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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고영웅인물】 요‧순‧우(1): 홍수가 하늘에 닿고 복희가 세상을 열다

글/찬란한 5천년 신전문화의 천고영웅인물 연구팀

들어가는 말

중국은 고대에 신주(神州)로 불렸으니 바로 신들의 고향이다.

“반고(盤古)가 천지를 열고”, “여와(女媧)가 사람을 만들고”, “복희(伏羲)가 팔괘를 그리고”, “신농(神農)이 온갖 약초를 맛보고”, “창힐(倉頡)이 문자를 만든 것”은 우리에게 뚜렷한 역사적 그림을 펼쳐 보여준다. 창세주(創世主)는 체계적이며 질서 있게 세상을 창조하고 사람을 만들었으며 인류가 생존하고 살아갈 환경을 다져주었고, 사람에게 문화를 전해 인류를 교화하고 사람의 도덕행위를 규범 짓게 하셨다. 이런 기초 위에서 창세주는 신불(神佛)이 세상에 내려가 법을 전하고 사람을 제도해 사람들을 수련으로 이끌도록 가르쳐 인류에게 수련문화를 다져주어 반본귀진(返本歸真)하여 천국으로 되돌아갈 수 있게 하셨다.

아주 오래 전 기록에 따르면 창세주는 인류가 존재하는 삼계(三界)를 창조하셨다. 아주 오래고 먼 이전에 반고(盤古)는 창세주의 명을 받들어 우리 은하 등 여러 성계(星系)를 포함하는 소우주를 창조했다.

뒤이어 일부 신들이 자신의 형상을 모방해 이 지구 위에 사람을 만들었다. 기록에 따르면 여와(女媧)는 진흙으로 자신의 모양을 본떠 사람을 만들었다. 성경에도 여호와가 자신의 형상을 본떠 진흙으로 사람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처럼 다양한 문화 속에는 모두 각기 다른 신들이 각기 다른 종류의 사람을 창조하는 동시에 이 세계를 번영시키기 위해 천지만물을 창조했다는 언급이 있다.

당시 막 만들어진 자연계는 너무 사나워서 길들이기 힘들었고 온갖 질환이 창궐했다. 비는 어떻게 내리고 눈은 어떻게 날리는지 등등 신(神)은 오랜 기간의 조정을 거치며 점차 사람이 자연계를 다스릴 수 있게 했으며 인류가 생존하고 생활할 환경을 다져주었다. 춘하추동 사계절이 분명해지자 인류는 비로소 편안히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게 되었다.

막 만들어진 사람은 마치 신생아처럼 아무것도 할 줄 몰랐다. 자연환경에 대한 인식도 없었고 자연과 사회에 대처할 능력도 없었다. 이 시기에 신은 직접적으로 인류를 보호했고 인류가 생존하고 생활할 환경을 다져주었으며 사람의 생존능력을 배양해 점차적으로 사람의 사상내포가 풍부해지면서 자립할 수 있게 했다.

유소씨(有巢氏)는 사람들에게 나무를 엮어 집을 지어 비바람을 막고 각종 재해를 피할 수 있게 했다.

수인씨(燧人氏)는 “부싯돌로 불을 얻어(鑽燧取火)” 자연의 불에만 의지해야 했던 인류의 역사를 끝내게 했다. 고대 그리스 신화 중에도 프로메테우스가 하늘의 불을 훔쳐 인류에게 전해주었다는 유사한 기록이 있다.

한편 복희씨(伏羲氏)는 거대한 신통력으로 위로 천상을 보고 아래로 지리를 관찰해 팔괘(八卦)를 그렸고 인류에게 신과 소통할 수 있는 도구를 남겨주었다. 다시 말해 팔괘는 처음부터 천지자연과 소통할 수 있는 오묘한 신통을 구비했다.

복희 시기에 지구에는 훼멸적인 대홍수가 나타났다. 초(楚)나라 백서(帛書)의 기록에 따르면 홍수가 지나간 후 한바탕 혼돈이 생겼고 이에 복희 등이 세상 창조를 진행해 천지 사시와 일월성신의 운행을 바로 잡고 음양을 조화롭게 했다.

