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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도(易道)와 오행(五行) 1】 오행의 근원과 오행의 개념

글/ 조원(照遠)

【정견망】

《역경(易經)》의 도(道)와 오행이론은 전통문화의 중요한 구성부분으로 포괄하는 내용이 아주 많고 전통문화의 각종 방면과 관련되고 영향을 준다. 역대 조대(朝代)에서도 늘 많은 학자와 문인들 및 수도자들이 마음을 기울여 연구하고 대량의 저서를 세상에 전했는데 특히 전통의학, 천문지리 및 술수(術數) 예측학 중에 모두 계통적이고 완정한 논술을 남겼다.

아래에서 필자는 부동(不同)한 각도에서 오행과 역도(易道)에 관한 일부 기초지식을 소개하고자 한다. 문장에서 많은 관점은 필자 개인이 깨달은 것으로 또 일부 관점은 고인(古人)의 인식과 차이가 있다.

본문은 다음과 같이 9개의 절로 나뉜다.

1절: 오행의 근원
2절: 오행의 개념
3절: 오행의 수(數)
4절: 오행의 생극(生剋)
5절: 오행의 표기방식과 존재형식
6절: 오행과 팔괘(八卦)의 관계
7절: 역도의 전개형식
8절: 역괘(易卦)와 천상(天象)
9졸: 오행을 벗어남

오행의 근원

오행에 관해 세인들은 또 음양오행(陰陽五行)이라고 부르는데 엄격히 말하면 도가(道家)의 태극원리 중에서 음양과 오행의 내함에는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양자(兩者)가 관통하고 존재하는 층차 역시 서로 다르다.

태극원리 속에서 음양(陰陽)의 이치는 시종일관 관통되는 것으로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에 이르기까지 부동한 층차에 부동한 내함이 있는데 정심(精深)하고 현묘(玄妙)하며 포함하지 않는 것이 없어 도가에서 가장 근본적인 이치이다. 때문에 〈역전(易傳)〉에서는 “일음일양을 일러 도라고 한다(一陰一陽之謂道)”고 한 것이다. 도가에서 도를 말하지만 사실은 바로 음양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태극 역시 일음일양(一陰一陽)의 구조다.

반면 오행이론은 태극원리 중에서 단지 가장 낮은 층차의 이치일 뿐이지만 음양 이론이 그 속에 관통되어 있기 때문에 음양오행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래에서 간단하게 설명해보겠다.

태극원리에서 우주의 생성에 관한 기초이론은 바로 “무극이 태극을 낳는다(無極生太極)”는 것이다. 여기서 소위 ‘무극(無極)’이란 다시 말해 ‘무(無)’이자 또한 ‘도(道)’라고도 할 수 있는데 무극은 선천(先天)적인 존재다. 생(生)이란 낳고 창조한다는 것이다.

반면 ‘태극(太極)’은 바로 ‘유(有)’이니 다시 말해 ‘음양(陰陽)’이며 우주시공 및 그 속의 만물중생(萬物衆生)을 가리키는데 태극은 바로 후천의 존재이다.

무극에서 ‘무(無)’는 또 오(吾), 오(悟), 오(五), 물(物) 등의 함의를 지니며, ‘극(極)’은 바로 음양이니 다시 말해 극단(極端), 극한(極限), 극치(極致), 최종(最終)이란 함의가 있다.

이렇게 보면 무극(無極)은 바로 오지극(吾之極), 오지극(悟之極), 오지극(五之極)과 물지극(物之極)이다. 여기서 오(五)와 물(物)은 함의가 다른데 동일한 세계에서 도가에서 보는 것이 바로 오행이고 불가(佛家)에서 보는 것이 바로 사대(四大) 즉 지수화풍(地水火風) 등인 것과 같다. 그러므로 구체적인 함의는 태극 중의 만물중생에 대해 말하자면 무극이 바로 나(吾)의 최고체현이며 지혜(悟)의 최고체현이고 오행(五)의 최고체현인 동시에 물질(物)의 최고체현이다.

무극에 상대해서 말하자면 태극 속의 만물중생은 모두 나(吾)의 가장 낮은 표현이고 지혜(悟)의 가장 낮은 표현이며 오행(五)의 가장 낮은 표현인 동시에 물질(物)의 가장 낮은 표현이다. 또한 무극이 태극을 낳는 이치는 그 어떤 우주범위에도 적용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 어떤 우주 층차 중에서도 그 속의 만물중생에 대해 말하자면 우주의 생성원리는 모두 무극이 태극을 낳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부동한 층차 중의 생명이 인식하는 무극이란 모두 최종적인 무극이 아니며 보다 고층의 생명이 보면 모두 태극이다.

