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검(李劍)
【정견망】
건친(建親) 제2
[원문해석]
무릇 육합(六合 천하)의 대도(大道)에서 제위를 유지하는 것은 막중한 임무다. 대도는 혼자서는 다스릴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함께 다스려야 하며 막중한 임무는 홀로 거처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함께 지켜야 한다. 그러므로 친척을 봉건(封建)해 울타리로 삼아 지키게 하고 편안함과 위태로움을 함께 힘쓰며 번성하고 쇠퇴함을 한마음으로 하여 원근(遠近)이 서로 지지하며 친인과 소원한 사람을 둘 다 써야만 겸병의 길을 막아 반역이 생기지 않게 할 수 있다.
옛날 주(周)나라가 일어날 때 천하를 분할해 종실에게 나눠주었다. 안으로는 진(晉)나라 정(鄭)나라가 보좌하고 밖으로는 노(魯)나라 위(衛)나라가 막게 했다. 때문에 천자의 복(福)이 신령하고 오래가 수백 년을 지속할 수 있었다. 진(秦)나라 말기에 순우월의 정책(봉건제)을 버리고 이사의 주장(군현제)을 받아들이니 종실을 가까이 하지 않고 (황제) 홀로 지혜를 쓰니 나라가 전복되어도 믿을 사람이 없어 2세에 멸망했다. 이것이 어찌 지엽(枝葉)이 소통되지 않으면 근본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고 팔다리가 손상되면 심복(心腹)이 의지할 바가 없음이 아니겠는가?
夫六合曠道,大寶重任。曠道不可偏制,故與人共理之;重任不可獨居,故與人共守之。是以封建親戚,以爲藩衛,安危同力,盛衰一心,遠近相持,親疏兩用,並兼路塞,逆節不生。昔周之興也,割裂山河,分王宗族,內有晉、鄭之輔,外有魯、衛之虞,故卜祚靈長,曆年數百。秦之季也,棄淳於之策,納李斯之謀,不親其親,獨智其智,顛覆莫恃,二世而亡,斯豈非枝葉不疏,則根柢難拔,股肱既殞則心腹無依者哉?
한(漢)나라가 처음 관중을 평정한 후 진나라가 망한 실책을 경계삼아 친인(懿親)을 널리 봉했는데 옛 제도를 초과했다. 큰 제후국은 군(郡)을 다 차지하고 나라와 비슷했으며 작은 제후국은 군(郡)을 넘어서고 주(州)에 이어졌다. 말단이 커지면 위태롭고 꼬리가 커지면 흔들기 어렵다. 여섯 왕이 반역의 뜻을 품고 일곱 제후국이 주살된 것은 모두 땅이 넓고 병력이 강하며 세력을 쌓았기 때문이다. 위 무제(魏武帝 조조)가 창업할 때 멀리 내다보는 꾀에 어두워 자제들에게 분봉하지 않아 종실이라도 송곳 하나 세울 땅이 없었다. 밖으로 자신을 공고히 해줄 울타리가 없었고 안으로는 반석 같은 기반이 없었으니 마침내 대권이 남의 손에 넘어가 다른 성씨(사마씨)에게 사직이 멸망당했다.
漢初定關中,誡亡秦之失策,廣封懿親,過於古制,大者專郡偶國,小則跨郡連州,末大則危,尾大難掉。六王懷叛逆之志,七國受忉鉞之誅,此皆地廣兵強,積勢之所致也。
魏武創業,暗於遠圖,子弟無封戶之人,宗室無立錐之地,外無維城以自固,內無盤石以爲基,遂乃大器保於他人,社稷亡於異姓。
옛말에 “흐름이 다 되면 물의 근원이 마르고 가지가 떨어지면 뿌리가 마른다”고 했으니 이를 두고 한 말이다. 대개 책봉이 너무 강하면 배꼽을 무는 환란이 닥치고 너무 약하면 근본을 공고히 할 기초가 없다. 이로부터 말한다면 여러 종친을 세우되 세력을 줄여야 하고 경중에 따라 서로 억누르게 하여 걱정과 즐거움을 함께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위로는 시기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아래로는 침로하고 원망할 근심이 없을 것이다. 이는 봉건에서 얻은 교훈이다.
