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찬란한 5천년 신전문화의 천고영웅인물 연구팀
입 열면 시부(詩賦) 붓 들면 문장
이백은 젊은 시절 광범위하게 학습했다. 유불도 삼교의 경전은 물론이고 고대 문학(文學)과 사학(史學) 명저 외에도 제자백가의 서적들을 두루 읽었을 뿐만 아니라 또 ‘검술을 좋아했다.’(《여한형주서(與韓荊州書)》–한 형주께 드리는 편지) 그는 아주 어릴 때부터 도가수련에 몰두했고 산림에 은거하며 신선을 찾고 도를 배우는 것을 좋아했다.
동시에 “관중과 안영처럼 자신의 재능을 발휘해 제왕을 보필하고 천하를 크게 평정하고(申管晏之談,謀帝王之術,奮其智能,願爲輔弼,使寰區大定,海縣靖一)”(《대수산답맹소부이문서(代壽山答孟少府移文書)–소수산을 대신해 소부 맹호연의 공문서에 답하며》) 싶어 했다. 이백이 청소년 시기 촉 땅에서 쓴 시가들은 현존하는 작품이 아주 드물지만 《방대천산도사불우(訪戴天山道士不遇)–대천산 도사를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함》, 《아미산월가(峨眉山月歌)》 등을 보면 이미 탁월한 재능을 지니고 있었음을 잘 드러낸다.
이백의 시는 자유롭고 분방하면서도 표일(飄逸)하고 소탈한데 붓을 움직이면 새롭고 기이한 문장이 나와 그 뜻이 웅장하면서도 몹시 아름답다. 하늘에 오르고 땅에 들어가며 수련하며 본 신선계의 모습이나 오가며 들은 전설 등을 모두 시편 속에 녹여냈으니 언어가 자연스러우면서도 음률이 조화롭고 변화가 무쌍하다. 그의 시구는 마치 물 밖으로 나온 연꽃처럼 가식이나 꾸밈이 없고 기세는 웅혼(雄渾)하면서 아름답기 그지없다. 풍격이 호방하면서도 소탈해 중화 천고의 시가예술에서 뛰어넘을 수 없는 높은 봉우리가 되었다. 당나라의 문장가 한유는 “이백과 두보의 문장은 그 빛이 만 길이나 뻗는다(李杜文章在,光焰萬丈長).”(《조장적(調張籍)》)라고 극찬했다.
이백이 창작한 악부시(樂府詩)는 약 140여 수에 달한다. 가행(歌行)은 원래 고대 가요와 악부에서 발전한 것으로 자유로운 체제의 시가형식이다. 이백의 가행은 시가창작의 고유한 격식을 타파하고 구절의 장단변화와 음절에 변화를 통해 더러운 것을 깨끗이 쓸어버리는 기세를 드러낸다. 특히 《촉도난(蜀道難)》, 《장진주(將進酒)》와 《몽유천모음류별(夢遊天姥吟留別)》 등의 작품은 사람들에게 큰 울림과 감동을 준다. 당 문종(文宗)은 일찍이 조서를 내려 “이백의 시가, 배민(裴旻)의 칼춤, 장욱(張旭)의 초서는 삼절(三絶)이다.”(《신당서 이백전(李白傳)》))라고 평가한 바 있다.
《촉도난(蜀道難)–촉으로 가는 길 어려워라》
어허라 험하고도 높구나.촉도의 험난함이여 하늘 오르기보다 어려워라.잠총(蠶叢)과 어부(魚鳧) 시절 나라 열던 때, 아득도 한데그 뒤로 사만 팔천 년 진(秦) 땅과는 인적이 끊겼세라.서쪽 태백산(太白山)으로 난 조도(鳥道)로만아미산(峨眉山) 꼭대기를 질러갈 수 있노라.땅 꺼지고 산 무너져 장사들이 죽은 뒤하늘 사다리, 잔도(棧道)가 꼬리를 물고 엮였도다.위로는 여섯 용이 해를 돌쳐 세우는 천길 벼랑이요아래는 거센 물결 꺾어 도는 계류러라.누른 학조차도 날아 지나지 못하고날쌔다는 원숭이도 오르자니 걱정이라.청니봉(靑泥峯)은 어이 그리 돌고 도나.백 걸음에 아홉 구비 바위산을 휘감누나.삼성(參星) 쓰다듬고 정성(井星)을 지나 고개 젖혀 헐떡이니숨찬 가슴 부여안고 주저앉아 한숨이라.묻노니, 그대 서쪽 길 떠나 어느 때 돌아오나.까마득히 가파른 길, 못 오를까 무서우이.오로지 보이나니, 고목에서 구슬피 우는 새암수 한 쌍 다정하게 수풀 사이 누벼 날고,또 달빛 속 두견새 소리에 텅 빈 산은 수심 겨워라.
