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신전문화 중국역사연구모임
【정견망】
1. 현조(玄鳥)가 상을 낳다
하조(夏朝)를 말하면서 대우(大禹)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상조(商朝)의 역사를 말하자면 마땅히 그 기원부터 말해야 한다.
“하늘이 현조에게 명령해 내려가 상을 낳게 했다(天命玄鳥,降而生商)”
《시경》에선 불과 8글자로 상(商)의 기원을 설명하고 있다. 상의 시조 설(契)에 대해서는 한 가지 아름다운 일화가 전해진다.
《사기‧은본기》에서는 “은(殷)나라 설(契)의 모친은 간적(簡狄)이며 유융씨(有娀氏)의 딸이자 제곡(帝嚳)의 두 번째 부인이다. 세 사람이 목욕을 하러 갔다가 현조(玄鳥)가 알을 떨어뜨린 것을 보고 간적이 받아서 삼킨 후 임신이 되어 설을 낳았다.”고 한다.
여기서 현조(玄鳥)란 검은 가운데 붉은 색을 띤 큰 새를 말한다. 간적은 이 새가 떨어뜨린 알을 보고 마음에 감응이 있어 곧 이를 받아 삼킨 후 임신해서 설을 낳았다.
설의 출생 일화에 대해 절대 다수 사람들은 이를 신화(神話)라고 한다. 이 말은 맞다. 사실 세계 어느 민족이든 근원은 모두 신화이며 초기로 갈수록 더 신(神)에 다가간다. 역사가 설・대우・기 이 시대에 이르렀을 때 신적(神迹)은 이미 더 이상 삼황오제(三皇五帝) 태고시대처럼 일상생활 속에서 직접 드러날 수 없었으니 반신화(半神話)라 하는 게 좀 더 정확할 것이다.
설뿐만 아니라 대우와 기의 출생 역시 모두 일반인과는 달랐다. 우의 모친은 율무에 감응해 임신했고, 기의 모친은 큰 발자국에 감응해 임신했다. 이들보다 앞선 시대에 복희(伏羲)와 염제(炎帝)는 용에 감응해 태어났고, 황제(黃帝)는 전기에 감응해 태어났으며, 백제(白帝 역주: 소호씨)는 별에 감응하고 무지개에 감응해 태어났고, 전욱(顓頊)은 요광(瑤光 역주: 북두칠성의 일곱 번 째 별 알카이드)에 감응해 태어났다. 또 이들보다 이후 시대에도 적지 않은 성현들이 이런 방식으로 인간 세상에 왔지만 그러나 후대로 내려갈수록 더욱 줄어들었다.
역사는 ‘성주괴멸(成住壞滅)’의 법칙에 따라 앞으로 나아가기에, 성현이 세상에 내려오는 방식 역시 상응하는 변화가 발생했다. 후세의 사료 중에도 일반인들과는 다른 기이한 현상[異象]과 예언 등의 기록이 여전히 많다.
《사기》에서는 “성인은 모두 아버지가 없고 하늘에 감응해 태어났다.”고 한다. 이 말이 좀 절대적이긴 하지만 아주 도리가 있다. 팔괘를 발명한 복희나 백가지 약초를 맛보고 병을 치료한 신농, 물을 다스린 대우, 도덕의 교화를 널리 펼친 설, 백성들에게 농사를 가르친 기 등등. 또 아주 많은 성인이나 문화 전파자나 영웅들은 종종 감생(感生 역주: 감응하여 태어나는 것)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사실 이런 일은 외국에도 아주 많았다. 가장 유명한 사례가 바로 예수의 내력이다. 그는 모친인 마리아가 신(腎)의 빛에 감응해 임신했고 심지어 그의 이름에도 이런 의미를 담고 있다. 설의 시대에도 신언(神言)・신적(神迹)은 여전히 곳곳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감생 외에도 기이한 외모[異相]나 각종 기이한 일이나 기이한 현상[異象]이 있었다.
