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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기사(奇事): ‘남령수’ 반통-육우가 물을 감별한 이야기

글/ 소성(小星)

【정견망】

중국인 속담에 “우물물은 강물을 범하지 않는다(井水不犯河水)”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각자 서로의 영역이 있어서 누구도 건드리지 못한다는 말이다. 사실 여기에는 또 하나의 이치가 담겨 있다. 바로 일체는 다 생명이 있고 그것 고유의 특성이 있다는 뜻이다. 현대과학에서는 물은 단지 일부 미네랄 함량만 다를 뿐 별다른 구분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고인(古人)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다음 일화를 보자.

1. 물통의 반이 “남령수”인 전설

당나라 원화(元和) 9년 봄, 장우신(張又新)이 막 과거에 붙은 후 동시에 시험에 붙은 사람들과 천복사(薦福寺)에서 서로 모이기로 약속했다. 장우신과 이덕유(李德裕)가 먼저 도착하여 서쪽 행랑의 현감(玄鑑) 스님 방에서 쉬고 있었다. 공교롭게 남방에서 한 스님이 들어왔는데 그는 물건이 든 포대를 내려놓고 휴식했다. 포대 속에는 책 몇 권이 있었다. 장우신은 손이 가는대로 한권을 꺼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다. 글자가 작고 조밀하며 모두 잡기(雜記)였다. 책의 말미에 《저수기(煮水記-물을 끓이는 기록)》라는 것이 있었다.

책 속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당태종 때 이계경(李季卿)을 호주(湖州) 자사로 봉했다. 이계경이 부임하러 가는 도중 유양(維揚)에 도착하여 그곳에 은거하고 있던 육홍점(陸鴻漸 역주: 《다경(茶經)》의 저자 육우를 말한다)을 우연히 만났다. 이계경은 육홍점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그를 만나자 정말 옛 친구를 만난 듯이 기뻐하며 함께 군성(郡城)으로 향했다.

양자역(揚子驛)에 도달하자 거의 식사 때가 되었다.

이계경이 말했다.

“육 선생은 다도로 천하에 명성이 있는데 양자강 남령수(南零水)는 보통의 물보다 특별하다고 했소. 오늘 마침 그대의 다도와 이곳의 좋은 물을 만났으니 가히 천년에 한번 만날 수 있는 기회라 할 수 있으니 어찌 기회를 그냥 지나칠 수 있겠소?”

그리고는 신중하고 충직한 군사를 뽑아 물통을 가지고 작은 배를 저어 남령 깊은 곳에 가서 물을 길어오게 시켰다.

육홍점은 다구(茶具)를 닦으며 그곳에서 기다렸다. 오래지 않아 물이 도착했다. 그런데 육홍점이 바가지로 물을 뜨면서 말했다.

“장강의 물은 맞는데 남령의 물이 아니라 마치 강변의 물처럼 보이는군.”

그러자 물을 떠온 군사가 말했다.

“제가 물 깊은 곳까지 배를 몰았고 본 사람도 백 명이 넘는데 어찌 감히 거짓말로 속일 수 있겠습니까?”

육홍점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물을 대야에 부었다. 반쯤 쏟고 나서는 급히 멈추더니 또 바가지로 물을 뜨며 말했다.

“여기부터 아래에 있는 것이야말로 진짜 남령의 물이로군.”

그러자 물을 떠온 군사가 깜짝 놀라 무릎을 꿇고는 이실직고했다.

“제가 남령에서 물통을 안고 강 언덕에 도착했는데 그 사이에 배가 흔들려서 물이 절반정도 쏟아졌습니다. 물이 부족할까 두려워 강변의 물을 떠서 물을 가득 채웠습니다. 육 선생님의 감별 능력은 정말 신기합니다, 누가 당신을 속일 수 있겠습니까?”

이계경도 크게 놀라 칭찬했고 그를 따르던 수십 명도 다 놀랐다.

이계경이 육홍점에게 말했다.

“기왕 그렇다면 당신이 경험한 곳 중에서 어느 곳의 물이 좋고 나쁜지 다 판단할 수 있겠군요.”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초(楚) 지역의 물이 최고이고 진(晉) 지역의 물이 최하입니다.”

이계경은 육홍점에게 각 지방 물의 등급을 구술하도록 했다.

(자료출처: 《수경(水經)》)

2. 생명의 특징

세상 만물은 사실 모두 생명의 일면이 있고 또한 자신만의 특성이 존재한다. 육홍점은 물의 특성을 잘 알고 있었으니 마치 사람이 오랜 벗의 성격이나 기질을 아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물의 출처를 구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남령수인지 아닌지 구별하는 것은 아마 어렵지 않았을 수 있겠지만, 강변의 물을 구별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두 곳의 물을 함께 혼합해도 섞이지 않았는데 이는 아마도 생명 일면의 표현일 것이다. 이것이 “우물물은 강물을 범하지 않는다”는 속담과 같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서로 다른 생명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말이 나온 김에 자연스럽게 “만물은 영(靈)이 있다”는 것과 또 저 악명 높은 ‘무신론’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우주는 풍부하고 다채로운 곳으로 일체는 다 생명의 일면이 있으니 사람이 있고 신(神)이 있으면 또 귀(鬼)도 있다. 육홍점은 진실로 생명의 일면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비로소 정확하게 그것들을 판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탐정물 보기를 좋아하는데 가령 적인걸(狄仁傑) 이야기 같은 것이다. 현대인들은 적인걸의 생각이 주도면밀하고 관찰력이 뛰어나서 여러 사건을 파헤쳤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전의 소설 기록을 보면 적인걸은 줄곧 원혼(冤魂)이나 또는 신령(神靈)의 가르침과 점화를 받아 사건을 해결한 것이지 결코 무슨 주도면밀한 생각으로 해결한 것이 아니다.

신(神)은 늘 존재하며 바로 우리 곁에 계신다. 단지 ‘무신론’이 진상을 거절하도록 하나의 담을 쌓아 우리로 하여금 신의 진상을 이해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을 뿐이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695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