신농씨(神農氏) 시기에 이르러 인류가 번성함에 따라 음식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 그는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농사를 가르쳤고 오곡(五穀)을 일으켰으며 보습과 쟁기를 만들어 농경시대를 개창했다. 후세에 신농이 오곡의 신으로 존경받게 된 이유이다. 그는 또 자편(赭鞭)이라는 신비한 채찍으로 초목을 때려 온갖 풀을 맛보고 처음으로 의약을 만들었다. 때문에 신농씨는 약왕(藥王)으로도 존중받는다. 신농은 교역시장을 만들었고 서로 남는 것과 없는 것을 교환해 상업과 무역의 선구를 만들었다.

시간은 거침없이 흘러 황제(黃帝)시대가 되자 휘황한 오천년 역사의 서막이 열렸다.

황제는 천하를 평정하고 화하(華夏)의 여러 부락을 통일하고 융합해 천하공주(天下共主, 천하 공동의 주인)가 되었다. 이는 중화민족의 여러 부락과 씨족들이 최초로 통일연맹을 맺어 문치(文治)와 무공(武功)의 시대를 연 것으로 ‘병정천하 왕자치국(兵征天下 王者治國, 무력으로 천하를 정벌하고 왕이 나라를 다스림)’의 도리를 체현했다. 황제는 각종 관직을 설치하고 제도와 문물을 만들어 인류의 사회구조를 창립했다. 또 의상 및 배와 수레를 만들었고 문자를 발전시켰으며 간지(干支)를 만들고 악기를 제작했다. 이외에도 의학을 창립하고 역법(曆法)을 처음으로 만들었으며 양잠 등을 시작해 찬란한 인류문명을 개창(開創)했다. 황제는 또 도(道)를 닦아 최후에 용을 타고 하늘로 올라감으로써 수련을 통해 도를 얻고 신이 되는 수련문화를 다져놓았다.

때문에 황제는 중화민족의 시조로 불린다.

‘창힐의 한자 창조(倉頡造字)’는 인류문명 역사에서 찬란한 사건이다. 기록에 따르면 창힐은 황제의 사관(史官)으로 “태어나면서부터 글을 쓸 수 있었고 하도와 낙서를 받아 천지의 변화에 통달했다. 또 위로 별자리를 보고 아래로 물고기 무늬와 새의 깃털을 관찰했으며 산하를 손금 보듯이 하여 문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회남자(淮南子)‧본경(本經)》에는 “옛날에 창힐이 글을 만들자 하늘에서 곡식이 비처럼 내리고 귀신이 밤에 울었다.”는 기록이 있다. 한자는 상형문자로 모양을 본뜬 것으로 자음(字音)과 자형(字形)이 천상에 대응하며 천지인 및 신(神)과 정보를 소통할 수 있다.

지금까지 출토된 갑골문은 약 5천여 자에 달하며 대단히 성숙한 문자이다. 거북이 등껍질이나 짐승의 뼈, 동기(銅器), 도기, 옥석 위에 대량의 문자를 새겨 제사를 지내고 점을 친 기록을 남겼다. 왜냐하면 당시의 문자는 천상(天象)을 기록하고 신을 제사하고 신을 공경하기 위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주(周)나라 이전의 문자는 ‘사람’의 일 아니라 ‘신’의 일을 기록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전욱(顓頊, 황제의 손자)시기에 하늘과 땅의 통로가 단절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다시 말해 사람과 신의 직접적인 연계가 단절되었고 이때부터 사람들은 점차적으로 신에게서 멀어졌다.

요임금(堯帝) 시기에 또 다시 세계적인 규모의 대홍수가 발생했고 소수의 사람들만 살아남았다. 창세주의 배치 하에 요(堯), 순(舜), 우(禹) 세 성군(聖君)이 서로 이어가며 신주(神州) 대무대(大舞台)를 만들었다. 이들은 대홍수 이후 새로운 문명의 개척자이자 신세계의 창조자였다.

나중에 진시황(秦始皇)이 천하를 통일하면서 최종적으로 신주라는 이 대무대를 완성시켰다. 그는 문서를 통일하고 수레의 궤도를 통일했으며 천년문화체제를 만들어 중화 천고의 정치체제의 틀을 다져놓았다.

한무제(漢武帝)는 백가(百家)를 몰아내고 근본을 바로잡고 근원을 깨끗이 만들어 외유내도(外儒內道, 겉으로는 유가 안으로는 도가)와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정통문화를 다졌고 진나라 체제를 계승한 기초 위에서 나중에 청조(清朝, 청나라 왕조)까지 이어지는 한 세트의 안정적인 정치체제의 틀을 만들었다.

