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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 시해(試解) (1)

글/ 탄진(撣塵)

【정견망】

《서유기》는 세상에 등장한 이래 줄곧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사람들은 단지 그 속의 각종 이미지나 이야기를 좋아할 뿐만 아니라 작품에서 체현해 낸 낙관적이며 향상(向上)하는 정신적 도야에 더욱 빠져들게 된다. 중국인들의 수련・신불(神佛)・천국세계・요마귀괴(妖魔鬼怪)에 대한 인식은 모두 상당부분 《서유기》와 관련이 있다. 《서유기》의 내함과 주제에 관해 줄곧 다양한 설이 분분하여 일치된 견해가 없다. 필자는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을 시작한 후 《서유기》에 대해 한층 더 깊은 인식이 생겼기에 이를 정리해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나눠보고자 한다.

1. 손오공의 수련과정

(1) 손오공의 본래면목

《서유기》 개막편에 손오공의 출신이 나오는데 한 덩이 신선바위(仙石)가 하늘의 참된 기운과 땅의 빼어난 기운, 해와 달의 정화를 받아 생성되었다. 보리조사의 말에 따르면 “하늘과 땅이 생성”한 것이다. 작가는 이 돌 원숭이를 쓴 목적을 아주 명백하게 말했다.

책속(1회)에 이런 구절이 있다.

“알의 모습을 빌려 된 원숭이가 대도를 완성하니 다른 이름을 빌려 단을 이루도록 안배했네(借卵化猴完大道,假他名姓配丹成).”

또 “역대 사람들이 모두 이런 부류에 속해 왕을 칭하고 성인을 칭하며 제멋대로 살았노라.

(曆代人人皆屬此,稱王稱聖任縱橫)”라고 했다.

그러므로 이런 각도에서 말한다면 돌 원숭이의 구도와 수련을 쓴 것으로 다시 말해 한 사람의 수련과정을 서술한 것이다.

미후왕(美猴王)은 동승신주(東勝身洲)에서 남섬부주(南贍部洲)를 거쳐 최후에 서우하주(西牛賀洲)에 와서야 수보리조사를 찾았다. 이렇게 아득히 먼 노정은 단지 하나의 구도(求道)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최종적으로 조사를 찾은 곳은 어디였을까?

책에서는 “영대방촌산 사월삼월동(靈台方寸山,斜月三星洞)”이라고 했다. 이 두 구절은 모두 ‘심(心)’이란 한 글자를 의미하는데 자고로 사람들은 심을 ‘영대(靈台)’ 또는 방촌이라고도 했다. 사월삼성동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이 삼성(三星)은 심(心)의 3점이고 사월(斜月)은 바로 누워있는 갈고리를 가리킨다. 즉 심(心)이 된다. 미후왕이 천 가지 난과 만 가지 위험을 거치며 최종적으로 자신의 마음속에서 수련의 진법(眞法)을 찾았다는 뜻이다.

이 구절은 또 불가에서 말하는 “부처는 마음속에 있다(佛在心中)”거나 “내 마음이 곧 부처(卽心是佛)”란 주장과도 아주 부합한다. 물론 단순히 마음속에 부처가 들어있다는 뜻은 아니며 안으로 닦고 자신의 마음을 향해 닦아야만 비로소 수련하고 성불할 수 있다는 뜻이다. 미후왕은 아무리 많은 과정을 겪고 아무리 많은 세월을 겪었다 해도 최종적으로는 자신의 내심에서 진법(眞法)과 진도(眞道)를 깨달았다. 그렇다면 그의 사부인 수보리조사는 또 누구란 말인가? 그는 어떻게 미후왕의 마음속에 있을 수 있을까?

책에서는 손오공을 묘사하면서 여러 곳에서 ‘마음원숭이(心猿)’라고 표현한다. 가령 7회 ‘팔괘로에서 대성이 도망치니 오행산 아래에 마음원숭이를 고정시키다(八卦爐中逃大聖 五行山下定心猿)’에 이런 시가 있다.

“원숭이가 도를 체득해 사람의 마음과 짝을 맺으니 마음은 바로 원숭이란 말에 깊은 뜻이 있구나(猿猴道體假人心,心即猿猴意思深).”

