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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약산이 신선과 함께 즐겁게 살다

작자/당련(唐蓮)

【정견망】

중국 고대에 반신반인(半神半人)의 문화가 나타난 적이 있다. 사람이 신과 함께 했는데 고결하고 성스럽고 우아하며 한없이 즐거웠다. 우선 ‘당약산이 신선과 함께 즐겁게 살다’의 고사(故事)를 보자.

당약산(唐若山)은 노군(魯郡) 사람이다. 당나라 현종 때 상서랑(尚書郎)에 올랐고 여러 차례 큰 군을 다스렸다. 개원(開元) 연간에 벼슬길에 나아가 윤주(潤州)자사가 되어 좋은 정치를 펼쳐 원근에 이름이 자자했다. 당약산은 신선과 장생의 도를 좋아했다. 그의 동생 당약수(唐若水)는 형산(衡山)의 도사였는데 도가의 태원곡신(胎元穀神)의 오묘함을 얻어 일찍이 황궁에 초빙된 적이 있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형산으로 돌아가길 간절히 청해 돌아갈 것을 허락받았다.

당약산은 줄곧 방술(方術)을 좋아해 가는 곳마다 반드시 그 지역의 연단(煉丹)술사들을 만나보곤 했다. 설사 진짜 법술(法術)이 없을지라도 모두 예의 있게 대했다. 이렇게 하다 보니 가산을 거의 다 썼고 그의 봉록수입은 항상 남는 게 없었다. 연단을 위해 소모한 금전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만년에 이르러 그는 더욱 치성을 드렸고 심지어 윤주 관고(官庫)의 돈을 모두 약을 사서 연단하는 데 썼다. 빈객들과 막료들이 모두 이렇게 하지 말라고 간절히 말렸지만 그는 도무지 듣지 않았다.

어느 날 하루는 바짝 마른 모습에 이목구비도 말라비틀어진 한 노인이 와서 만나기를 청해왔다. 그는 자칭 장생의 도가 있다고 했다. 그를 본 사람들은 이 노인이 비쩍 마르고 노쇠한 것을 보고는 모두 비웃었다. 그러나 당약산은 그를 보고는 매우 공경했으며 한 달 이상 머물게 했다. 노인이 말한 것은 모두 단석(丹石)의 요점이 아니었다. 당약산은 평소 광범위하게 단방(丹方, 연단에 사용하는 처방) 및 가결(歌訣, 노래로 된 구결)과 도기(圖記, 그림과 기록)를 수집하고 연구하는데 집중했다. 이때 노인에게 장기가 무엇이냐 물었더니 그는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노인은 또 기름진 고기와 좋은 술, 산해진미를 특히 좋아한다고 했다. 비록 매우 수척한 노인이었지만 밥을 먹을 때는 삼사인 분을 거뜬히 먹었다. 당약산은 그를 공경하고 받들어 조금도 싫어하는 기색을 비치지 않았다.

어느 날 저녁 노인이 당약산에게 조용히 말했다. “당신은 지금 존귀한 방백(方伯, 지방장관)의 신분이지만 온가족 백여 명의 식구가 있어 생활에 늘 여유가 없고 힘이 부족한데 일단 퇴직하고 나선 어떻게 전 가족을 부양하려 하시오? 게다가 관아 창고의 재물도 적지 않게 썼으니 나는 당신이 몹시 걱정됩니다.”

당약산은 놀라서 말했다. “아이구, 제가 이곳에 부임한 지 시간이 오래되다보니 좀 흐리멍덩했습니다. 곧 임무를 교대해야 할 겁니다. 전에 제가 이 문제로 근심해봤지만 무슨 좋은 방법이 없었습니다. 만약 이 때문에 죄를 얻어 징계를 받게 된다면 원래 스스로 지은 것이니 달게 받겠습니다. 단지 식구들이 춥고 배고픈 고통을 당할까 염려될 뿐입니다.” 그러자 노인장이 “그리 염려하지 마시오.”하고는 술을 마시라고 재촉하더니 연거푸 몇 잔을 비웠다. 당약산은 원래 술을 마시지 못했는데 이 날은 서너 잔을 마셨다. 의외로 취한 기분이 들지 않아 이상하게 느꼈다.

