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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우중화 (6): 춘추전국 (3) 오해풀기

작자/석방행

【정견망】

우리는 여기서 몇천 년간 오해받아온 세 구절에 대해 분명히 밝히려 한다.

첫째는 바로 ‘남존여비(男尊女卑)’다. 후인들은 이를 여자를 경시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어떤 남자는 이 구절을 가지고 여인을 못살게 굴면서도 마음에 걸림이 없다. 어떤 여인은 자기의 지위가 낮다고 속으로 불평한다. 특히 나중에 일부 도학자들이 이 방면에 극단화하여 더욱 심하게 오해한다.

‘남존여비’는 본래 《역경, 계사》에 나온다. 공자는 《역경》을 공부한 후 《계사(상하전)》를 썼다. 그 속에 이런 묘사가 있다. “하늘은 존귀하고 땅은 낮으니 건곤이 정해져 있다. 높고 귀천이 정해져 있다.” “건의 도는 남자가 되고 곤의 도는 여자가 된다.” 이것은 공자가 만사만물은 각기 그 위치에 있음의 중요성을 설명한 것이다. 여기의 귀천은 우리가 현재 말하는 귀천과 같지 않다. 여기서 귀천이 가리키는 것은 사람이 인생의 각기 다른 단계 중에 있고, 사회에서 처한 위치가 다름을 말하는 것으로 결코 능력과 신분을 대표하지 않는다. 더욱이 사상과 지위상의 존비가 아니다.

남녀 모두 각자 그 도를 지켜야 한다. (남자는 큰 용기, 포용, 양강, 여자는 온유하고 겸손하고 세심한 등) 각기 그 위치에 있으며 지상의 고저가 없다. 이렇게 음양의 화해의 도에 부합하며 가정이 비로소 아름다움에 충만하고 도가의 음양(태극무늬)처럼 서로 간에 포함하여 상보상성한다. 여기에는 여인을 경시하는 뜻이 없다.

여자를 무시한다는 말이 나왔으니 후세인들이 쉽게 오해하는 두 번째 구절을 보자.

바로 “오직 여자와 소인은 기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것도 후세인들이 여자를 무시하는 말로 칭한다. 당시 사회적으로 남녀는 매우 평등했다. 《시경》에 많은 것은 남녀간의 애정을 말했으며 공자 본인도 여인을 경시하는 뜻이 없다고 했다. 그럼 이 구절의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우리 당시 환경을 보자.

자공이 물었다. “군자도 미워하는 것이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미워하는 게 있다. 남의 나쁜 점을 말하는 것을 미워하고 낮은 지위에 있으면서 윗사람을 헐뜯는 것을 미워하며 용감하기만 하고 무례한 사람을 미워하며 과감하면서 융통성 없는 사람을 미워한다.”

“사(자공을 지칭)야, 너도 미워하는 것이 있느냐?”

“남의 공적을 훔쳐 아는 척 하는 사람을 미워하고 불손을 용감하다고 여기는 사람을 미워하며 남을 폭로하면서 정직한 척하는 사람을 미워합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오직 여자와 소인은 돌보기 어렵다! 그들은 가까이하면 불손해지고 멀리하면 원망한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이가 마흔이 되어서도 남의 미움을 받는다면 그 사람은 끝이다!”

(이상은 《논어, 양화》)

이 구절의 말을 우리가 보면 명백하다. “가까이하면 불손해지고 멀리하면 원망한다.”는 표현은 어떤 사람들과 도덕 표준이 저하되거나 지위가 비교적 낮은 사람들은 같이 지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교육받은 것이 적어 도덕 수양이 자연히 낮으며 사회의 나쁜 습관에 오염된다.) 여기서 ‘여인’은 어느 부류의 사람을 대신 말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현재 사람들이 생각하는 ‘여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다시 이 구절을 보면 공자가 이때 말한 것은 전혀 불평하는 말이 아니다. 바로 일종의 도리를 말한 것이다. 상하의 글은 연관지어 마음속의 뜻을 나타낸 것이다. 사람이 미워하게 하는 것들에 대한 서술이다.

