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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漢字)의 도(道) (5)

글/ 조원(照遠)

【정견망】

4.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도(道)

사람은 만물(萬物)의 영장으로 천지 사이의 일체 존재는 다 사람을 위해 안배된 것이다. 하늘은 사람에게 자비로운 동시에 또 사람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하여 명확하고 엄격한 요구가 있다. 아래에서는 몇 가지 한자 해석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해 한번 알아보도록 하자.

(1) 유(儒)자의 구조는 亻+需이다. 즉 사람(亻)이 필요(需)로 하는 것이 바로 유(儒)가 되는데 사람으로서 분명히 알아야 할 도리가 바로 유가(儒家)의 가르침이다. 한자는 신전문화(神傳文化)이기 때문에 유교의 규범은 바로 하늘이 정한 사람이 되는 표준을 유가 성현(聖賢)의 논술을 통해 사람에게 표현하고 가르쳐준 것이다.

유가에서는 사람이 되자면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오상(五常)을 갖춰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오늘날 세인들은 대부분 이미 변이(變異)되어 불인(不仁)・불의(不義)하고 불례(不禮)・부지(不智)할뿐만 아니라 그 무엇도 다 불신(不信)하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에 이미 더 이상 정상인이라 할 수 없다.

(2) 예(礼)자는 정체로는 예(禮)인데 示+曲+豆 3글자로 구성된 회의문자다. 시(示)는 얼굴을 보고 표시한다는 뜻이다. 곡(曲)은 허리를 굽혀 구부리면서 몸을 숙인다는 뜻으로 공경(恭敬)을 표시한다. 두(豆)는 소중한 물건을 표시하는데 왜냐하면 콩류는 기름을 짤 수 있기 때문에 잡곡 중에서 가장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글자의 기초적인 뜻은 바로 가치 있는 물건을 지닌 사람에게 몸을 숙여 보여준다는 뜻이니 바로 예의가 바른 것이다. 현대인들은 ‘선물 보내는 것’(送禮)을 가리켜 ‘성의를 표시한다’고 말한다.

공자는 “예를 모르면 설 수 없다(不知禮,無以立也)”고 했다. 예(禮)는 사람이 편안히 살 수 있는 전제이며, 도리가 있자면 먼저 예의가 있어야 하고 예의가 있어야지만 이로울 수 있다. 《주역》에서 이괘(離卦)는 8괘 중의 하나로 불(火)이 되고 해(日)가 되고 문장(文)이 되고 예(禮)가 되고 려(麗)가 된다.

다시 말해 예란 문명의 상징이라 할 수 있으니 고인(古人)은 남녀유별(男女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로 서로 마주함에 마땅히 예로 상대해야 하며, 이렇게 해야만 사회가 어지러워지지 않을 수 있다고 보았다. 때문에 고인은 “예란 천지의 질서다”(禮者,天地之序也)(《예기》)고 했다.

(3) 교(教)의 정체는 교(敎)이고 위에서 베풀면 아래에서 따르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교(敎)란 배우는 자에게 도리나 기술 및 기교를 전수해주는 과정이다. 글자 구조를 보면 爻+子+攴로 구성된다. 여기서 효(爻)는 효(效)로 법을 본받고 학습한다는 뜻이며 자(子)란 아이나 학생을 말한다. 복(攴)은 두드리거나 채찍질하고 독촉한다는 뜻이다.

《중용》에서는 “도를 닦는 것을 가리켜 교라 한다”(修道之謂教)고했다. 다시 말해 교육의 근본목적은 바로 사람더러 어떻게 도(道)를 닦는지 분명히 알려주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중국의 교육은 진화론(進化論)과 무신론(無神論)을 지도사상으로 삼고 학생들에게 약육강식(弱肉强食) 밀림의 법칙을 가르칠 뿐 더는 선(善)과 도덕(道德)을 중시하지 않는다. 때문에 완전히 도에 어긋나게 가고 있다.

(4) 육(育)자의 함의는 기르고 가르친다는 뜻이다. 《설문해자》에서는 “아이가 선행을 하도록 기르는 것이다”(養子使作善也)라고 해석했다.