중국 역사상 여러 왕조가 등장하고 몰락하면서 한 막 한 막 감동적인 역사의 대극을 공연하면서 한 폭 한 폭 파란만장한 역사의 그림들을 펼쳐보였으며 수많은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서술했다. 우임금이 구주(九州)를 정하고 탕(湯)임금 제업을 받았으며 진나라가 6국을 병탄하고 한나라가 제업의 기틀에 올랐다. 천하를 얻기 위한 중원의 다툼에서 다양한 영웅들이 출현했고 한 조대(朝代)가 끝나고 새로운 조대의 서막을 열면서 끊임없이 도덕을 핵심으로 한 중화의 문화내포를 다지면서 또 풀어냈다.

5천년 신전문화(神傳文化)의 과정은 바로 신이 인류를 단련하고 성취시킨 과정으로 인류의 사유구조를 만들어낸 위대한 공정이었다. 매 조대(朝代)마다 모두 각기 다른 천국의 중생들이 인간세상에 내려와 인연을 맺는 모습을 띠는데 모두 자신의 문화적 특징이 있고 자신이 해야 할 일과 완성할 사명이 있었다. 5천년 문화의 축적은 박대정심(博大精深)하며 찬란한 빛을 뿌렸다.

중화전통문화는 창세주가 신주 역사에 배치한 여러 민족들이 공동으로 창조한 것이다.

제1장 대홍수와 복희의 창세

복희씨(伏羲氏)는 우리 이번 차례 문명의 시조였다. 복희는 우주조화의 오묘함에 순응하고 천지자연에 부합했다. 천지를 본받아 새로운 우주를 창조했으며 하늘과 땅이 구별되고 사계절과 성신(星辰)에 순서를 만들었다.

《노사(路史)》에서는 “복희의 모친은 화서(華胥)인데 화서의 물가에 살았다. 일찍이 숙희(叔姬)와 물가에 놀러갔다 거대한 발자국을 보고 자신의 발을 발자국에 대보니 무언가 감촉을 느꼈다. 무지개가 둘러싸더니 12년을 임신했다. 구이(仇夷)에서 태어나 기성(起城)에서 성장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삼황본기三皇本紀》에는 “태호(太皞) 포희씨(庖犧氏)는 성이 풍(風)으로 수인씨(燧人氏)를 이어 천하의 왕이 되었다. 어머니는 화서(華胥)인데 뇌택(雷澤)에서 거인의 발자국을 밟고 성기(成紀)에서 포희씨를 낳았다. 성스러운 덕이 있었고 우러러 하늘의 일월성신을 관찰하고 아래로는 땅의 법을 관찰하며 두루 새와 짐승의 무늬와 아울러 땅의 마땅함을 두루 관찰했다. 가까이는 자신의 몸에서 취하고 멀리는 사물에서 상을 취해 처음으로 8괘를 그렸다. 이를 통해 신명(神明)의 덕과 통하고 만물의 실정을 분류했다.”라고 했다.

한편 당나라의 이순풍(李淳風)은 《진서(晉書)‧오행지(五行志)》에서 “복희씨는 하늘을 대신해 왕이 되었고 하늘이 내린 하도(河圖)를 받아 팔괘도를 그렸다. 용마(龍馬)가 하도를 바치고 백구(白龜 흰 거북)가 낙서(洛書)를 바쳤다. 팔괘는 음양과 태극의 이치를 궁구해 선천의 대도(大道)를 드러낸 것이다. 팔괘는 천지자연과 소통하는 기묘한 신통을 구비해 인류에게 사람이 신과 소통할 수단을 남기고 사람이 신의 점화와 도움을 얻을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여기서 언급된 ‘용마’란 《기문둔갑(奇門遁甲)》에 따르면 “용마란 천지의 정화로 그 모습은 용의 머리와 비늘에 말의 몸이라 용이라 부른다. 말은 키가 8척5촌으로 골격 위에 날개가 있어서 물을 밟아도 빠지지 않는다. 성인이 위치에 있을 때 맹하(孟河)에서 그림을 지고 나왔다.”고 한다.

