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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고영웅인물】 당태종(23): 위풍당당한 무무(武舞)

글/ 찬란한 5천년 신전문화의 천고영웅인물 연구팀

【정견망】

제3절 위풍당당한 무무(武舞)

627년 음력 설날 대당제국 정관연대가 정식으로 개원(改元역주:중국 고대에 정식으로 이전 황제의 뒤를 이을 경우 등극한 후 연말까지는 이전 연호를 사용하고 이듬해 새해부터 연호를 고치고 정식으로 개원한다)했다.정월 초삼일 태종은 여러 신료들과 궁중에서 큰 연회를 베풀었다.악공(樂工)들에게 명해 즉석에서 위풍당당하고 감동적인‘진왕파진악(秦王破陣樂-진왕 이세민이 적진을 깨뜨리는 음악)’을 연주하게 했다.

이 곡은 원래 당고조 무덕(武德) 3년 태종이 진왕의 신분으로 유무주(劉武周)를 평정할 때 군중의 병사들이 집단으로 창작한 것이다.그들은 예전 곡에 새로운 가사를 넣었다.가사에는“명령 받고 출정해 원수께 아뢰고 서로 협력해 반란군을 토벌하네,모두 파진악을 부르며 함께 태평인을 감상하노라(受律辭元首,相將討叛臣;咸歌破陣樂,共賞太平人)”는 내용이 있다.

이후 이 노래는 당나라군의 군가(軍歌)가 되었다.이뿐만 아니라‘진왕파진악’에는 무용파트도 있는데 역시‘무(武)’와‘무(舞)’의 결합이었다.전쟁터에서 적을 정벌하는 무(武)가 궁정 무용 속으로 녹아들어가,남자의 양강(陽剛)한 기운이 중국전통 고전무 속에서 더욱 빛나게 했으며,후세에 중국고전무의 경전이란 영예를 누렸다.

연회에서 태종은 웅장하고 격동적인 진왕파진악을 듣고 전투에 참여했던 장사들의 위무(威武)와 웅자(雄姿)를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을 금하지 못하고 이렇게 말했다.

“짐이 예전에 천명(天命)을 받아 정벌할 때 민간에 마침 이 곡이 있었소.비록 문덕(文德)의 우아하고 점잖은 모습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이로 인해 공업(功業)을 이뤘으니 짐은 감히 그 근본을 잊을 수 없소!”

이때 상서우복야 봉덕이가 말했다.

“폐하께서는 신성한 무공으로 해내(海內천하)를 평정하셨는데 어찌 구구한 문덕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태종이 이를 수긍하지 않으며 말했다.

“혼란을 다스리는 것은 무(武)로 하지만 이룬 것을 지키는 것은 문(文)으로 하니 문무(文武)의 쓰임은 각기 그 때가 있는 것이오.문덕이 무공에 미치지 못한다는 경의 말은 지나치오.”

그러자 봉독이가 곧 머리를 숙이며 사과했다.(《자치통감》192권)

한편 병법(兵法)과 진법(陳法)에 능통했던 위국공(衛國公)이정(李靖)은 진왕파진악을 보고는 말했다. “신이 폐하께서 만드신 파진악무(破陣樂舞)를 몰래 살펴보니 전면에4개의 표목을 세우고 후면에8개 깃대가 묶여 있었습니다.춤을 추는 사람들이 좌우로 방향을 꺾거나 돌면서 징과 북에 맞춰 달리거나 걷는 등의 동작을 하는데 모두 절도가 있었습니다.이는 바로 팔진도(八陣圖)에서 사두팔미(四頭八尾역주:아군을井자 모양으로9개로 나눠 부대를 배치한 후 적이 사방 어느 한쪽을 공격하면 직접 맞선1개 부대를 제외한 나머지8개 부대가 꼬리가 되어 적에게 달려드는 진법)의 군제와 같습니다.사람들은 단지 악무(樂舞)가 성대하한 것만 볼 뿐 이와 같은 군용(軍容군의 기율)이 깃들어 있음을 어찌 알겠습니까?”

태종이 말했다.

