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제범(帝範)》─당태종의 치국의 도 (4)

【정견망】

구현(求賢) 제3

[원문 및 해석]

무릇 나라를 보필함에는 반드시 충성스럽고 어진 이를 기다려야 한다. 인재를 얻어 책임을 맡기면 천하는 저절로 다스려진다. 그러므로 요임금은 사악(四嶽)에게 명령해 (인재를 추천받았고) 순임금은 팔원(八元)을 천거해 함께 나라를 다스리는 성대함을 이루고 밝은 도(道)를 돕게 했다. 선비가 세상에 살고 어진 이가 입신(立身)함에 날개를 접거나 비늘을 숨기지 않고 풍운의 모임을 기다리며 기이한 재주를 품고 만날 기회를 생각할 것이다.

夫國之匡輔,必待忠良。任使得人,天下自治,故堯命四嶽,舜舉八元,以成恭己之隆,用贊欽明之道。士之居世,賢之立身,莫不戢翼隱鱗,待風雲之會,懷奇蘊異,思會遇之秋。

밝은 임금은 뛰어난 인재를 두루 구하고 영현(英賢)한 인재를 널리 찾되 신분이 천하다고 하여 등용하지 않아서는 안 되며 전에 치욕을 겪었다고 하여 존중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옛날에 이윤(伊尹)은 유신씨의 잉신(媵臣 신부를 따라가는 요리사)이었고 강태공은 위수(渭水)의 천한 늙은이에 불과했으며 관중(管仲)은 죄수의 몸이었고 한신(韓信)은 알아주는 사람이 없자 지쳐서 도망쳤었다. 하지만 상나라의 탕임금은 (이윤이) 요리사라고 하여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고 주나라의 문왕은 (강태공이) 전에 백정과 어부를 했다고 해서 수치로 여기지 않았다. 탕왕은 끝내 상나라에 이윤을 중용해 조정을 밝게 인도했고, 문왕은 강태공을 등용해 목야에서 군사를 지휘해 주나라 왕실을 창성하게 했다. 제나라가 천하를 바로잡는 위업을 이룬 것은 실로 중부(仲父 관중)의 지모 덕이었고 한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것은 회음후(한신)의 계책 때문이었다.

是明君旁求俊義,博訪英賢,搜揚側陋,不以卑而不用,不以辱而不尊。昔伊尹有莘之媵臣,呂望渭濱之賤老,夷吾困於縲絏,韓信弊於逃亡。商湯不以鼎俎爲羞,姬文不以屠釣爲恥,終能獻規景毫,光啟殷朝,執旌牧野,會昌周室。齊成一匡之業,實資仲父之謀,漢以六合爲家,是賴淮陰之策

그러므로 먼 바다를 운항하려면 반드시 노의 힘에 의지해야 하고 큰 기러기가 구름 위를 날아가려면 반드시 날개에 의지하는 것처럼 제왕이 나라를 다스릴 때는 반드시 광보(匡輔 임금을 보좌하는 신하)의 도움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그러므로 (인재를) 구하기는 수고스럽지만 맡기면 편안해진다. 보석으로 빛나는 12대의 수레에 가득 실린 수천의 황금이라도 어찌 많은 인재가 융성해 어진 이를 등용하는 것만큼 중요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인재를 구함이 소중한 이유이다.

故舟航之絕海也,必假橈楫之功,鴻鵠之淩雲也,必因羽翮之用,帝王之爲國也,必籍匡輔之資,故求之斯勞,任之斯逸,照車十二,黃金累千,豈如多士之隆,一賢之重?此乃求賢之貴也。

[백화해석]

나라를 보필하려면 반드시 충성스런 신하와 어진 선비에 의지해야 하니 임금이 어진 인재를 등용해 마땅함을 얻으면 천하는 자연히 잘 다스려진다. 그러므로 요임금은 사악에게 명령해 집정하게 했고 순임금은 팔원을 추천해 가르침을 펼치게 하셨고 이를 통해 어진 인재의 보필을 받아 군주가 무위(無爲)로 다스릴 수 있는 공업(功業)을 이루고 천하를 다스리는 광명대도(光明大道)를 널리 알리셨다. 뜻있는 선비가 세상에 거하고 어진 사람이 입신하니 은거하여 세상을 피하거나 재능을 감추는 사람이 없을 것이며 풍운이 모이면 웅대한 재능을 펼칠 때와 기회가 오길 기다릴 것이다. 이들은 가슴에 기이한 재주와 웅대한 뜻을 품고 명군(明君)과 성주(聖主)를 만나 자신의 포부를 실현하고 싶어 한다.