복희 시기에 천지에 거대한 변화가 발생했다. 세상을 훼멸시킬 거대한 홍수가 다년간 지속되어 곤륜산 일대의 사람들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 시기에 대략 복희 남매가 호로박을 타고 탈출했다는 전설이 나왔으며 이는 서양의 아틀란티스나 뮤 대륙 등이 훼멸되었다는 전설과도 서로 맞아 떨어진다. 지금으로부터 약 1만 년 전의 일이다.

홍수가 지나간 후 하늘과 땅이 분리되지 않아 혼돈상태에 처하자 복희는 창세의 신적(神跡)을 드러냈다. 초나라 백서(帛書)의 기록에 따르면 복희는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세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상고시대에 큰 용이 있었는데 이름이 복희였다. 뇌택에서 태어나 회수(淮水)에서 살았다. 당시 천하에 밤과 낮이 구별되지 않았고 세계는 혼돈과 몽매의 상태에 처해 있었다. 오직 비바람이 쌓이면서 홍수가 범람했다. 복희는 여와를 아내로 맞아 네 아들을 낳았다. 이 네 아들은 4시와 4방을 관리하는 4신이 되었다. 봄은 큰형으로 청간(青幹)이라 불리며 동방을 주관하고 둘째 여름은 주사단(朱四單)이라 하며 남방을 주관했다. 셋째 가을은 요황난(翏黃難)이라 하며 서방을 주관하고 넷째 겨울은 휴묵간(畦墨幹)이라 하며 북방을 주관했다. 네 신이 처음으로 천지를 다스리고 일월성신을 주관하자 하늘과 땅이 구별되고 사시와 일월성신에 순서가 생겨났다.”

한나라 때 그려진 복희와 여와의 그림을 보면 어떤 그림은 손에 규거(規矩, 직각자)를 들고 있는데 이는 우주의 창조자를 뜻한다. 또 어떤 그림에는 해와 달을 들고 있는데 이는 우주의 주재자임을 의미한다.

처음 만들어진 후의 우주는 다시 균형을 상실했다. “천년하고도 백년이 지나자 해와 달의 시간이 늦어지고 구주(九州)가 편평하지 않아 산릉(山陵, 산과 언덕)이 생겨나고 사신(四神)이 이에 일어나 전복되었다.” 이에 청목(青木), 적목(赤木), 황목(黃木), 백목(白木), 흑목(黑木) 5가지 나무의 정으로 파괴된 대지를 덮어서 지탱해 하늘덮개를 튼튼히 했다. ‘사극에 제사를 지내(奠四極)’ 균형을 잃은 우주를 다시 정상화시켰다.

복희 이후 여와가 천하의 주인이 되었다. 공공(共工)이 이에 불복해 반란을 일으키자 여와는 축융(祝融)에게 토벌을 명했다. 전투에서 패배한 공공이 화가 나서 부주산(不周山)을 들이받자 산이 무너지고 하늘기둥이 부러져 땅과 연결된 줄이 끊어졌다. 이 여파로 하늘이 서북쪽으로 기울어졌고 일월성신의 위치가 변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면서 큰 화재가 잇달아 발생했고 홍수가 범람해 날짐승과 길짐승들이 포악하게 횡행했다. 하늘은 더 이상 땅을 덮지 못했고 대지 역시 만물을 싣지 못하자 화재와 홍수가 끊이지 않았다. 여와는 “오색석(五色石)을 다듬어 창천(蒼天)을 보수하고 큰 거북의 다리를 잘라 사극(四極)을 세웠으며 흑룡(黑龍)을 죽여 기주(冀州)를 구제하고 갈대 재를 쌓아 홍수를 막았다.” 이를 통해 천지의 운행질서를 바로잡자 인류는 비로소 편안히 살 수 있게 되었다.

복희는 하늘을 이어 백왕(百王)의 선조가 되었기에 호를 희황(羲皇)이라 한다. 또 초봄에 동쪽 태산에 가서 봉선(封禪)의식을 거행한 시초가 되었다.

수천 년 후 요임금 시기에 이르러 천지는 다시 한 번 거대한 변화가 생겼다. 세계적인 대홍수가 인류문명을 거의 훼멸할 뻔했다. 요, 순, 우는 서로 이어가며 또 한 번의 창세(創世) 여정을 시작했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15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