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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고영웅인물】 장개석(41): 역사의 거울

글/ 찬란한 5천년 신전문화의 천고영웅인물 연구팀

【정견망】

역사의 거울

중국 민중들은 줄곧 국공(國共)의 싸움에서 반공(反共)은 국민당의 일이고 국민당이 자신의 통치를 보호하기 위해 공산당을 토벌했다는 착오적인 관념을 지녀왔다. 장개석은 일찍이 1927년에 이런 잘못된 관념을 지적하면서 중국인들의 마비와 국민들의 수수방관이 조성할 결말에 대해 예견한 바 있다.

“모두들 국민당과 공산당의 분열은 국민당 내부의 문제라 여기며 국민당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 최근 여러 사건에 가슴 아파하던 한 친구가 ‘우리는 공산당의 공포정책 행동을 반대하지만 그전부터 싫어했다. 공산당의 죄악이 폭로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신경이 마비된 중국 민중들이 18층 지옥에 떨어지는 고통을 받지 않고서는 각성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는데 과연 그의 말대로 되었다. 그렇다면 중국은 오직 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고 중국 민족 역시 구도 받을 가치가 없게 될 것이다.… 남은 중국 전체 인민의 생명과 행복을 조금도 돌보지 않고 판돈으로 걸고 도박하는데 설마 중국 인민들이 진실로 이렇게 자신의 생명과 행복조차 돌보지 않는단 말인가? 친애하는 전국 민중들이여 여러분은 각성할 수 있다.”

“만약 중정(中正 장개석)이 여러분들이 늘 군벌의 압박과 제국주의자들의 모욕을 받게 한다거나 또는 국민혁명 때문에 장차 중국을 공산당의 공포정치로 암암리에 보내 처분케 한다면 이는 중정이 혁명 군인의 천직(天職)을 저버린 것이 되어 천추만세(千秋萬歲)에 죄인이 될 것이다. 만약 우리 국민당원과 국민혁명 군인들이 전국 민중을 위해 희생하고 분투한다면 여러분은 여전히 수수방관하면서 대국(大局)이 망가지기만을 기다리며 또 일을 할 수 없다고 외칠 것이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단지 중화민족의 천추만세 죄인이 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면목이 없게 될 것이다. 현재 인민의 자유로운 일을 옹호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우리 국민혁명군의 책임이며, 여러분을 이끌어 조직하고 각자의 생존조건을 만족시키는 것은 우리 진정한 삼민주의 국민당이 있다. 철저한 각성과 노력에 이르는 것은 여전히 여러분 자신의 마음에 달려 있다.”(장개석 《남경에 도읍을 정하며 전국 동포들에게 알리는 편지(建都南京告全國同胞書)》)

중국대륙이 함락되고 공산당이 국민들에게 주입한 소위 결론에서는 학술계와 국민들 사이의 보편적인 인식 중에 “민심을 얻은 공산당이 천하를 얻었다”거나 “역사의 선택이자 인민의 선택”이라거나 “국민당 반동정치”와 “국민당 부패가 인심을 잃었다”는 등의 주장이 큰 시장을 차지했다. 반면 공산당을 분칠하는 이런 것들을 제외하면 문제의 실질에 접근한 것은 전혀 없다. 장공(蔣公)은 이에 대해 문제의 근본은 중국인들이 공산당을 똑똑히 보지 못했고 시비와 선악을 구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나는 최근 2년의 실패 이후 얻은 결과들을 검토하면서 우리의 가장 큰 실패는 바로 교육과 문화에 있다고 본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정치・군사・경제 각 방면의 실패는 모두 아주 분명히 발견할 수 있고 또 아주 예민하게 느낄 수 있다. 이렇게 분명하고 유형적인 실패는 또 보완할 방법이 있고 아울러 비교적 쉽게 보완하고 만회할 수 있다. 그러나 오직 교육의 실패만은 사람들이 쉽게 발견할 수 없다.”

“교육의 실패는 그 영향이 민족 전체에 미치고 결코 짧은 기간 안에 보완할 수 없는 것이다. 최근 40년간 중화민국이 성립된 이래 만약 우리가 국민 도덕교육의 배양에 충분한 성취가 있었더라면 오늘날 일반 국민의 민족정신과 국가 관념이 이렇게까지 상실될 수 있겠는가?”