“대체로 병법이란 마음으로 전할 수 있을 뿐 말로는 전할 수 없는 법이오.짐이 파진악무를 만들었는데 오직 경만이 이미 그 뜻을 깨달았으니,후세 사람들이 내가 헛되이 만든 게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오.”

한편, ‘진왕파진악’은 당시에도 이미 해외에까지 명성을 떨쳤다.당나라의 고승 현장(玄奘)대사가 인도에 가서 갈약국사국(羯若鞠闍國칸나우지)의 계일왕(戒日王하르샤바르다나)을 접견했을 때 계일왕이 현장과 나눈 대화에도 당태종과‘진왕파진악’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나는 예전에 마하지나국(摩訶至那國중국을 가리킴)에 진왕(秦王이세민)이란 천자가 있는데 어려서부터 그 능력이 남달리 특별하더니 성장해서는 신묘한 무위(武威)를 지녔다고 들었소.선대에 나라를 잃고 혼란해져 국토가 여러 갈래로 나뉘어졌으며 전쟁이 앞 다투어 일어나 백성들의 고초가 아주 많았다고 하오.이때 진왕 천자가 일찍이 웅대한 책략을 품고 큰 자비심을 일으켜 뭇 중생을 구제하고 천하를 평정해 덕으로 백성을 교화함이 멀리까지 미쳤으며 그 은덕의 혜택이 사방을 고루 적셨다고 들었소.그리하여 천하의 모든 나라들이 그 덕의 교화를 사모해 신하가 되기를 청했고 백성들은 그 자애로운 보살핌을 입어 모두 함께 진왕파진악을 노래했다고 들었소.나도 그 아름다운 노래를 들은 지 오래되었소.”(현장《대당서역기》5권)

또 인도 가마루파국(迦摩縷波國카라루파)의 구마라(拘摩羅)왕 역시‘진왕파진악’을 마음에 들어 하며 현장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한 적이 있다.

“지금 인도 여러 나라에서는 많은 이들이 마하지나국의‘진왕파진악’이란 노래를 듣고 있습니다.이 음악을 들은 지 오래되었는데 대덕(大德현장에 대한 존칭)의 고국에서는 어떻습니까?”

현장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이 노래는 우리 군왕의 덕을 찬미한 것입니다.”

“대덕께서 이 나라 사람이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언제나 귀국의 교화와 풍속을 사모해 동쪽을 바라본 지 오래되었습니다만 산천의 길이 험해 뜻대로 다니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대왕의 성스런 덕과 어진 교화가 먼 곳까지 미치니 풍속이 다른 이역(異域)의 사람들조차 천자의 궁궐에 배알하며 신하를 칭하는 이들이 아주 많습니다.”

“귀국 국왕의 성덕과 교화가 그와 같다면 나도 조공하고 싶습니다.”

(현장《대당서역기》10권)

진왕파진악은 당조(唐朝)성세의 문치(文治)・무공(武功)을 진실로 체현해 역대로 가장 유명한 악무의 하나로 꼽힌다.

제4절 신의(神醫)손사막

대당의‘약왕(藥王)’손사막(孫思邈)은7세 때 매일 천여 글자를 암송할 정도로 신동으로 불렸다.그는 의학 공부에 뜻을 두고 태백산(太白山)에 은거해 도를 배우고 기를 연마하며 수양했다.손사막은 여러 가의 학설에 정통했는데 천문과 지리에도 밝았고 의약(醫藥)이나 술수(術數)는 물론이고 불학(佛學)에도 조예가 깊었다.

