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머리장식에 불상(佛像)을 사용한 청나라

글/ 덕혜(德惠)

【정견망】

중화 오천년 역사는 조대(朝代)마다 모두 신불(神佛)을 공경해왔다. 차이라면 조대마다 각기 숭배하던 신령(神靈)이나 신에게 공경하는 방식에서 구별이 존재했을 따름이다. 중화전통역사상 최후의 통일왕조였던 대청(大淸)은 부처에 대해 공경을 표현하는 방식의 하나로 머리장식에 불상(佛像)을 사용했다.

사실, 머리장식에 불상을 사용하는 것은 과거 불교에서 부처님께 경의를 표현하는 방식의 하나였다. 예를 들어 불교에서 모시는 관음보살은 종종 머리에 천관(天冠)을 쓰고 있는데 천관 중에 아미타불의 불상이 있다. 이는 관음보살이 아미타불에 대한 경건한 신앙과 더할 바 없는 존중을 표시하는 것이다.

과거에 어떤 승려는 또 오불관(五佛冠)을 썼는데 다시 말해 다섯 존(拵)의 불상을 수놓아 부처님께 공경하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청나라에 이전에도 제왕(帝王)이 신불상(神佛像)을 머리 장식에 써서 경의를 표시한 사례들이 있었다.

가령 송나라 인종(仁宗)은 일찍이 관음상을 장식했고 명나라 황제들이 쓰던 투구 위에는 진무대제(真武大帝)와 호법신(護法神)의 금상(金像)이 있었다. 하지만 송나라 인종은 단지 개인적인 행동에 불과했을 따름이고 명나라 천자들이 갑옷이나 투구를 입을 기회는 극히 드물었다.

오직 청나라만이 제도적인 규정을 통해 황제의 조복관(朝服冠 일상적인 조회에서 착용하는 관모) 위에 불상을 머리장식으로 사용한 왕조였다. 여기서는 여러분들에게 이 방면의 역사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보고자 한다.

청나라 황제들이 불상을 머리장식에 사용한 것은 적어도 청 태조 누르하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사람 신충일(申忠一)이 쓴 《건주기정도기(建州紀程圖記)》 중 누르하치의 외모에 대해 “머리에 초피(貂皮 담비가죽)를 얹고 귀마개를 썼는데 그 위에 주먹 만한 상모(象毛 털장식)를 꽂았습니다. 또 은으로 연화대(蓮花臺)를 만들고 연화대 위해 사람모양을 만들어 상모 앞에 장식했습니다.”라고 했다.

즉, 누르하치가 쓴 면류관 위 연화대에 신불상 한 존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청나라가 산해관을 들어온 후 편찬된 《대청회전(大清會典)》이나 《황조예기도식(皇朝禮器圖式)》에는 보다 명확하게 황제가 착용하는 하조관(夏朝冠 여름철에 쓰는 모자)에 대한 규정이 나온다.

“위에 붉은 실로 주위(朱緯)를 만들고 앞에 금불(金佛)을 다는데 동북에서 나오는 야생 진주인 동주(東珠) 15개를 장식한다.”

사실 황제가 쓰는 관에는 조관(朝冠), 길복관(吉服冠), 상복관(常服冠) 및 행복관(行服冠)이 있었다. 이중 조관(朝冠)에는 여름과 겨울의 구별이 있는데 조관이란 황제가 조회를 하거나 제사를 지낼 때 쓰던 예모(禮帽)를 말한다.

이중 겨울에 쓰는 조관인 동조관(冬朝冠)은 원형으로 챙이 위로 꺾인 형태의 모자인데 해달이나 담비 또는 여우가죽으로 만들고 위에 붉은 실을 꼬아서 덮는다. 하조관(夏朝冠)은 사발을 뒤집어놓은 삿갓 모양으로 옥초(玉草)나 등나무 또는 대나무로 만들었다. 정수리에 기둥이 있는데 모두 3층으로 되어 있고 매 층마다 4마리 황금룡이 서로 끌어안고 있는데 입에는 진주 한 알을 물고 있다. 정상에는 큰 진주 한 알을 박아놓았다. 또 관첨(冠簷 관의 가장자리)위로 앞에는 금불을 장식하고 15개의 동주를 박아 넣었다.

황관(皇冠) 위의 이 금불은 일설에는 아미타불이라고 하고 또 다른 설에서는 석가모니불 또는 대일여래(大日如來)하고도 하는데 사실은 금불이 어느 부처를 상징하든 모두 청나라 황실에서 신불을 공경하고 믿었음을 입증한다. 이 역시 중화 5천년 문명이 역대로 모두 신불을 신앙해온 확실한 증거이다.

오늘날 중국인들은 보편적으로 신을 믿지 않으며 신앙이 없는데 이는 중공이 무신론 선전을 강요한 결과이다.

진정한 중화문화(中華文化)는 신을 믿고 공경하는 것으로 수련을 믿는 기초 위에 선 신전문화(神傳文化)다. 우리 조상들은 대대로 늘 신불을 공경해왔으며 이것이 바로 진정한 염황(炎黃)의 자손이다.

반대로 중공의 당문화는 무신론의 기초 위에 짜깁기한 사악한 설로 투쟁을 고취하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악화시킨다. 당문화는 사람들더러 신을 믿지 않게 하여 신앙이 없게 만들어 무제한도로 이익을 추구하게 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행을 저지르게 만든다. 오직 중공 당문화의 속박에서 벗어나야만 비로소 중화문화를 회복할 수 있고 신에 대한 사람의 신앙을 되찾을 수 있다. 신불(神佛)을 믿고 받들어야만 정정당당한 중화의 자녀가 될 수 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55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