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주근(周謹)
【정견망】
자고이래로 “영웅은 미인관(美人關)을 넘기기 힘들다”는 말이 있다. 좋게 말해서 미인관이지 사실은 바로 색마(色魔)의 침입이다. 이것 때문에 나라를 망치고 개인의 지위나 명예를 잃은 사례들이 아주 흔하다. 그런데 《봉신연의》의 기원(起源)은 바로 주왕이 색마의 침식(侵蝕)된 것으로 뜻밖에도 여와신에게 불경(不敬)해 끝내 치명적인 재앙을 초래한 것이다.
여기서 《봉신연의》의 한 대목을 읽어보자.
“주왕(紂王)이 제위에 올라 조가(朝歌)에 도읍을 정했다. 문관으로는 태사 문종(聞仲)이 있고 무관으로는 진국무성왕(鎮國武成王) 황비호(黃飛虎)가 있어 문(文)은 나라를 평안히 하기에 족했고 무(武)는 나라를 안정시키기에 충분했다. 중궁(中宮)에는 황후(皇后) 강(姜)씨, 서궁(西宮)에는 비(妃) 황(黃)씨가 있었고, 형경궁(馨慶宮)에는 비 양(楊)씨가 있었다. 삼궁의 후비(后妃)는 모두 덕성이 있고 행실과 마음가짐이 올바르고 온화하면서도 현숙했다. 주왕은 앉아서 태평성대를 즐겼고 만백성이 즐겁게 생업에 종사했으며 기후도 순조로워 온 나라가 평안했다. 사방의 이민족들도 공손히 따랐고 팔방(八方)에서 손님으로 찾아와 복종했다.”
바로 이렇게 튼튼했던 나라가 뜻밖에도 주왕의 색심(色心) 때문에 멸망에 이르게 된다.
주왕이 여와묘를 참배할 때의 일이다.
“갑자기 한줄기 사나운 바람이 불어오더니 휘장을 말아 올리자 여와의 성상(聖像)이 드러났다. 단정하고 아름다운 얼굴에 상서로운 기운이 피어나 세상에 비할 바 없이 아름다운 자태였는데 완연히 살아있는 것 같았다. 정말로 예주궁(蕊珠宮 도교에서 말하는 신선의 궁전)의 선녀가 속세에 내려오거나 월궁의 항아(嫦娥)가 속세에 내려온 것만 같았다. 옛말에 나라가 흥하려면 반드시 상서로운 징조가 있고 나라가 망하려면 요사한 것(妖孽)이 나타난다(國之將興,必有禎祥;國之將亡,必有妖孽)고 했다.
주왕이 이 모습을 보고는 단번에 넋이 나가 곧 음란한 생각이 일어났다.
‘짐은 천자로서 부유하기로는 천하를 다 가졌고 삼궁의 비빈과 육원(六院)의 후궁들이 있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은 없구나.’
이에 문방사우를 가져오라고 하자 시종이 황급히 가져다가 주왕에게 바쳤다. 천자는 붓에 먹물을 듬뿍 적셔 시를 한 수 적었다.
봉황과 난새 수놓은 화려한 휘장은 심상치 않고
전부 금색이고 모양도 정교하구나.
굽이굽이 먼 산에 푸른 색이 날고
하늘하늘 날리는 소매 노을빛 치마와 어울리누나.
빗물 머금은 배꽃이 아름다움을 다투는데
안개에 싸인 작약은 아름다운 자태 뽐내는구나.
요염하면서도 살아 있는 미녀를 얻을 수만 있다면
궁궐로 데려가 길이 임금을 모시게 하리라!
鳳鸞寶帳景非常
盡是泥金巧樣妝
曲曲遠山飛翠色
翩翩舞袖映霞裳
梨花帶雨爭嬌豔
芍藥籠煙騁媚妝
但得妖嬈能舉動
取回長樂侍君王
당시 신하들은 모두 덕이 있는 인물들이라 이 사건의 해로움을 잘 알고 있었다. 이에 수상(首相)인 상용(商容)이 주문을 올려 이렇게 간했다.
“여와(女媧)는 상고(上古)의 정신(正神)이자 우리 조가의 복주(福主)십니다. 노신이 폐하께 향을 사르며 복덕(福德)을 기원하시라고 청한 의도는 만백성이 편안히 생업에 종사하고 기후가 순조로우며 전쟁이 없는 평화가 지속되게 하려던 것입니다. 지금 폐하께서 시를 지어 성명(聖明)을 모독하시면서 경건한 정성이라곤 전혀 없으시니 이는 신성(神聖)께 죄를 지을 뿐만 아니라 천자가 행차하여 기도를 올리는 예가 아닙니다. 바라옵건대 주공(主公)께선 이 시를 물로 씻어버리시기 바랍니다. 천하 백성들이 이 시를 보면 성상(聖上)께 덕정(德政)이 없다는 소문이 날까 우려됩니다.”
그러자 주왕이 대답했다.
“짐이 여와의 용모가 절세의 자태임을 보고 시를 지어 아름다움을 찬미한 것인데 어찌 다른 뜻이 있겠는가? 경은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마시오. 하물며 짐은 만승(萬乘)의 지존이니 이를 남겨 백성들이 보게 한다면 낭랑(娘娘)의 미모가 세상에서 으뜸임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짐의 필적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을 마치고 궁으로 돌아갔다. 문무백관은 묵묵히 고개만 끄덕일 뿐 감히 누구도 말을 꺼내지 못했고 그저 입을 다물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주왕의 색심과 신에 대한 불경(不敬)은 여우요정의 유혹을 초래했고 최종적으로 나라를 멸망으로 이끌었다. 역사의 교훈은 늘 망각되기 쉽다. 색심을 제거하지 않으면 나라와 백성에 모두 큰 재앙의 단서가 된다. 교훈은 아주 심각한 것이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374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