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천사(天使)
【정견망】
《제범》 납간(納諫) 제5
무릇 왕(王)은 (구중궁궐) 깊은 곳에서 높이 살기 때문에 (일반 백성들과 단절되어) 듣는 것이 부족하고 보는 것이 막혀 있다(주 ①). 허물이 있어도 듣지 못할까 두렵고 빠뜨린 게 있어도 보충하지 못할까 두렵다. 때문에 우임금은 도(鞀 작은 북)를 두고 순임금은 방목(謗木 주② 참조)을 설치해 백성들이 소송하거나 비판할 수 있게 하여 올바른 의견과 계책을 낼 수 있게 했으며, 마음을 비우고 귀를 기울여 충성스럽고 바른 말을 기다렸다.
夫王者,高居深視,虧聽阻明。恐有過而不聞,懼有闕而莫補。所以設鞀樹木,思獻替之謀;傾耳虛心,佇忠正之說。
만약 그 말이 옳으면 비록 노복이나 나무꾼처럼 천한 자라도 오히려 버려서는 안 되며, 말이 그르다면 비록 왕후(王侯)나 경상(卿相)과 같은 귀한 자라도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된다. 그 뜻이 볼만하다면 그 말을 잘하지 못한다고 탓하지 말며 그 이치가 쓸만하다면 그 글에 문채가 나지 않는다고 탓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서한(西漢)의 주운(朱雲)처럼 난간이 부러질 때까지 버티면서 죽음을 무릅쓰고 간언함(주③ 참조)에 이르러서는 그를 표창하여 경계로 삼고, 위(魏)나라 신비(辛毗)처럼 황제의 옷을 잡고 늘어지면서까지 간언(주 ④ 참조)하는 이가 있으면 그를 표창해 자신의 잘못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충성스러운 자는 그 마음을 다하고 지혜로운 자는 그 계책을 다하며 신하는 위로 임금과 단절되는 정서가 없으며 임금은 아랫사람을 두루 살필 수 있다.
言之而是,雖在仆隸芻蕘,猶不可棄也;言之而非,雖在王侯卿相,未必可容。其義可觀,不責其辯;其理可用,不責其文。至若折檻懷疏,標之以作戒;引裾卻坐,顯之以自非。故云忠者瀝其心,智者盡其策。臣無隔情於上,君能遍照於下。
하지만 어리석은 임금은 그렇지 않다. (자신의 허물을) 말하는 자가 있으면 위엄으로 거부하고 권고하는 자가 있으면 죄로 다스려 그치게 한다. 대신(大臣)들은 직위와 녹봉에 연연해 간언하지 않고 소신(小臣)들은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 말하지 않는다. 포악한 마음을 멋대로 하고 음탕한 짓을 하려는 뜻을 극도로 하면서 자신이 가리고 막으니 스스로는 알 길이 없다. 자신의 덕이 삼황(三皇)을 뛰어넘고 재주는 오제(五帝)를 넘어선다고 여긴다. 몸이 망하고 나라가 소멸됨에 이르러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昏主則不然,說者拒之以威;勸者窮之以罪。大臣惜祿而莫諫,小臣畏誅而不言。恣暴虐之心,極荒淫之志。其爲雍塞,無由自知。以爲德超三皇,材過五帝。至於身亡國滅,豈不悲哉!此拒諫之惡也。
주 ① 휴청조명(虧聽阻明)
《서경》에 이르길 “멀리 보되 밝아야 하고 덕스런 말을 듣되 귀가 밝아야 한다(視遠惟明, 聽德惟聰)”고 했다. 임금은 구중궁궐 깊은 곳에서 높은 자리에 홀로 거처하기 때문에 멀리까지 듣지 못하고 두루 보지 못한다. 또 오색(五色)이 눈을 가리고 오음(五音)이 귀를 막으니 비록 보고자 해도 밝게 보지 못하고 듣고자 해도 귀가 밝지 못하다. 이것을 일러 듣는 것이 부족하고 밝게 보는 데 장애가 있다고 한다.
주 ② : 설도수목(設鞀樹木)
옛날에 우임금이 천하를 다스릴 때 백성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도(鞀)란 작은 북을 두었고 순임금은 자신의 허물을 듣기 위해 백성들이 자유롭게 비판의견을 적을 수 있는 방목(謗木)을 설치했다.
