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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우중화 (2): 신주대지

작자/석방행(石方行)

【정견망】

옛사람들이 말하는 ‘신주(神州)’는 지금의 중국 영토와 비해 훨씬 크다. 전체 청장고원과 파미르 고원지역 내지는 몽골 고원, 횡단산 구역과 흑룡강 유역도 포함한다. 왜냐하면 이들 지방이 상고 전설에서 신이 활동한 지역일 뿐만 아니라 역시 염황(炎黄, 신농과 황제)의 직계 후예가 활동한 곳이기 때문이다(이런 것은 뒤에 천천히 토론한다).

상계(上界)에서 대체적으로 신주의 범위를 정했다. 지도를 펼쳐 신주의 지형지세를 보자. 중고등학교 지리 시간에 우리는 이렇게 배웠다. 서에서 동으로 세 계단으로 나뉜다. 첫 계단은 주로 청장고원과 그 주변의 산맥들이다: 아이금(Altyn-Tagh)산맥, 기련산맥과 횡단산맥이다.

둘째 계단은 신강, 내몽고, 감숙, 사천, 귀주 등 변두리에 위치한 산맥으로 대흥안령, 태행산맥, 무산, 설봉산이다.”

셋째는 주로 위에서 말한 산맥의 동쪽인데 평원이 위주다.

온대대는 3개를 넘는데(세분화하면 6개) 열대, 아열대, 중온대, 난온대, 한온대, 청장고원기후이다. 기후는 5종으로 나눈다(열대계절풍, 아열대 계절풍, 온대대륙성, 온대계절풍, 고원산지). 지리는 4지역으로 구분한다(서북, 청장, 북방, 남방). 산물을 매우 풍부한데 상세히 말할 필요 없다.

고고학의 각도에서 보자면 우리 선조들은 이 땅에서 많은 문명을 건립했다.


원시사회 유적지 분포도, 이 그림은 매우 일찍 만들어졌으며 현대의 연구성과를 포함하지 않는다

그림에서 볼 수 있다시피 원시사회 유적지는 북쪽으로는 흑룡강의 호마(呼玛)까지, 동쪽으로는 무원(抚远), 남쪽으로는 남해, 대만, 에베레스트 부근의 네라무(聂拉木), 서북부 신강의 커시(喀什), 이녕(伊宁) 및 황회(黄淮)나 강회(江淮) 유역 등까지 고르게 발견된다. 이것은 카자흐스탄(파어크시호 동쪽)에 위치한 것과 당노오량해의 것, 몽골 공화국과 흑룡강 하류, 우수리강 동쪽과 사할린 반도 문화유적은 포함하지 않는다. 이건 아직 보수적으로 말한 것이다.


세계적으로 백만 년 이상 된 원시인류 유적지 분포

다시 말해서 이런 원시 유적지는 시대가 달라서 200만년 이상에 걸쳐 있다.(앞서 언급한 유적은 210만 년 전이며 나중의 일반적 유적지는 어떤 것은 5, 6천 년 전이다. 예를 들면 흑룡강 성 밀산시 흥개호(兴凯湖)와 소흥개호 사이에 위치하는 신개류 (新开流 북방신석기)문화이다.

그림 1, 2에서 우리는 문명 유적지는 다원적임을 알 수 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일찍이 많은 서양 학자들은 중화문명이 외래문명에서 유래되었다고 여겼다. 나중에 이 학설은 학계에서 부정되었다. 그러나 국내 학술계에서는 또 이런 ‘외래학설’을 국내 여러 유적지에 옮겨 심었으니 이건 독단이다.

신주 대지의 문명 유적을 가지고 말하면 이런 문명 사이에는 어떤 것은 분명 서로 관계가 있고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어떤 문명, 특히 변두리에 봉폐된 문명은 그것의 독립적 발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사실 어느 문명이 서로 간에 서로 유사한 발전 방식이 있더라도 함부로 서로 직접 관계가 있다고 결론짓지 말아야 한다. 기억에 에모토 마사루라는 일본의 파동학 박사는 《물은 알고 있다》는 책에서 예를 들었다. 두 마리 원숭이가 서로 볼 수 있지만 수역이 떨어져 있으므로 전혀 이동하여 상대방 쪽으로 갈 수 없었다. 전문가는 그 중 한 조의 원숭이에게 한 가지 요령을 가르쳤다. 오래지 않아 다른 한 조의 원숭이도 배웠다. 작자는 이것이 물의 파동이 전달된 까닭이라고 했다. 이런 예는 매우 의미 있다. 이것은 우리가 현재 연구하는 양자 역학이 물건을 전달하는 것과 유사하다.

