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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병으로 죽었다 다시 살아난 사람이 전해준 소식

글/ 유효(劉曉)

【정견망】

중공 바이러스(무한폐렴)가 전 세계에 만연하는 상황에서 중국 이외의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계속 증가하고 있따. 중국 내에서도 실제 확진자와 사망자 숫자는 중공이 발표한 수치보다 훨씬 더 많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어떤 사람은 감염되고 어떤 이는 사망하지만 다른 일부 사람들은 조금도 이상이 없는가? 중국 고대 역사서에는 역병에 걸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 이야기가 아마 한 가지 실마리를 제공해줄 것이다.

1. 저승 질역사(疾疫司)에서 처벌을 결정

명나라 때 오중(吳中 지금의 절강 소주)에 유영청(劉永清)이란 수재(秀才)가 있었는데 예순이 되던 해에 역병에 걸려 죽었다가 9일 후 되살아났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죽었을 때 두 명의 저승사자가 장부를 들고 와서 그를 잡아갔다. 어느 관아에 데려간 후 계단 아래 무릎을 꿇게 했다. 그가 몰래 살펴보니 당상에는 면류관을 쓰고 매우 기세가 높은 관원이 앉아 있었는데 아마 사람들이 말한 염왕(閻王)처럼 보였다. 그 좌우에 시종들이 많이 시립해 있었는데 엄숙하기가 현묘관(玄妙觀)이나 동악묘(東嶽廟) 같았다.

잠시 후 저승 관리가 명부에 나오는 순서대로 이름을 불렀는데 유영청을 점호할 때 말했다. 이 사람은 그리 큰 죄를 짓지 않았으니 질역사로 보내 처리하라고 했다. 그 후 저승 사자가 그를 잡아 또 다른 관아로 데려갔는데 당상에 두 명의 저승 관원이 앉아 있었다. 그들이 명부를 본 후 왼쪽 관리가 말했다.

“너는 비록 큰 죄를 짓진 않았지만 늘 작은 구얼(口孽 말로 죄를 짓는 설화)을 지었군. 그러니 독창(毒瘡 심한 피부질환) 3년에 처한다.”

오른쪽 관리가 말했다.

“처벌이 너무 가볍습니다.”

그러자 왼쪽 관리가 설명했다.

“조상이 음덕을 쌓은 것을 감안해 이번에는 그를 용서해줍시다.”

판결 후 유영청은 두 저승사자에 의해 아문에서 풀려나왔고 인간 세상에서 깨어났다. 마치 한바탕 꿈을 꾼 것 같았다. 그 후 그는 실제로 독창을 3년간 앓았다.

2. 최근의 선행으로 인해 풀려나다

명나라 때 오현(吳縣 지금은 소주에 속함)에 황가옥(黃嘉玉)이라는 서생이 역병에 걸려 다 죽어가고 있었다. 얼마 후 그는 죽다 살아났는데 깨어난 후 자신이 겪은 사후 경험을 이야기했다.

황가옥이 죽은 후 어느 성시(城市)에 도착했는데 그 번화함은 인간세상과 다름이 없었다. 유일한 차이라면 어둡고 빛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가 의아해하고 있을 때 갑자기 어떤 관원이 다가왔는데 수행하는 의장대의 기세가 대단했다. 황가옥이 자세히 보니 원래 이미 고인이 된 고문강(顧文康)이었다. 고문강은 본명이 고정신(顧鼎臣)으로 홍치(弘治) 18년에 장원급제했고 문강은 그의 시호다. 그는 부친과 친구라서 황가옥이 소년시절 본 적이 있어 알아보았던 것이다.

아는 사람을 본 황가옥이 소리쳐 불렀다. 고문강이 이에 그더러 자신의 수레를 따라 걷도록 했다. 잠시 후 그들은 어느 관아에 도착했는데 궁전처럼 웅장했다. 도달한 후 고정신이 어느 저승 관리와 함께 당상에 앉았다. 황가옥은 당 아래의 적지 않은 사람이 울면서 용서를 구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저승 관리는 당 아래 사람들이 평생 동안 한 일을 심사하고 일일이 판결했다. 그가 어느 사람에게 소나 개 등 축생으로 되어야 한다고 말하자 하급 관리가 소나 개의 가죽을 가져와 이 사람 몸에 씌웠다. 그러자 그들은 즉시 그것들과 같은 종류의 축생으로 변했다. 황가옥이 하급 관리에게 그들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묻자 관리는 그들이 생전에 나쁜 짓을 한 보응으로 지금 축생도에 떨어진 거라고 했다.

