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내의(來儀)
【정견망】
용수(龍樹)는 대승불교의 창시인으로 약 2~3세기에 출생했으며, 남부 인도의 바라문 출신이다. 전설에 따르면 아버지의 성이 용(龍)이고, 어머니가 나무 아래에서 그를 출생했기 때문에 용수(龍樹)라고 불렸다.
용수는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박학다식하고 암기를 잘했다. 천문, 지리는 물론이고 비밀스런 그림이나 서적 등 모르는 게 없었으며 젊어서부터 이미 명성이 아주 높았다.
청소년 시기, 용수보살은 세 친구들과 함께 은신술을 배웠는데 밤마다 몰래 왕궁에 들어가, 멋대로 즐겼다. 나중에 일이 탄로나 용수의 세 친구들은 모두 왕에게 붙잡혀 죽임을 당했다. 용수만 다행히 탈출했다. 이 겁난을 통해 용수는 각성했고 마침내 불문에 귀의햐 수행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어느 산 위에 있는 불탑을 찾아가 한 사문(沙門 승려)에게 출가시켜달라고 요청했다. 이 불탑에서 약 90여일을 지낸 후 모든 경론(經論)을 다 읽었다. 더 이상 다른 경문을 얻을 수 없게 되자 용수는 스승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산을 내려갔다. 나중에 설산(雪山 히말라야 산)에 가서 한 노 비구에게 간청해 《마하연(摩訶衍)》이란 대승경전을 얻어 마음을 가라앉히고 연구에 몰두했다.
석 달 후, 경전을 충분히 이해하고 또 외웠지만 여전히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이에 여러 나라를 돌며 각종 경론을 수집했다. 도중에 여러 문파의 불학자(佛學者)들과 토론을 했지만 어느 누구도 그를 이기지 못했다. 점차 교만한 마음이 생긴 용수는 분수에 맞지 않는 생각이 싹텄고, 따로 파를 만들어 제자를 널리 받아들이고 자신의 학설을 선양하려 했다.
바로 이때, 눈빛이 형형하고 긴 수염을 지닌 한 비구가 특별히 그를 찾아와서는 말했다.
“젊은 친구, 우물 안 개구리의 소견을 가져서는 안 되네. 자네 학식이 아무리 높다한들 부처님을 뛰어넘을 수 있겠는가? 자네 나와 함께 가세, 자네에게 대승경전을 보여줄 테니 보고나서 결론을 내리게.”
이 대룡(大龍) 비구가 그를 깊은 산 석굴로 인도하더니 몇 걸음 들어가자 뜻밖에도 또 다른 세계가 나타났다. 금빛찬란한 전각이 나타났으니 이것이 바로 바다 용왕의 궁전이었다. 대룡 장로가 그를 용궁으로 인도한 후 물 밑에 있는 용궁 장경각(藏經閣)을 열었다. 그러자 그 안에는 세상에 희귀한 경전들이 셀 수 없이 많았고 보고(寶庫)에서 은은한 향기가 뿜어져나왔다. 이에 용수는 정말 만족스러웠다.
그는 마치 굶주린 사람이 밥을 탐하듯 밤낮으로 책을 읽었다. 대룡 장로가 밀법(密法)을 전해주니, 시야가 단번에 탁 트였다. 그는 용궁에서 아주 오랜 시간을 지냈고 마침내 교리(敎理)를 깨달았다. 이 외에도 대룡 장로는 또 그에게 일부 신통술을 전수했다. 스승과 헤어진 후 용수는 다시 남인도로 돌아갔다. 이때부터 불법(佛法)을 대대적으로 선양해 대승불교를 널리 보급시켰다.
용수보살은 살아 있을 때, 저술이 풍부했고 성취가 탁월해 ‘천부 논의 주인(千部論主)’이라 불렸다. 또 중국 8개 종파(선종, 정토, 율종, 밀종 등)의 조사가 된다.
용수보살이 신통력을 펼친 이야기는 아주 많다. 한 번은 그가 남천축의 철탑(鐵塔)을 참배할 때, 일찍이 일곱 알의 백개자(白芥子)로 철탑을 열고 탑 안으로 들어갔다.
당시 바라문 상사(上師)가 하나 있었는데 주술(呪術)을 할 줄 알았다. 그가 속으로 질투심이 생겨 용수와 우열을 겨뤄보려 했다. 그는 국왕에게 요청해 승부를 지켜보게 했다. 시합 당일, 국왕과 용수가 먼저 정전에 앉았다. 바라문이 나중에 도착해서 국왕이 이렇게 용수를 존중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더 언짢아졌다. 이에 대전 앞에 나아가 법술을 행하자 눈앞에 당장 광대한 황금 연못이 드러났고 물결이 찰랑거렸다. 한가운데 천개의 입을 지닌 연꽃이 올라왔고 그 바라문이 그 위에 거만하게 앉아서는 말했다.
“용수여, 내가 연꽃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보라, 마치 하늘의 신과 같은데 네가 땅 밑에 처박혀 있는 것이 비천하고 가소롭구나. 네가 감히 나와 변론할 수 있겠느냐?”
용수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주문을 외워 큰 머리와 6개의 거대한 상아를 가진 흰 코끼리로 변화시킨 후 그 위에 앉아, 황금 연못을 돌았다. 그 후 연못으로 들어가 코끼리 코로 그 바라문을 아주 높이 치켜들어 땅바닥에 내동댕이치자 연못과 흰 코끼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다만 다리가 부러지고 허리를 다친 바라문의 가련한 모습만 남았다. 그는 자신이 용수의 적수가 아님을 알고 땅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앞으로 불문에 귀의할 것을 간청했다.
당나라 현장(玄奘) 대사의 《대당서역기》에 따르면 용수는 만년에 일종의 장수약을 만들었다. 백년이 지나도 노쇠하지 않았고 국왕 역시 장수했다. 그러자 오십이 넘은 태자가 다급해져서 어머니에게 말했다.
“이래서야 제가 언제 보위를 이을 수 있겠습니까?”
왕후가 대답했다.
“불교에서는 모든 것을 버려야 하며 심지어 목숨까지도 보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금 사람들은 모두 용수를 보살이라 부르니 네가 가서 한번 보시해 달라고 청해 보거라.”
이에 태자가 용수 앞에 와서 무릎을 꿇고 간청했다.
“용수보살님, 저는 불행히도 한 가지 병에 걸렸는데 사람의 뇌가 아니면 고칠 수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 태평한 시기에 어디에 가서 사람의 머리를 구하겠습니까? 오직 보살님께 보시를 베풀어주십사 청할 수밖에 없습니다.”
용수는 왕자가 온 뜻을 알고 대답했다.
“내가 그대의 요구를 들어줄 수는 있지만 단지 네 부왕께서도 장수하지 못하실 것이다. 그대가 불효의 죄를 짊어져야 한다.”
왕자는 아무 말 없이 고개만 조아렸다. 용수가 곧 손에 마른 풀을 취고 입김을 불자 예리한 검으로 변해 즉시 자진했다. 국왕은 이 이야기를 듣고 슬픔을 금치 못했습니다. 장수약을 만들 사람이 없으니 오래지 않아 곧 죽었다.
다른 전설에서는 남인도에서 용수보살이 일찍이 남부 코살라 국왕을 불교에 귀의시키고 또 무수한 외도(外道)들을 불교에 귀의시켰는데, 이 때문에 소승 수행자 및 여러 외도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용수보살이 스스로 입적했다고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426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