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덕혜(德惠)
【정견망】
중국 도교(道敎)와 민간 신앙에서 태산부군(太山府君)은 지부(地府)를 주관해 귀혼(鬼魂) 등 저층의 혼령을 다스리는데, 일반적으로 하늘이 바르고 곧은 사람을 골라 맡기고 일정 기한이 차면 교체하곤 했다. 고대는 물론이고 근대에 이르기까지 어떤 사람이 태산부군이 되었다는 역사 기록이 존재한다. 다음은 필자가 지니고 있는 자료에 근거해 태산부군에 관한 일부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1. 동진 손치(孫稚)의 외조부
《태평광기 320권》에 동진(東晉) 시기 손치(孫稚)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자는 법휘(法暉)이며 산동 반양(般陽)현 사람이다. ‘반양’은 고대 현의 지명으로 오늘날 치박(淄博 쯔보)시 치천(淄川 쯔촨)구에 해당한다.
손치의 부친은 손조(孫祚)로 태중대부(太中大夫)를 지냈다. 손치는 어려서부터 불법(佛法)을 믿었으며 동진 성제(成帝) 함강(咸康) 원년 (서기 335년) 8월 불과 18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부친은 나중에 온가족을 이끌고 무창(武昌)으로 이사했다.
함강 3년 음력 사월 초파일 승려들이 당시 풍습대로 사찰의 신상(神像)을 가지고 나와서 들고 다녔는데 손조의 집을 지나갈 때 그의 온가족 남녀노소가 모두 나와 공경하게 쳐다보았다. 그들은 갑자기 이미 죽은 손치가 군중 속에서 불상 주변을 따라다니는 것을 보았다.
손치는 부모를 발견하고는 무릎을 꿇고 문안 인사를 올렸으며 아울러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이때 손조는 병을 앓고 있었는데 손치가 말했다.
“아버님의 병은 귀수(鬼祟 귀신이나 요괴)가 만든 것이 아니라 몸을 제대로 보양하지 않아 생긴 것이니 5월이 되면 좋아지실 겁니다.” 하고는 떠나갔다.
그해 7월 15일 손치가 또 모습을 드러내 집에 돌아왔는데 문안을 올리고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말했다.
“외조부님께서 저승의 태산부군이신데 저를 불러 모친의 이름을 말씀하시며 ‘너는 내 딸 누구의 아들이 아니냐? 너는 이승에서 수명이 다 차지 않아 부르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곳에 왔느냐?’ 그래서 저는 ‘백부가 곧 저승에 오실 텐데 제가 백부를 대신해서 업을 분담하러 왔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잠시 후 백부께서 저승사자에게 붙잡혀 왔는데 채찍을 맞을 것 같아 제가 구원하려고 노력해 죄를 용서받을 수 있게 했습니다.”
손치의 형 손용(孫容)은 자가 ‘사연(思淵)’인데 당시 집에 있었다. 손치가 형에게 말했다.
“제가 비록 인간 세상을 떠났지만 몸은 오히려 즐겁습니다. 매일 독서를 하고 있으니 형님은 걱정 마시기 바랍니다. 정진하여 부처님을 믿고 선을 닦고 덕을 쌓으면 복이 저절로 따라올 것입니다. 저는 2년을 더 공부하면 성공할 것이며 장래 인간세상에서 왕실에 태어날 것입니다. 제가 있는 그곳에 함께 공부하는 사람이 500명이 있는데 모두 복당(福堂)에서 독서를 하고 있으며 공부를 성취한 후 6층 천상(天上)으로 승급되어 올라갈 것입니다. 저는 본래 제6층 하늘에서 왔습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의 선조를 구하려는 연고로 인연에 얽매여 단독으로 인간세상 왕실 가문의 태에 들었습니다.”
함강 5년(서기 339년) 7월 7일 손치가 또 돌아와서 “주성(邾城)에 도적 떼의 난아 발생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주성은 지금의 호북성 황강(黃岡)에 있는 우왕성(禹王城)을 말한다. 이 외에도 적지 않은 예언을 했는데 나중에 모두 영험했다.
다만 그의 집에서 손치가 사후 원신이 돌아와 말한 것을 비밀로 지켰기 때문에 외부인들은 몰랐다.