噫吁嚱(희우희) 危乎高哉(위호고재)蜀道之難(촉도지난) 難於上靑天(난어상청천)蠶叢及魚鳧(잠총급어부) 開國何茫然(개국하망연)爾來四萬八千歲(이래사만팔천세) 不與秦塞通人烟(불여진새통인연)西當太白有鳥道(서당태백유조도)可以橫絶峨眉巓(가이횡절아미전)地崩山摧壯士死(지붕산최장사사)然後天梯石棧相鉤連(연후천제석잔상구련)上有六龍廻日之高標(상유육룡회일지고표)下有衝波逆折之回川(하유충파역절지회천)黃鶴之飛尙不得過(황학지비상부득과)猿猱欲度愁攀援(원노욕도수반원)靑泥何盤盤(청니하반반)百步九折縈巖巒(백보구절영암만)捫參歷井仰脅息(문삼력정앙협식)以手撫膺坐長嘆(이수무응좌장탄)問君西遊何時還(문군서유하시환)畏途巉巖不可攀(외도참암불가반)但見悲鳥號古木(단견비조호고목)雄飛雌從繞林間(웅비자종요림간)又聞子規啼夜月(우문자규제야월) 愁空山(수공산)촉도의 험난함이여 하늘 오르기보다 어렵나니말만 듣고도 얼굴빛이 시드노라.잇단 봉우리 하늘에서 지척이요,벼랑 우엔 거꾸러질 듯 마른 소나무 걸려 있다.빠른 여울 내지르는 폭포, 앞 다투어 소리치고급류에 부딪혀 구르는 돌, 일만 골 천둥친다.그 험함이 이 같거늘아아, 먼 곳의 사람이 어쩌자고 예 왔는가.검각(劍閣)은 삐죽삐죽 높기도 하여한 명이 관문(關門)을 지키면 만 명도 못 당하고수문장이 친하지 않다면 승냥이와 다를 바 없다.아침엔 호랑이 피하고 저녁엔 구렁이 피하니이로 으깨고 피를 빨아 사람 잡아 낭자하다.금관성(錦官城)이 좋다고 해도 일찌감치 집으로 가느니만 못하리라.
蜀道之難(촉도지난) 難於上靑天(난어상청천)使人聽此凋朱顔(사인청차조주안)連峯去天不盈尺(영봉거천불영척)枯松倒挂倚絶壁(고송도괘의절벽)飛湍瀑流爭喧豗(비단폭류정훤회)砯崖轉石萬壑雷(빙애전석막학뢰)其險也若此(기험야약차)嗟爾遠道之人胡爲乎來哉(차이원도지인호위호래재)劍閣崢嶸而崔嵬(검각쟁영이최외)一夫當關(일부당관) 萬夫莫開(만부막개)所守或匪親(소수혹비친) 化爲狼與豺(화위낭여시)朝避猛虎(조피맹호) 夕避長蛇(석피장사)磨牙吮血(마아연혈) 殺人如麻(살인여마)錦城雖云樂(금성수운락) 不如早還家(불여조환가)
촉도의 험난함이여 하늘 오르기보다 어려워라.몸 기우려 서쪽 향해 긴 한숨만 쉬노라.
蜀道之難(촉도지난) 難於上靑天(난어상청천)側身西望長咨嗟(측신서망장자차)
《촉도난》은 악부의 옛날 제목으로 ‘상화가사(相和歌辭)‧슬조곡(瑟調曲)’의 조명(調名)으로 내용은 주로 촉으로 가는 길의 험난함을 노래했다. 현재 남아 있는 《촉도난》은 이백의 이 시외에도 양간문제(梁簡文帝)의 2수, 유효위(劉孝威)의 2수, 음갱(陰鏗)의 1수, 당나라 장문종(張文琮)의 1수가 있다. 이백의 이 시는 대략 장안에서 촉으로 들어가는 벗을 배웅하면서 쓴 것이다.
오언절구의 성수(五絕聖手)
이백은 평생 수많은 아름다운 고시(古詩), 율시(律詩), 악부시를 남겼지만 그중에서도 이백의 절구(絶句)는 독보적이라는 호평을 받는다. 청나라 강희연간에 조인(曹寅)이 편찬한 《전당시(全唐詩)》에는 이백의 오언절구 86수가 실려 있다. 명나라 때 고병(高柄)이 편찬한 《당시품휘(唐詩品彙)》에는 이백의 오언절구 23수가 실려 있고 또 이백을 오언절구의 정종시인(正宗詩人)으로 올려놓았다. 가장 대중적인 당시 시선집 《당시삼백수(唐詩三百首)》에도 이백의 오언절구 3수가 실려 있다. 이백의 오언절구는 역대로 수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왔고 그의 많은 작품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을 정도로 인구에 널리 회자되고 있다.