그렇다면 그는 누구의 마음원숭이란 뜻일까? 사실 책속에 나오는 당승, 손오공, 저팔계, 사화상, 백룡마 이 다섯을 합하면 바로 한사람이 된다. 손오공은 바로 당승의 마음을 상징한다.

손오공은 단일하게 볼 수 없는데 그는 여러 가지 상징과 형상의 복합체다. 한편으로 그는 한 사람의 ‘마음’이 형상적으로 체현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또 개인 수련 중에서 신체의 양강(陽剛)한 속성을 체현한다. 책속에서 ‘금공(金公)’이라고 한 표현은 바로 그를 지칭하며 이것은 오장을 오행에 따라 대응시킨 것이다. 때로는 그는 육욕(六慾) 중의 욕(慾)을 가리키는데 예를 들어 77회 개막편에 이런 구절이 있다.

“여섯 체상(體相 몸의 모습)에 여섯 무기 여섯 몸뚱이와 여섯 정 육악 육근이 육욕에 연유하니 육문 육도가 내기를 하네(六般體相六般兵,六樣形骸六樣情. 六惡六根緣六慾,六門六道賭輸贏)”

여기서는 손오공, 저팔계, 사화상과 다른 세 요마가 사람의 육욕을 지칭한다.

또 보리조사는 손오공의 이름을 지어줄 때 “자(子)는 아들이고 계(系)는 어리고 작다는 뜻이니 바로 영아(嬰兒)의 본령에 딱 들어맞으니 네 성을 손(孫)이라고 하자.”라고 했다.

이것은 또 다른 각도에서 한 사람의 수련이 일정한 층차에 도달할 때 단전부위에서 생겨나는 원영이다. 또 화과산(花果山)과 수렴동(水簾洞)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은 손오공의 신체와 마음속을 상징한다. 돌 원숭이는 수렴(水簾)을 뛰어넘어 수렴동에 들어가는데 책에서는 수렴에 대해 “다리 아래 물이 돌구멍 틈으로 뚫고 올라왔다가 거꾸로 쏟아져 내리면서 다리 입구를 가로막고 있다.”고 했으니 이것 역시 심(心)이란 글자를 묘사한 것이다.

또 손오공이 도를 깨달은 후 천병천장(天兵天將)과 큰 싸움을 벌일 때 빨간 엉덩이의 두 마후(馬猴)와 어깨가 넓은 두 원후(猿猴)를 각각 4건장(健將)에 봉했는데 이들은 사실 그의 팔다리 즉 사지(四肢)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그가 뭇신들과 대전할 때 72동의 요괴왕들은 모두 잡혀갔지만 4건장을 포함한 원숭이들은 단 한 마리도 잡혀가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잡혀가자 4건장 및 원숭이들은 모두 흩어져버린다.

그러므로 손오공은 당승의 마음원숭이(心猿)고 수보리는 또 손오공의 마음속이다. 그렇다면 당승과 수보리는 어떤 관계에 있을까?

《서유기》에선 당승을 석가모니의 두 번째 제자 금선자(金蟬子)의 전생(轉生)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석가모니의 10대 제자 중에 금선자란 인물은 없다. 이는 저자가 ‘금선자’란 허명을 사용해 다만 ‘금선탈각(金蟬脫殼 금매미가 허물을 벗듯이 수련인이 환골탈태하는 것을 비유)’의 뜻을 취한 것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반면 석가모니 10대 제자 중에 수보리라는 인물은 확실히 존재했다. 또 손오공은 왕망(王莽 기원 전 45년~기원 후 23년)이 한나라를 찬탈할 때 오행산 아래에 눌려졌다고 한다. 그런데 손오공이 출생해서 마음을 움직여 도를 배우고 산속에서 지낸 지가 이미 오백여 년이고 그가 도를 구하여 배운 것 역시 몇십 년이 지났다. 이렇게 친다면 손오공은 바로 석가모니불이 법을 전하던 그 시기(대략 BC 5~6세기)쯤 출생했다는 말이 된다.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손오공은 오행산 아래에서 오백년을 눌려 있었고 이것은 당승이 9세(世) 동안 수행한 시간에 대체로 상당한다. 그러므로 손오공, 당승, 수보리의 최초 내원은 같은 시대에 있었으며 책에 묘사된 것을 통해 이들 셋이 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여러분은 보리조사가 오공의 머리를 계척(戒尺)으로 치자 오공이 곧 조사가 삼경 이후 따로 찾아오라고 한 것임을 깨닫는 장면을 보고 매우 재미있어 한다. 사실 이 이야기는 《육조단경(六祖壇經)》에 나오는 일화다. 선종의 6조 혜능이 시를 지어 “보리는 본래 나무가 아니고 명경 또한 대가 아니로다. 본래 한 물건도 없으니 어디에 티끌이 일어나리?(菩提本無樹,明鏡亦非台。本來無一物,何處惹塵埃)”