주 ③: 주운절함(朱雲折檻)
《한서(漢書)》 〈주운전(朱雲傳)〉에 나오는 일화로 한 성제(成帝) 때 승상 장우(張禹)는 황제의 스승으로 성제의 큰 존경을 받았다. 어느 날 지방 수령으로 있던 주운(朱雲)이 찾아와 성제에게 간언하였다. 주운은 대쪽 같은 성품으로 존경받는 사람이었다.
“지금 조정 대신들이 위로는 폐하를 바로잡지 못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돕지 못하고 있습니다. 모두 자리만 차지하고 일은 제대로 하지 않으니 도둑이나 다름없습니다. 폐하께 청하오니 제게 말을 벨 수 있는 칼(斬馬劍)을 주시면 간사한 신하 한 명을 베어 본보기로 삼겠습니다.”
성제가 그 간신이 누구인지 묻자, 주운은 주저 없이 장우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듣고 분노한 성제는 황제의 스승을 모욕한다며 주운을 끌어내 목을 베도록 했다. 시위 무관들이 달려들어 주운을 끌어내려 하자 주운은 “저는 죽더라도 구천에서 하(夏)의 충신 용방(龍逄)과 상(商)의 충신 비간(比干)을 만날 수 있음에 만족합니다. 하지만 폐하의 조정은 어찌 하신단 말씀입니까!”
이렇게 외치며 난간을 붙들고 끝까지 버텼고 결국 난간이 부러지면서 주운은 끌어내려졌고 꼼짝없이 목이 잘릴 상황이 되었다. 이 때 좌장군(左將軍) 신경기(辛慶忌)가 나서 관용을 베풀기를 간곡히 청했고 이에 성제는 화를 삭이고 주운을 풀어주었다.
나중에 성제의 화가 가라앉은 후 부러진 난간을 보수하려 하자 성제가 말했다.
“새것으로 바꾸지 말라! 부러진 난간을 갖다 붙이도록 하라. 직언을 한 충신의 징표로 삼겠노라.” 이후 절함(折檻)은 죽음을 불사하고 간곡하게 충언을 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주운절함(朱雲折檻)이나 반함(攀檻)이라고도 한다.
주 ④ 인거각좌(引裾卻坐) 옷자락을 잡아끌어 자리에 앉히다
정사 《삼국지(三國志)》에 나오는 이야기다. 위문제(魏文帝) 조비(曹丕)가 기주(冀州) 백성 10만 호를 하남(河南)으로 이주시키려 했다. 하지만 당시 수년간 누리 떼 피해가 커서 백성들이 굶고 있었기 때문에 조정 신료들은 모두 이주 시기가 옳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황제의 의지가 워낙 단호했다. 이때 신비(辛毗)가 다른 대신들과 함께 황제를 알현할 것을 청했다. 황제는 이들이 자신을 가로막으려한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화를 내는 모습을 연출했다. 그러자 여러 대신들이 아무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
오직 신비만이 나섰다.
“폐하께서 십만 호를 이주시키려 하신다는데 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경은 지금 과인의 작법이 틀렸다고 말하려는 것이오?”
신비가 황제의 말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신은 확실히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짐은 더 이상 이 일로 그대와 상의하고 싶지 않소.”
“폐하께서 기왕 신(臣)을 버리지 않고 또 좌우에 두시어 지모와 계책을 내는 관리로 삼으셨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신과는 상의하려 하지 않는단 말씀이십니까? 또한 신이 말씀드리는 것은 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한 것인데 폐하께서는 어찌하여 신에게 화를 내십니까?”
황제가 더 이상 대답하지 않고 몸을 일으켜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자 신비가 황제의 옷을 잡아당기며 만류했다. 황제가 힘을 써서 옷을 떨친 후에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반나절이 지나서 다시 나온 황제가 신비에게 물었다.
“경은 왜 이렇게 짐을 핍박하는 것이오?”
신비는 “만약 지금 이주를 강행하시면 백성들 사이에 원망하는 말이 나오게 되고 또 그들의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결국 황제는 신비의 권고에 따라 이주 인구를 절반으로 줄였다.
원문위치 : https://www.zhengjian.org/node/428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