지상의 만민 역시 세상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는 모두 신령(神靈)이 세상에 내려와 배치한 것임을 알고 있다. 역사가들이 “현조가 상을 낳았”음을 정사(正史)에 기록한 것은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아주 분명히 말한 것이다. 몇 천 년 후의 사람들이 믿는지 여부는 상관하지 않았다.
이에 아름답고 건장한 현조는 상족(商族)의 토템이 되었다.
2. 시조가 된 설
인간 세상에 내려온 상조(商朝) 설의 사명은 바로 순임금을 보좌하는 것이었다. 그는 순임금의 ‘8원(元)’ 대신 중 하나다. “설은 성장해서 우가 물을 다스리는 것을 도운 공이 있다.” 설은 대우의 치수를 돕도록 파견되었고 13년 후 우가 치수에 성공하는데 그 역시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
요임금이 세상을 떠난 후 제후들의 큰 모임에서 순임금은 설과 대우, 익(益), 직(稷), 고요 등에게 각각 새로운 직책을 맡겼는데 설은 사도(司徒)에 임명되었다. 사도란 교육을 관장하는 직책으로 지금으로 말하면 교육부 장관에 해당한다.
순임금이 말했다.
“설아, 백성들이 돈독하지 않고 오품(五品)이 순조롭게 지켜지지 않으니 그대가 사도가 되어 오교(五敎)의 가르침을 공경히 펼치되 관대하게 하라.”
여기서 ‘백성(百姓)’이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서민이 아니라 성씨(姓氏)를 지닌 귀족을 통칭한 것이다. 삼대(三代)에 서민은 이름만 있고 성씨는 없었으며 오직 작위나 땅을 가진 귀족만이 성씨를 지녔다.
또 오품(五品)은 바로 오상(五常 역주: 오륜)을 말하는데 부(父)・모(母)・형(兄)・제(弟)・자(子) 사이의 관계이니 가족 내 인륜(人倫)의 상리(常理)를 말한다. 오상을 교육하는 것을 가리켜 오교(五敎)라 하는데 아버지는 의롭고, 어머니는 자애하며, 형은 우애가 있고, 동생은 공손하며, 아들은 효순하는 5가지 윤리도덕 교육을 말한다.
순임금은 지극한 효성과 우애로 하늘의 보우를 받았고 또 천하 사람들의 추대를 받았다. 요임금을 도와 정사를 행할 때 요임금이 순에게 오교를 추진하라고 명했다. 그가 신중하고 독실하게 실천하자 사람들도 기꺼이 준수하고 따랐으며 백성과 정사에 모두 도움을 주었다. 순임금은 이렇게 자신이 다 이루지 못한 책임을 설에게 넘기면서 이미 공경하게 펼쳤으니 더 관대하게 할 것을 요구했다. 즉, 서서히 물에 잠기듯이 하되 조급하게 하지 말고 온화하고 관대하게 하라는 뜻이다.
“공업(功業)이 백성에게 드러나 백성이 평안해졌다”는 기록을 보면 당시에 설이 상당히 호소력 있는 인물이었음을 엿볼 수 있다. 또 그가 맡은 사도란 직책 역시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맹자는 그에 대해 “(순임금께서 설을 사도로 삼아)인륜을 가르치시니 부자 사이에는 친함이 있고,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의리가 있으며, 부부 사이에 구별이 있고, 장유(長幼) 사이에 차이가 있으며, 벗 사이에는 믿음이 있게 했다.”고 했다. 이것은 설에 대한 후인들의 평가 중에서 비교적 대표적인 견해이다.
순임금은 설에게 지금의 하남성 상구(商丘)시 일대에 봉지를 하사해 ‘상(商)’이라 했다.
설은 모친의 성(姓)이 적(狄)이지만 순임금이 ‘자(子)’를 씨(氏)로 하사했다. 진한(秦漢) 이후 점차 성과 씨의 구별이 사라지면서 ‘자’는 성(姓)으로 변했고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성씨의 하나가 된다. 중국의 성씨는 상당히 의미가 있는데 혈통과 공업(功業)을 대표한다. ‘자’의 후손들이 나중에 상조(商朝)를 건립했고 ‘자’성은 상조 귀족의 성씨가 되었으며 이후 백여 가지 성씨로 파생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언급하기로 한다.