5조가 이것을 본 후 혜능이 이미 본성을 깨달았음을 알았지만 혹여라도 다른 사람들이 해칠까 두려워 이 게송을 지워버렸다. 그리고는 이튿날 조용히 혜능을 찾아가니 혜능은 마침 방앗간에서 쌀을 찧고 있었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눈 후 선장(禪杖)으로 돌 디딜방아를 세 번 두드리고는 떠났다. 혜능은 이때 5조의 의사를 분명히 깨달았고 한밤중 삼경이 되자 몰래 오조의 처소로 찾아갔다.

오조는 가사로 불빛을 막고는 그에게 《금강경(金剛經)》을 해설해주었다. 혜능은 마침내 일체 만법(萬法)을 크게 깨달아 자성(自性)에 걸림이 없어졌다. 여기서 ‘자성’이 가리키는 것은 바로 사람의 본성으로 《금강경》에서는 ‘보리’라 한다. 불교에서 가리키는 보리심은 사람의 선천적이고 순결한 본심을 가리킨다.

《금강경》은 또 석가모니불이 수보리를 중심으로 한 제자들과 나눈 대화를 기록한 것이다. 수보리는 본래 석가모니의 10대제자로 ‘해공제일(解空第一 공에 대한 이해가 가장 뛰어나다는 뜻)’이라 불렸다. 그가 돌 원숭이의 이름을 오공(悟空)이라 지은 것에도 그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사실 다른 각도에서 말하자면 이것 역시 손오공이 자신에게 붙인 이름에 불과하다. 심지어 당승마저도 손오공을 칭찬하면서 그가 이해한 ‘심경’은 “언어나 문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진정한 깨달음(無言語文字,乃是真解)”(93회)이라고 한다.

물론 금선자와 수보리가 같은 인물인지 아닌지에 대해 우리가 꼭 이렇게 결론을 내릴 필요는 없다. 같은 인물이라도 좋고 아니라도 좋은데 어쨌든 그들은 이런 연계가 있을 뿐이다. 불가에서는 공(空)을 말하는데 소위 만법(萬法)이 공상(空相)이라 한다. 사실 작가가 이런 안배를 한 것에는 보다 심오한 의도가 있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천천히 말해보자.

(2) 손오공의 수련

수련의 핵심은 바로 마음 수련이다. 보리조사가 오공에게 성(姓)을 묻자 그는 “저는 성깔(性)이 없습니다. 남들이 욕해도 화내지 않고 때려도 성내지 않으며 그저 예의로 대할 뿐입니다. 평생 성질을 내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얼핏 보면 별 뜻이 없는 것 같지만 사실 오공이 구도과정에서 이미 그의 마음을 착실히 수련했음을 설명한다. 그의 심성이 이렇게 높았기 때문에 아주 빨리 도를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보리조사가 손오공에게 전수한 “현밀(顯密)에 원만히 통하는 것이 진짜 오묘한 비결(顯密圓通真妙訣)”은 겉으로만 보면 불교의 현교(顯敎)와 밀교(密敎)가 하나로 융합된 수련 비결처럼 보인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완전히 도가(道家)의 수련내용이다.

가령 “달은 옥토끼를 품고 해는 까마귀를 감추니 저절로 거북과 뱀이 서로 얽힌다. 서로 얽혀 있으면 성명이 튼튼해지고 불속에서도 황금연꽃을 심을 수 있네. 오행을 모아 전도(顚倒)해 사용하면 공이 완성되어 부처도 되고 신선도 될 수 있도다.(月藏玉兔日藏烏,自有龜蛇相盤結。相盤結,性命堅,卻能火裏種金蓮。攢簇五行顛倒用,功完隨作佛和仙)”는 도가수련의 술어와 규칙을 포함하고 있다.