이날 밤 달이 매우 밝았는데 두 사람은 천천히 정원을 거닐었다. 한참 후 노인이 말했다. “하인 한 사람을 보내 화로와 솥 및 쇠로된 그릇 종류를 당신의 단방(丹房, 단약을 만드는 방)으로 보내라고 하시오.”

당약산이 하인을 시켜 약실에 자리를 만들고 화로를 설치했다. 노인은 또 화로를 두 곳으로 나누어 화탄을 많이 놓아 불을 때는데 기와 굽는 것처럼 막고 쳐다보지 못하게 했다.

노인은 허리에서 표주박을 꺼내더니 그 속에서 환약 두 알을 꺼내 두 화로에 각 한 알씩 넣었다.

문을 닫고는 당약산에게 말했다. “당신은 도골(道骨)이 있으니 이치상 속세를 벗어날 수 있소. 게다가 정직하고 성실하며 타고난 성격이 화를 내지 않소. 선가(仙家)에서 특히 중시하는 것이라오. 나는 태상진인(太上真人)인데 인간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며 일부 뜻이 있는 사람들을 제도한다오. 당신이 부지런히 노력하는 것을 보고 불쌍히 여겨 당신을 제도하는 것이오. 내가 만든 황금과 은 등은 일부분은 자손에게 남기고 나머지는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데 쓰며 일부분은 창고의 재산을 축낸 것을 보충해 화근을 남기지 마시오. 그 후 배를 타고 유람을 다닐 수 있는데 이것이 속세를 벗어나는 계책이오. 내일 내가 강 중류에서 기다리겠소.” 하고는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 새벽 당약산이 닫힌 문을 열어보았더니 황금과 은이 번쩍번쩍하게 온 실내를 비추었다. 그는 문을 닫고 일을 잘 처리하고 나서 서너 명의 손님들과 배를 타고 강으로 놀러 나가 금산사(金山寺)에 가서 유람하려 하였다. 강 중류에 도착하자 강 안개가 너무 짙어 지척도 분간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단지 당약산만 그 노인을 알아볼 수 있었다. 노인은 어선 한 척을 타고 있었는데 당약산이 탄 배 옆으로 오더니 당약산을 어선으로 불러 옮겨 타게 했다. 이렇게 두 사람은 함께 초연히 떠나갔다.

한참 지나 풍파가 가라앉고 안개가 흩어졌다. 사람들은 비로소 당약산이 보이지 않는 것을 알았다. 나머지 손님들은 무사히 그대로 있었다.

그가 일하던 책상 위에 몇 개의 편지가 놓여 있었는데 그 중에 당약산이 결별한 서신이 있었다. 그 편지에 쓰인 것은 모두 집안일을 어떻게 처리하라는 것이었다. 또 상주문이 있어 사람들은 그것을 황제에게 보냈다. 상주문의 내용은 대략적으로 이러했다.

“세상의 영화(榮華)는 순간이면 사라지며 성명은 오래 얻기 어렵습니다. 오직 부귀를 버리고 신선이 되어야만 비로소 천지와 더불어 오래할 수 있습니다. 예전의 월나라 승상 범리가 오호(五湖)에 배를 띄운 것은 월왕과 즐거움을 같이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고, 한나라 개국공신 장량(張良)이 조정을 떠나 상산사호를 스승으로 삼은 것도 황제를 두려워해 자신을 오랫동안 보전할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두 사람이 속세를 떠난 것은 모두 신과는 다릅니다. 신은 운이 좋아 청명한 성세(聖世)를 만났고 또 여러 차례 주상(현종)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신은 일찍이 오르고 가라앉는 도리를 깨달아 언제 멈추어야 하는가를 알고 있었습니다. 신은 현묘한 이치(도가)에 마음을 두고 우연히 연단의 비결을 얻었습니다. 연단술로 황금을 얻을 수 있고 전에 회남왕(역주: 유안을 말함)의 신선이 될 수 있다는 말을 공경하게 믿습니다. 수명을 연장할 수 있으니 진경(眞經)의 묘한 쓰임이 이미 실증되었습니다. 이미 바른 도리를 알았으니 다른 무엇을 추구하겠습니까? 때문에 속세와 작별하고 푸른 바다에서 자유로이 유람하며 부상, 봉래산 선도를 볼 날이 멀지 않습니다. 저는 멀리서 황상의 성문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개가 주인에게 미련을 가지는 마음을 이기지 못합니다.”