손치는 또 말했다.
“집안의 어른들, 조상들이 각자 다양한 죄가 있으니 여러분이 선한 일을 많이 해서 조상의 죄를 속죄해야 합니다. 저는 이미 거의 세상에 전생할 때가 되었으니 저를 위해 법사(法事)로 저를 제사지낼 필요는 없습니다. 법사를 하더라도 선조를 구하기 위해서 할 것이며 부친과 형제들은 선한 일을 많이 하여 덕을 쌓아야 합니다. 평등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세요. ‘마음에 나와 남이 없으면 복이 많아질 겁니다.’”
이상의 기록은 동진 사람 손치의 외조부는 비록 태산부군이지만 외손자가 왜 이승의 수명이 안 되어 저승에 갔는지 모른다. 태산부군은 삼계 내 저층의 신이므로 그보다 높은 일에 대해서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어떤 한 층의 신(神)도 모두 지혜와 능력이 제한되어 있다.
오직 창세주(創世主)만이 가장 높고 가장 궁극적이며 가장 완벽하고 가장 원만한 지혜와 신통을 지니신다. 손치가 수명이 다 되지 않아 죽은 까닭은 원래 가족 중에서 어른들의 죄업을 분담하기 위해서였다. 이를 통해 어느 정도 층차의 수행인은스스로 절대 다른 사람의 죄업을 감당하지 말아야 함을 알 수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수명이 감소되어 하늘로 올라갈 수 없을 것이며 고층차로 올라가지 못하고 오직 인간세상에서 전세(轉世)하는 후과를 얻게 될 것이다.
사실 그가 만약 열심히 정진해서 정과를 이뤘다면 가족중의 어른들 역시 모두 빛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복을 얻게 되거나 심지어 구도받을 수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것이다.
2. 당나라 심가회의 원신이 태산부군을 만나다
《태평광기 102권》에 보면 당나라 때 심가회(沈嘉會)란 인물이 있었는데 태종 정관 연간(627~649년)에 교서랑(校書郎)을 지냈다. 나중에 일이 생겨 난주(蘭州)로 유배되었다. 심가회는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 매일 아침 태산을 향해 절을 하며 신령께 자신을 보우해 살아서 고향에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200여 일이나 제를 올리며 절했다.
당 고종 영휘(永徽) 6년(서기 655년) 10월 3일 밤 꿈에 두 동자를 보았는데 옷이 매우 아름다웠으며 자신들을 태산부군의 아들이라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부군께서 당신의 정성에 감동해 우리를 파견해 당신을 영접하러 왔습니다.”
심가회가 물었다.
“태산은 여기서 3천여 리나 떨어져 있는데 어떻게 갑니까?”
두 동자는 “선생은 눈을 감으세요, 길이 멀다고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심가회가 이에 눈을 감았다 순식간에 다시 떠보니니 이미 태산에 도착한 것을 발견했다. 태산 부군의 궁전은 웅장하고 화려했는데 동자가 그들 데리고 부군에게 인사하러 갔다. 부군은 그를 어느 외딴 조용한 작은 집으로 안내했고 두 사람은 마주 앉아 담소했다. 태산부군은 천하대소사에 대해 모르는 일이 없었다.
부군이 심가회에게 말했다.
“사람이 악을 저지르고 만일 사람에게 피살되지 않으면 사후에 반드시 귀신에게 징벌을 받습니다. 이것은 어떤 악인도 요행히 피할 수 없는 철칙입니다. 만일 정말 회개할 수 있고, 이때부터 부처님을 믿고 선을 향하며 매일 진심으로 불경(佛經)을 읽는다면 이전의 죄를 없앨 수 있으며 저승 지부의 귀관(鬼官)은 잡아가지 못합니다.”
그는 또 자신을 소개하면서 전임 태산부군이 과실이 있어 하늘의 선관에게 쫓겨났고 자기는 성이 유(劉)라고 했다.
심가회는 감히 다른 일에 대해 물을 수 없었다. 한번은 틈이 날 때 부군과 같이 쌍륙(雙陸)놀이를 하고 주연을 베풀었다. 쌍륙이란 고대의 주사위 비슷한 것인데 이미 실전되었다. 자리에서 심가회는 일어서서 작은 마루 동쪽에 고장(姑臧) 현령 모용인궤(慕容仁軌)가 홀판을 들고 단정히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고장현은 고대 지명으로 지금의 감숙성 무위시 양주구(涼州區)다.
