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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정술】 하(夏) 1

들어가는 말—위대한 대하(大夏)

요순우(堯舜禹)는 고대의 세 성왕(聖王)으로 불린다. 신(神)과 사람이 공존했던 성왕의 시대는 화하 신전문명 속에서 늘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동경해오던 시대였다. 상고 삼대(三代) 하상주(夏商周)가 당요(唐堯), 우순(虞舜)의 뒤를 이어 일어났고 그 중에서 하조(夏朝)는 성왕(聖王) 대우(大禹)에 의해 개창되었다. 이 장에서 우리가 서술할 내용은 바로 상고 삼대 중 최초의 왕조인 하왕조다.

요순시기에는 하늘에 닿을 정도로 홍수가 범람했다. 중원 대지를 뒤덮은 홍수 속에서 대신통(大神通)과 대덕행(大德行)을 지닌 한 거인이 탄생했다. 그의 영도 하에 화하 민족과 이족(夷族)은 각 지역 부락에서 힘을 합쳐 산을 쪼개고 바위를 옮겼으니 홍수가 점차적으로 물러나 신주대지(神州大地) 위에 영역과 질서가 생겨났다.

大禹画像(公有领域)
송대(宋代) 마린(馬麟)이 그린 대우 초상화繪。(公有領域)

이 거인이 바로 대우(大禹)였다. 그는 산을 가르고 땅을 개척했으며 산과 하천에 이름을 지었고 수많은 신화와 전기를 남겨 후인들의 찬양을 받았다. 대우가 13년에 걸쳐 치수에 크게 성공하자 순임금은 그를 하(夏 지금의 산서山西) 지역에 봉해 하나라로 삼았다. 홍수가 신주대지에서 물러날 때 수많은 부락들이 하나의 맹주(盟主)를 공동으로 받드는 왕조가 탄생했으니 그것이 바로 하조(夏朝)다. 하조는 요순 성왕(聖王)이 나라를 다스린 기초 위에 하늘을 공경하고 천명을 아는 문명질서를 다졌고 최초로 규모 있는 예악(禮樂)과 전장(典章) 및 인문적 성취를 구비했다.

(1) 선양(禪讓)에서 ‘가천하(家天下)’로

대우가 붕어한 후 여러 제후국들이 우의 아들인 계(啓)를 받들어 ‘아버지가 죽으면 아들이 계승하고 형이 죽으면 동생이 잇는’ 가천하(家天下)의 구조를 창립했다. 이때부터 화하역사는 선양에서 세습(世襲)제도로 넘어갔다.

고대 역사가 인멸된 까닭에 오늘날 우리가 아는 하 왕조의 역사는 겨우 대체적인 윤곽에 불과할 뿐이다. 후인들에게 익숙한 것은 하후(夏后) 계(啓)가 하늘을 방문해 천악(天樂)을 얻고, 태강(太康)이 나라를 잃고, 소강(小康)이 중흥하고, 망국의 군주 하걸(夏桀)과 같은 하조의 여러 제왕들이 살던 시대의 성주괴멸(成住壞滅)이다. 이런 것들은 모두 이후 5천년 화하문명 중에서 끊임없이 변화되며 공연되지만 다만 하조는 이 주선율(主旋律)에 일종의 더욱 소박한 정취를 더했을 따름이다.

신(神)을 공경한 상대(商代) 및 예(禮)를 숭상한 주대(周代)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하나라의 도는 명(命)을 존중”해 상고시기의 소박함과 경건함이 있었다. 하 왕조에서는 예악(禮樂)과 윤상(倫常), 덕치(德治), 백관(百官), 형법(刑法), 역법(曆法), 주차(舟車) 등의 제도를 만들었으며 보다 많은 발명과 창조를 더해, 황제(黃帝)와 요순에서부터 일맥(一脈)으로 서로 이어온 화하문명이 점차적으로 성숙하게 했다.

하왕조는 삼황오제시대와 일맥상승(一脈相承)해 펼쳐낸 신전문명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우리가 저 멀리 4천여 년 전 대우(大禹)가 창립한 시대를 떠올려보면 하 왕조는 검은 색을 숭상했고 마차에는 이미 등급 구별이 있어 수레와 깃발에 따라 구별했고 귀족들이 입는 의상 역시 5등급으로 구별되었다. 중화민족을 대표하는 ‘화하(華夏)’에서 ‘하(夏)’는 바로 하왕조에서 유래한 것이다.

“중국에서는 예의(禮儀)가 큰 것을 하(夏)라 하며, 복장(服章)이 아름다운 것을 일러 화(華)라 한다.”((《춘추좌전정의(春秋左傳正義)》))

상고시대에 하 왕조는 신복(臣服)하면서 공납을 바치러 온 여러 부락과 방국(方國)들 앞에서 이렇게 우아하면서도 질박하고 화려하면서도 뛰어난 형상을 보여주었다.

偃师二里头遗址一号宫殿复原图(公有领域)
하남(河南) 언사(偃師) 이리두(二裏頭) 유적지 1호 궁전 복원도

지난 세기 수많은 고고학 발견에 따라 그동안 시간 속에 인몰되어 있었던 하대(夏代)가 갈수록 더 입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하남 언사 이리두에서 출토된 거대한 궁궐의 구조를 보면 왕성(王城)의 수도시설과 청동기・흑도(黑陶) 제작구역이 정연히 분리되어 있었다. 여기에 대우가 치수(治水)할 때 설치했던 광활한 도로와 치수 시 관개된 경작지로 도랑 등을 더하면 비록 대홍수의 기억이 여전히 남아있긴 하지만 하 왕조의 인문과 생활의 창설은 오히려 이미 아주 뛰어나고 정연했다. 후대에 하 왕조를 숭상한 주(周)에 의해 전승되었고 주나라 이후의 조대(朝代) 역시 지속적으로 전승해 4천여 년을 끊이지 않고 이어져 내려왔다.

중국 역사상 하 왕조에는 또 한가지 독특한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상나라 시조 설(契), 주나라 시조 후직(后稷), 진(秦)나라 시조 백익(伯益)이 모두 대우(大禹)가 치수할 당시 공신들이자 하늘이 부여한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태어난 현인(賢人)들이다. 다시 말해 대우는 물을 다스리는 동시에 하상주(夏商周) 삼대(三代) 문명의 씨를 이미 조용히 뿌린 것이다.

위대한 대하(大夏)는 나중에 화하문명에 견고한 초석을 다져주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157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