다만 최종(最終)최후(最後)의 무극만이 비로소 이 홍대(洪大)한 우주의 가장 근본인바 다시 말해 그가 바로 대도(大道) 자체인데 만약 불가의 개념으로 말하자면 그는 바로 대법(大法) 자체이고 세간의 칭호로는 바로 창세주(創世主)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언급하는 오행은 또한 대도(大道)의 체현이자 내함의 하나이니 다시 말해 창세주 지혜의 여의(如意)한 펼쳐짐이며 그가 바로 오행의 가장 근원인 오지극(五之極)이다. 동시에 오행의 경계(境界) 속에서도 “무극이 태극을 낳는” 이치와 부합하는데 아래에서는 오행의 개념에 대해 이어서 설명해보겠다.

2. 오행의 개념

오행의 개념에는 두 가지 방면의 내용이 있다.

첫째, 오행은 바로 하나의 고정된 명사로 두 글자는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오행은 우리 이 우주 중의 시공만물(時空萬物)을 구성하는 물질요소다. 전통문화 속에서 한자(漢字) 오(五)에 대한 해석은 전적으로 오행(五行)을 가리킨다. 때문에 ‘오행’을 말하자면 우선 하나의 정체적인 개념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사는 이 우주 중에서 시간과 공간을 포함한 일체 만물중생을 구성하는 가장 미시적이고 가장 원시적이며 가장 기초적인 물질입자가 바로 오행(五)이다. 그런데 이 경계에서 오행의 존재형식을 전통문화에서는 또 ‘선천일기(先天一炁)’ 또는 ‘원기(元炁)’라고도 하는데 바로 원시지기(原始之氣)다.

이 ‘원기(元炁)’가 바로 오행선천의 상태이며 다시 말해 무극의 상태와 비슷하다. 때문에 형태나 모양이 없고 음이나 양도 없으며 후천오행(금목수화토)의 원인(緣起)이 된다. 이 기(炁)라는 글자는 ‘기(旡)’와 ‘화(火=灬)’를 따르는데 여기서 화(火)는 에너지를 대표하고 기(旡)는 기(既)나 극(極)과 통하며 종결(終結)을 대표한다. 이 정체(整體)우주의 최종적이고 최후 최저층의 물질구성이 바로 오행인 것이다. 전통문화 속에서 이 경계의 오행은 또 ‘자연(自然)’이란 이름으로도 불린다.

둘째, 오행에는 5가지 물질형식이 있어 각기 금金 목木 수水 화火 토土로 나눌 수 있다. 이 5가지 물질형식은 오행의 5가지 정신 상태라고도 할 수 있는데 물질과 정신은 일성(一性)으로 동시에 존재하기에 이런 두 가지 설명이 모두 가능하다.

오행의 이 5가지 물질형식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는 모두 오행의 극단(極端)적인 체현이다. 그러므로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 안에는 그 각자의 미시적인 구성 속에 또 각각의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를 함유한다. 표면공간의 금목수화토는 단지 오행의 어느 한 방면의 특징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 때문에 세간 만물중생의 존재형식과 생명특징 역시 극단적이며 원융(圓融)하지 못한 것이다.

《주역·계사상전》에는 “형이상의 것을 가리켜 도(道)라 하고 형이하의 것을 가리켜 기(器)라 한다(形而上者謂之道,形而下者謂之器)”고 했다. 그렇다면 오행의 원시상태, 다시 말해 그 선천일기의 자연상태는 바로 도(道)와 가장 부합하는 상태이다. 다시 말해 원만하고 무루(無漏)한 상태이며 그는 바로 이 경계에서 대도(大道)의 가장 진실한 표현이다.

인류사회 공간 속에서 선천일기의 극단적인 표현은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 오행의 기로 구별되는데 고인은 오행의 기가 모이면 형태를 이루고 흩어지면 기가 된다고 했다. 형상과 모양이 있는 일체 만물중생(萬物衆生)은 모두 기(器)라 할 수 있는데 기(器)는 바로 오행의 현상이다. 다시 말해 자연현상이라 할 수 있으니 자연이 전개된 형상이다. 기(器)는 또 기(氣)와 발음이 같으니 기(器)가 바로 기(氣)가 된다. 세간의 일체 존재는 모두 기(氣)다. 사람이 세간에서 다투면서 명리를 추구하는 것은 쉽게 말해 모두 이 기(氣)를 위한 것[역주: 직역하면 분을 풀기 위해서란 뜻. 중국어의 기(氣)에는 화를 내거나 분풀이를 한다는 뜻이 있다]이다.