현종이 표문을 보고 매우 이상히 여기고 감동을 받았다. 즉각 명령을 내려 그 가족을 구휼하고 빨리 동생 당약수를 찾아보라고 독촉했다. 또 환관들과 함께 황제의 명을 받들어 강변 도처에서 찾아보았으니 감감 무소식이었다.

그 후 이십 년이 지나 당약산을 모시던 옛 부하가 절강 서쪽으로부터 회남으로 출장을 가다 어시장에서 당약산이 보통 사람과 섞여 생선을 파는 것을 보았다. 당약산이 그의 부하를 보더니 그를 불러 뒷골목으로 데리고 가는데 꼬불꼬불 몇백 보를 가서 매우 화려한 저택에 도착하였다. 그는 부하에게 그곳에서 쉬라고 하고 함께 밥을 먹었다. 그는 부하가 오랫동안 가난했던 것을 가련히 여겨 그에게 이십 근의 철봉을 사라고 하였다. 다음날 부하가 그를 만났는데 쇠가 전부 금이 되어 있었다. 그는 이 금을 모두 부하에게 주었다. 이 부하의 성이 유(劉)씨였다. 지금 유씨의 자손은 대대로 금릉에 사는데 수도하는 사람이 많다.

상국(相國-당나라 재상) 이신(李紳)의 자는 공수(公垂)다. 전에 화산(華山)에서 공부를 한 적이 있는데 양식이 다 떨어지자 산 계곡에서 나와 먼 곳으로 양식을 찾으러 갔다. 해가 질 무렵 돌아오는데 돌연 폭우가 쏟아져 바위 아래로 비를 피했다. 그러나 이미 옷이 비에 푹 젖었는데 바위 아래로 가보니 한 분의 도사가 있었고 그 도사의 배가 바위 위에 묶여 있었고 시골 아이 하나가 노를 잡고 있었다.

이신이 도사에게 읍을 하자 도사가 미소를 지으며 “공수(이신을 말함)가 여기 있다니!” 하며 오랜 친구처럼 말했다. 하지만 그는 알아보지 못했다. 도사가 “그대는 당약산을 아는가?” 이신이 “제가 일찍이 《국사-역사책》를 보았을 때 그가 득도하여 신선이 된 일을 본 적이 있어 늘 그를 경모했습니다.” 도사는 “내가 바로 당약산일세. 봉래에 유람가려 하는데 우연히 안개를 만나 배가 여기 정박했다네. 내가 이공과 전에 연분이 있어서 이렇게 잠시 만나게 된 것인데 설마 잊었단 말인가?”

그러면서 도사는 이신을 배 위로 끌어올렸다. 이때 운무가 걷히어 산봉우리는 맑게 개어있어서 달빛이 대낮처럼 밝게 비추었다. 그 배는 공중에 떠서 날아가는데 조금 있으니 봉래도에 닿았다. 그곳에는 금으로 된 누각과 옥으로 된 전각 있고 나무가 하늘 끝에 닿아 있었다. 몇 명의 신선이 모두 옛 친구였고 그를 며칠 더 머물게 하였다.

그 중 한 사람이 “공수는 아직 국가의 정사를 보좌해야하니 이 운을 다 마쳐야 이곳에 올 수 있다네.”

이신 역시 나라의 경제에 힘써 백성을 구제할 큰 뜻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곳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여러 신선들은 당약산에게 명하여 그를 화산으로 돌려보내게 하였다. 나중에 이신은 과연 입조하여 재상이 되었고 연속하여 군정의 대권을 장악하였다. 세상을 떠난 후 그 역시 선적(仙籍)에 올랐다.

자료 출처: 《태평광기》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514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