위 내용을 더 상세히 풀어보자.

‘달은 옥토끼를 품고 해는 까마귀를 감추니’의 의미는 주천(周天)을 운행할 때 신수(腎水)가 위로 올라가고 심기(心氣)가 아래로 내려가 수화(水火)가 서로 융합해야 하는데 다시 말해 수화기제(水火既濟)를 이뤄야 한다. 물(水)은 팔괘 중에서 감괘(坎卦 ☵)에 해당하기 때문에 ‘달(月)’로 표현했다. 감괘의 괘상을 보면 겉에 2개의 음(陰)이 가운데 양(陽) 하나를 끼고 있다. 여기서 옥토끼가 가리키는 것이 바로 이 일양(一陽)이다.

또 심장은 오행에서 화(火)에 속하기 때문에 ‘해(日)’로 비유했고 팔괘에서는 리괘(離掛 ☲)인데 괘상을 보면 겉에 2양이 안에 1음을 끼고 있다. 이 일음(一陰)을 까마귀라 한다.

또 거북과 뱀이 서로 얽히는 것은 음양이 화합함을 가리킨다. ‘오행전도(五行顛倒)’가 가리키는 것은 수(水)가 위로 가고 화(火)는 아래로 내려오며 목(木)은 아래로 가라앉고 금(金)은 위로 뜨면서 토(土)가 이를 조화하는 것을 말한다. 이 역시 도가수련에서 말하는 후천으로 선천을 되돌린다는 말이다.

《서유기》 뒤편에 나오는 “신령한 거북이 금 까마귀의 피를 전부 빨아들인다(靈龜吸盡金烏血)”는 표현과 결합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도가에서는 사람이 출생하기 전에는 신장이 곤(坤 ☷)에 대응하고 심장은 건(乾 ☰)에 대응한다고 보는데 곤괘는 세 효가 전부 음이고 건괘는 세 효가 전부 양이다. 그러다가 사람이 일단 출생하면 곤괘가 감괘(☵)로 변하고 건괘는 리괘(☲)로 변한다. 이때 감괘의 가운데 양으로 리괘의 가운데 음을 보충하면 리괘는 다시 건괘로 변한다. ‘금 까마귀의 피’라고 한 것은 바로 리괘 가운데 음효를 말한다. 이것을 감괘 가운데에 놓으면 감괘는 곤괘로 변한다. 이것이 바로 후천을 선천으로 되돌린다는 설인데 다시 말해 오행전도라는 뜻이다.

사실 보리조사가 손오공에게 전수한 수련방법도 그렇고, 나중에 당승 일행이 취경(取經)하는 과정에서 하는 수련 역시 그런데, 기본적으로는 모두 이 수련방법에 따른 것이다. 보리조사가 손오공에게 ‘삼재(三災)’ 중에서 ‘천뢰(天雷), 음화(陰火), 비풍(贔風)’ 피하는 방법을 알려주는데 여기에 나오는 술어들은 전부 도가수련의 것들이다. 책에는 또 여러 차례 손오공이 ‘태을산선(太乙散仙)’으로 수련 성취되었다고 말한다.

오공이 도를 배운 후 돌아와서 제일 처음 한 일은 바로 ‘혼세마왕(混世魔王)’을 제거한 것이다. 수련계에서는 사람에게는 불성(佛性)이 있지만 또 마성(魔性)이 있으며 수련이란 바로 마성을 제거해 불성을 충실히 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오공은 본성을 깨달았으니 당연히 자신의 마성을 깨끗이 제거해야만 한다. 이 혼세마왕이란 바로 그 자신의 마성을 상징한다. 사실 매 사람에 대해 말하자면 혼세(混世 세상에 섞여 어지럽게 하는 것)의 사상과 특징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책속에서는 혼세마왕이 화과산 북쪽 ‘삼계감원산(三界坎源山) 자양오행수장동(滋養五行水臟洞 오행을 자양하는 수장의 동)’안에 살고 있다고 하는데 사실은 신장부위를 가리킨다.