태극원리에서는 오직 대비와 차이만 있다면 그럼 그것은 바로 형상(形像)이 있고 음양(陰陽)이 있는 것이다. 때문에 오행이 구성하는 만물중생에는 모두 신체가 있으면 정신이 있고 음이 있으면 양이 있으며 사람도 남자가 있으면 여자가 있는 것이다.

적지 않은 현대인들의 오행에 대한 인식에는 사유방면에서 한 가지 오류가 존재한다. 가령 어떤 사람이 오행 분류는 비과학적이라면서 목(木)을 예로 들었다. 즉, 우리가 쓰는 탁자나 의자는 나무로 만든 것이니 당연히 오행의 목(木)에 속하지만 전통의학에서는 인체의 간담(肝膽) 역시 오행의 목(木)에 속한다고 본다. 하지만 이 둘은 근본적으로 같은 물질이 아닌데 그것들의 속성이 어찌 같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면서 잘 이해하지 못한다.

사실 이런 사유방식은 현대과학이 세계를 인식하는 사유방식일 뿐인데 그들은 표면현상에서 심층의 본질에 이르는 인식과정을 걸어간다. 하지만 사람의 사유방식은 모두 극단적인 것으로 이 공간의 모든 물질현상 역시 모두 오행의 극단표현이다. 때문에 현대과학 역시 단지 극단적인 결론만 얻을 수 있을 뿐이다. 본질까지 인식하려면 그럼 관념을 바꿔야 하며 현대과학을 학습하는 것과 같은 이런 사유방식으로는 대처할 수 없다.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에서 목(木)은 상대적으로 표면 물질현상을 말한 것이고, 이 목기(木氣)는 미시적인 존재형식에 속한다. 우리 이 물질 공간 중에서 표현되어 나올 때면 여의(如意)하지만 또 극단적인 표현으로 그 어떤 형상이든 될 수 있다. 가령 각종 화초나 수목(樹木), 채소나 농작물 내지는 수중식물 등이다. 그럼 사람 몸에서 표현되어 나오면 바로 간담(肝膽)이나 모발(毛髮) 등이 된다. 이외에도 목기는 또 그와 상응하는 색이나 맛 음률(音律), 성정(性情) 및 공간 방위나 시간 계절 등으로도 표현될 수 있으며 심지어 한자(漢字) 역시 모두 다 오행에 속한다. 만약 현대과학을 연구하는 사유방식으로 본다면 이런 도리는 모두 불가사의할 것이다.

《도덕경》에 “천하만물은 유에서 생겼고 유는 무에서 생겼다(天下萬物生於有,有生於無)”는 말이 있다. 만약 이 구절을 오행으로 이해한다면 유(有)는 바로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 오행의 기를 말하고 무(無)는 바로 오(五) 즉 원기(元炁)이자 선천일기(先天一炁) 내지는 원시지기(原始之氣)를 말한다. 무(無)는 오(五)와 통하며 아무것도 없는 그런 것이 아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을 현학(玄學)으로 인식하고 너무 허황하다고 여길 것이다. 사실 도가(道家)의 모든 경전은 다 도리(道理)를 중시하는데 도리란 무엇인가? 도가는 진(眞)을 닦는 것으로 소위 도리(道理)란 바로 진리(眞理)로 다시 말해 천지우주에 관한 가장 객관적이고 실재하는 이치로, 그 어떤 거짓이나 허황된 성분이 없는 것으로 현대과학과 비교해 봐도 더 정밀하고 엄밀할 뿐만 아니라 원만하고 누락이 없는 것이다.

오행이론에 대한 우리의 학습과 이해 역시 마찬가지 이치다. 허황하고 헛되며 아무런 실질적인 내함이 없는 그런 것들만이 현학(玄學)이 되는데 이런 것들은 모두 속인이 만들어낸 것으로 높은 경계 중에서 실질적인 대응이 없다.

(계속)

 

원문위치: http://big5.zhengjian.org/node/262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