글자 구조에서 보자면 위에는 거꾸로 된 ‘자(子)’가 있고 아래에 ‘육(肉)’이 있다. 거꾸로 된 자에는 불효자(逆子)란 뜻이 담겨 있는데 다시 말해 마음에 거슬리고 순종하지 않는 아이를 말한다. 육(肉)자는 육신과 신체를 표시한다.

그렇다면 이 글자의 구조에서부터 보자면 자녀를 양육하는 것은 단순히 신체가 건강하게 자라게 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덕(德)을 중시하고 선(善)을 향하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설령 가르침에 복종하지 않고 단속 받지 않으려는 아이일지라도 마땅히 이렇게 해야만 한다. 이 역시 사람의 부모 된 자로서 마땅히 명확해야 하는 도리이다.

(5) 화(和)자의 구조는 禾+口이니 ‘구(口)’를 따르고 ‘화(禾)’는 발음이 된다. 조화롭고 협조한다는 뜻이다. ‘화(和)’가 ‘구(口)’를 따른다는 것은 사람과 협조하는 기본 표현이 화목하고 선량하게 지내는 것으로 남과 말다툼을 하는 게 아님을 가리킨다.

때문에 《설문해자》에서는 “화란 상응하는 것이다(和,相應也)”라고 해석했다. 또 화(和)는 합(合)과 발음이 같기 때문에 모으고 취합한다는 뜻이 있어서 충(沖 매사에 충돌이 있으면 흩어진다)과 반대가 된다. 그렇다면 무엇을 모으는가? 바로 사람과 재물이다. 때문에 화를 귀하게 여기는 것으로 기가 조화로워야 재물이 생기며 집안이 화목해야 만사(萬事)가 흥성하는 법이다. 만약 도덕수양의 각도에서 말하자면 화(和)의 본질은 바로 선량과 관용이다.

(6) 효(孝)의 함의는 자녀가 부모에 대해 진심으로 봉양하고 순종하는 것이다. 그 구조를 보면 老+子다. 노(老)가 위에 있고 자(子)가 아래에 있다. 사람에게 있어 부모는 하늘이니 사람은 마땅히 하늘에 순종해서 행동해야 한다. 때문에 효순(孝順)을 말한다. 전통문화에서 효는 인류문명과 도덕의 근본으로 예의 시작이자 백가지 선(善)의 으뜸으로 보았다. 부모에게 효경(孝敬)하는 것은 마치 나무의 뿌리에 물을 주고 비료를 주면 자연히 뿌리가 깊어지고 잎이 무성해지는 것과 같다. 사람에 대해 말하자면 자손이 번창하는 것이다.

동시에 ‘효(孝)’는 ‘효(效)’와 발음이 같은데 효(效)는 바로 모방과 학습이다. 우리의 행동이 바로 자녀들에게 참조가 되기 때문에 대체로 스스로 부모에게 효경할 줄 모르는 사람은 종종 그 자손이 불효하게 된다. 때문에 이런 각도에서 말하자면 효도를 널리 실천하는 것은 세간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한 만년과 미래를 준다. 효는 또 ‘소(笑)’와 발음이 같은데 자녀가 효도하면 부모가 웃고 자녀가 불효하면 부모가 웃지 못한다.

(7) 용(勇)자의 구조는 용(甬)+력(力)이다. 그 함의는 강인하고 과감해서 두려움이 없다는 뜻이다. 위에 있는 ‘용(甬)’은 용(涌)과 통하는데 마치 샘에서 물이 용솟음치는 것과 같다. 동시에 영(永)과도 통하는데 때문에 또 오래간다는 뜻이 있다.

아래의 ‘역(力)’은 힘이나 노력한다는 뜻이 들어 있다. 고인은 정신이 이르는 곳마다 모두 역(力)이라 불렀다. 다시 말해 용(勇)은 단순히 사람의 담략이나 용기를 가리키는 게 아니고 일시적인 용감함도 아니며 외재적으로 억지로 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장기간 지킬 필요가 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마땅히 갖춰야 할 일종의 정신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학문을 연구하거나 도를 닦고 진리를 얻으려면 반드시 갖춰야 할 품성이다.

