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신전문화 중국역사연구모임
【정견망】
성탕 걸을 쫓아내다(成湯放桀)
하걸은 남소로 유배되었고 《사기‧하본기》에서는 “쫓겨나 떠돌다가 죽었다”고 했다.
《일주서(逸周書)》에는 하걸이 남소(南巢)로 추방된 과정이 더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탕이 걸을 몰아내기 전에 중야(中野)라는 지방에 머물렀다. 하나라 백성들이 이 말을 듣고는 모두들 재산을 팽개치고 노인과 아이를 부축해가며 성탕을 찾아오니 성읍(城邑)이 텅텅 비었다.
그러자 걸이 성탕에게 찾아와 말했다.
“나라(國)가 나라로서 제구실을 하려면 집(家)이 있어야 하고 집이 집으로 제구실을 하려면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집도 없고 사람도 없지만 그대에게는 사람이 있으니 부디 임금의 자리에 오르기 바랍니다.”
그러나 탕이 말했다.
“안됩니다. 옛날에 우임금께서는 법도를 제정해 사(士)와 백성들을 명확히 교화하셨습니다. 지금 군왕께서 왕도를 파괴하고 정치를 해치니 사와 백성들이 미혹된 것입니다. 제가 왕을 대신해 설명하겠습니다.”
이에 백성들이 어쩔 수 없이 다시 걸에게 돌아와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박(亳)에서 간 것은 성탕을 임금으로 모시고 그곳 백성들의 일손을 돕기 위해서였건만 하필이면 당신으로 임금을 바꾼단 말이오?”
이에 걸과 그를 따르는 5백의 부하들이 남쪽으로 천리를 옮겨가 부제(不齊)란 곳에 머물렀다. 그러자 그곳 백성들이 앞을 다퉈 중야에 있는 성탕에게 갔다. 걸이 다시 성탕을 찾아와서 말했다. “당신께 나라를 바치고자 합니다.”
하지만 성탕이 대답했다.
“안됩니다. 제가 임금님을 대신해 저들이 다시 돌아가도록 설득해보겠습니다.”
제(齊) 지역 백성들이 제 땅으로 돌아와서 하걸에게 재차 성탕에게 양위할 것을 요구했다.
걸과 오백의 부하들이 어쩔 수 없이 제를 떠나 노(魯) 지역으로 이주하자 그곳 백성들이 또 성탕을 찾아갔다.
걸이 또 성탕을 찾아와서 간청했다.
“당신이 임금이고 저는 외부인입니다. 사람들이 말하길 ‘저들이 우리의 이치가 옳다고 여겨야지만 내가 장차 계속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역주: 백성들의 민심이 성탕에게 기울어 하걸을 임금으로 인정하지 않고 양위할 것을 요구했다는 의미]
성탕이 말했다.
“이는 임금님의 땅이고 저들은 당신의 백성들인데 어찌하여 저들을 버리십니까?”
하지만 성탕은 끝내 하걸을 막을 수 없었다.
이에 성탕이 말했다.
“임금님을 따르고 싶은 이들은 따라 가도록 하라!”
이렇게 하여 하걸과 그의 부하 5백 명이 노를 떠나 남소(南巢)에 정착했다.
성탕이 이렇게 겸손하게 양보했지만 하걸은 오히려 함부로 하지 못했다.
《사기‧하본기》에는 하걸(夏桀)이 죽기 전에 “내가 끝내 하대(夏臺)에서 탕을 죽이지 않아 이 지경에 이른 것이 후회스럽다.”라고 했다.
중훼가 고(誥)를 짓다
성탕은 하걸을 쫒아낸 후에도 기뻐하지 않았고 천명(天命)이 자신에게 있으니 어길 수도 없었다. 그는 이에 백발의 고령에도 직접 출정해 “내가 도끼로 곤오를 정벌했고 마침내 걸을 정벌했다”고 했다. 즉 자신이 직접 천명을 상징하는 부월(斧銊 도끼)을 들고 곤오를 토벌했으며 이어서 하걸까지 토벌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성탕은 수양이 있었고 겸손했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얼마간 부끄러움이 있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무력을 사용해 하나라 정권을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그는 “나는 후세에 나를 구실로 삼을까 두려워하노라.”라고 했다.