사람 몸에서 신장은 오행의 수(水)에 속하며 팔괘에서는 감괘가 되고 방위로는 북쪽에 해당한다. 이것을 통해 볼 수 있다시피 화과산은 바로 손오공의 신체를 상징한다. 혼세마왕이란 이름 역시 사람 몸의 마성과 아주 부합한다. 때문에 오공이 혼세마왕을 섬멸하는 것은 그의 수련에서 한 방면이다. 이 회의 제목이 ‘보리의 진짜 오묘한 이치를 투철하게 깨닫고 마를 자르고 근본으로 돌아와 원신과 합한다(悟徹菩提真妙理斷魔歸本合元神)’는 것은 이 방면을 설명한다.

오공이 동해 용왕을 찾아가 금고봉(金箍棒)을 얻는 과정 역시 장면에 대한 묘사가 아주 생생하고 재미있다. 하지만 사실 이 역시 오공 수련층차의 여의(如意)한 표현에 불과할 뿐이다. 책에서는 오공이 수렴동 철판교 아래에서 직접 해저로 들어가고, 해저에서 정해신진철(定海神珍鐵 바다를 다지는 신령하고 진귀한 철) 다시 말해 ‘여의금고봉(如意金箍棒)’을 발견했다고 한다.

여기서 작가가 비유한 것은 바로 손오공의 정력(定力)과 층차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통상 사람의 회음(會陰)혈 부위를 해저(海底)라고 하는데 손오공은 수렴동에서 직접 해저에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수련해서 깊이 입정에 든 것을 형상화한 표현이다. 다시 말해 정해신진철은 그 자체로는 우임금이 강과 바다의 깊고 얕은 곳을 다지던 것이지만 무기로 사용하면 또 여의금고봉이 된다.

한편 손오공이 필마온(弼馬溫)에 봉해진 것에도 의미가 담겨 있다. 책에서는 손오공을 마음원숭이(心猿)로 비유하고 백룡마를 의마(意馬)로 비유한다.

도가에는 “말과 원숭이가 합해 마음과 생각을 만드니 꽁꽁 묶어 우리에 가두고 밖으로 찾지 말라(馬猿合作心和意 緊縛拴牢莫外尋)”는 시가 있다. 서유기 30회의 제목 중 ‘의마억심원(意馬憶心猿 생각이란 말이 마음이란 원숭이를 그리워한다)’가 말하는 것 역시 이런 의미다. 손오공이 하늘나라에서 천마(天馬)를 관리한 것도 한 사람의 마음(心猿)은 반드시 자신의 생각(意馬)을 관리해야 하며 멋대로 어지럽게 생각하게 해선 안 된다는 것을 말한다.

손오공이 제천대성(齊天大聖 하늘과 나란히 하는 위대한 성인)에 봉해진 후 제천대성부에 안정사(安靜司)와 영신사(寧神司)란 관부가 설치된다. 여기서 안정(安靜)과 영신(寧神)이란 바로 심신을 안정시키라는 뜻이다.

다른 각도에서 말하자면 손오공이 자신을 ‘제천대성’에 봉한 것 역시 이치가 있다. 도가수련에서는 사람의 인체를 하나의 소우주(小宇宙)로 보는데 사람이 수련해서 도를 얻으면, 그 자신에 대해 말하자면 그 역시 수명이 하늘과 나란하고 하늘과 합일한 것이니 제천대성이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뜻이다.

다만 《서유기》는 한편의 문학작품이라 문예의 형식으로 도(道)를 전해야 하기 때문에 표면상으로 다채롭고 화려하게 묘사한 것이다. 실질적인 표현에는 오히려 다른 의미가 담겨 있다. 다시 말해 손오공이 스스로 만든 별명을 빌려 그의 오만한 본성을 표현해낸 것이다.

손오공이 천병에게 체포되어 팔괘로에 던져진 후 불에 달궈진 것 역시 수련의 다른 한 가지 표현형식이다. 화안금정(火眼金睛 불처럼 빨간 눈에 금빛 눈동자) 동두철비(銅頭鐵臂 구리같은 머리에 쇠 같은 팔) 역시 이를 통해 단련해낸 것이다.