그들 두 사람은 아는 사이라 모용인궤가 말했다.
“부군께서 쪽지를 써서 나를 이곳에 붙잡아 두었는데 이미 60일이 되었는데 아직 처리하지 않았습니다.”
심가회는 자리로 돌아와 이 일을 부군에게 알렸다. 부군은 모용인궤를 부르더니 말했다.
“그대 현에 아조(阿趙)라는 여인이 있는데 현위(縣尉)에 의해 무고하게 고문당해 죽었소. 원혼이 저승에서 나에게 고소를 했는데 실수로 자네를 잡아왔네.”
그래서 부군은 명령을 내려 정원의 세숫대야에 얼굴을 씻기고 동자를 불러 모용인궤를 돌려보내라고 했다. 심가회도 이에 작별하고 부군은 또 그의 두 아들에게 그를 돌려보내라고 했다. 심가회는 부군이 있는 곳에 28일간 있었다. 그 동안 식구들은 그의 정신이 혼미한 것만 느꼈고 깨어난 후 그는 이전과 같았다. 심가회는 모용인궤 정황을 식구들에게 말했다. 현지의 장사(長史) 조지만(趙持滿)이 사람을 시켜 검정을 해보라 하니 정말 그러했다. 이때부터 심가회는 매일 불경을 읽었고 나중에 마침내 사면 받아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 기록에 따르면 심가회는 원신이 몸을 떠나 태산부군을 만났고 육신은 난주에 남아 있었다. 그 동안 아마 삼혼칠백(三魂七魄) 등 영체(靈體)가 유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식구들은 그가 정신이 좀 흐릿하다고 느꼈을 뿐이다. 태산부군은 자기의 성이 유 씨라고 했는데 전임이 과실로 하늘에서 벌을 받아 쫓겨났다고 했으니 하늘 밖에 또 하늘이 있고 신(神) 위에 또 신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설사 신령일지라도 선악에 보응이 따르는 법칙을 지켜야 한다.
3. 태산부군이 된 남송의 손점, 석예, 도해
남송의 홍매가 쓴 《이견지(夷堅志)》에 나오는 손점(孫點)은 자가 여지(與之)이며 정주(鄭州)사람이다. 북송의 명신 손고(孫固)의 손자이다. 남송 고종 건염(建炎) 4년(서기 1130년) 손점은 복건 진강(晉江)의 지현(知縣)으로 있었는데 청렴강직한 관리이자 호인이었다.
그해 7월 반란군 장수 양경(楊勍)이 수하들을 이끌고 진강을 침범했다. 양경은 본래 반란을 일으켰다 조정에 투항했던 장수인데 갈등이 있어 다시 반란을 일으킨 것이었다. 손점은 사람들을 이끌고 맞대응하여 지역을 평안히 지켜냈다. 하지만 돌아온 후 병이 들었는데 등 뒤에 큰 농창(膿瘡)이 생겼다. 현 주부가 병문안을 겸해 보러왔는데 집안에 다른 하급 관리가 서 있었다.
이때 손점이 창밖을 보며 말했다.
“누가 문서를 들고 왔는가?” 그러나 사람들은 아무도 보지 못했다. 또 손점을 보니 그는 손에 무엇을 들고 흔들고 있었고 입으로 무슨 문서 같은 것을 중얼거리며 읽고 있었다.
주부가 물었다.
“나리 무엇을 보십니까?”
그러자 손점이 대답했다.
“하늘에서 나를 불러 태산부군이 되라고 한다네.”
손점은 또 좌우를 둘러보고는 물었다.
“여기에 석예(石倪)와 서해(徐楷)라는 사람이 없는가?”
누군가 대답했다.
“석교수라고 있는데 다른 마을에 살고 있고 서해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도해(塗楷)라는 해원(解元 과거의 일등 합격자)이 있습니다.”
손점이 이어서 말했다.
“무엇 때문에 하늘이 가난한 독서인(措大)을 불러다 태산부군이 되라고 하는가?”