한 시기에 무슨 문명이 나타나야 하거나 혹은 어느 부락의 집단이 마땅히 어느 정도 문명에 도달해야 하면 하늘에서는 일부러 이런 것들을 안배한다. 각종 방식을 통해 어느 부락에 전한다. 공기, 물도 전달 기능 정보나 물질장의 부분을 전달하거나 싣는 매질이 될 수 있다. 이것은 세계 문명 역사에 도처에 다 있었고 특히 초기에 더 그랬다. 사람들이 늘 문명 기원이 어디인지 연구해도 알지 못하고 심지어 마음대로 긁어모아서 진화론의 가상을 만든다. 이것이 바로 학술 도덕의 문제이다.

이런 것을 말하게 되어 우리는 신화를 말해보자. 현재 어떤 사람은 신화는 황당하다고 하며 어떤 학술계 인사는 신화는 고유의 황당한 일면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신화로부터 우리는 진실한 사건의 그림자를 찾을 수 있다.

중국의 옛 중원(황하 유역이 아니라 대홍수 이전에 사람들이 거주하던 신강, 카자흐스탄, 아모하) 일대 사람들에게는 여와가 진흙으로 사람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전해져오고 있다. 서장의 장(藏)족은 수행하던 원숭이가 나찰녀를 만나는데 관세음보살의 인정하에 둘이 결합해 장족의 조상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진화론자들은 이런 예를 가지고 진화의 예로 삼는다. 여기에는 빈틈이 너무나 많다. 수련하는 원숭이가 무엇 때문에 수련하겠는가? 천국으로 돌아가려고 함이 아닌가? 그렇지 않으면 뭐하러 수련하겠는가! 아울러 관세음보살의 인정하에 나찰녀와 결합했다는 것은 유신론의 증명이다. 또 수련하는 원숭이는 보통 유인원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며 결코 같을 수 없다.

다른 민족 중에도 신이 사람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는데 일일이 들지 않겠다.

이런 것을 말하게 되어 말하고 싶은 것은 중화문명은 상고시기에 다양한 신들이 공동으로 참여해 창립한 것으로 적어도 이럴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런 신은 부동한 지역의 사람을 만들었는데 서두에서 언급한 대로 중화대지를 세 계단으로, 5종의 기후 유형, 4개 대륙지구, 온도대는 6개에 걸쳐 있기 때문에 이렇게 복잡한 환경, 부동한 지구의 민족들의 발전 속도 방식이 건립한 문화는 당연히 매우 큰 구별이 있다.

중화의 상고 신화 이야기 중에 화서(華胥)씨, 수인(燧人)씨, 복희(伏羲)씨, 여와(女媧)씨, 유소(有巢)씨, 신농(神農)씨 등등이 인간에 왔다. 어떤 이는 사람을 만들었고, 어떤 이는 사람이 필수적으로 생활하는 기능을 가르치고 규범을 제정했다. 이는 이후 헌원 황제가 신전문화를 개창하는 길을 깔기 위한 것이었다.

이것은 우리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또 대륙에서 무신론과 진화론의 영향을 받았고 게다가 오랜 상고시기 제왕의 기록이 상세하지 않아 사람들은 그들을 생략하거나 잊어버리기 쉽다.

사람들이 익숙한 제왕에 대해 쓰기 전에 개괄적으로 그 상고 제왕과 그들의 일을 좀 쓸 필요가 있다.

우리는 ‘삼황오제’라는 말을 들어보았다. 《상서대전》에 근거하면 수인, 복희, 신농씨는 후삼황이라고 가리키는데 이전에 초삼황과 중삼황이 있다. 합하면 9명의 제왕이다. 중삼황 시기의 인황을 태황씨라고 부르는데 태황씨로부터 시작하여 시기에 따라 순서대로 10기로 나눈다. 순서대로 하면 구두기(九头纪), 오룡기(五龙纪), 섭제기(摄提纪), 합낙기(合雒纪), 연통기(连通纪), 서명기(叙命纪), 순비기(循蜚纪), 인제기(因提纪). 선통기(禅通纪), 소흘기(疏仡纪)가 있다.

