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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고영웅인물】 요‧순‧우(2): 성왕이 세상에 내려와 요의 하늘을 열다

글/찬란한 5천년 신전문화의 천고영웅인물 연구팀

제2장 성왕이 세상에 내려와 요의 하늘을 열다

1. 성왕이 세상에 내려오다

《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요임금의 부친은 제곡(帝嚳)이다. 제곡에겐 4명의 비가 있었는데 곧 강원(姜嫄), 간적(簡狄), 경도(慶都)와 상의(常儀)였다.

이중 강원이 제곡의 정비(正妃)였다. 강원이 거인의 발자취를 밟아 임신이 되어 기(棄, 후직)를 낳았는데 그가 바로 주(周)나라의 시조다.

간적은 제비알을 삼켜서 임신이 되어 설(契)을 낳으니 설은 상(商)나라의 시조가 된다.

경도는 진봉씨(陳鋒氏)로 이기산(伊祁山) 아래에서 태어났다. 전설에 따르면 경도는 어느 신인(神人)의 딸이라 한다. 어느 날 하늘에서 큰 번개가 내리쳐 신인의 몸에서 피가 나게 했다. 신인의 피가 흘러 큰 바위에 이르자 나중에 이곳에서 영아를 만들었으니 그가 바로 경도였다. 성장한 후 제곡에게 시집가 비가 되었다. 그녀가 바로 요임금의 모친이다.

네 번째 부인 상의는 지(摯)를 낳았는데 지는 제곡의 장자였다. 상의는 또 딸이 한명 있었다.

《죽서기년(竹書紀年)》에 따르면 “(요)의 어머니는 경도라 한다. 투유(斗維) 들판에서 태어났는데 노란 구름이 항상 그 위를 덮고 있었다. 성장해서 삼하(三河)를 바라보면 늘 용이 따르곤 했다. 어느 날 아침, 용이 그림을 지고 나타났는데 ‘역수천우(亦受天祐, 역시 하늘의 도움을 받는다)’는 문장이 있었고 그 아래 ‘적제기성천하보(赤帝起成天下寶, 적제가 일어나니 천하의 보배가 된다)’는 일곱 글자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또 그림에는 인물이 그려져 있었는데 눈썹이 8가지 색이었고 머리카락이 7척 2촌에 달했다. 얼굴형은 위는 가늘고 아래가 두터웠으며 발은 익수(翼宿)를 밟았다. 잠시 후 음산한 바람이 사방에서 모이더니 적룡(赤龍)이 감응했다.

임신 14개월 만에 단릉(丹陵)에서 요를 낳았는데 아이의 모습이 그림과 같았다. 두 발바닥 중앙에는 각각 22개의 주황색 사마귀가 있어서 마치 천상의 익성과 모습이 흡사했다. 때문에 적제(赤帝)의 정이 익수에서 생겼다고 한다. 이름을 방훈(放勳)이라 했다. 《시법(諡法)》에 따르면 “선을 이루고 성을 전한 것을 요라 하고 선행과 덕의를 요라 한다.”(翼善傳聖曰堯,善行德義曰堯)

요는 출생 후 모친과 종종 외조부 이기후(伊祁侯)의 집을 방문했기 때문에 성을 이기(伊祁) 또는 이(伊)라 했다.

요임금은 키가 10척 장신이었다. 《춘추원명포(春秋元命苞)》에 따르면 요임금은 눈썹이 8가지 색으로 빛나 천상과 역수에 밝았고 일월성신의 운행을 잘 알았다고 한다. 《춘추위(春秋緯)‧합성도(合誠圖)》에서는 그의 이마가 태양모양이었다고 한다.

2. 지(摯)가 제위를 잇다

제곡(帝嚳)은 만년에 도(道)를 찾고 수도(修道)에 전념하면서 네 아들 중 누구에게 제위를 물려줄 것인지 생각해보았다. 그는 네 아들을 비교해보았다. 재주와 덕을 따지자면 요와 설이요, 그 모친의 자격을 따지자면 기가 낫고, 나이를 고려하면 지가 맏이지만 재주와 덕이 다른 형제들에 미치지 못했다. 제곡은 점을 쳐서 결정하기로 했는데 그 결과 네 아들이 모두 천하를 갖는다는 점괘가 나왔다. 제곡은 결국 나이순에 따라 먼저 지를 후계자로 삼았다.

제곡이 사망한 후 지가 제위를 이으니 그가 바로 제지(帝摯)다.