성당(盛唐) 시인 중에서는 왕유, 맹호연도 오언절구에 능했고 왕창령 등은 칠언절구에 뛰어났지만 오언절구와 칠언절구 양쪽 모두에서 지극한 경지에 이른 시인은 오직 이백 한사람뿐이다. 바로 이양빙의 평가와 같았다. “진습유(陳拾遺 역주: 초당 시인 진자앙. 습유는 관직명)가 퇴폐적인 풍조를 다스리자 천하의 문풍이 완연히 한번 변했다. 지금 조정에 이르러 시가의 체제에 여전히 양나라와 진나라 궁체시(宮體詩)의 풍습이 남아 있었는데 공(이백)에 이르러 크게 변했다. 바닥을 쓸어내듯이 완전히 없애버렸다.”(《초당집서(草堂集序)》)
명나라 때 호응린(胡應麟)은 일찍이 《시수(詩藪)》에서 “태백의 오언절구와 칠언절구는 글자마다 신의 경지요 편편마다 신물(神物)이다.”라고 했다. 이백의 절구는 간결하고 명쾌한 언어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진실하고 간결함에도 내포가 풍부하다. 여기서 시선 이백의 아름다운 작품들을 몇 수 감상해보자.
시선의 명편 《독좌경정산(獨坐敬亭山)–경정산에 홀로 앉아》는 겨우 4구의 짧은 문장으로 수도인이 산속에 살면서 사람과 산이 혼연일체가 되어 청정한 가운데 홀로 가부좌하는 즐거움을 마치 그림처럼 표현한다.
《독좌경정산(獨坐敬亭山)–경정산에 홀로 앉아》
뭇 새들 높이 날아 사라지고외로운 구름만 한가로이 떠가는데바라보아도 서로 싫증나지 않는 건다만 경정산뿐이로다.
眾鳥高飛盡(중조고비진)孤雲獨去閑(고운독거한)相看兩不厭(상간양불염)只有敬亭山(지유경정산)
이 오언절구는 천보 12년(753년) 가을 이백이 선주(宣州)에 놀러갔을 때 지었다. 당시 이백의 나이는 52세로 장안을 떠난 지 이미 10년이 되었다. 이 시는 문자 그대로 솔직하고 평이하지만 읽다보면 오히려 향기와 여운이 남아 이백이 홀로 경정산에 가부좌할 때의 정취를 표현한다.
경정산은 지금의 안휘성 선성현(宣城縣) 북쪽에 있다. 이백이 경정산을 노래한 작품이 45수나 있는데 그중에서도 이 작품이 천고의 절창(絶唱)이다. 역대 문인들이 이백의 발자취를 찾아 경정산에 올라 필적을 남겼는데 당나라 때부터 청나라 때까지 3백여 명의 서화(書畫)명가들이 이곳을 찾아와 천편에 가까운 작품을 남겼다.
이처럼 담박하고 차분한 시가 왜 이다지도 많은 감동을 주는 지 생각해보면 시인의 사상과 감정이 자연의 경치와 고도로 융합되어 ‘적정(寂靜 적막하고 고요함)’의 경지를 이뤘기 때문이다. 움직이는 듯 조용하고 조용한 듯 움직임이 있다. “뭇 새들 높이 날아 사라지고 외로운 구름만 한가로이 떠가는데”는 움직임 속의 고요함이다. 높이 나는 뭇 새들과 한가로이 떠가는 외로운 구름은 경정산의 적정을 두드러지게 한다. 반면 “바라보아도 서로 싫증나지 않는 건 다만 경정산뿐이로다”는 고요함 속에 움직임이 있다. 시인은 마치 시처럼 그림처럼 경정산을 조용히 마주하지만 백번을 보아도 싫증나지 않는다.
《구일용산음(九日龍山飲)–구일 용산에서 마시다》
중양절(구월 구일)에 용산에서 마시노니노란국화 쫓겨난 신하를 비웃네.술에 취해 바람에 모자 날리고춤추노라니 저 달이 사람을 붙드네.
