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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고영웅인물】 장개석(23): 공산재앙의 동점(東漸)

글/ 찬란한 5천년 신전문화의 천고영웅인물 연구팀

【정견망】

2. 공산재앙의 동점(東漸)

소련공산당의 본질

공산혁명 후 소련정부는 민국 9년(1920년) 중국에 대한 특권을 철폐한다고 선포했다. 하지만 이듬해 소련군은 외몽골을 침입해 동방 최초의 소련 괴뢰국인 ‘몽골인민공화국’을 설립했다.

“9.18 사변 이후 소련은 겉으로는 중국의 항일을 동정했지만 사실상 민국 24년(1935년) 중국과의 조약을 무시하고 중동(中東)철도를 ‘만주국(일본의 괴뢰국)’에 팔아넘겼다. 민국 30년(1941년)에는 또 일본과 중립협정을 체결해 일본의 남진을 격려했다.”

“민국 33년(1944년)에는 제멋대로 당노오량해(唐努烏梁海 역주: 외몽골의 서북부 지역으로 원래 청나라 영토였음)를 소련영토에 편입시켰다. 제2차 세계대전이 최후 승리단계에 이르자 소련제국은 뜻밖에도 대일참전을 조건으로 미국, 영국과 얄타 밀약을 맺었다.”(장개석 《반공항소 기본론(反共抗俄基本論)》)

“중공은 ‘항미원조(抗美援朝 역주: 미국에 대항해 조선 즉 북한을 지원한다는 의미)’를 주장하면서 한국전쟁에 참가해 일본과 베트남을 노리고 더 나아가 인도와 동남아의 혼란을 노렸다. 그 핵심은 모두 레닌과 스탈린의 ‘중국을 멸망시키고 더 나아가 아시아를 침략하며 더 나아가 전 세계를 통치’하려는 예정된 계획을 실천한 것이다. 우리가 만약 레닌과 스탈린의 이런 체계적이고 예정된 음모를 안다면 소련제국의 중국 침략이 단순히 중국 한 나라를 침략하는 결과에 그치지 않으며 확실히 믿을만한 후방을 획득해 ‘무궁무진한 예비역량’을 얻어 세계 각국을 통치하고 전 인류를 노예로 삼으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소련공산당의 전신은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이었다. 이 당은 1903년 볼셰비키와 멘셰비키 두 파로 분열되었다. 1917년 볼셰비키가 정식으로 독립적인 정당을 만들었고 1년 후 러시아 공산당(볼셰비키)으로 이름을 바꾼 후 간단히 소련공산당이라 했다.

장개석의 소련공산당에 대한 연구는 독보적이었다.

“오늘날 러시아 공산주의는 정확히 말해 바로 볼셰비즘이다. 1903년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이 런던에서 회의를 열었을 때 소수파인 멘셰비키와 다수파인 볼셰비키로 분열되었다. 멘셰비키는 당 조직이 마땅히 민주적이어야 하며 당의 혁명도 노동자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반면 볼셰비키는 러시아 나로드니키의 ‘토지와 자유파’의 테러리즘과 노동자농민 독재를 주장했다. 볼셰비키 지도자가 바로 레닌이다.”

“레닌은 한발 더 나아가 바쿠닌과 네차예프 및 도스토예프스키의 허무주의 및 테러리즘 사상을 받아들여 소위 혁명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수단도 꺼리지 않으며 인류의 절반을 죽여도 무방하다고 했다. 소위 노예에게 반드시 주인이 있듯이 우리가 바로 주인이라고 했다. 레닌의 이런 두 가지 사상은 마르크스의 계급투쟁과 결합되어 그의 ‘무산계급독재(無產階級獨裁 프롤레타리아 독재)’이론을 만들어냈다. 레닌과 스탈린의 손에서 동방정교의 참회・고백・최후심판과 파벨 1세(재위: 1796~1801년)의 철의 장막 제도, 차르 전제(專制) 및 범슬라브주의를 볼셰비즘에 주입해 그것의 중요한 부분으로 삼았다.”