사람들은 그가 병이 들어 정신이 없어 헛소리를 한다고 여기며 아무도 뒤이어 묻지 않았다. 손점은 3일 후 세상을 떠났다.
석예라고 불리는 석교수는 자가 ‘덕초(德初)’이며 당시 마침 조정에서 관직을 배치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송 고종 소흥(紹興) 3년(1133년)에도 관직이 이르지 않았다. 석예는 임안에 와서 다른 직위를 부탁할까 준비하며 어느 주점에서 머물다가 병이 나서 7월 중순 세상을 떠났다.
한편 도해는 자가 ‘정보(正甫)’이며 본래 학유(學諭)였다. 학유란 교육계의 학관으로 공무원이자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책임진 직책으로 요즘으로 치면 국공립학교 교사에 해당한다. 사람들은 손점의 일을 알고 난 후 그와 농담하며 말했다.
“앞으로 태산부군이 되실 테니 우리가 태산에 놀러 가면 잘 대접해주시게.”
도해는 석예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기분이 우울했다. 나중에 그는 천녕사(天寧寺) 장로에게 선(禪)을 배웠다. 소흥 6년 7월 휴식 일에 학교가 방학을 하자 도해는 집으로 돌아와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고는 단정히 앉아 서거했다. 이 세 사람이 사망한 시간은 모두 3년 간격이었다. 또 모두 7월에 죽었다. 아마 저승 지부에서 태산부군이란 직책이 남송 관제(官制)처럼 임기가 3년이었을 것이다.
이 기록에서는 손점의 병이 중할 때 다른 공간의 장면을 보았다. 그가 한 말을 다른 사람들은 헛소리로 여겼지만 사실 다른 공간의 생명과 대화한 것이다. 손점은 서해라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는데 아마 도해를 서해로 잘못 알았을 것이다. 태산부군이란 직책은 아마 확실히 매 일단락 간격마다 바뀌는 것 같다. 손점이 말한 “가난한 독서인”이란 아마 석예나 도해를 가리키는 듯하다. 사실 하늘에서 신의 직책을 맡도록 선발한 인물은 반드시 인품을 중시하고 인간의 빈부귀천을 따지지 않을 것이다.
4. 남송 임천 사람 뇌도
임천(臨川) 사람 뇌도(雷度)는 자가 ‘세측(世則)’이다. 임천은 지금의 강서성 무주(撫州)에 해당한다. 그는 성격이 강직하고 독서를 좋아하며 관장의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과거에 참가한 적이 있으며 향현(鄉縣)에서 일급(一級)으로 추천을 받았으니 오히려 성시(省試)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그의 외조카 채직부(蔡直夫)는 영강군(永康軍) 통판(通判)을 지냈다. 영강군은 지금의 사천성 도강언(都江堰)에 있다.
그해 9월 30일 채직부의 아내 서 씨가 아주 분명한 꿈을 꾸었다. 꿈에 어떤 사람이 그녀에게 조서를 보여주었는데 그 격식이 마치 조운(漕運) 주관이 서명한 징발 격문 같았다.
서 씨는 꿈에서 조서를 읽었지만 깨어난 후 내용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단지 말미에 “태산부군 뇌도를 압송”한다는 몇 글자만 기억했다. 그녀는 이런 일이 일어나자 두려워했으며 남편의 숙부 뇌도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해 늘 불안해했다. 이 꿈 이후에 열흘이 안 되어 남편인 채직부가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남편의 영구를 고향으로 호송하여 다음해가 되어 겨우 임천으로 돌아왔다. 고향에 돌아온 후 그녀는 뇌도가 이미 작년 8월에 세상을 떠난 것을 알았다. 꿈을 회상해보고 사람들에게 알아보니 사람들은 뇌도가 사후에 태산부군이 되었다고 여겼다. 이 기록도 《이견지》에 나온다.
5 명말청초의 오매촌
강소(江蘇) 태창(太倉) 사람 오위업(吳偉業)은 자가 ‘준공(駿公)’, 호는 ‘매촌(梅村)’, ‘녹초생(鹿樵生)’, ‘관은주인(灌隱主人)’, ‘대운도인(大雲道人)’ 등이며 명말청초(明末淸初)의 저명한 문인이다. 사람들은 보통 매촌으로 존칭한다. 이 때문에 후세에 오매촌으로 불렸다.
