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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응보 실록: 신을 모독하다 벼락 맞아 죽다

글/ 덕혜(德惠)

【정견망】

청나라 때 사천 지방에 한 무뢰배가 있었다. 여름날 술에 대취한 후 나체로 문창제군(文昌帝君)을 모시는 문창전 앞에 드러누웠다. 문창제군은 도가의 신령(神靈)으로 사람의 공(功)과 녹(祿)을 주재한다고 한다. 문창전을 관리하는 도사가 그에게 좋은 말로 떠나라고 권고했으나 그는 오히려 욕을 했다.

도사는 그가 이처럼 거칠고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을 보고 피할 뿐 더 이상 상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무뢰배는 그치지 않고 여전히 계속해서 욕을 해댔다. 또 술기운을 빌어서인지 사악한 성질이 올라와서 뜻밖에 문창제군의 신상 앞에서 소변을 보아 신령을 모독했다. 이때 눈 깜짝할 사이에 갑자기 바람이 불고 우레가 울리며 벼락이 치더니 신전 기둥에서 나무조각 하나가 떨어졌다. 이 나무는 뾰족하여 칼처럼 날카로웠고 매우 세게 떨어졌는데 마치 눈이 달린 것처럼 무뢰배의 복부를 찔렀고 끝까지 박혔다. 그는 배가 모두 갈라져서 창자가 다 흩어졌고 무뢰배는 그 자리에서 고통스럽게 죽었다.

나중에 사람들이 현장을 검사해보니 신상 앞의 깃발과 공양하는 그릇 및 기둥이 번개에 불에 탄 흔적이 있었는데 유독 양쪽 기둥에 걸어둔 신령을 칭송하는 금으로 쓴 대련만은 벼락불에 맞아 타면서도 글자는 다 피해가 한글자도 망가지지 않아 모두들 깜짝 놀랐다.

당시 소주(蘇州) 사람 주욱재(周勖齋)가 마침 서영직예청[敘永直隸廳 지금의 사천성 노주(瀘州) 서영(敘永)현 일대. 역주: 직예청은 청나라 때 지방행정기구로 지부와 같은 급인데 포정사(布政司) 직속이다]에 있었다. 그는 직접 사고 장소를 검사했는데 현장의 각종 물증을 보고는 이 사실이 진실임을 확인했다.

이 기록에서 무뢰한이 도사를 욕하고 신령을 모독하자 즉시 악보를 받아 복부가 갈라져 죽었다. 이는 현세현보(現世現報)라 할 수 있으니 인과응보의 이치가 진실함을 알 수 있다. 예부터 지금까지 중공은 무신론의 사악 사상을 견지하여 많은 사람들이 신불의 존재를 믿지 못하게 하여 인과응보를 미신으로 보며 술 취한 무뢰배처럼 신령을 모독하고 수련인을 박해하여 큰 죄를 짓고도 후회할 줄 모른다.

신불(神佛)은 큰 자비가 있어 늘 그물의 한쪽을 열어놓기 때문에 악보가 즉시 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신불에겐 또 위엄이 있기 때문에 죄인에게 무한하게 기회를 주진 않는다. 악보가 내릴 때 후회해도 늦다. 중공을 따라 신령을 모독하고 신앙인을 박해한 사람은 역사에서 귀감을 얻어 이야기 속의 무뢰한의 전철을 밟지 말기 바란다. 나쁜 사람을 도와 악을 행하지 말고 박해를 멈추어 참회하고 방법을 세워 공을 세워 보충하기 바란다.

자료출처:《이원총화(履園叢話)》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55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