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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신연의》가 오늘날 주는 교훈: 앞 수레의 교훈을 무시하지 말아야

글/ 순진(純真)

【정견망】

《봉신연의》에서 온신(瘟神 역병을 주관하는 신) 여악(呂嶽)은 강자아 등과 싸우다 패배한 후 조용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며 심신을 수양하는 대신 도리어 사술(邪術)을 배운 후 다시 복수하러 왔다. 나중에 여악은 자신의 도반인 진경(陳庚)과 함께 멋대로 천운관(穿雲關)에서 온몽진(瘟濛陣)을 설치해 강자아 등이 주왕(紂王)을 토벌하러 가는 길을 가로막으려 했다.

이때 하늘의 이치를 분명히 알았던 또 다른 도반 이평(李平)이 특별히 여악을 찾아와 하늘의 뜻을 거슬러 행동하다가 멸망을 자초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여악은 그의 권고를 들으려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야말로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며 반역자들을 토벌해 하늘의 뜻에 따르고 민심에 부합한다고 우겼다. 심지어는 이평에게 “두고 보시오, 내가 강상과 무왕을 사로잡아 저쪽 군대가 하나도 남지 못하게 하리다.”라고 큰소리를 쳤다.

이평은 여전히 좋은 말로 권고했다.

“강상은 일곱 번의 죽음과 3번의 재앙을 당하는 액운도 견뎌냈고 수많은 악독한 사람들을 만났으며 십절진(十絕陣)과 주선진(朱仙鎮)도 겪으면서 어렵사리 이곳까지 왔소이다. 옛말에 이르길 ‘앞 수레가 뒤집히면 뒤 수레는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소? 도형은 어찌 이렇게 미혹에 빠져 집착하는 겁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악은 여전히 고집을 피웠다. 무릇 모든 일은 하늘의 도(道)가 주재하는 것으로 하늘을 거슬러 행동하면 오직 죽음의 길로 이를 뿐이다. 결국 여악은 양임(楊任)의 손에 죽임을 당했고 다년간의 오랜 수련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여기서 소위 ‘전철(前轍)’이라 불리는 “앞 수레가 넘어지면 뒤 수레는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성어가 등장한다. 여악은 마땅히 자신보다 앞서서 문태사(聞太師)나 조공명(趙公明) 등의 사람들이 하늘을 거슬러 행동하다 멸망을 자초한 것을 보고 교훈으로 삼았어야 한다. 때문에 여악의 죽음은 사실상 자신이 선택한 것이니 자신의 지나친 쟁투심에 이끌린 것이다.

여기서 나는 현실 속에서 여악처럼 일부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음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아마 위험의 가장자리까지 도달했을지 모른다.

1992년 파룬따파(法輪大法)가 널리 전해진 후 중국에서는 1억이 넘는 사람들이 수련을 했고 지금 파룬따파는 전 세계 100여개 나라에 널리 전파되었다. 하지만 1999년 7월 20일 장쩌민(江澤民) 집단이 수중의 권력을 이용해 파룬궁에 대한 무함과 탄압을 시작했다.

파룬따파는 진선인(眞善忍)을 선전하는 정법(正法)이니 정의를 탄압하는 것은 분명 사악한 것이다. 파룬따파가 세상에 널리 전해진 것은 천상의 변화에 따른 것이니 파룬궁에 대한 탄압은 틀림없이 하늘을 거스른 행동이다.

권력의 위협과 이익의 유혹 하에서 일부 공산당 추종자들과 공안・검찰・사법 인원들이 양심을 어기고 파룬궁 탄압에 가담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이 영도자의 배치에 따라 당의 이익을 수호하고 있다고 여기겠지만 사실 이는 여악의 변명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선(善)을 공격하고 천리(天理)를 위배한다면 이는 여악처럼 ‘주왕의 폭정을 돕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과거 역사에서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로마제국은 기독교를 탄압한 결과 스스로 나라를 망쳤고 독일의 나치는 유대인들을 학살한 결과 자신을 치욕의 십자가 위에 영원히 못 박아 놓았다. 《봉신연의》 중의 여러 신선과 도인들도 ‘주나라를 보호해 주왕을 주벌’하는 강자아를 방해한 결과 스스로 멸망하고 말았다.

오늘날 중국에서도 저유융캉, 보시라이, 쉬차이허우, 리둥성 등이 파룬궁 박해에 앞장섰다가 결국 모두 악보(惡報)를 당했다. 제대로 된 상식을 지닌 사람이라면 차를 운전하는데 앞에서 교통사고가 났다면 반드시 조심스레 운전하며 사고 지점을 피해가야 한다. 동서고금에 교훈을 주는 이렇게 많은 사례들이 있음에도 불과하고 여전히 ‘주왕의 폭정을 돕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어찌 여악의 전철을 다시 밟지 않을 수 않겠는가?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1551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