요는 13세 때 도(陶 지명)에 봉해졌다. 그는 배우길 좋아하고 능력이 뛰어났는데 도기 제작 솜씨가 뛰어나 인근에 소문이 자자했다. 요는 어진 덕과 재능이 있어 도읍을 아주 잘 다스렸다.

15세가 되자 요는 또 당(唐)지역의 제후로 봉해져 조정에 나와 정치에 참여하라는 명을 받았다. 나중에 그와 그 씨족은 ‘도당씨(陶唐氏)’로 불린다.

한편 제지는 재주와 덕이 부족해 일부 불량한 사람들 특히 ‘삼흉(三凶)’과 어울렸다. 삼흉이란 당시 3명의 악인으로 하나는 공공(共工, 직책) 공임(孔壬), 하나는 환두(驩兜) 마지막은 곤(鯀)이었다.

이중 공공 공임은 말재주가 뛰어났고 겉으로는 공순하고 선량해보이지만 속마음이 악독했다. 환두는 원래 성격이 흉악해 잔인하고 폭력적이라 풍속을 해치거나 많은 이들을 미혹시켜 나라를 어지럽혔다. 곤은 박학하고 재주가 많았으며 건축에 뛰어났지만 자신만 옳다고 여겨 고집이 세고 멋대로 하는 경향이 있었다.

제지는 환두를 사도(司徒)에 임명해 정치를 총괄하게 했고 공임(孔壬)을 공공(共工)에 임명해 온갖 공사를 주관하게 했다. 또 곤은 수로와 도로건설을 책임지는 사공(司空)에 임명했다. 환두와 공임은 제지를 유혹해 주색에 빠져 정치에 집중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자 백관들과 관계가 소원해졌고 백성을 돌보지 않게 했으며 민원이 자주 발생하고 천재가 끊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에 대해 천자가 무도(無道)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3. 화란(禍亂)을 평정하다

제지가 덕을 잃자 동이(東夷)의 일부 부락들이 잇달아 난을 일으켜 사회를 해쳤다. 《회남자(淮南子)‧본경훈(本經訓)》에는 “요임금 때 알유(猰貐), 착치(鑿齒), 구영(九嬰), 대풍(大風), 봉희(封豨), 수사(修蛇)가 모두 백성들에게 해를 끼쳤다.”는 기록이 있다.

“제준(帝俊)은 예(羿)에게 붉은 활과 흰 화살을 주어 아래로 내려가 돕게 했다.”(《산해경‧해내(海內)》) 즉 당시 천제(天帝) 제준이 장차 인간 세상에 대재앙이 발생할 것임을 알고 예를 인간 세상에 내려 보내 인류를 돕게 한 것이다.

예는 요의 명을 받들어 북으로 설수(楔輸)를 베고 서로는 구영(九嬰)을 멸했으며 중앙에서는 봉희(封豨)를 제거하고 남으로 파사(巴蛇)를 죽이고 동으로 대풍(大風)을 쐈으며 또 착치를 죽였다. 이렇게 화란을 제거하자 요의 성스런 덕이 천하에 널리 퍼졌고 천하의 인심이 그에게 돌아왔다.

4. 천명을 받들어 제위를 잇다

사방의 제후들은 요의 위덕이 날로 커지는 것을 보고 모두들 그를 제(帝)로 옹립하려 했다. 제지 역시 자신이 요보다 못함을 알았고 이에 제위를 이은 지 9년 만에 양위조서를 내려 요에게 제위(帝位)를 선양했다.

전설에 따르면 요가 태산을 유람할 때 갑자기 한 마리 청룡(靑龍)이 나타났다. 그가 용을 타고 날아오르자 산봉우리가 떨어져나갔고 고개를 들자 천문(天門)이 크게 열린 것을 보았는데 정수리에서 불과 5척에 불과했다. 그는 두 손으로 천문의 난간을 잡고 천상에 올라가 은대(銀台)와 금궐(金闕) 옥우(玉宇)와 경루(瓊樓)가 화려하고 휘황찬란하다고 느꼈다.

요가 제지를 이어 천하의 주인이 되니 그가 바로 제요(帝堯)로 평양(平陽)에 도읍했다.

