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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 신기한 수련이야기

글/ 주명리(周明理)

【정견망】

나는 어릴 때부터 《서유기》 보기를 좋아했다. 특히나 신통이 광대하고 각종 요마(妖魔)를 물리치는 손오공을 좋아했다. 성장한 후 중공 무신론의 독해를 받아 《서유기》는 단지 한부의 신괴(神怪)소설에 불과하다고 여기면서 신불(神佛)이 대체 어디에 있는가? 라고 생각했다.

성인이 된 후 나는 역사상 정말로 당승(唐僧)이 존재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속명이 진위(陳禕)이고 낙양 후씨(緱氏 지금의 하남성 언사) 사람인데 법명이 현장(玄奘)이었다. 당대(唐代)의 저명한 삼장법사였고 후세에 속칭 당승으로 불렸다. 그는 불교원전을 탐구하기 위해 서역 천축으로 5만 리 구법여행을 떠났으며 총 19년이나 걸렸다. 나중에 당태종의 칙령을 받아 서역을 여행하면서 겪은 일들을 책으로 엮어냈는데 이것이 바로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였다. 이 책은 현장이 구술한 것을 제자인 변기(辯機)가 받아 쓴 것이다. 이 책에 기술된 내용은 다른 역사문헌과 고고학적 발견과 맞아떨어져 그 진실성을 세계적으로 공인받았다. 나중에 《서유기》는 바로 현장의 이 위대한 사적을 원형으로 창작된 것이다.

나는 《대당서역기》를 읽고 나서 역사속의 진짜 당승이 소설 속의 당승보다 더욱 경탄할만 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8백리 대사막을 건넜고, 거대한 만년설산을 넘었으며, 천년이 지나도 녹지 않는 빙천(氷川)을 지났을 뿐만 아니라 가는 도중 여러 차례 강도와 도적떼들의 소란을 겪었고 상상조차 하기 힘든 각종 어려움이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일반인은 완수할 수 없는 임무를 완성했다. 이것은 단순한 81난을 훨씬 뛰어넘은 것이다!

동시에 나는 책을 읽으면서 또 적지 않은 풀리지 않는 의혹들이 생겨났다. 당승이 전후로 110여개 나라를 거쳤다는데 그렇다면 그 많은 나라들의 언어를 알았단 말인가? 이 19년 중에 중간에 병이 나면 어떻게 했을까? 가는 길에 특히 광활한 무인지역에서는 어떻게 음식문제를 해결했을까? 또 어떻게 했기에 도적이나 강도, 적수 및 수많은 국왕들(고창왕, 계일왕, 쿠마라왕, 당태종, 당고종 등)을 포함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를 숭배하게 만들 수 있었을까?

더욱 불가사의한 것은 책속에 기술된 현장이 직접 겪은 수많은 신적(神跡)들이었다. 예를 들면 불정골성(佛頂骨城)에서 향 가루를 반죽해 명주 헝겊에 싸서 정골(頂骨) 위에 덮으니 보리수 무늬가 나타난 일, 팔백 리 대사막을 건널 때 4박 5일간 물 한방울 없이 걷다가 염불을 하여 위기에서 벗어난 일, 불영굴(佛影窟)에서 경건하게 예배를 올린 후 암벽위에 석가모니부처의 모습이 나타난 등등. 이 모든 것은 무신론을 신봉하던 내게는 거대한 충격이었다.

2005년 간암말기 및 각종 질병으로 병원에서조차 해결방법이 없었던 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일체 증상이 나는 듯 사라졌고 또 수많은 기적이 내 몸에 나타났다. 나는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법신(法身)을 보았고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언급하셨던 일부 신기한 일들이 직접 내몸에 나타났다. 주변에서 파룬궁을 수련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수많은 신적이 펼쳐졌다. 나는 마침내 알게 되었다. 신은 정말로 존재하는구나! 현장스님이 나를 속이지 않았구나!

지금 내가 수련자의 눈으로 《서유기》를 보면 이 책은 수련에 관한 한부의 소설이다.