語曰:“流盡其源竭,條落則根枯”,此之謂也。夫封之太強,則爲嗜臍之患,致之太弱,則無固本之基。由此而言,莫若眾建宗親而少力,使輕重相鎮,憂樂是同,則上無猜忌之心,下無侵冤之慮,此封建之鑒也。
이 두 가지는 나라를 안정시키는 초석이 된다. 임금의 덕이 관대함은 오직 널리 통달함에 달려 있다. 차이를 잊고 선별해서 가르치되 술(術)로써 사람을 변화시킨다. 마땅히 제때에 하도록 힘쓰되 도(道)로 만물을 다스려야 한다. 술(術 제왕의 통치술)은 신묘하게 감춰야 오묘해지고 도(道 통치의 도)는 널리 빛내야 공(功)이 된다. 푸른 하늘을 감싸 마음으로 삼으면 사람들이 우러러보되 예측할 수 없고 두터운 대지를 끌어안아 그릇으로 삼으면 사람들이 쫓되 살필 수 없다. 넓고 아득히 커서 이름 짓기 어려움은 마땅히 크고 멀기 때문이다.
斯二者,安國之基,君德之宏,唯資博達,諼分選教,以術化人,應務適時,以道制物。術以神隱爲妙,道以光大爲功。括蒼旻以體心,則人仰之而不測;包厚地以爲量,則人循之而無端。蕩蕩難名,宜其宏遠。
또한 앞에서는 요(堯) 임금께서 9족과 화목하게 지내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셨고 뒤에서는 순(舜) 임금께서 형제간에 화목하고 부모에게 효를 다한 명성을 남기셨노라. 간사함으로 의를 깨뜨리지 말고 소홀함으로 친인을 이간질하지 말아야 한다. 덕으로 살피면 나라와 집안이 모두 태평할 것이며 골육(骨肉)간에 근심이 사라져 진실로 아름다울 것이다.
且敦穆九族,放勳流美於前;克諧烝乂,重華垂譽於後。無以奸破義,無以疏間親。察之以德,則邦家俱泰,骨肉無虞,良爲美矣。
[백화번역]
천하를 다스리는 대도(大道)는 지극히 넓고 크며 군주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은 지극히 중대(重大)하다. 천하를 다스림은 한 사람의 독단으로 할 수 없으며 반드시 다른 사람과 함께 책임져야 한다. 군주의 지위를 지키는 것은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할 수 없고 반드시 다른 사람과 함께 지켜야 한다. 그러므로 친척과 자제를 제후왕으로 봉해 왕실의 울타리로 삼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조치이다.
천자가 제후와 한마음 한뜻으로 안위(安危)를 함께 하고 풍우(風雨 시련)를 함께 하며 한마음으로 협력해야만 대당(大唐)의 강산을 공고하게 다질 수 있다. 조정과 제후들이 서로 지지하고 친하고 소원한 사람을 나란히 써야만 겸병의 길을 막을 수 있고 중앙의 정령을 어기고 저항하는 사건의 발생을 방지할 수 있다.
주(周)나라가 흥기할 때 천자가 소유의 땅을 종족 자제들에게 분봉(分封)하고 그들을 제후국으로 세워 함께 왕실을 지키게 했다. 안으로는 진(晉)나라 정(鄭)나라 등 제후들이 조정을 보좌하게 했고 밖으로는 노(魯)나라 위(衛)나라 제후가 사이(四夷)를 방어하게 했다. 이로 인해 국운이 창성해 수백 년을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진(秦)나라는 6국을 병탄한 후 제후를 분봉하자는 순우월의 주장을 버리고 군현제를 추진하자는 이사의 주장을 채택해 종실 자제를 친하게 대하지 않고 오직 군주 개인의 지모(智謀)로만 천하를 통치했다. 결과적으로 전복 세력의 공격으로 겨우 2세만에 멸망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은 지엽이 소통되지 않으면 근본이 동요할 수밖에 없고 팔다리를 잃으면 심복이 의지할 곳이 없다는 것과 한 도리가 아니겠는가?
한고조(漢高祖)가 관중을 평정한 후 군현을 설치했다 망한 진나라를 교훈 삼아 종족 자제들을 대대적으로 제후로 봉했다. 하지만 그 규모가 고대 분봉제의 규정을 훨씬 초과했다. 결과적으로 실력이 뛰어난 제후국들이 중앙 조정에 대항하고 실력이 작은 제후국 역시 여러 군과 주를 차지해 지역을 나눠가졌다. 이렇게 되자 말단이 커져 근본이 위태롭고 꼬리가 커져 움직임이 어려워졌다.
한 경제(景帝) 때 이르러 오초(吳楚) 7국이 조정을 배반하고 병란을 일으켜 여섯 왕이 주살되었고 친족마저 보전할 수 없었다. 이것은 바로 제후국의 땅이 너무 넓고 군사력이 강해졌고 실력이 커짐에 따라 제위를 찬탈할 야심이 팽창한 필연적인 결과였다.