요는 제위에 오른 후 늘 민간에 들어가 현인을 구하고 도인을 찾아다니며 정치의 득실에 대해 관찰하곤 했다. 한번은 요임금이 적장자여(赤將子輿), 벌갱(筏鏗), 무함(巫鹹) 등을 방문한 후 그들을 조정으로 불러 관직을 맡겼다. 이외에도 백성자고(柏成子高), 장과로(張果老) 등이 서로 도왔다.

요임금이 한번은 분수(汾水) 북쪽 강변의 고야산(姑射山)을 찾아가 4분의 수도인을 예방한 적이 있다. 이들의 이름은 방회(方回), 선권(善卷), 피의(披衣, 포의라고도 한다)와 허유(許由)였다. 요는 어른과 스승을 대하는 예절로 그들을 찾아가 마음을 비우고 가르침을 구했다. 요는 또 윤수자(尹壽子)를 스승으로 모셨다.

요임금 5년 남이의 월상국(越裳國)에서 사신을 파견해 축하하며 큰 거북 한 마리를 바쳤다. 사자의 말에 따르면 이 거북은 신구(神龜)로 수명이 천년이 넘는데 직경이 3척이 넘고 등에 빽빽하게 과두문(蝌蚪文)이 새겨져 있었는데 천지가 개벽된 이래 인류의 역사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요임금은 몹시 기뻐하며 사관(史官)에게 명해 사서에 기록하게 했다.

요임금은 천하를 9주로 나누고 정기적으로 사방을 순시했으며 사방 제후들의 의견을 구하며 정치의 장단점을 살펴보곤 했다. 또 방목(謗木)을 설치해 백성들의 목소리를 들었으며 천하를 다스리는데 전력을 다했다.

《사기》에서는 요임금에 대해 “그 인자함은 하늘과 같고 그 지혜는 신과 같았으며 가까이 다가가면 태양과 같고 멀리서 바라보면 구름 같았다.”고 표현했다. 그는 부유하면서도 교만하지 않았고 고귀하면서도 오만하지 않았다. 선량하고 덕이 있는 사람을 존경했으며 늘 마음속에 천하 백성들을 담고 구족(九族)이 서로 친하고 백성들이 서로 화목하게 했다. 그는 인자하고 총명했으며 천지에 덕이 가득했고 백관들의 정치적 업적도 두드러졌고 각 부락들도 모두 평화롭게 지냈다.

《설원(說苑)》에 따르면 “요는 천하에 마음을 두었다. 어떤 사람이 배가 고프다고 하면 ‘내가 그의 배를 곯게 했구나’라고 했고 어떤 사람이 춥다고 하면 ‘내가 그를 춥게 했구나’라고 했다. 또 어떤 백성이 죄를 지으면 ‘내가 그를 죄에 빠뜨렸구나’라고 했다.” 어질고 덕이 있으니 교화가 널리 퍼졌고 때문에 사람들이 상을 주지 않아도 서로 권하고 벌을 주지 않아도 서로 다스렸으니 이것의 요임금의 도(道)였다.

천하가 이렇게 태평해지가 한 팔순 노인이 격양가(擊壤歌 막대기로 땅을 두드리면 부르는 노래)를 불렀는데 그 내용은 “나는 아침에 나가 일하고 저녁이면 들어와 쉬네, 우물을 파서 물마시고 밭을 갈아 밥 먹으니 임금님이 내게 무슨 덕을 베풀었단 말인가(吾日出而作,日入而息,鑿井而飲,耕田而食,帝何力有於我哉)”라고 했다. 이를 보던 사람이 “임금님의 덕이 크기도 하구나!”라며 감탄했다.

5. 예가 9개의 태양을 쏘다

당시 화읍국(華邑國)에서 “태양에서 한 가닥 검은 기운이 나와 태화산(太華山)을 몇바퀴 에워산 후 태화에서 한 물건이 발견되었는데 모양은 뱀과 같으며 다리가 6개에 날개가 4개 달렸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이는 천하에 큰 가뭄이 들 징조라고 합니다.”라고 보고했다.

또 북방 탁록국(涿鹿國)에서는 “황제가 치우를 싸워 이길 때 황제를 도와 폭우를 내리게 했던 여발(女魃)이 남쪽 기주(冀州)로 들어가 기주에 가뭄이 들어 비가 내리지 않습니다.”라고 보고했다.

뒤이어 하늘에 4개의 태양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하늘에는 두 태양이 있을 수 없으니 그중 세 개는 분명 요사한 별이라고들 말했다.