《지북우담(池北偶談)》이란 책에 따르면 강희 10년 (1671년) 설날, 오매촌이 꿈에 천제(天帝)를 보았는데 천제가 그를 태산부군에 봉했다. 그해에 오매촌은 병으로 죽었다. 당시 수월(水月)이란 승려가 있었는데 수련성취한 고승으로 미래를 예지할 수 있었다.
오매촌이 병이 중할 때 그를 찾아본 적이 있다. 당시 스님은 다만 이렇게 말했다.
“금년 정월 초하루 당신의 꿈에 이미 미래를 설명해놓았습니다. 왜 다시 노승에게 묻습니까?”
오매촌은 이에 이 꿈은 다른 공간에서 있었던 진실한 일임을 알게 되었고 자기의 가야할 길을 알고 안심했다.
또 《오매촌선생행장(吳梅村先生行狀)》이란 책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오매촌이 병이 깊을 때 꿈에 어떤 사람이 그를 맞이하러 왔고 아울러 태산부군에 부임할 구체적인 날짜가 쓰여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세상을 떠나는 날을 구체적인 시간을 알고 있었고 그때 정말 세상을 떠났다.
6. 근대의 조원충
곽측운 선생은 민국 정부 국무원 비서장을 지냈으며 정계와 문단에 교우관계가 매우 넓었다. 그의 친구 중에 모광생(冒廣生)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중국 근대문화사의 유명 인물이며 선조는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다.
청나라 광서 20년(1894년) 거인이 되었다. 형부낭중 및 농공부(農工部) 낭중(郎中)을 지냈고 민국 시기에는 농상부(農商部) 전국 경제조사회 회장, 강절(江浙)해관 감독 등의 직책을 맡았고 항전 승리 후 중산대학교수 및 남경 국사관 찬수(纂修)를 맡았다.
어느 날 모광생이 한 수의 시를 썼다.
등대(登岱-태산에 오르다)
누동의 오매촌
원단 꿈에 일어나지 못하더니
군직이 곧 임종하니
그 말 역시 부활하네
婁東吳梅村,元日夢不起
君直當彌留,其言亦複爾
곽측운이 읽어보니 대단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자세한 일을 물었다. 알고보니 모광생에게 조원충(曹元忠)이란 친구가 있었는데 호가 ‘군직(君直)’이었다. 관직은 내각 시독학사(侍讀學士)에 이르렀다.
모두 강소 사람으로 같은 해 과거에 붙었고 나중에 같은 동네에 살았다. 그래서 조원충의 정황에 대해 모광생은 잘 알고 있었다.
조원충은 청나라 조정에서 시독학사로 있었고 나중에 모친이 연세가 많아지자 집으로 돌아가 봉양하려고 사직한 후 더는 관직에 오르지 않았다. 민국 12년(1923년) 조원충이 세상을 떠났고 그 때 노모가 너무 슬퍼했는데 갑자기 조원충이 눈을 뜨더니 모친에게 말했다.
“어머니 더 이상 곡을 하지 마옵소서. 저는 옛날의 오매촌처럼 이제 태산에 가서 신의 직책을 맡을 것입니다.” 말을 마치자 눈을 감고 안심하고 떠났다.
곽측운은 이 상세한 상황을 알고 이 일을 《동령소지(洞靈小志) 4권 조군직(曹君直)》이란 제목으로 기록해 놓았다.
이상의 기록으로 볼 때 우리는 확실히 사람 생명의 본질은 육체에 있는게 아니라 사람의 원신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신론은 완전히 잘못된 이론이다. 사람의 육신이 사망한 후 그 원신은 생전의 선악과 품행에 따라 각자 돌아갈 곳과 보응이 있다. 선량하고 정직한 사람, 의사(義士)나 충신 효자 등은 심지어 일정한 층차의 신이 되기도 한다. 높은데서 낮은 곳까지 각층의 다른 공간에는 정말 천국과 지옥이 있는데 태산부군은 바로 저승의 한 신직(神職)이다. 삼계 내 저층 신령(神靈)에 속한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663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