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덕혜(德惠)
【정견망】
채경(蔡京)은 북송 휘종(徽宗) 시대의 유명한 간신이자 탐관오리였다. 전후로 네 차례 재상에 임명되어 정권을 장악한 것이 17년이나 된다. 사람이 사치가 아주 심해서 나라에 해가 되고 백성을 괴롭혀 직접 북송을 쇠망에 이르게 했다. 유명한 화석강(花石綱 진귀한 꽃, 나무, 돌 등을 운반하기 위한 수송단)은 바로 채경이 황제의 환심을 얻기 위해 만들어낸 것으로 나중에 방랍(方臘)이 반란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수십만 명이 사망했고 강소성과 절강성 일대의 많은 지방이 폐허가 되었다. 민간에서는 채경을 극히 미워하며 이런 가요가 유행했다.
“통(筒-童貫동관-채경을 도운 간신-을 가리킴)을 부수고, 채소(菜-蔡京을 가리킴)를 뽑으면 좋은 세상이 되리라.”
당시에 어느 수도인이 있었는데 채경이 권력을 잡고 있을 때 미래에 그의 죽을 곳을 예언했다. 오늘 여러분에게 이 이야기를 한다.
송 휘종은 도교에 매우 흥미가 있어서 스스로를 ‘교주도군황제(教主道君皇帝)’라 봉했다. 송 휘종은 늘 일부 유명 도사들을 경성으로 불러 들였는데 한번은 태주(泰州) 해릉(海陵 지금의 강소성 여고如皋)의 수도인 서수신(徐守信)을 데려왔다. 서수신은 19세에 출가해서 도사가 되었고 도관에서 ‘물 뿌리고 청소하는’ 일을 맡았다. 나중에 이인(異人)을 만나 도를 전수받고 마침내 수도에 성공해 신통을 지녔기 때문에 사람들은 ‘서신옹(徐神翁)’이라 불렀다. 명나라 이전에는 서수신을 팔선(八仙) 중 하나로 꼽았으며 원나라 초기 영락궁(永樂宮) 벽화 《팔선과해(八仙過海)》, 마치원의 희곡 《삼취악양루(三醉嶽陽樓)》 등에도 서신옹의 예술 형상이 보인다.
서신옹은 늘 글자를 써주는 식으로 미래를 암시하곤 했다. 이번에 와서는 “동명(東明)”이라는 두 글자를 채경에게 써주었다. 채경 신변의 사람들이 분분히 아첨하며 말했다. “동방은 해가 뜨는 방향이니 ‘東明’이란 두 글자는 부귀가 오래갈 것을 예시합니다.”
나중에 선화(宣和) 7년(1125년) 12월, 금나라가 대거 남침하자 휘종은 재빨리 큰아들에게 양위하는데 그가 바로 흠종(欽宗)이다. 흠종이 즉위한 후 주 임무는 인심을 안정시키는 것인데 인심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국가를 망쳐 이 지경으로 만든 근본원인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간신을 숙청하기 시작했다. 채경은 당시 이미 나이가 80이었는데 여전히 권력을 놓지 않아 흠종을 격노시켰다.
정강(靖康) 원년 (1126년) 채경은 먼저 비서감으로 떨어져 남경으로 좌천되었고 다시 숭신군(崇信軍)과 경원군(慶遠軍) 절도부사로 폄적되어 형주에 배치되었다. 또 폄적되어 소주, 담주 등으로 일 년 간 5개 지역을 잇달아 떨어졌으니 이것은 북송의 좌천 역사상 보기 드문 일이었다.
채경이 좌천되어 가는 길에 금나라 군대는 개봉을 공격하여 휘종 흠종 두 황제를 포로로 잡아 북송이 멸망했다. 채경이 조정에서 물자 공급을 받을 수 없자 수종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그가 최후로 간곳은 담주(潭州 지금의 호남 장사)였는데 성 남쪽 5리에 있는 동명사(東明寺)였다. 채경이 일찍이 주변 백성들에게 도움을 청한 적이 있었지만 사람들이 그가 간신 채경임을 알고는 쌀 한 톨도 주기 싫어했다. 얼마 안 되어 나이가 80이 다 된 채경은 병들고 배를 곯다가 동명사에서 굶어죽었다.