九日龍山飲(구일용산음)黃花笑逐臣(황화소축신)醉看風落帽(취간풍락모)舞愛月留人(무애월류인)
이백 연표에 따르면 이 시는 보응(寶應)원년인 762년 작품이다. 당시 시인의 나이는 61세로 당도(當塗)에 잠시 머물 때였다. 바람에 날리는 모자는 용산에 있는 유명한 낙모대(落帽台) 유적과 관련이 있다. 동진(東晉) 시기 대장군 환온(桓溫)이 중양절에 막료들을 거느리고 용산에 올랐다. 산에 올라 술을 마시고 국화꽃을 감상하면서 중양절 음식을 먹는데 참군(參軍) 맹가(孟嘉)도 현장에 있었다. 갑자기 좌중에 한바탕 바람이 불어오더니 맹가의 모자를 날려버렸다. 하지만 그는 이를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여유가 있었다. 환온이 손성(孫盛)을 시켜 글로 맹가를 희롱하게 했다. 그런데 누가 알았으랴 맹가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즉석에서 답문을 지었는데 좌중에서 그의 민첩한 재주와 비범한 기질에 탄복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후세에 ‘용산에서 모자를 떨어뜨린[落帽龍山]’ 이야기는 호탕하면서도 우아한 풍모를 형용한다.
9월 9일 중양절에 이백이 용산(호북성 강릉 서북쪽)에서 술을 마시는데 국화가 도처에 활짝 피었다. 시인이 어디를 가든 흐드러지게 핀 노란 꽃이 미소를 지었다. 술에 취해 바람에 모자가 날린 유적을 보자 옛사람을 생각하며 쓸쓸함을 느꼈다. 밝은 달 아래 흠뻑 마시고 달 속 선녀가 춤추는 모습을 감상했다. 마지막으로 ‘월류인(月留人)’으로 마무리해 시인과 월궁 선녀 사이에 생생히 살아 있는 한 폭의 그림을 표현했다. 시인은 속세를 잊고 탈속함에 빠져 있고 달은 밝고 바람이 높이 부는 경지에 있다. 월궁의 선녀 역시 너울너울 춤을 추며 이별을 아쉬워하면서 보내고 싶지 않은 뜻을 표현했다.
이번에는 이백의 오언절구 중에서 가장 유명한 《정야사(靜夜思)–고요한 밤의 그리움》를 감상해보자. 이는 이백 시중에서도 가장 널리 회자되는 천고의 명편이다.
《정야사(靜夜思)–고요한 밤의 그리움》
침상 앞의 밝은 달빛땅에 내린 서리인가 싶은데고개 들어 밝은 달을 바라보다머리 숙여 고향을 그리네.
床前明月光(상전명월광)疑是地上霜(의시지상상)舉頭望明月(거두망명월)低頭思故鄉(저두사고향)
이 시는 개원 14년(726년) 음력 9월 15일쯤에 쓴 작품이다. 당시 이백의 나이는 약 25세로 양주(揚州)의 여관에서 썼다. 이 작품 외에도 《추석여회(秋夕旅懷)》가 있는데 《정야사》의 속편으로 볼 수 있다. 같은 시기 같은 지역에서 쓴 작품이다. 이 시는 세상에 나온 이래 거의 모든 당시 관련 시집에 수록되었다.
이 작품은 오언절구로 전편이 겨우 4구절로 전체 글자를 합해도 스무 자에 불과하지만 의미는 오히려 심장하다. 글자 표면상으로는 타향을 떠도는 한 나그네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깊은 감정을 노래한 것이다. 평범하고 담백한 언어로 생동감 있게 표현했는데 마치 맑은 물의 연꽃처럼 조금의 수식도 없다. 그저 손가는 대로 가져온 듯 만들어낸 흔적이라곤 전혀 없기에 ‘고금에 절묘하다(妙絕古今)’는 후인들의 찬탄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이 작품에는 보다 깊은 뜻이 숨어 있다. “고개 들어 밝은 달을 바라보다 머리 숙여 고향을 그리네.” 이백이 고향을 그리워하지만 고향에 돌아가면 번뇌가 사라지고 행복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세간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향에 살면서도 번거로운 일들이 끊이지 않고 번뇌가 끝이 없는데 하물며 행복을 말할 수 있겠는가? 어쩌면 이백이 가리키는 고향은 인간세상의 고향이 아닐지 모른다. 그는 시선이요 적선이기 때문에 먼저 ‘고개 들어 밝은 달을 바라보다’ 나중에 ‘머리 숙여 고향을 그린다’고 했다. 즉 성결(聖潔)한 저 하늘이야말로 심령과 정신의 고향이기에 고개 들어 바라보고 머리 숙여 생각한 것이다. 적선, 시선 이백의 몸은 비록 속세에 있어도 늘 성결하고 아름다운 진정한 천상의 고향을 생각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이 작품의 배후에 담긴 내포이고 또 널리 인구에 회자되어 천고에 유전되는 진정한 원인이다.