레닌은 차르를 전복하려면 독일의 빌헬름 2세가 동부전선에서 승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위스에 망명 중이던 레닌은 독일의 빌헬름 2세의 금전적인 지원을 받아 러시아로 돌아올 수 있었다. 1917년 11월 7일 볼셰비키 당의 영수 레닌이 무장세력을 이끌고 러시아 임시정부에 반란을 일으켰다. 정권을 장악한 후 레닌은 곧장 자신이 권력을 잡도록 지지해준 멘셰비키 및 사회혁명당을 탄압해 소련공산당이 권력을 독차지하게 했다.

1918년 러시아는 내전에 돌입했다. 볼셰비키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만든 느슨한 연맹이 공개적으로 공산정부에 반대했다. 특히 유데니치 장군 및 해군의 알렉산드로 콜차크 중장과 안톤 데니킨 장군이 군대를 이끌었는데, 공산주의 지지자들이 만든 홍군(紅軍)에 대항해 백군(白軍)이라 불렸다.

내전에서 백군이 패배하면서 러시아 제국의 나머지 영토는 모두 소련공산당의 통제 하에 들어갔고 ‘러시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즉 소련(蘇聯)이 탄생했다.

중공—공산당의 중국정복 도구

“레닌이 임시정부를 타도하고 수립한 소비에트 조직은 이론적으로는 자칭 ‘자본가계급 민주혁명을 무산계급의 사회혁명으로 바꾸기 위한 것’이라 불렸으며, 또한 ‘무산계급의 해방 및 더 나아가 대다수 민중의 해방을 위한 것’이라고 선전했다. 볼셰비키는 마치 세상에서 가장 진보적이고 혁명적인 정당으로 보였고 공산주의 역시 세상에서 가장 숭고한 이상처럼 보였다. 하지만 사실 마르크스주의는 프랑스 혁명 중 반혁명운동의 일종이었고 다시 말해 구미(歐美) 민주혁명의 한 가닥 역류(逆流)에 불과했다. 그것이 기도한 것은 민주정치를 파괴하고 전제제도를 수립하려는 것이다. 레닌이 창안한 ‘무산계급독재’ 및 그 후계자들이 말하는 소위 ‘인민민주’의 극권주의(極權主義)는 마르크스를 배운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우리가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바로 러시아에서 마르크스주의에 범슬라브주의 및 차르전제주의의 특징이 침투했다는 점이다. 만약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오늘날 소련과 중공의 소위 소비에트제도의 잔혹한 행동을 목도한다면 분명 깜짝 놀랄 것이다.”(《중국 안의 소련》)

“스탈린이 독재자 자리를 차지한 후 레닌의 전쟁방식에 두 가지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첫째는 레닌의 대외정책은 소련의 힘으로 각국 공산당의 ‘혁명’을 지지한다는 것인데 반해 스탈린의 대외정책은 각국 공산당의 ‘혁명’으로 소련 정권을 지지하는 것이다. 소비에트 정권 및 자신의 개인권력을 위해 어느 특정 국가의 공산당을 희생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중국 공산당은 일찍이 여러 차례 소련과 스탈린 개인의 권력투쟁을 위한 희생양이 되었다. 둘째는 바로 스탈린이 레닌에 비해 동방을 더 중시한다는 것이다.”(《중국 안의 소련》)

장개석은 중국공산당의 본질에 대해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레닌의 볼셰비즘은 러시아의 산물이다. 조직계통상 중공 비적은 러시아 침략자들의 어용단체인 코민테른의 하위지부에 불과하며 성격상 러시아의 범슬라브주의가 중국을 정복하는 도구에 불과하다.”(《중국 안의 소련》)

“공산당은 마르크스 레닌 및 스탈린의 이론과 전략을 이용해 청년들을 마취시키고 군중들을 기만해왔다. 그들은 유물론을 본체로 하고 변증법을 수단으로 삼아 인류역사를 왜곡하고 현대문명을 경멸했다. 그들은 음모로 폭동을 일으키고 폭동으로 음모를 실현해 사회조직을 와해시키고 정치질서를 파괴했다. 그들은 특히나 잔인한 이념 및 냉혹한 투쟁을 이용해 윤리를 어지럽히고 도덕을 파괴했다. 그들은 인성(人性)에 반하는 하나의 운동을 만들어 전 세계에 널리 퍼뜨렸다.”(장개석,《우리 당의 현 단계 정치주장(本黨現階段政治主張)》 1950년)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1564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