(8) 가(嫁)자의 구조는 ‘女+家’다. 여기서 ‘가(家)’는 집으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여자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시집간다고 한다. 고대 중국어에서 여자가 출가(出嫁)하는 것을 가리켜 귀(歸)라 했으니 귀 역시 집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전통문화에서는 여자는 친정을 자기 집으로 치지 않았고 단지 잠시 맡아 기르는 곳으로 보았으며 시댁이야말로 진정한 자신의 집으로 보았다. 때문에 여자가 성장하면 마땅히 시집을 가야 한다고 본 것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이 글자의 해석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데 사실 자신의 모친과 할머니 또는 외할머니를 떠올려보라! 그분들의 집이 어디인지 생각해보면 명확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9) ‘호(好)’자의 구조는 ‘女+子’로 기본적인 의미는 아름답고 착하다는 것이다. 만약 이 글자의 구조로 보자면 남녀의 결합이 바로 호(好)이다. 《역전(易傳)》에서는 천지가 있는 후에 만물이 있고 만물이 있은 후에 남녀가 있으며 남녀가 있은 후에 부부가 있고 부부가 있은 후에 부자(父子)가 있다고 했다. 다시 말해 부부간의 인연은 남녀 사이의 가장 원시적이고 최초의 연분인 동시에 가장 아름답고 가장 선량하며 가장 좋은 연분이다. 그렇다면 부부 사이에는 마땅히 가장 아름다운 심정과 가장 선한 심태로 대해야 하며 이것이 바로 가장 ‘좋은’ 것이다.

(10) ‘관(官)’자의 구조는 ‘면(宀 mián)+이(㠯 yǐ)’다. 즉 정부 부문에서 일을 맡은 사람을 가리킨다. 고대 중국어에서 ‘이(㠯)’는 ‘이(以)’와 통하는데 일을 하거나 능력이 있는 것을 가리킨다. ‘관(官)’은 또 ‘관(管)’과 통하는데 책임지고 관리한다는 뜻이다.

인류사회 속에서 각급 정부 부문은 모두 우주법칙이 세간에서 체현된 것으로 그중에는 부동한 계층의 관원(官員)이 있다. 직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법을 집행하는 사람으로 마치 사람 몸에 오관이 있는 것처럼 각기 그 직책이 있고 각각의 기능이 있다.

그런데 ‘관(官)’은 또 ‘관(關)’과 발음이 같아서, 다시 말해 관리가 된 사람이 처리한 매 한가지 일은 그에게 있어 모두 하나의 관(關)이 된다. 처리를 잘하고 잘하지 못하는 것은 그가 공정하게 법을 집행했는가 공사를 분명히 했는가를 봐야 한다. 그러므로 관리가 되는 것이 바로 수행(修行)이다. 다시 말해 하늘은 이 부분 사람들에게 보다 높은 요구를 제출하는데 그들이 이런 의식이 있든 없든 막론한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관리가 된 사람들은 거의 모두 그 출발점이 위사(爲私)한 것이다. 때문에 근본적으로 수행이란 개념이 없으며 이미 이 부분 사람들은 타락하고 패괴(敗壞)된 가장 빠른 일종이 길이 되었다.

(11) ‘정(政)’의 함의는 국가의 일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구조에서 보면 ‘正+攵’인데 복(攵)은 바로 복(攴)이다. ‘복(攴)’에는 때린다는 뜻이 있으니 원래는 통치자가 채찍으로 통치를 추진한다는 의미다. ‘정(正)’의 함의는 바르게 고치고 시정하며 바로잡는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정치를 하는 목적은 백성들이 바른 길을 가도록 가르치는 것이지만 그 전제는 위정자(爲政者) 자신이 광명정대(光明正大)해야 한다. 때문에 공자는 “정치란 바로잡는 것입니다. 그대가 바름으로 본을 보인다면 누가 감히 바르지 않겠습니까?(政者正也,子帥以政,孰敢不正)”(《논어·안연편》)라고 말했던 것이다.