《서유기》 앞부분 7회는 손오공의 출신과 수련과정을 적고 있다. 그가 천궁에서 큰 소란을 피울 때는 용맹하고 위풍당당하게 보이지만 사실 수련에서는 한 가지 표현형식에 불과하다. 이 부분이 전체 책 중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인데 온 하늘의 신장(神將)들도 끝내 이 원숭이 한 마리를 어쩌지 못한다. 손오공이 선도(仙道)를 배우고 무기를 빌리며 반도(蟠桃)를 먹고 어주(御酒 옥황상제의 술)를 마시며 선단(仙丹 태상노군의 단)을 훔쳐 먹고 나타를 물리치고 이랑신과 싸우며 팔괘로에서 금정(金睛)을 단련하고 부처님 손에서 패악을 부린 이야기는 보는 사람들을 정말 통쾌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복잡한 표현 형식 안에는 바로 한 사람의 수련 내함이 담겨 있다.

도가수련에서는 인체를 하나의 소우주로 보는데 손오공의 수련은 그 자신의 몸에서 완성된다. 사실 그 어떤 사람의 수련이라도 모두 자신의 심신(心身)을 수련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손오공이 큰 소란을 피운 천궁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그것은 바로 그의 머리 부위다. 그는 팔괘로 중에서 뛰쳐나온 후 여래불에게 자신이 영소보전(靈霄寶殿)에 앉아 옥황상제를 대신하려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영소보전은 어디일까? 바로 사람의 니환궁(泥丸宮)으로 사람의 주원신(主元神)이 머무는 곳이다. 손오공이 옥황상제를 몰아내려고 생각하지만 그게 어디 가능하겠는가? 한 사람이 주원신이 없으면 다른 것은 아무것도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주원신이 사람 심신의 모든 것을 통제한다. 손오공의 광기는 이미 자신을 찾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그래서 오행산 아래에서 곤경에 처해야 했다.

(3) 손오공의 교오(驕傲)

손오공의 교오는 다시 언급해 볼 필요가 있다. 손오공은 원래 동승신주 오래국(傲來國) 출신인데 이는 그가 태어나면서부터 오만했음을 설명한다. 수렴동에 들어간 후 여러 원숭이들이 그를 왕으로 삼았다. 본래 한 마리 돌원숭이였지만 또 자칭 ‘미후왕(美猴王)’이라 했다. 천상에서 필마온이란 벼슬을 얻었지만 관직이 너무 작다고 천궁을 뛰쳐나왔고 자칭 제천대성이라 불렀다. 최후에는 옥황상제마저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려 했다. 그가 여래불의 손바닥에서 근두운을 타고는 하늘 끝까지 왔다고 생각한 후 ‘제천대성 이곳에 한번 놀다감(齊天大聖,到此一遊)’이라고 썼으니 그 오만한 마음을 표현한 말이 흘러넘친다.

사실 손오공의 오만함은 세인들에게 암암리에 경고하는 것이다. 사람이 세간에 있는 것은 종교에서 하는 설명에 따르면 모두 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간은 또 미혹의 공간이라 사람은 자신의 일체를 다 신불(神佛)이 돌봐주고 있음을 모르고 일단 능력이 생기기만 하면 유아독존(唯我獨尊)이 되고 만다. 특히 수련 중에서 이런 오만함을 실질적으로 신불에 대한 불경이다.

수련인의 일체는 모두 신불이 안배하고 연화하며 돌봐준 것이다. 다시 말해 당신은 신불이 육성한 생명이다. 한 사람이 교오한 마음을 지니게 되면 특정한 사람이나 일에 대해 교오할 분만 아니라 모든 행동 속에서 오만함이 체현되어 나오기 마련이다.

《서유기》에서 당승은 원래 석가모니의 두 번째 제자 금선자였으나 불법(佛法)을 소홀히 한 죄로 하계로 쫓겨 내려왔다. 그렇다면 금선자는 왜 불법을 소홀히 했을까? 그가 교오한 마음을 지녔기 때문에 소홀하게 대한 것이 아니겠는가? 최종적인 결과는 바로 하계로 쫓겨 내려가 다시 수행해야 했다. 손오공은 그 광오함으로 인해 결국에는 오행산 아래에 5백년간 눌려 지내게 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1281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