“가장 뼈아픈 것은 바로 20년간의 학교 교육이다. 만약 일반 교장과 교직원들이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과 직분을 다해 제대로 가르치고 교육을 관리했다면 그럼 대륙의 청년들이 결코 오늘처럼 그렇게 공비들에게 마취되거나 이용당해 자기 조국을 반대하고 자기 가정을 파괴하진 않았을 것이다. 여러분이 오늘 보았다시피 대륙 청소년들의 이런 맹종과 어리석은 행동은 얼마나 하늘의 이치를 거스르고 있는가? 민족 스스로를 해치는 이런 비극이 만약 우리의 당시 교육에 방침이 있었더라면, 그럼 오늘날 이런 비극이 설령 공비들의 박해와 공포수단이 동원되었다 해도 불과 2~3년 만에 이렇게 빨리 이뤄질 순 없었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교육은 백년대계이기 때문에 교육의 성패와 득실은 국가 존망과 민족의 영욕(榮辱)이 달린 근본적인 곳이다. 오직 우리가 다년간 교육에 실패했기 때문에 이번과 같은 전면실패의 주요원인이 된 것이다. 이 실패의 책임은 결국 누가 감당해야 하는가? 이는 물론 마땅히 우리 당이 짊어져야 한다. 나 개인은 지도자의 지위에서 있었으니 마땅히 이 중대한 실패의 책임을 더 짊어져야 한다.” (蔣介石,《教育與革命建國的關系》)

장공(蔣公)은 당시의 교육이 전통과 괴리되었음을 지적했다.

“팔덕(八德)은 봉건유물이라 반대하고 사유(四維)는 완고한 반동교육으로 보는 것을 시대흐름을 잘 아는 것이라고 자랑했다. 또 초연하게 중립을 지키는 것을 고상하다 여기고 기회주의적으로 관망하는 것을 자유로 여겼다. 그는 공비가 이런 약점을 타고 들어와 중상모략하고 이간하는 수법으로 무형 중에 이미 그것의 도구가 되었고 이용을 당하면서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게 만들 줄 생각조차 못했다. 이렇게 되자 가르침이 교사는 교사답지 않고 제자는 제자답지 않게 되었다. 소위 학풍(學風)과 교칙을 전부 없애버리자 스승의 도(師道)와 인격은 완전히 사려져버렸고, 결국에는 오늘날 나라가 망하고 집안이 망하며 청산투쟁하는 가운데 스스로 헤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천하에 이렇게 비참한 일이 이것보다 더 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중공은 정권을 잡은 후 교육계통을 통해 그것의 가치관을 보급했다.

“현재 공비 통치하의 대륙에서 대학 중고등학교 초등학교는 물론이고 심지어 유치원생들까지 모두 공비들의 수성(獸性 역주: 정상적인 인성을 상실한 짐승 같은)교육을 받고 있다. 이런 교육은 그들에게 야만과 멋대로 하는 행동을 부추겨 아들이 아비를 죽이고 동생이 형을 죽이며, 딸이 엄마를 소송하고 부부가 서로 감시하게 하며 가족을 원수처럼 여기는 등 짐승만도 못한 비극을 만들어냈다. 공비는 왜 기어코 가족과 혈육의 정을 손아귀에 넣고 천리(天理)를 위배하고 역행하게 만들어 거리낌 없이 난폭하게 그것의 교육에 따르게 하는가?”

“이는 진실로 공비들이 공포와 잔인한 수단으로 학동(學童)들을 압박하고 청년들을 마취시켜 그들이 두려워하지 않고 규범에 따르지 않도록 통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종전의 교육이 만약 국가관・민족사상・ 전통정신에 대해 총리께서 훈시하신 충효(忠孝)인애(仁愛)신의(信義)화평(化平)의 팔덕(八德)과 신생활(新生活)운동에서 제창한 예의염치(禮義廉恥) 사유(四維)에 대해 교육에서 중시하고 어느 정도 성취가 있었더라면 공비들이 결코 지금처럼 일이년 또는 한두 달 사이에 아주 빨리 완전히 우리 고유의 민족윤리 전통을 인멸하고 오늘날 대륙처럼 금수만도 못하고 잔인무도한 요괴의 세상이 되게 하진 못했을 것이다. 만약 대륙 인민들이 예의를 분명히 알고 염치를 제대로 아는 교육의 기초 위에서 또 민족대의와 국가의 책임 및 부모・자녀・형제・부부 사이의 효제충신(孝弟忠信)이란 천성의 지극한 사랑을 안다면 그럼 결코 이렇게 쉽사리 공비들의 선동과 유혹에 넘어가서 맹종하진 않았을 것이다. 또 공비들에게 이끌려 인륜을 말살하는 비극을 연출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는 진실로 국가와 민족에 대해 하늘에 사무치는 공비들의 죄악이다! 그러나 우리는 20여 년 간 일반적으로 교육에 책임이 있는 동지들이 교육 방면에서 우리 총리의 팔덕이란 훈시와 신생활운동의 사유 신조에 따라서 하지 못했고 우리 당의 역대 교육방침 결의안을 실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처럼 인륜이 크게 변이되는 민족의 대(大)겁난이 발생한 것이다! 이는 우리 혁명의 실패 중에서 뼈아프게 반성해야 할 것으로 참회하지 않을 수 없다.”(장개석 《교육과 혁명건국의 관계》)