설은 또 설(卨)이라고도 불리고 알백(閼伯)으로 존칭되었다. 그의 후손들은 여러 차례 도읍을 옮겼고 나중에 ‘은(殷)’으로 천도했다. 이곳에 도읍을 정하고 몇 백 년이 지났기 때문에 시조인 설 역시 후인들에게 은설(殷契)로 불렸다. 그의 비범한 출생에 비춰보면 그는 가히 ‘현왕(玄王)’이라고도 불릴 만하다.
백성들의 사상을 교화하는 것 외에도 설은 또 한 가지 중요한 일을 맡았다. 《좌전(左傳)》에 따르면 “도당씨(陶唐氏 요임금)의 화정(火正) 알백이 상구에 살면서 대화(大火)에 제사를 지냈고 대화의 출몰을 기준으로 절기를 정했다”고 한다. 즉 알백(설)이 상구에 거주하면서 지상의 생령(生靈)을 대표해 대화성(大火星)에 제사를 지냈으며 별과 천상을 관찰해 하늘의 뜻을 이어받아 절기를 분명히 정하고 백성들에게 농사시기를 알려주었다.
여기서 대화(大火)란 대진성(大辰星)을 말한다. 당나라 때 두예(杜預)는 주석에서 “화정이란 관직은 화성에 제사를 지낸다. 진월(辰月 음력3월)에 순화성(鶉火星)이 남쪽에서 어두워지면 백성들에게 불을 놓게 한다. 술월(戌月 음력 9월)에 대화성이 태양 아래로 들어가면 밤에 볼 수 없으니 백성들에게 불을 거두게 하고 불을 놓지 못하게 한다.”고 했다.
즉, 절기가 3월 말에 진입하면 대화성이 하늘에 나타나는데 알백이 사람들에게 불을 놓아 봄 농사를 준비하게 했다. 이 시기를 잘 장악해야 하는데 너무 일찍 불을 놓거나 늦으면 모두 수확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9월에 황혼 무렵 대화성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가 되면 설이 사람들에게 집에서 불을 놓고 밖에서는 불을 놓지 못하게 했다.
하남성 상구시 휴양(睢陽)구에는 지금도 고대 천문대 유적이 남아 있는데 알백대(閼伯台) 또는 화신대(火神台)・화성대(火星台)라고도 한다. 이곳에 천문대를 세운 이유는 천상(天象)의 별자리가 지상의 주성(州城)과 대응되는데 상구가 바로 화성에 대응하기 때문이다. 상구는 일찍이 송(宋)나라의 도읍이었다. 《좌전 소공17년》에 송이 대화에 해당한다고 했다.
알백과 상구 및 화성의 관계에 대해 좀 더 설명해보자.
알백 설(契)은 대화성의 운행궤적에 근거해 사람들에게 봄이면 밭을 갈고 가을에 수확하는 것을 지도했다. 또한 이를 근거로 1년의 자연적인 변화 및 작황의 좋고 나쁨을 측정했다. 나중에 설의 화정이란 직책은 손자인 상토(相土)에게 전해졌다.
대우가 부락연방식의 하조(夏朝)를 건립한 후 설의 ‘상’은 하나라의 제후국으로 하나라 동쪽에 있었다. 설의 14대 손인 성탕(成湯)이 상조(商朝)를 건립하고 해외까지 무역하면서 ‘상’의 경영에 체계가 잡혔다.
참고문헌:
1. 《시경》
2. 《논형》
3. 《사기》
4. 《신약성경》
5. 《상서정의》
6. 《통지》
7. 《국어》
8. 《좌전정의》
9. 《사기지의(史记志疑)》
10. 《십삼경주소‧상서정의》
11. 《맹자》
12. 《순자》
13. 《대대례기》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377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