제 1기는 태황씨를 기원으로 하며 구두기라 칭한다. 제십기는 헌원 황제를 기원으로 하며 소흘기라 칭한다. 그 사이에 많은 수의 상고 제왕이 출현했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이들이다. 거령씨, 구강씨, 초명씨, 탁광씨, 구진씨, 황신씨, *신씨, 이령씨, 대혼씨, 귀괴씨, 엄자씨, 태방씨, 염상씨, 합영씨, 대돈씨, 운양씨, 무상씨, 태희씨, 공상씨, 신민씨, 의제씨, 차민씨, 진방씨, 촉산씨, 회괴씨, 혼돈씨, 동호씨, 황담씨, 계통씨, 길이씨, 궤거씨, 희위씨, 유소씨, 수인씨, 용성씨, 사황씨, 백황씨, 중황씨, 대정씨, 율육씨, 혼련씨, 혁서씨, 갈천씨, 존호씨, 축융씨, 호영씨, 주양씨, 무회씨, 복희씨, 신농씨, 헌원씨 … (이런 것은 청나라 건륭황제 시대에 편찬한 《흠정사고전서(欽定四庫全書)》의 ‘략사(路史)’와 채동번의 《중화전사연의(中華全史演義)》 제 1회와 제 2회에 다 기록이 있다.)

여기에 나오는 ‘무회씨’는 응당 《사기》 ‘봉선서’ 에서 관중이 말하는 그 봉선한 제왕일 것이다. (원문 : “ ….. 관중 왈 ‘옛사람은 태산선량부 72가를 봉했는데 내가(관중, 夷吾) 기록하는 가는 12개뿐이다. 지난날 무회씨를 태산에 봉하여 제사 지내니….’”

상고시대의 ‘氏(씨)’라고 부르는 법에 대해 설명할 것은: 상고시기에 ‘氏(씨)’는 일개 부락이나 가족의 명칭으로 한 개인의 이름이 아니다. 한 가족이나 부락에서 몇 대를 지나면 무슨 씨라고 불렀다. 예컨대 신농씨는 백초를 맛본 신농이 제 일대이며 헌원황제가 신농 염제와 싸웠다는 그 신농 염제는 신농씨의 마지막 세대다. 물론 많은 경우 사람들은 늘 ‘무슨 씨’ 앞에 별칭으로 신농 염제처럼 더한다. (제 일대에서 최후까지 모두 이렇게 부른다) 이렇게 하여 후인들이 한 사람으로 오해하기 쉽게 되었다.

《춘추위》에 의하면: 태황씨부터 시작하여 노나라 애환공 14년(기원전 481년)까지 10기를 거쳤고 총합계 326만7천년이라고 했다.

상고시기에 문자가 없던(이것은 가정이다. 아마 상고시기에 일부 이전의 문명을 계승하여 내려온 문명, 문자가 있었고 우리 현재 알아보지 못하는 과두문자 같은 것이 있었으나 나중에 완전히 실전되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상고 시기의 일은 우리가 진화론처럼 추측할 수 없고 그때는 낙후하거나 어쨌거나 라고 추측할 뿐이다. 이 틀을 벗어나면 아마 그 시기 인류는 매우 발달했을 것이다! 다만 나중에 그런 것을 잊어버렸을 뿐이며 문명이 다시 번영했을 것이다) 시기에 그런 일이 어떻게 전해내려 왔는가?

대기원 사이트에 있는 《중국역사정술》 시리즈의 글에 세 가지 정황을 예로 들었다. 바로 ‘구전’, ‘신이 깨우침’, ‘수련’이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역사상 일은 신이 후세에게 남겨주려는가 아닌가를 보아야 한다. 만일 남기고 싶거나 남길 가치가 있다면 신은 어떤 방법을 생각해내어 남길 것이다. 위에서 말한 세 가지 방법에만 완전히 국한되지 않는다. 모두 신의 법력은 끝이 없어 어떤 것은 방법이 있다고 한다.

‘9황10기’의 설은 본차 문명 이전에 사전에 고도로 발달한 문명의 그림자를 노출한다. 이 방면에 정견망의 《사전문명의 면사포를 벗기다》 내지 내몽골 대학 출판사에서 나온 《고금신비현상전기록》등 많은 책이 있으니 참조하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46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