이때 저승 관리가 문득 물었다.

“당 아래에 어째서 산사람의 기운이 있느냐?”

즉시 하급 관리에게 황가옥을 데리고 나오라고 말했다.

고정신이 황가옥에게 말했다.

“내가 자네의 생사부를 조사해보니 자네의 수명은 비록 다 되었지만 그래도 근래 착한 일을 했으니 너를 풀어주고 이승으로 돌려보낼 수 있겠다.”

이와 동시에 인간세상의 황가옥이 식은땀을 비 오듯 흘리며 깨어났다.

3. 이재민에게 죽을 베풀어 신의 도움을 받다

명나라 때 곤산(昆山 지금이 강소성 곤산시)에 겹정(郟鼎)이란 선비가 있었다. 곤산에서 기근이 들었을 때 죽을 만들어 이재민들에게 베풀어 많은 사람을 살렸다.

어느 해 여름 곤산에서 심한 역병이 발생했다. 겹정 역시 불행히 전염되었다. 증세는 극히 악화되어 그는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사후에 검정의 혼백(魂魄)은 마치 큰 파도에 놓인 것처럼 끊임없이 아래로 떨어져 매우 몹시 두려웠다. 갑자기 그는 우레가 울리는 소리를 들었고 만 명도 넘는 천병천장(天兵天將)이 어느 한 신인(神人)을 둘러싸고 나타났다. 이 신은 사람 머리에 용의 형상이었다.

두려움 속에서 겹정은 애절하게 자신을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신인이 말했다.

“너는 평생 무슨 큰 죄를 지은 일이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신인이 비늘을 움직이자 물의 기세가 즉시 약해졌고 겹정도 천천히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으며 이전에 죽을 베풀어 사람을 살린 일을 말했다.

신인이 그에게 알려주었다.

“이 일은 마땅히 장부에 기록되어 있다. 지금은 이미 천제(天帝)께서 계신 곳으로 송달했노라.”

잠시 후 신인은 어느 수종에게 장부를 열어 펴보라고 했다.

“자네 이름이 여기에 있군.”

이것은 겹정이 이미 천제로부터 사면을 받았다는 뜻이었다. 겹정은 신에 의해 신대석교(新大石橋)라는 곳으로 보내졌고 아울러 그는 여기서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겹정이 이승으로 돌아오니 가족들이 마침 슬프게 곡하는 소리를 들었다. 알고 보니 그는 세상에서 이미 하루 밤낮을 죽은 것이었다. 한참 후 겹정의 역병이 다 나았고 그와 같이 감염되어 생명 위험에 처해 있던 아내와 아들도 완전히 나았다.

4. 선을 행하고 덕을 쌓아 신선의 도움을 받다

명나라 초기 안휘 휴녕(休寧 황산에 딸린 현)에 한 부유한 상인이 있었는데 이름이 조조봉(趙朝奉)이었다. 어느 해 그가 바다에서 돌아오는 도중에 갑자기 전염병에 걸려 혼미해 쓰러졌다. 동료들이 멋대로 그를 해변에 버려두고 혼자 고향으로 돌아왔다. 한 동안의 시간이 지나 조조봉은 해풍에 밀려 기적적으로 깨어났다. 그는 호탕한 바다에 사람 그림자 하나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풀을 뜯어먹으며 우여곡절 끝에 산을 기어올라 보니 산꼭대기에 매우 큰 절이 하나 있었다.

조조봉은 마침내 절간으로 들어가 스님에게 그를 좀 남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스님들은 그렇게 하라고 했다. 이같이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조조봉이 스님들에게 물었다.

“이상하네요. 여러 스님들이 아침을 드시는 것을 보았는데 정오가 될 때까지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으니 어찌된 일입니까?”

어떤 스님이 대답했다.

“모두 시주의 재를 지내러 간 것입니다.”

호기심 많은 조조봉이 스님더러 함께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스님은 신통을 움직여 그를 자기 소매 속에 넣고 즉시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잠시 후 조조봉은 닭, 개, 사람들의 시끌벅적한 소리를 들었다.

