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필경(筆耕)
【정견망】
남송 소흥(紹興) 7년 악비가 고종(高宗)을 알현했을 때 고종이 악비에게 좋은 말을 갖고 있는지 묻자 그에 대해 악비는 이렇게 대답했다.
“기(驥)라고 불리는 준마는 그 힘을 일컬음이 아니라 그 덕(德)을 일컬은 것이라 했습니다. 신에게 일찍이 4마리 말이 있었는데 그것들의 행동이 늘 이상하게 여겨졌습니다. 매일 콩을 몇 말이나 먹고 물도 10말을 마셨는데 정결한 음식이나 물이 아니면 차라리 죽을지언정 먹거나 마시려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무장을 하고 달릴 때면 처음에는 속도가 그다지 빠르지 않지만 백여 리 정도 달렸을 때 비로소 말갈기를 세우고 긴 울음을 울고는 달리는 속도가 빨라지며 준마의 장점을 잘 보여줍니다. 낮부터 저녁까지 2백리를 달릴 수 있습니다. 안장과 보호대를 벗겨도 땀이 흐르거나 숨이 차지도 않아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과 같습니다. 이런 말은 음식을 많이 먹고 또 마음대로 부릴 순 없지만 힘이 넘쳐흘러도 뽐내지 않으니 멀리까지 도달할 수 있는 재목(致遠之才)입니다. 신이 양양(襄陽)을 수복하고 양요(楊么)의 난을 평정할 때 이런 양마(良馬) 두 마리가 있었지만 불행히도 잇따라 죽었습니다. 지금 신이 타는 말은 이와는 달라서 매일 먹는 음식도 몇 되에 불과하고 가리는 것도 없습니다. 말에 오르면 신이 제대로 앉지도 않았는데 곧 도약해서는 신속하게 앞으로 달려 나가지만 백리를 달리고 나면 기력이 다해서 온몸이 땀투성이가 되고 숨까지 차서 마치 곧 죽을 것 같습니다. 이런 말은 요구하는 게 많지 않고 만족시키기도 쉽지만 뽐내기를 좋아하고 쉽사리 자신을 소모시키니 노둔(駑鈍)한 재목입니다.”
그러자 고종은 악비의 말이 옳다고 여겼다.
사실 악비는 공자가 《논어(論語)》〈헌문(憲問)〉에서 “기(驥)란 말은 그 힘을 일컬음이 아니라 그 덕을 일컬음이니라.”라고 한 말을 인용해서 고종에게 양마(良馬)가 양마가 되는 이유는 주로 그 덕행에 있음을 말한 것이다. 즉 양마라는 비유를 통해 뜻이 원대하고 품행이 고결해서 차라리 죽을지언정 굽히지 않는 사람만이 양장(良將)양신(良臣)이 될 수 있고 반대로 성정이 조급하고 경거망동하면서 작은 전공(戰功)에 만족하는 사람은 단지 우둔한 재목에 불과해 중임(重任)을 감당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주전파(主戰派) 악비는 줄곧 현실에 안주한 투항파(投降派)들의 질시와 모함을 받았고 결국 간신 진회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그렇다면 위 글에서 악비가 가리킨 노둔한 재목이란 바로 진회와 같은 부류를 가리킨 것이 아니겠는가? 다만 이 시기에 완악하고 어리석은 무리들이 많았기 때문에 심지어 고종조차도 진정으로 악비의 뜻을 간파하지 못했던 것이다.
진실로 “옥으로 만든 거문고로 속마음을 연주하고 싶어도 지음(知音)이 드무니 줄이 끊어져도 누가 듣고 알랴?”와 같다.
자료출처: 《금타졸편(金佗稡編)》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node/266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