요임금은 예에게 요성(妖星)을 제거해 백성들의 재앙을 없애라고 명했다. 예는 진짜와 가짜를 가릴 수 없음을 걱정하면서 “만약 진짜 태양을 쏴서 떨어뜨리면 큰 죄를 짓는 것이 아닙니까?”라고 했다. 이에 요임금은 “그것이 진짜라면 쏘아도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알려주었다.

결국 나중에 10개의 태양이 동시에 하늘에 나타났다. 예는 활과 화살을 들어 연속으로 여러 화살을 쏘았지만 하나의 태양도 떨어지지 않았다.

요임금은 걱정으로 속이 타들어갔다. 이때 적장자여(赤將子輿)가 말했다. “홍애선인(洪崖仙人)의 말에 따르면 임금님께서 먼저 재계하고 경건하게 천지조종(天地祖宗)에 기도를 올려야합니다. 예가 비록 신전(神箭 신의 화살)이 있다고는 해도 그래도 임금님의 정성이 필요합니다.” 이에 요임금은 3일간 목욕재계하고 천지에 제사를 지냈다.

한편 《산해경‧대황남경(大荒南經)》에 따르면 “동남해의 밖 감수(甘水) 사이에서 제준(帝俊 천제)의 처 희화(羲和)가 10개의 태양을 낳았다. 전설에 따르면 이들 태양은 동방 천제 제준의 아들로 종종 동해 밖 양곡(陽谷)에 머문다.”라고 했다. 10개의 태양이 동시에 하늘에 떠오르자 초목은 메말라죽고 강물도 말라버려 대지가 타는 듯했다. 사람들은 더워서 숨이 차 죽을 지경이었다.

예는 명을 받고 곤륜산 위로 올라가 하늘을 우러러 기도했다. 그는 태양들에게 돌아갈 것을 권고했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 이에 후예는 신전(神箭)을 장전해 한 발 한 발 쏘았고 그때마다 태양이 하나씩 떨어졌다. 결국 하늘에는 오직 하나의 태양만 남게 되었고 날씨가 다시 시원해졌으며 음양이 조화를 얻었다.

6. 역법을 만들고 사시음양을 조화롭게 하다

상고시대에는 하늘의 뜻을 받들어 천문과 천상을 관찰하며 사시를 바르게 하고 음양을 조화롭게 하며 천지에 제사를 지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다시 말해 이는 신과 소통하는 방식의 하나였다.

요임금이 제위를 이은 초기에는 사시가 무질서하고 음양이 조화를 잃었으며 천지운행이 원래 순서를 따르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면 반드시 천지의 운행질서를 바로잡고 역법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요임금은 희중(羲仲), 희숙(羲叔), 화중(和仲), 화숙(和叔) 등 4명에게 사시와 사방을 나누어 다스리게 했다. 아울러 이들 4인에게 천문을 관측하고 천문과 절기를 관장하게 했다. 또 일월성신과 만물을 관측해 사시를 바로잡게 하고 역법을 제정해 백성들에게 농사짓는 때를 알리게 했다.

희중에게는 동방의 양곡(陽谷)에 머물며 일출을 맞이하고 태양이 동쪽에서 떠오르는 시각을 관찰하고 판별하게 했다. 밤과 낮의 길이가 같고 황혼시에 조성(鳥星, 심수(心宿)의 첫 번째 별)이 정남방에 뜨는 때를 중춘(仲春)이라 하고 이 날을 춘분(春分)으로 정했다.

희숙은 남방의 교지(交趾, 지금의 베트남)에 머물면서 태양이 남쪽으로 운행하는 상황을 관찰하고 판단하게 했으며 남쪽에서 태양을 맞이하게 했다. 낮이 가장 길고 동방 창룡7수 중 화성(火星, 심수(心宿)의 두 번째 별)이 정남쪽 하늘에 뜨는 때를 중하(仲夏)로 하고 이날을 하지(夏至)로 정했다.

화중에게는 서쪽의 매곡(昧谷, 해가 지는 골짜기)에 머물면서 해가 지는 것을 맞이하고 태양이 서쪽으로 지는 시각을 관찰하게 했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고 북방 현무7수 중 허성(虛星)이 황혼 무렵 정남방에 나타나는 때를 바로 중추(仲秋)라 하고 이 날을 추분으로 정했다.

