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서유기》 비밀 탐구(5): 태종의 명을 받고 서천으로 떠나는 당승

글/ 선장(船槳)

【정견망】

당태종으로부터 경전을 구해오라는 명을 받은 당승(唐僧)은 곧바로 출발 준비에 나섰다.

법문사(法門寺)에서는 사찰의 승려들이 모두 나와 앞길이 험란하니 그 끝을 알 수 없다고 권했다. 그렇다, 비록 세인들은 모두 신선이 좋다는 걸 알지만 진정으로 굳게 믿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평소 예불하고 경을 읽는다고 해도 사실 진정으로 믿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때문에 수련의 첫걸음은 바로 견정하고 바른 믿음(堅定正信)으로 고생을 겪을 준비를 잘 해야 한다.

불교에서는 ‘신(信)・원(願)・행(行)’을 중시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신(信 믿음)을 말한다. “믿으면 있고 믿지 않으면 없다(信則有,不信則無)”거나 또는 “마음이 성실해야 영험하다(心誠則靈)”는 등의 말은 사실 아주 중요한 것으로 사람의 오성(悟性)을 직접적으로 반영한다. 오성이 좋으면 잘 믿고, 믿으면 영험하니 갈수록 더 믿음이 확고해진다. 반면 오성이 좋지 않으면 믿지 않으니 영험함이 없고 갈수록 더 믿지 못한다. 때문에 수련의 일을 언급하면 종종 반응이 양극단으로 나타난다.

노자(老子)는 “상사가 도를 들으면 근면히 행하고 중사가 도를 들으면 있는 듯 없는 듯 하며 하사가 도를 들으면 크게 웃거니 웃지 않으면 도라고 할 수 없도다(上士聞道,勤而行之,中士聞道,若存若亡,下士聞道,大笑之,不笑不足以爲道).”라고 했다.

사람이 수련을 처음 시작할 때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호의(好心)’로 충고한다. 수련이란 확실히 아주 간고(艱苦)한 것이며 눈앞의 명예나 이익 편안한 생활 등을 모두 포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공이산(愚公移山) 일화에 나오는 ‘하곡지수(河曲智叟 황하 곡류의 지혜로운 노인)’가 바로 이런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아주 총명(聰明)하다고 여기며 눈앞의 이익을 얻으려 하지만 사실 어리석은 것으로 큰 지혜와 대자재의 기회를 잃어버린다. 때문에 ‘지혜(智慧)’ 앞에서 ‘총명’이란 사실 언급할 가치도 없는 것이다. 수련인이 보기에 총명한 사람은 사실 아주 피곤하고 아주 고생스러우며 또 그럴 가치가 없다.

물론 당승처럼 대근기(大根基)의 사람에게는 이런 교란이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이에 당승은 이런 충고와 우려를 불식하고 경을 얻기 위한 여로에 오른다.

당승은 처음에 두 명의 시종을 데리고 출발했다.

하지만 첫 시작(역주: 당나라 국경의 복원사를 떠난 새벽)부터 길을 잘못 들어 동물 요괴를 만나 두 시종이 잡아먹혀 버렸다. 당승은 ‘본성이 원명(本性圓明)’해 잡아먹히지 않았고 나중에 태백성의 도움으로 구출되었다.

수련이란 첫 시작부터 고험(考驗)에 직면한다. 가장 먼저 자신이 확고부동해야 한다. 똑같이 서천으로 떠났지만 두 시종은 일반인으로 단지 당승을 따라 걸어갔을 뿐 진정한 수련인이 아니었다. 이런 사람들은 확고하고 명확하게 수련을 원하는 게 아니고 오히려 수련의 형식만 있다. 사실은 이것이 더 위험하며 수련은 장난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때로는 몇 명의 사부가 한명의 도제(徒弟)를 지키고 때로는 한 사부가 한 명 또는 몇 명의 도제를 지키는 일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오직 거대한 법력(法力)을 지닌 상사(上師)만이 진정으로 중생을 널리 제도할 수 있다. 이런 능력이 없으면서 중생 제도를 말하는 것은 책임지지 않는 것이다. 한 수련자가 진정으로 신념이 확고할 때면 수련 중에 요마(妖魔)를 만나더라도 자연히 신의 도움이 있으며 나쁜 일을 좋은 일로 바꿀 수 있다.

때문에 확고하면 할수록 위험을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갈수록 더 확고해진다. 반대로 확고하지 못할수록 번거로움과 위험이 더 많아지기 때문에 갈수록 확고해지기가 더 어렵다. 이것을 일러 고험이라 한다.

지금 일부 기공사들은 명백하게 책임지지 않으면서 사람들에게 일부 형식적인 것을 가리키면서 어떻게 바른 믿음을 수립해야 하는 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만약 사람들이 이를 따라 배운다면 도리어 더 큰 번거로움이 초래될 것이다. 진정한 수련은 결코 일반적인 기공처럼 그런 표면적인 것이 아니다. 때문에 일부 정법문(正法門) 기공에서는 문제가 나타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기공 중에서 사람들에게 오직 일부 동작 형식만 알려주고 진정한 수련의 내함(內涵)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는다. 이렇게 기공을 연마한다면 이는 체조하기만도 못하다.

여기에는 또 아주 엄중한 문제가 있는데 일반인이 수련을 처음 시작했을 때 요마를 만날 수 있는데, 기공 중에 이런 상황이 아주 많고 역사적으로도 이런 기록이 상당히 많다. 즉 일반인에게 일부 영성(靈性)을 지닌 동물 부체가 달라붙어 사람의 사상과 행동을 통제하고 사람의 수련을 파괴하는데 전적으로 사람을 해친다.

만약 수련인이 이런 문제에 봉착한다면 번거로움이 아주 크다. 물론 수련인이 ‘원명한 본성’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번거로움에 부딪힌 사람들은 모두 자신에게 문제가 있거나 또는 전문적으로 동물을 배워 연공한 것이다. 동물이 만약 요정이 되면 어느 정도 능력을 지니게 되는데 《봉신연의》의 호리정(狐狸精)처럼 온 천하를 어지럽힐 수도 있다.

사람이 수련을 처음 시작할 때는 비교적 층차가 낮기 때문에 만나게 되는 요마 역시 비교적 층차가 낮은 것들이다. 이런 것들은 일반적으로 정신(正神)이 도와 해결해 줄 수 있다. 하지만 이후 수련의 층차가 높아짐에 따라 만나게 되는 요마 역시 점점 더 높아진다. 둘은 서로 상보상성(相補相成)한다.

(English Translation: http://www.pureinsight.org/node/4958)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47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