그러므로 명군(明君)은 마땅히 마음을 뛰어난 인재를 찾고 널리 영현한 이를 방문하는데 두어야 하며 아무리 궁벽한 곳이라도 빠뜨리지 말아야 한다. 어진 인재의 지위가 낮다고 하여 등용하지 않아선 안 되며 그가 전에 치욕을 겪었다는 이유로 존중하지 않아도 안 된다. 과거에 이윤은 유신씨 딸이 시집갈 때 몸종으로 따라갔으나 지혜가 뛰어나 성탕(成湯)에게 중용되었다. 강자아는 위수 강가에서 낚시를 하다 인재를 알아보는 혜안을 지닌 주나라 문왕에게 발탁되어 군정(軍政)을 보좌했다. 관중은 일찍이 죄수였고 또 환공을 활로 쏘아 죽이려 했지만 환공은 옛 원한을 잊고 그를 재상으로 삼았다. 한신이 한(漢)나라에 있을 때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자 야밤에 도주했지만 소하를 따라 돌아와 단 위에 올라가 대장군이 되었고 초나라 군을 격파했다.

성탕은 이윤이 요리사의 신분으로 자신을 만난 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았고, 주문왕은 강자아가 일찍이 백정과 낚시꾼을 지냈다고 하여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두 사람은 모두 중용되었다. 이윤은 성탕을 위한 계책을 세워 상나라의 성대한 제업을 열게 했다고 강자아는 주나라의 최고사령관이 되어 목야 전투에서 주(紂)왕을 제거해 주나라 천하가 번영하게 했다. 제환공이 “천하를 바로 잡고 9차례 제후들과 회합을 가지는” 패업을 이룬 것은 모두 관중의 지략에 의지한 것이다. 유방이 항우를 이기고 여러 영웅들을 섬멸한 후 천하를 통일한 것은 한신의 계책에 의지한 것이다.

그러므로 선박으로 큰 바다를 건너자면 반드시 노의 힘에 의지해야 하고 큰 기러기가 구름을 뚫고 하늘 위로 오르려면 전적으로 날개에 의지해야 한다. 제왕(帝王)의 기초를 심후하게 다지려면 반드시 어질고 재능 있는 보좌에 의지해야 한다. 제왕이 어진 인재를 찾고 구하는 일이 비록 아주 어렵긴 하지만 일단 인재를 찾아 쓸 수 있게 되면 반드시 자신을 알아준 은혜를 알고 대업을 성취할 것이다. 빛나는 보배구슬로 장식된 수레에 천만금이 넘는 황금을 실었다 해도 어찌 훌륭한 인재를 많이 얻어 조정에서 어질고 능력 있는 사람들을 쓰는 것에 비할 수 있겠는가? 이를 통해 군주에게 어진 인재를 구함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 있다!

[평어]

당태종 이세민은 성당(盛唐)의 명군(明君)으로 불리며 그가 개창한 ‘정관의 치’는 역대 사가들의 큰 관심과 찬사를 받고 있다. 정관의 치는 어떤 의미에서 말하자면 바로 어진 이를 구하고 능력 있는 이에게 정치를 맡긴 것으로 당태종이 어진 이를 구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등용한 성공적인 모범사례다. 명말(明末)의 학자 왕부지(王夫之)는 《독통감론(讀通鑑論)》에서 정관 시기 조정에 인재가 풍부하고 어질고 능력 있는 사람을 등용한 성황에 대해 찬탄하면서 “당나라에는 능력 있는 신하들이 아무 많았는데 이는 이전의 한(漢)나라나 이후의 송(宋)나라도 모두 미치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구현(求賢)’편은 당태종이 평생 창도했던 ‘구현’사상과 원칙을 개괄하고 있다. 첫머리에 구현의 중요한 의미와 필요성에 대해 천명했다. 그는 “나라를 보필하려면 반드시 충성스런 신하와 어진 선비에 의지해야 하니 임금이 어진 인재를 임용해 마땅함을 얻으면 천하는 자연히 잘 다스려진다.”고 했다. 태종은 국가를 다스리는 일은 결코 임금 혼자만의 지혜로 세상을 운영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반드시 어진 인재의 도움과 보좌를 받아야 하는데 오직 어진 인재를 잘 활용해야만 천하는 비로소 태평해질 수 있다.

당태종은 인재야말로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이자 제왕이 지닌 진귀한 재부(財富)로 보았다. 무릇 천하란 한 사람이 주지(主持)할 수는 있지만 한 사람이 다스릴 수는 없다. 요임금의 성스러움은 비록 후세에 누구도 따르지 못했지만 여전히 어진 신하를 기다린 후에야 공을 이룰 수 있었다. 《서경》에 이르길 “팔다리가 있어야 사람이 되고 훌륭한 신하가 있어야 성군이 된다(股肱惟人,良臣惟聖)”고 했다.

태종은 이 말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고 자신의 내심에서 우러나와 “수천의 황금이라도 어찌 많은 인재가 융성해 어진 이를 등용하는 것만큼 중요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그는 마치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 인재를 구했고 시종 “부지런히 인재를 구하고 관리를 선택하는데 힘쓰는 것”(《정관정요》 권1)을 나라를 다스리는 가장 중요한 임무로 삼았다. 때문에 천하의 인재들이 모두 조정에 모여들었다. 백관(百官)이 각자 자신의 직무를 다하고 용맹한 장수들이 구름처럼 몰렸으며 모신(謀臣)들이 비처럼 모여 임금과 신하가 한마음으로 천하를 크게 다스렸고 오천년 중화문명 역사상 가장 휘황한 대당성세(大唐盛世)를 개창할 수 있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33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