수 문제는 손사막의 명성이 높다는 말을 듣고 관직을 주고자 불렀으나 사양했다.손사막은 일찍이 사적으로“앞으로50년이 지나면 성인(聖人)이 출현하실 것이다.그때가 되면 내가 성인을 도와 백성을 구도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50년 후 당 태종이 부르자 경성에 이르렀다.그의 용모가 나이에 비해 아주 젊은 것을 본 태종이“짐은 본래 도를 지닌 사람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고 알고 있소.선문(羨門)과 광성자(廣成子)와 같은 이런 선인(仙人)들의 사적은 사람들의 허망한 말이 결코 아니었소!”라고 찬사를 보냈다.그는 일찍이 태종을 위해 병을 치료해준 적이 있지만 관직을 맡는 것은 거부했다.(《신당서》〈열전 제121〉)

한번은 손사막이 용왕(龍王)의 아들을 구해준 적이 있는데 그 답례로 용궁에 비전되던 처방30수를 받았다.스스로 시험해보니 약효가 모두 신효했다.나중에《천금방(千金方)》30권을 지을 때 용궁처방을 수록했다.(《태평광기(太平廣記)》21권)

또 한번은 맹호(猛虎)가 병에 걸려 손사막을 찾아와 치료받은 적이 있다.손사막은 치료에 앞서 이후로 더는 인류를 해치지 말라고 호랑이와 약속했다.맹호가 이를 받아들이자 손사막이 호랑이를 치료해주었는데,과연 맹호는 이후 한마음으로 선을 지향하고 또 손사막을 뒤에서 보호해주었다.

당 태종은 손사막에 대해“길을 뚫어 개척했고 훌륭한 의사로 이름을 떨쳤도다.세 성인을 도와 사시(四時)를 고르게 했다.용과 범을 항복시켜 약하고 위태로운 자들을 구원했으니 위풍당당한 백대(百代)의 스승이로다.”라고 칭찬했다.자고로 중국 각지에는 어디나 약왕 사당이 있어 손사막을 기념하고 있다.그는 당시는 물론이고 후세인들에게까지 도를 닦아 신선이 된‘의학의 신’으로 간주되었다.

손사막이 저술한 방대한 의학서적‘천금방’은 중국역사상 최초의 임상의학 백과사전으로 최초로 의덕(醫德의료윤리)에 대해 완전히 논술했다.또 최초로 부인과와 소아과의 분과 설립을 주장했다.

그는 의사의 층차에 대해 아주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고대에 치료를 잘하는 의사는 상의(上醫)는 나라를 치료하고 중의(中醫)는 사람을 치료했으며 하의(下醫)는 병을 치료했다.또 말하길 상의는 소리를 듣고 중의는 색을 관찰하며 하의는 맥을 짚는다고 했다.또 말하길 상의는 병이 생기기 전에 치료하며 중의는 병이 생기려할 때 치료하며 하의는 병이 이미 생긴 후에 치료한다고 했다.”

‘대의정성(大醫精誠)’은 손사막이 쓴《비급천금요방(備急千金要方)》제1권에 나오며 전문적으로 의덕에 관해 언급한 아주 중요한 문장이다.여기서 정(精)이란 의도(醫道)가‘지극히 정밀하고 지극히 은미한 일(至精至微之事)’임을 말하는데,의학을 익히려는 사람은 반드시‘널리 의학의 근원을 지극히 하여 정성스럽고 부지런하되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

성(誠)이란 의사에게 고상한 품덕과 수양을 갖출 것을 요구하는데 구체적으로는 자비롭고 동정하는 마음을 품고 인류의 고통을 구제하려는 결심을 가져야 한다.훌륭한 의사(大醫)가 병을 치료할 때는 정신을 편안히 하고 뜻을 집중해 아무것도 바라거나 구함이 없으면서 자비심을 내되 병자를 가리지 말아야 한다.훌륭한 의사의 몸가짐은 마음을 오로지 하여 맑은 정신으로 내면을 보되,기개는 관대하고 흉금이 넓어야 하며 너무 높이거나 낮추지 말아야 한다.의사는 의학기술을 이용해 돈만 벌려고 해선 안 되며 오직 고통과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구원하려는 마음가짐으로 구호해야 한다.이렇게 해야만 의도(醫道)중에서 스스로 복이 많음을 느낄 것이다.

손사막은 이처럼 의덕을 중시하며 큰 자비심을 품고 의업으로 세상을 구제하고 사람들의 병을 치료해주었다.그는 후세에 신이 전한 정통의학과 약리(藥理)를 남겼을 뿐만 아니라 대당의 휘황한 성세에 또 한송이 아름다운 꽃을 더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1536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