희숙에게는 북방의 유도(幽都)에 머물며 태양이 북쪽으로 운행하는 상황을 관찰하게 했다. 또 낮이 가장 짧고 황혼 무렵 서방 백호7수 중 묘성(昴星)이 정남방에 나타나는 때를 바로 중동(仲冬)이라 하고 이 날을 동지로 정했다.

관찰에 근거해 요임금은 1년을 366일과 춘하추동 4계절로 정했으며 3년마다 한 번씩 윤달을 두어 역법과 사계절의 관계를 조절해 매년 정확한 때에 농사를 짓게 했다. 《상서(尚書)‧요전(堯典)》에는 “366일을 기간으로 윤달로 사시를 정하고 1년을 삼게 했다.”고 했다.

한편 《송서(宋書)‧부서지(符瑞志)》의 기록에 따르면 “명협(蓂莢)이란 풀이 궁궐 돌계단 틈새에서 나왔는데 매월 초하룻날부터 하루에 하나의 콩깍지가 나와 보름이 지나면 열다섯 개가 되었다. 또 열엿새 이후로는 매일 하나씩 떨어져서 월말이 되면 다 떨어졌다. 만약 그 달이 작은 달(29일)이면 마지막 콩깍지가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말라버렸다. 요임금이 이를 신기하게 여겨 명협 또는 역초(曆草)라 불렀다.”

명협에 대한 관찰과 결합시켜 결국에는 365일을 1년으로 삼고 다시 별자리, 기후, 인시를 관찰하고 365도 주천도수에 따라 추산해 윤달을 파악하고 삭과 망, 큰 달 작은 달을 정하게 했다. 새로운 역법은 사시한서와 절기 등에 대해서도 명확히 정의해 석 달을 한계절로 삼고 12달을 1년으로 삼았으며 365도 주천도수에 따라 윤달을 정해 큰달은 30일 작은 달은 29일로 했다. 또 하루를 12시(時, 지금의 2시간)로 나누고 1시는 8각(1각은 지금의 15분)으로 나눴으며 시간과 절기에 법도와 규칙이 있게 했다. 이렇게 되자 사시의 운행에 질서가 생겨났다.

7. 경성(景星)이 상서로움을 드러내다

요임금 때 전해진 민요 중에 “그 인자함이 하늘과 같고 그 지혜가 신과 같으며 태양처럼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구름처럼 땅을 덮으시니 임금님의 덕이 밝고 밝아 온 하늘이 함께 경축하네(其仁如天,其智如神,如日溫心,如雲蓋地,帝德昭昭,普天同慶⋯⋯)”라고 했다.

《술이기(述異記)》에서는 “요는 어진 임금으로 하루에 10가지 상서로운 일들이 나타났다.”고 했다. 요임금 시기에 덕정이 밝게 펼쳐져 문치가 창성하고 무공이 혁혁해 만 백성이 즐겁게 생업에 종사했다. 임금의 덕이 하늘을 감동시키니 하늘이 10가지 상서로움을 내려 요임금에게 복을 내렸다.

이중 가장 뚜렷한 것은 바로 경성(景星)의 출현이었다. 《죽서기년》에 따르면 “요임금 42년 경성이 기에서 나타났다(景星出於翼).” “재위 70년에 경성이 익(翼)에서 나타났다.”는 기록이 있다.

《한서(漢書)‧천문지(天文志)》에는 “경성이란 덕성(德星)이다. 그 모양이 정해진 바가 없는데 늘 도가 행해지는 나라에 나타난다.”라고 했다. 《정의(正義)》에서는 “경성의 모양은 마치 반달과 같은데 그믐과 초하루 사이에 나타나서 달을 도와서 밝혀준다. 이 별이 나타나면 임금이 덕이 있고 총명하며 성스러움을 경축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손씨서응도(孫氏瑞應圖)》에서도 “경성은 왕이 사사로이 여기는 사람이 아니면 나타난다.”고 했다.

즉 경성은 상서롭고 경사스런 별인데 군주가 덕이 두텁고 도가 있으며 천하를 사사로이 여기지 않아 하늘을 감동시켜야만 비로소 나타난다는 뜻이다. 경성의 모양은 반달과 같으며 그 빛은 보름달보다 더 밝았다. 한편 익성(翼星)은 28수의 하나로 모두 22개의 별이 있는데 남방에 위치하며 붉은 색이다. 요임금이 바로 익성의 정화라는 기록도 있다. 경성이 두 차례나 익의 위치에서 나타난 것은 바로 요임금이야말로 신이 세상에 내려온 것임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계속)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152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