반면 위무제 조조(曹操)는 창업할 때 심모원려(深謀遠慮)할 수 없어 종족 자제들을 분봉하지 않아서 종실임에도 불구하고 송곳 하나 꽃을 땅도 없었다. 이렇게 되자 밖을 지키는 울타리가 되어줄 번왕(藩王)이 없고 안으로는 기초가 되어줄 반석이 없어 남의 손에 대권이 떨어지게 되었고 결국 사마(司馬)씨에게 강산을 찬탈 당했다. 옛날 사람들은 “물이 흘러 사라지면 샘의 근원이 반드시 고갈되며 가지와 잎이 시들어 떨어지면 근본이 반드시 마르고 썩는다”고 말했으니 바로 이런 도리다.
분봉한 제후의 실력이 너무 강하면 하극상으로 심복(心腹)을 해치는 우환이 될 수 있지만 반대로 분봉한 제후의 실력이 너무 약하면 조정의 근본을 공고히 할 수 없게 된다. 이를 통해 보건데 가장 좋은 방법은 분봉하는 제후의 실력을 감소시키는 정책을 펼쳐 그들이 조정과 함께 왕실을 지키게 해야 한다. 또 실력이 너무 강해서 조정에 대항하지 못하게 하여 조정과 더불어 근심과 즐거움을 함께 하고 이해가 일치하도록 해야 한다. 위로는 천자가 제후에 대해 시기하는 마음이 없어지고 아래로는 제후가 천자에 대해 원망하거나 두려운 생각이 없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역대 분봉제의 교훈에서 얻은 결론이다.
나는 강한 자를 덜고 약한 자를 돕는 분봉제를 주장하는데 이는 장기적으로 나라를 안정시킬 초석을 다지는 것이다. 임금은 넓고 관대해야 하며 덕행(德行)이 크고 높아야 한다. 또 이에 상응해 법을 세우고 백성을 다스리되 술(術)로 사람을 변화시켜야 한다. 때에 맞춰 임기응변하되 대도(大道)를 존중하고 따르면 만사만물을 통제할 수 있다.
나라를 다스리는 기술은 마땅히 군왕의 마음속에 감춰놓아야만 신하들을 제어하는 오묘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나라를 다스리는 도는 마땅히 드러내어 더욱 빛나게 하여 신하들이 알게 해야만 세상을 덮는 공을 세울 수 있다. 천자는 덕으로 하늘에 배합하고 몸소 민의(民意)를 긍휼히 여겨야 하며 그렇게 하면 신하들이 본받아 공덕이 무량할 것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도는 넓고도 넓어서 언어로는 그 크고 먼 뜻을 표현하기 어렵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자면 종실과 화목하게 지낸 요임금이 앞서 우수한 모범을 보여주셨고, 뒤를 이은 순임금은 자신을 극복하고 부모님께 효도하며 동생을 애호하는 실천으로 아름다운 이름을 후세에 전하셨다. 임금은 마땅히 고대의 성인을 본받아야 한다. 간사한 마음으로 대의(大義)를 위배하지 말아야 하며 소원한 사람을 편애해 친족의 정을 이간하지 말아야 한다. 시종일관 덕으로 몸을 닦고 덕으로 사람을 관찰한다면 나라가 태평해지고 종실이 편안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임금의 가장 높고 가장 선량한 아름다운 행실이다.
[평어]
왕도(王道) 인정(仁政)의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중용을 유지’함이다. 당태종은 ‘건친(建親)’편에서 “대개 책봉이 너무 강하면 배꼽을 무는 환란이 닥치고 너무 약하면 근본을 공고히 할 기초가 없다(夫封之太強,則爲嗜臍之患,致之太弱,則無固本之基).”고 했다. 너무 높이지도 너무 낮추지도 않으며 너무 약하거나 너무 강하지도 않게 하며 너무 치우치거나 너무 의지하지 않게 하는 이것이 바로 중용(中庸)의 도다. 친척을 봉건 하는 것도 이와 같고 나라를 다스리는 다른 정책들 역시 이와 같다.
당태종은 군주라면 마땅히 고대의 성인(聖人)을 본받아야 하며 간사한 마음으로 대의(大義)를 위배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덕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예의로 사람을 가르치며 성신(誠信)으로 신하를 대해야만 국가가 태평해지고 종실이 안정되며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해질 수 있다. 이것은 후인들이 마땅히 따라야 할 나라를 다스리는 대도다.
천자는 덕이 하늘에 배합하고 두터운 덕으로 만물을 실어야(以德配天,厚德載物) 하니 진실로 태종과 같아야 한다. 덕으로 몸을 닦고 덕으로 사람을 변화시켜 끊임없이 그 덕을 닦아야 한다. 반드시 덕이 높고 여러 사람들이 우러러봐야만 천하 인심이 돌아올 수 있다. 당태종은 자신의 고상한 덕행으로 대당성세(大唐盛世)를 이뤄냈고 만세(萬世)에 우러러보는 모범이 되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3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