장공은 교육의 비극으로부터 민족을 부흥하자면 가장 먼저 도덕을 부흥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지혜의 눈으로 중공의 목적은 중국 5천년 문화와 도덕윤리를 훼멸하려는 것임을 보았다. 그것의 수단은 문비(文痞 곡학아세하는 저질 문인, 깡패문인)들의 유물사관(唯物史觀) 선전을 이용해 역사를 날조하고 사람들이 서로 투쟁하게 함으로써 민족정신을 훼손하고 최후에 중국이란 나라가 망하게 하고 인종이 멸망하게 하려는 것이다.

“소련 제국주의자들이 우리 중국을 멸망시키려 하자 중공 공비들은 끊임없이 우리 중국을 자신의 주인인 소련에 갖다 바치기 위해, 가장 먼저 우리 중국의 역사문화・사회윤리와 국민도덕을 훼멸시켰다. 윤리와 도덕은 진실로 시대성이 있지만 우리 중화민족은 아시아에서 나라가 선지 오천년이나 되었고 숱한 내우외환 속에서도 위기마다 다시 편안해졌고 망했다가도 다시 살아나곤 했다. 아울러 단순히 무력(武力)에 의지한게 아니라 주로 우리 고유의 윤리와 도덕이란 우수한 전통과 역사문화의 심후한 기초에 의지해 광대한 인구를 묶는 민족사상과 감정에 의지했던 것이다.”

“가족의 화목, 이웃간의 상호부조, 조상의 분묘에 대한 숭배와 존경, 고향 풍토에 대한 사랑은 모두 중화민족이 외래의 침략에 저항하는 힘이 발생한 원천이 되었다. 때문에 역대로 중국을 정복한 폭군이거나 중국을 팔아먹은 매국노거나 이 문화의 힘에 대해 지극히 미워하고 또 훼손하려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중공 비적들은 더욱이 이 한 점에 주의해, 한 무리 후안무치한 문화 쓰레기들을 몰아와 유물사관을 선전하고 계급투쟁의 역사를 날조하여 청년들을 기만하고 민족문화를 혐오하고 애국정신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민중 사이에 잔인한 투쟁을 발동시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했고 부부와 부부를 분화시켜 인류의 이성을 타파하고 민족정신의 최후 의지처를 상실하게 했다. 우리가 동포들을 재난에서 구하고 민족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반드시 민족의 역사문화를 수호하고 인애(仁愛)를 중심으로 하는 윤리와 국민도덕을 발양(發揚)해야 한다. 우리는 인류이성과 민족정신이 보편적으로 각성할 때가 바로 공산당 비적들이 최후로 실패할 때임을 확신한다.”(장개석 《우리 당이 앞으로 노력할 방침(本黨今後努力的方針)》)

장공은 평생 민족문화를 수호했으며 또 세인들에게 반공(反共)전쟁은 바로 문화전쟁이라고 알려주었다.

“반공전쟁은 바로 매 하나의 국민과 매 가정의 자유로운 생활방식을 위한 사회전쟁이다. 동시에 우리의 유구한 역사와 숭고한 윤리 및 인애를 중심으로 하는 도덕을 지키기 위한 문화전쟁이다.”

저명한 국학자(國學者 역주: 여기서 국학이란 중국전통의 고유학문을 말함) 전목(錢穆)은 장공을 존경하면서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역사서적을 고대까지 살펴보면 한 나라의 원수로서 진한(秦漢)이래 역대 제왕들 중에서 총통과 같이 하사(下士)에게도 부지런히 배우면서 평소 꾸준히 실행한 사람이 또 몇이 있지만 바른 덕(貞德)을 두루 갖춘 한사람이다.” “총통의 생애를 살펴보면 유년의 가정 및 학교 교육에 이르기까지 중국문화의 전통 속에서 훈도된 것이 이미 아주 깊고 두터웠다. 중산(中山)선생을 따른 후 무거운 책임을 맡아서도 지키는 바가 더 굳세졌고 지향하는 바도 더 확고해졌다. 특히 문화사상방면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장 총통은 시종일관 평화롭고 온건한 노선의 중심에 서 있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156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