공자는 또 “덕으로 정치를 하면 마치 북극성이 제자리에 있으나 뭇별들을 이끌고 함께 돌아가는 것과 같다.(為政以德,譬如北辰,居其所而眾星共之)”(《논어·위정편》)고 했다. 즉 통치자가 도덕으로 다스리면 천하인들이 자발적으로 그에게 복종하길 원한다는 뜻이다. 만약 도덕을 중시하지 않고 덕정(德政)을 펴지 못한다면 그럼 소위 정치의 실질은 완전히 사람을 다스리는 것으로 변질되어 폭정, 악정(惡政 나쁜 정치), 가정(苛政 가혹한 정치)이 되고 만다.

(12) ‘공(公)’자의 함의는 대중을 이롭게 하는 것으로 바르고 곧고 사심이 없으며 또 치우침이 없고 평등하다는 뜻이다. 글자의 구조에서 보자면 ‘팔(八)+사(厶)’이다.

고문에서 ‘팔(八)’은 ‘배(背)’와 통하는데 배(背)란 바로 위배하고 위반한다는 뜻이다.

‘사(厶)’는 ‘사(私)’와 통하니 두 개를 합하면 사(私)를 떠나는 것이 바로 공(公)이 된다. ‘공(公)’자의 글자형태로부터 보자면 厶가 八 아래 있으니 여기에는 또 한 층의 함의가 있다. 바로 인류 사회 속에서 무릇 공(公)의 깃발을 내거는 자들은 모두 사(私)를 덮어 감추기 위한 것으로 모든 정당(政黨)이 다 이 부류에 속한다.

또 ‘공(公)’은 ‘공(功)’과 발음이 같은데 공(功)은 공덕(功德)이며 공덕은 복분(福份)의 근원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되려면 공의 마음[公心]이 있어야 하며 공의 마음이 있어야지만 공덕(功德)이 있을 수 있고 공덕이 있어야지만 복이 있을 수 있다.

(13) ‘狂’자의 구조는 ‘犭+王’으로 본래 뜻은 개가 발작하는 것이다. 나중에 여기서 사람의 정신이 정상이 아니거나 기세가 맹렬해서 정상적인 상태를 뛰어넘는다는 의미가 파생되었다. 《광운(廣韻)》에서는 “병에 걸려 마음이 득실을 따지지 못하는 것을 일러 광이라 한다”(病也,心不能審得失之地,則謂之狂)고 했다.

이 글자의 구조를 보자면 ‘견(犭)’은 짐승의 본성을 대표하고 ‘왕(王)’은 임금이나 패자(霸者)를 대표한다. 다시 말해 광(狂)이란 사람의 일종 병적인 상태로 사람이 됨에 청성(淸醒)하게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의 심태와 위치를 바로잡지 못하면서 안하무인으로 유아독존한 것을 가리켜 광이라 한다.

(14) ‘궤(詭)’자의 함의는 속이거나 교활한 것 또는 괴상하고 비정상적이란 뜻이다. 언(言)을 따르고 위(危)를 따른다. 여기서 언(言)이란 언어나 계책 설법을 말하고 위(危)란 위험이나 위해(危害)를 말한다. 다시 말해 사람에게 위해를 조성하고 사람을 위험한 지경에 처하게 하는 계책이나 언론이 바로 ‘궤(詭)’다.

또 ‘궤(詭)’는 ‘귀(鬼)’와 발음이 같은데 궤계(詭計)가 바로 귀계(鬼計)다. 마귀와 사악한 자가 사람을 해칠 때 흔히 궤계를 사용한다. 궤계가 복잡한 자는 내심이 어둡고 음침하며 이기적이고 사악하며 귀도(鬼道)나 마도(魔道)로 추락하기 쉬워 최종적으로 남을 해치고 자신을 해치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이 되려면 마땅히 성실하고 정직해야 하며 당당하고 공명하며 남을 이롭게 하고 자신을 이롭게 하는 것만이 비로소 정도(正道)다.