조봉은 소식을 식구들에게 전해야겠다는 한 가지 생각이 났다. 그들에게 자기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알리려는 그의 일념이 나오자 스님이 곧 알고는 그에게 말했다.

“우리는 모두 나한입니다. 당신이 평소 선행을 하고 복을 쌓았기 때문에 당신을 데리고 온 것입니다.” 하고는 조조봉을 소매에서 꺼내 집 옥상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스님은 즉시 보이지 않았다.

조조봉의 식구들은 지붕에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보니 바로 조봉이었다. 가족들이 모두 뜻밖의 일에 매우 놀라고 기뻐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일일이 다 말했다. 나중에 조조봉은 자기가 본 사원의 규모에 근거하여 휴녕에 큰 절을 지었고 이름을 “건초사(建初寺)”라고 불렀다.

현대의 무신론자들이 보면 전염병에 걸려 죽은 후 살아난 것은 황당무계할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이야기는 허구가 아니다. 하나는 그들이 겪은 일은 세인들에게 알리고 신불(神佛), 저승, 윤회 인과응보 모두 진실임을 알리려는 것이고 다른 한편 사람이 무슨 일을 했든 천지는 다 알고 있으며 덕을 쌓고 선행을 한 사람은 하늘의 돌봄을 받고 악행을 저지른 자는 죄업의 크기에 따라 상응하는 징벌을 받는다는 소식을 알려주려는 것이다.

결론

위에서 말한 전염병에 걸린 자가 자기의 선념으로 기사회생 했다면 아래의 전염자의 죄업은 용서받을 수 없다.

명나라 때 항주 봉선교(鳳仙橋) 부근에서 한 사람이 자라를 팔며 생활하고 있었다. 그가 자라를 사온 후 산채로 뜨거운 물에 던져 넣어 비참하게 죽이는 참상은 그야말로 목불인견이었다. 끓어서 익은 후 창자와 뼈를 발라내고 양념을 더하여 팔아서 돈을 벌었다. 이같이 몇 년을 지내자 돈이 꽤 모였다. 어느 날 그는 갑자기 역병에 걸려 신체가 자라모양으로 천천히 변했다. 처음에 실내에서 기어 다녔는데 나중에 밖을 나가려고 했다.

식구들이 금지하자 그는 이빨로 물었다. 어쩔 수 없어 원하는 대로 맡겨 두었다. 그는 거리로 나간 후 뱅뱅 맴돌았는데 움직임이 자라와 꼭 같았다. 왕래하는 사람들이 그가 자라를 볶아 죽여 얻은 보응임을 알았다. 그는 7일을 기어 다니다가 냄새를 풍기며 죽었다.

또 명나라 때 임천(臨川)에 한 사람이 있었는데 산에서 한 마리 원숭이 새끼를 잡았다. 그러자 어미 원숭이가 집안으로 따라 들어와서 아이 새끼를 놔달라고 애걸했다. 이 사람은 그것을 거들떠보지 않고 반대로 새끼 원숭이를 나무에 묶어놓고 때려죽였다. 어미는 매우 슬퍼하더니 나중에 나무에 부딪혀 죽었다. 이 사람이 어미의 배를 갈라보니 간과 장이 마디마디 끊어져 있었다. 그러나 반년이 안 되어 이 집 식구가 전부 다 역병에 걸렸고 차례로 죽어 온가족이 멸문했다.

이것으로 보건대 천지의 저울은 가장 공평한 것이다. 역병으로 도태된 사람의 배후에는 모두 원인이 있다. 그렇다면 지금 무한 폐렴으로 죽은 사람들 역시 반드시 원인이 있을 것이다. 어느 나라, 조직, 개인이든 그 누구라도 중공에 다가가면 중공 바이러스에 전염될 것이고 이것이 바로 천지 가늠하는 표준이다.

참고자료: 청나라 때 유규(劉奎)의 《송봉설역(松峰說疫)》

역주: 《송봉설역(松峰說疫)》은 청대의 의사 유규가 건륭(乾隆) 47년(1782년) 《온역론(瘟疫論)》 이후 온역을 온역, 한역, 잡역 3가지로 분류하고 역병을 치료할 때는 통변이 중요함을 강조한 역병전문서적이다. 유규는 역병의 치료에는 기성 처방에 구애받지 말고 8가지 통치법을 제시했다. 처방이 실용적이고 기존 본초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 역병 치료에 있어 독보적으로 일가를 이뤘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65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