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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 비밀 탐구(10): 관음원 승려가 가사를 노리다

글/ 선장

【정견망】

당승이 관음원(觀音院)에 도착해 보배가사(寶貝袈裟)를 꺼낸 이야기다.

[역주: 관음원 승려들이 온갖 귀중한 보물을 보여주며 환대하자 당승 일행도 성물(聖物)인 가사를 꺼내 보여준다. 이에 재물에 눈이 먼 조사(祖師 사실은 요괴와 한통속)가 가사를 빼앗기 위해 불을 지른다.]

불교(佛敎)는 불법(佛法)이 아니고 도교(道敎) 역시 도법(道法)이 아니다. 설령 정교(正敎)라 해도 종교 역시 사람이 보는 한 가지 형식에 불과하다. 정교는 모두 마음 닦음[修心]을 중시하며 형식을 보지 않는다. 종교에 입문하고 귀의하는 것은 단지 일종의 형식에 불과하며, 승려가 되어 종을 친다고 해서 진정한 수련자로 볼 수는 없다.

지금 사찰의 많은 승려들은 한 가지 직업에 불과하며 매일 출퇴근을 하는데 전혀 출가인의 모습이 아니다. 많은 출가한 승려들도 단지 호구지책에 불과할 뿐이며 ‘명리색기(名利色氣 명예 이익 색욕 분노)’는 일반인에 비해 조금도 적지 않다. 또 정치에 참여해 처급(處級) 대우를 누린다. 그러니 대체 어디가 정토(淨土)란 말인가?

더 우스운 것은 일부 거사(居士)들이다. 그들은 완전히 속인으로 하루 종일 불교용어를 달고 살지만 근본적으로 명심견성(明心見性)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불교에 귀의하고 채식하면 부처님이 관할하신다고 여긴다. 불교 중에는 말법(末法)이라는 설이 있는데 바로 지금 시기에 이르러 불교는 더 이상 영험하지 않고 사람을 제도할 수 없다는 뜻이다. 수련자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사실 척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또 관음원 인근 흑풍산 흑풍동의 세 요괴 역시 채약연단(採藥煉丹)을 말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방문좌도(旁門左道)로 밖을 향해 구하는 것이다. 앞에서 이미 반복적으로 언급했다시피 수련에서 관건은 자신의 마음을 닦는 것으로 안으로 닦아야 한다. 특정한 문파의 기술과 마찬가지로 밖을 향해 구해서는 안 된다. 여러 방면에서 문제에 봉착했을 때 우선적으로 안으로 자신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 또 외부에서 모종의 영단(靈丹)이나 묘약(妙藥)에 의지해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해선 안 된다. 이것이 바로 안으로 향하는가 아니면 밖으로 향하는가의 구별이다. 정법대도(正法大道) 앞에서 이런 소도는 전혀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이곳에서는 또 다른 한 가지 문제를 언급하고 있는데 바로 동물에게는 고층차의 수련이 허락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람은 반드시 이 얻기 힘든 기연(機緣)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47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