(15) ‘양(樣)’자는 형상・표준・본보기란 뜻이다. 구조로부터 보면 ‘木+羊+永’ 3글자로 구성된다. 태극원리에서 목(木)은 도(道)를 대표하는데 다시 말해 진(眞)을 의미한다. ‘양(羊)’은 ‘상(祥)’과 통하는데 다시 말해 선(善)이다. ‘영(永)’은 영원불변함을 대표한다.

이렇게 3가지를 합하면 ‘양(樣)’은 바로 표준이자 법칙・모범으로 시공(時空)의 변화에 따라 변화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에 대해 말하자면 ‘모범’으로 살아야 하는데, 이는 단순히 명예와 이익을 둘 다 가져야함을 말하는 게 아니라 우선 자신의 도덕수양이 진(眞)과 선(善)의 표준에 부합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성인(聖人)이 될 수 있고 이렇게 해야만 ‘모범’이 될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훌륭한 사람이다.

(16) ‘존(尊)’자의 함의는 고귀하고 존중한다는 것으로 다시 말해 지위나 배분이 높다는 의미다. 고대 중국어에서는 술을 담는 그릇[酒器]으로 풀이했다. 글자 구조에서 보자면 추(酋)+촌(寸)이다. 여기서 추(酋)는 술을 관장하는 주관(酒官)의 장(長)이란 뜻을 지니며 또한 오래되어 무르익었다는 뜻도 있다. 촌(寸)은 고대에 법도(法度)와 분별(分寸)을 대표한다.

그러므로 법도를 장악한 사람이 존귀하다는 뜻이다. 또한 모든 성숙하고 이성적이며 마음속에 법도를 지니고 일을 함에 분별이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고귀한 사람이고 사람들의 존중을 받을 수 있다. 법도 없고 하늘도 없으며, 제멋대로 하는 사람은 존중받을 가치가 없으니 존엄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17) ‘개(改)’자의 함의는 변경・수정이다. 기(己)를 따르고 복(攴)을 따른다. 복(攴)에는 친다는 의미가 있어 여기에 편달하고 독촉한다는 뜻이 파생되어 나왔다. 기(己)를 따른다는 것은 개변할 필요가 있는 것이 바로 자기 자신임을 설명한다. 사람은 오직 자신만 개변할 수 있을 뿐 남을 개변시키기란 아주 어렵다. 《역전》에서는 “군자는 선을 보면 실행하고 허물이 있으면 고친다(君子見善則遷,有過則改)”고 했다.

(18) ‘귀(貴)’자의 함의는 가치가 높고 지위가 높으며 품질이 높다는 것이다. 그 구조에서 보자면 ‘中+一+貝’ 3글자로 구성된다. 즉, 가운데(中) 거처하고 하나(一)를 지키며 조개(貝 고대의 화폐)를 들고 있는 사람이 귀하다는 뜻이다.

여기서 가운데 거처한다는 것은 바로 높은 관직에 있다는 것이며, 하나를 지킨다는 것은 정도(正道)와 원칙을 굳게 지킨다는 뜻이다. 조개를 들고 있다는 것은 재산을 관장하고 소유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지금 세상에서는 그 어느 계층의 사람이든 대부분 정도(正道)를 지키지 않고 규칙을 중시하지 않기 때문에 모두 귀인이 될 수 없는데 제아무리 지위가 높고 돈이 많은 사람이라도 마찬가지로 천(賤)하다고 할 수 있다.

이상 한자의 분석에서 볼 수 있다시피 신전문화(神傳文化)는 인류사회의 각종 방면을 규범 짓는데, 유가(儒家)의 사람이 되는 규범과 부부의 도에서 시작해 교육의 목적 및 관리가 되고 정치를 하는 등에 이르기까지 모두 명확한 요구가 있다. 즉 우주의 도(道)에 부합함이 인간세간에서 체현되어야 하는데, 인류사회가 오랫동안 유지되고 사람이 고귀하고 존엄하게 살아가려면 시시각각 늘 마음에 정도(正道)를 품어야 한다.

(시리즈 종결)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node/259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