1. 수련자의 수련의 길은 사부가 잘 배치한 것으로 매 하나의 관(關)과 매 하나의 난(難)은 모두 목적 있게 배치된 것으로 모두 제자의 관련된 집착심을 제거하려는 것이다. 가령 ‘백골정을 세 번 때리다’는 손오공의 마성(魔性)을 제거하려는 것이고 ‘인삼과를 몰래 먹다’는 먹을 것을 탐하는 팔계의 마음을 없애려는 것이며 ‘반사동’이나 ‘여인국’은 그들의 정(情)과 색욕심을 제거하려는 것이다. 또 ‘통천하에서 자라를 만나 경서를 물에 빠뜨린 일’은 그들의 환희심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2. 사도 4인이 경을 얻는 과정은 하나의 수련과정이자 바른 신앙을 고험하는 과정인 동시에 고생을 겪고 소업 하는 과정이었다. 동시에 서로 협조하고 협력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들 중 누가 주요 협조인 역할을 했는가? 바로 당승이다.

손오공은 비록 본래 능력이 고강했지만 명리심이 중하고(필마온이란 명칭을 혐오하고 미후왕이나 제천대성이 되려 한다) 마성이 강하며 쟁투심(전에 천궁에서 큰 소란을 피움)이 강했다. 저팔계는 먹는 것만 밝히고 게으르며 안일한 마음과 색욕심이 모두 중해 툭하면 고로장으로 돌아가려 했다. 사화상은 비록 고지식할 정도로 틀에 박혀 있지만 고집스럽고 현명하고 어리식음을 구별하지 못하며 근기가 얕아서 큰 임무를 맡기 어려웠다.

이에 반해 당승이야말로 ‘대근기지인(大根器之人)’이었다. 그는 겉으로만 보면 아무 능력도 없고 심지어 어리석게 보이지만 가장 견정했다. “천축에 가지 못하면 동쪽으로는 단 한걸음도 돌아가지 않겠다”고 맹세했으며 아무리 험하고 위험한 일을 만날지라도 경을 얻으려는 결심이 흔들리진 않았다. 사부와 불법에 대한 그의 확고한 믿음은 위난에 처했을 때 늘 사부에게 기도하게 했고 계율을 가장 잘 지켰으며 가장 자비로운 마음을 지녔다. 사실은 바로 이런 것들이야말로 수련인의 근본이다! 이 때문에 그가 취경 항목의 주요 책임자가 된 것이다.

3. 수련자의 근기는 서로 다르고 수련 중에 치르는 대가 역시 다르며 수련의 표현 역시 다르고 최종적인 과위도 서로 다르다. 사부의 안배는 모두 그 정도에 딱 맞춰진 것이다.

사도 4인 중에서 당승의 근기가 가장 높았은데 그는 본래 여래의 2번째 제자인 금선자(金蟬子)였다. 그는 가장 견정하고 가장 계율을 잘 지켰으며 자비심이 가장 많았다. 손오공의 내원 역시 작지 않아서 일월의 정화로 태어난 신령한 원숭이로 취경 과정 중에서 아주 큰 역할을 했다. 때문에 이 둘은 최후에 모두 부처로 성취되었다.

저팔계는 근본이 천봉원수(天蓬元帥)로 항아를 희롱하다 천계(天界)에서 쫓겨났다. 그는 먹는 것을 좋아하고 게으른데다 안일한 마음과 색욕심이 중해서 중간에 여러 차례 물러나려 했다. 취경 과정에서 그래도 적지 않은 대가를 치렀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정단사자(淨壇使者)에 봉해졌다. 사화상은 일찍이 권렴대장(卷簾大將)이었으나 하늘의 법을 어겨 천계에서 쫓겨났다 서행의 길에서 그 어떤 고생도 마다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으며 착실하게 본분을 지켰다. 하지만 필경은 근기가 얕아서 최후에 금신나한(金身羅漢)에 봉해졌다.

이들 상계(上界) 생명은 수련을 거쳐 최종적으로 정과(正果)를 성취했고 인류에게 계시를 주었다.

역사적으로 진짜 현장의 사적(事跡)이라도 좋고 《서유기》라는 소설이라도 좋은데 모두 신전문화를 다져주었고 오늘날 인류에게 참조가 되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445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