그에게 ‘청화연도현덕진인(清和演道玄德真人)’이란 봉호를 내리고 금관과 법복(法服)을 하사했다. 그 후의 원나라 황제들 역시 봉호를 내렸기 때문에 후인들은 윤지평을 가리켜 ‘청화진인(清和真人)’이라고 존칭했다.
여기서는 윤지평이 견정하게 수련해 마음이 흔들리지 않은 이야기에 대해 말해보겠다. 어느 날 밤 윤지평은 어느 날 새벽 4경에 가부좌하고 있었다. 가부좌 중, 선풍도골(道骨仙風)의 사람이 왔는데 신체가 ‘금빛이 나고 옥처럼 매끄러운 모습’이라 그는 속으로 장생진인(長生真人 역주: 전진교를 창립한 왕중양의 제자 유처현(劉處玄)으로 전진교 일곱 진인 중 하나)이 온 것임을 알았다. 하지만 ‘바른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正心不動)’ 수련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이 장생진인이 다가오더니 갑자기 그의 목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윤지평은 그래도 가부좌를 유지하며 움직이지 않았는데 이에 그의 머리가 잘려 떨어졌다. 이 순간 그는 자신의 머리가 떨어지는 것을 알고도 속으로 여전히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상태(心亦不動)’를 유지했다. 장생진인은 이것을 보고 매우 기뻐하며 그의 머리를 도로 제자리에 앉혔다. 윤지평은 이것이 진인이 자신을 위해 ‘나의 속세 머리를 바꾸고’ 신체를 정화해 준 것임을 깨달았다.
열흘 후 마찬가지 일이 또 발생했다. 이번에는 ‘부출오심(剖出吾心 심장을 갈라서 꺼낸다는 의미)’이었다. 윤지평은 이것이 ‘나의 속된 심장을 없애는’ 것으로 이해했다. 또 열흘이 지나 진인은 그를 위해 배를 갈라 내장을 바꾸었다. 이 세 차례 수련 중의 기이한 경험을 거친 후 윤지평은 깨달았다. ‘정성이 지극하면 신을 감동시킨다는 믿음이 헛되지 않구나. 만약 마음을 다해 도를 행한다면 성현(聖賢)이 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윤지평의 수련경험을 본 후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의 수련인도 이처럼 견정하니 오늘날 대법 수련자는 더욱 견정하게 수련해야만 비로소 사존의 자비로운 구도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자료출처:《청화진인북유어록(清和真人北遊語錄)》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480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