천고 이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시를 읊으면서 그 내심 깊은 곳에서 반본귀진(返本歸真)하려는 본성이 움직이고 공명했을까? 비록 활연히 도를 깨우치지 못하고 기뻐하는 이유는 모를지라도 이것이 바로 이 시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고명한 곳이 아니겠는가!
한편 송나라의 대문호 소식 역시 달을 소재로 천고에 유전되는 명편을 남겼으니 바로 《수조가두(水調歌頭)‧명월기시유(明月幾時有)》이다.
《수조가두‧ 명월기시유(明月幾時有)–밝은 달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밝은 달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술잔 들고 푸른 하늘에 물어보네.하늘에는 궁전이 있는지 오늘 밤은 어느 해인가?바람 타고 돌아가고 싶지만 다만 옥으로 지은 궁이높아서 추위를 이기지 못할까 두려울 뿐이네.달빛 아래 그림자는 춤추며 노는데 어찌 인간 세상과 같으랴?달이 붉은 누각 돌아 비단 창가에 내리 비치니 잠을 이룰 수 없네.달은 내게 한이 없을 터인데 어이하여 이별할 때면 둥근 것일까?사람은 슬픔과 기쁨 만남과 헤어짐이 있고 달은 밝고 어둡고 둥글고 이지러짐 있으니 이런 일은 예부터 완전하기 어려워라.다만 내가 바라는 건 오래도록 천리 밖에서 달빛을 함께 보고픈 것이라네.
明月幾時有(명월기시유)把酒問青天(파주문청천)不知天上宮闕(부지천상궁궐)今夕是何年(금석시하년)我欲乘風歸去(아욕승풍귀거)又恐瓊樓玉宇(우공경루옥우)高處不勝寒(고처불승한)起舞弄清影(기무롱청영)何似在人間(하사재인간)轉朱閣(전주각),低綺戶(저기호),照無眠(조무면)不應有恨(불응유한),何事長向別時圓(하사장향별시원)人有悲歡離合(인유비환이합)月有陰晴圓缺(월유음청원결)此事古難全(차사고난전)但願人長久(단원인장구)千里共嬋娟(천리공선연)
소동파의 “바람 타고 돌아가고 싶지만(我欲乘風歸去)”에서 ‘귀(歸)’는 시선 이백과 마찬가지 의미가 있다. 다만 송나라 때는 인류의 도덕이 계속해서 미끄러져 내려가 당나라 때보다는 신성(神性)이 약해졌다. 때문에 뒤에 ‘우공(又恐 두려울뿐이네)’ 두 글자가 더해졌다. 그와 시선과의 차이를 족히 볼 수 있다.
천삼백여 년이 지난 2015년 3월 21일 세계 시의 날(世界詩歌日) 유엔에서 한 세트의 우표를 발행했다. 각각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 불어, 아랍어, 러시아어 등 6가지 다른 언어로 된 대표적인 시가를 선별해 우표에 실었다. 이중 중국어 시가로 선택된 작품이 바로 이백의 《정야사(靜夜思)》였다.
시선은 오언절구로 《위허운봉명명(爲許雲封命名)–허운봉이라 이름 짓다》라는 수수께끼와 같은 시를 썼다.
樹下彼何人(수하피하인)不語真吾好(불어진오호)語若及日中(어약급일중)煙霏謝成寶(연비사성보)
이백의 친구 이모(李謨)가 천보(天寶) 초년에 외손자를 얻자 이백에게 이름을 지어달라고 부탁을 했다. 술에 취한 이백이 술김에 붓을 들어 위와 같이 시를 썼다. 이모가 보니 아무리해도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시였다. 그러자 이백이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풀이해주었다. “자세히 보면 자네 외손자의 이름이 시 속에 들어있네! 우선 나무 아래 사람은 木子니 ‘이(李)’가 되네. 또 不語는 莫言과 같으니 ‘모(謨)’가 된다네. 好는 女子이니 딸의 아들 즉 외손자라네. 語及日中에서 일중은 한낮이니 午가 되어 합하면 ‘허(許)’가 되네. 또 煙霏는 구름이니 ‘운(雲)’이 되고 成寶는 보물을 봉해야 하니 ‘봉(封)’이 된다네. 결국 네 구절을 연결해서 풀면 ‘이모 외손 허운봉(李謨外孫許雲封)’이 된다네.”(《전당시‧언미(諺謎)》)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154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