마지막으로 오해가 심한 세 번째는 “공자께서는 괴력난신을 말하지 않으셨다.(子不語,怪,力,亂,神) 《논어, 술이》.”는 말이다. 이 구절을 가지고 현재 무신론자들이 공자를 무신론자의 상징이라 여긴다. 사실 만일 이렇다면 공자는 무엇 때문에 일생 주례부흥에 열중했을까, 제사의 일에 매우 열심이었을까.

예를 들어 《논어, 요왈》에 보면: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천명(命)을 모르면 군자라 할 수 없고 예(禮)를 모르면 설 곳이 없으며 말(言)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 수 없다.”

보편적으로 신(神)을 믿는 환경에서 ‘명’, ‘예’, ‘언’ 은 어디서 나왔겠는가? 말을 하지 않아도 자명하다. 하물며 공자는 세 차례나 노자에게 예를 묻지 않았던가?

사실 이 구절의 본뜻은 바로 신선이나 귀신의 일을 말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말 밖의 뜻이란 ‘사람’ 여기의 일을 잘해야 신선 귀신의 일을 할 때 신선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 여기의 일을 잘하지 못하면서 신선 귀신의 일을 말하면 미치지 못하거나 (왜냐하면 신선 등은 부정한 생명 앞에는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혹은 나쁜 것에 상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기억에 어렸을 때 일부 오래된 집의 담벼락에 “비림비공(批林批孔)-임표(린바오)를 비판하고 공자를 비판한다-문화혁명 시절 임표(린바오)를 비판하기 위한 모택동의 선전술”의 표어를 본 적이 있다. 당시에는 무슨 뜻인지 몰라서 어른에게 물었더니 어른이 말했다. “임은 임표인데 모택동(마오쩌뚱)과 마음이 같지 않아서 비행기를 타고 도주하다가 떨어져 죽었어. 사람들은 임표의 집에서 공자에 관한 책을 하나 찾았는데 그 때문에 수천 년 전의 공자가 임표에 연루되어 비판을 받은 것이지.”

지금 생각하면 매우 황당하다. 임표는 자칭 모택동의 좋은 학생이 되겠다면서 매일 모택동 어록을 들고 다녔는데 그럼 왜 모택동은 비판하지 않는가?

이런 각도에서 보자면 당시 공자에 대한 중공의 소위 비판은 모두 단장취의해 사실을 왜곡한 것이다. 심지어 막돼먹은 여자가 거리에서 고함지르듯이 하는가. 하지만 이런 후과는 재난이 컸다. 2천여 년 유가 도덕의 밑바닥이 파괴되었고 사람들은 마음대로 자연을 파괴하고 인륜은 혼란시켰다. 그래서 현재 중국인의 각종 문제가 무궁하게 나타났다.

춘추시기에 봉선(하늘과 땅에 제사) 문제는 점점 일종의 제도로 되었다. 사실 봉선은 원래 하늘에 존경과 하늘의 인가를 얻는 외에 더 중요한 목적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다. 생명은 본래 하늘에서 온 것이다. 군왕이 신하백성을 대표하여 봉선을 하여 하늘로 가는 길을 밟는 것이다. 진정으로 생명이 온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점으로부터 말하면 박학한 공자는 “동산을 오르면 작은 노나라이고 태산을 오르는 것은 작은 천하이다”라고 했다. 절대 우리 상상처럼 그리 간단하지 않다. 만일 태산에 가서 신의 가르침을 받는 인간의 도리를 안다면 그것은 무슨 뜻인가? ‘깨달은 생명’이라는 뜻이 아닌가? 무엇 때문에 중토에 ‘공자성인’이란 문화를 남겼으며 천고에 쇠하지 않는가? 이 점은 여러분들이 한번 잘 생각해보기 바란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우리는 히말라야 남쪽의 고인도를 생략해서는 안 된다. 석가모니(기원전 560년-482년)는 이 시기에 태어나 출가하여 도를 찾고 최후에 성불하여 중생을 널리 제도했다. 그가 남긴 불법은 후에 중화문화에 미친 영향이 거대하다.

유(儒), 석(釋), 도(道) 심지어 서방의 기독교도 대략 이 시기에 일어나 널리 퍼졌다. 이런 공교로움은 어찌 고층의 생명이 의도적으로 배치한 것이 아니겠는가?

(계속)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48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