이때에야 사람들은 비로소 활짝 깨달았다. 알고 보니 서수신이 채경에게 써준 ‘동명’이란 두 글자는 그가 동명사에서 죽을 것을 예언한 것이다. 사실 선악(善惡)에는 마지막에 가서야 보응이 있으며 일체는 신의 수중에 있다. 채경이 가장 휘황할 때 신은 이미 그가 동명사에서 굶어죽을 결말을 안배해 놓았던 것이다. 다만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을 뿐이었다. 또한 채경은 나쁜 짓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화는 식구와 후대에게 미쳤다. 금나라 군대가 개봉을 격파한 후 채경 집의 모든 것을 다 약탈했으며 부녀자들도 다 잡혀 갔다. 그의 아들들도 재난을 당했다. 8명이 있었는데 장자도 재상을 역임했으나 정강 원년에 황제에게 사약을 받아죽었고 둘째는 일찍 죽었으며 셋째는 사약을 받았고 넷째 다섯째는 유배되었는데 마지막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여섯째와 여덟째는 자세한 기록이 없고 일곱째는 갑자기 병에 걸려 급사했다.
역사를 알고 오늘을 다시 보자. 지금 중공은 부단히 악행을 저지르고 국제사회에서 끊임없이 큰돈을 쓰고 수십억, 수백억 달러로 소국과 정객을 매수하지만 오히려 국내에서는 백성들에게 국가의 어려움을 헤아려 달라고 한다. 탐관오리와 그 2세들은 극히 사치를 누리며 보통 백성들은 오히려 생활을 위해 절약하지 않을 수 없고 심지어 여전히 수지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 중공의 소위 반부패 역시 그 내부의 권력투쟁일 뿐이다. 중공의 죄악은 채경 등 역사상의 어떤 나쁜 사람보다 훨씬 뛰어넘는다. 중공이 멸망하지 않고 보응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 기록에 서신옹의 ‘동명’이란 두 글자는 채경의 사지(死地)를 암시했다. 오늘에도 신은 또 글자가 새겨진 기이한 돌을 통해 중공의 비극적 종말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귀주성 평당현에서 2002년 발견된 이 장자석(藏字石)은 석벽에 뚜렷하게 조각한 것처럼 ‘中國共產黨亡’ 6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글자는 반듯하고 고르며 간격이 일치한다. 매 글자는 한척 정도 크기이며 필획의 굵기도 거의 같다. 전문가들이 글자를 고찰하면 해면과 산호 등 고생물 화석이 배열이 조합하여 조성된 것이며 어떤 인위적으로 가공한 흔적이 없다고 한다. 이같이 뚜렷한 ‘中國共產黨亡’ 6글자는 완전히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이며 신의 기적이란 말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실질적으로 하늘, 신, 부처가 중공에 대해 사형판결을 한 것이다.
역사상 간신 채경이 얼마나 잘 나갔든 그는 악의 보응을 피하지 못했고 마침내 동명사에서 굶어죽는 종말을 맞았다. 서신옹의 예언은 반드시 영험했다. 중국이 아직 통치하고 얼마나 기염을 토하고 있다고만 보지 말라. 그것도 마찬가지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멸망의 종말을 피하지 못한다. ‘中國共產黨亡’의 하늘의 뜻은 반드시 실현된다.
채경이 동명사에서 죽은 예언은 그 한사람에게만 관련되지만 중공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조직은 많은 당원 단원 대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만일 어느 날 하늘에서 중공에 대해 사형을 집행할 때 중공이 보응을 받고 멸망하면 모든 당, 단, 대 구성원은 벗어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중공을 구성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당, 단, 대에 가입했던 적이 있던 사람은 어떻게 이 겁을 벗어나는가? 방법은 오직 하나. 바로 당, 단, 대 퇴출을 선언해야 비로소 평안을 보위할 수 있고 미래가 있다. 물론 퇴당은 중공에게 가서 하는 것이 아니며 해외 인터넷 사이트에서 하거나 탈당을 권하는 파룬궁 수련생에게 탈당하면 된다. 실명을 사용할 필요도 없고 가명이나 어릴 적 이름 등으로 해도 된다. 하늘에서는 단지 퇴당의 언행과 그 배후의 진심만 본다.
채경이야기의 자료출처: 《청파잡지(清波雜志)》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524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