이에 성탕의 대신(大臣) 중훼가 《중훼지고(仲虺之誥)》란 글을 써서 하늘이 왜 하걸이 나라를 잃고 백성을 잃게 했는지 또 왜 상족(商族)을 선발해 하조(夏朝)를 대신하게 했는지 이유를 밝혔다.
그는 우선 이렇게 말했다.
“아아! 하늘이 만백성을 낳았으니 사람에게는 본래 각종 욕망이 있습니다. 만약 임금의 지도가 없다면 어지러워지기 때문에 하늘은 총명한 사람을 낳아 이를 다스리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라 왕이 덕을 망치고 백성들을 도탄에 빠지게 하자 하늘이 특별히 임금님께 용기와 지혜를 주시어 만방(萬邦)을 당당하게 바로잡아 대우가 이루신 옛 일을 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그 법통을 이어받아 하늘을 뜻을 받들어 따라야 합니다.”
그는 또 설명했다.
“하나라 임금이 큰 죄를 지어 하늘을 속이고 깔보는 내용으로 아랫사람들에게 명령하자 상제께서 좋지 않게 여기시어 특별히 임금님을 골라 천명을 주시고 백성들을 이끌고 하나라 왕을 제거하게 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임금님께서는 소리와 여색을 멀리 하시고. 자신을 위해 재물을 늘리지 않으셨으며, 덕이 높은 사람에게 관직을 주시고, 공이 있는 사람에게 후한 상을 주셨으며, 다른 사람을 마치 자신처럼 믿으셨으며 허물을 고치는데 인색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임금님의 너그러움과 어짊은 억조(億兆) 백성들이 모두 알고 있습니다.”
즉 죄가 크고 사악한 사람을 폭력으로 제거하는 것은 백성과 사직을 구하기 위한 것으로 정당하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그는 또 말했다.
“처음에 갈에서 정벌을 시작해 동쪽으로 정벌하면 서쪽 백성들이 원망하고 남쪽으로 정벌하면 북쪽 사람들이 원망하며 ‘어찌 우리를 나중에 하시는가?’ 라고 했습니다. 또 임금님이 가시는 곳의 백성들은 집집마다 서로 치하하며 ‘우리 임금님을 기다렸는데 임금님께서 오셨으니 이제는 살았다’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중훼는 “마무리를 신중하게 잘 하시려면 오직 시작을 잘 하셔야 합니다. 예(禮)가 있는 자를 번성하게 하시고, 어둡거나 난폭한 자를 넘어뜨려, 천도(天道)를 공경하고 높이셔야 천명(天命)을 길이 보전하실 수 있을 겁니다.”라고 했다.
이 중훼의 선조가 바로 유명한 해중(奚仲)으로 하왕조의 차정(車正)이었다. 중훼 가족의 봉지가 설(薛)이었다. 상탕이 상나라 제후로 있을 때 중훼 역시 부락의 수령으로 하 왕조 설후국(薛侯國)의 군주였다. 그는 성탕의 어짊과 밝음을 사모해 설나라와 상나라 양국 사이에 탄탄한 우호관계를 맺었다.
두 사람의 조상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친밀하게 협력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후인들이 볼 수 있는 것은 상토(相土)가 훈련시킨 말에 굴레를 씌워 수레를 끌게 했을 것이다. 인류 문명은 늘 이들 신인(神人)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중훼가 태어날 때 천둥과 번개가 치면서 큰 비가 쏟아졌는데 천둥소리가 “훼훼(虺虺)”했고 번개가 마치 긴 뱀처럼 춤을 췄다고 한다. 훼는 또 긴 뱀을 의미한다. 또 집에서 둘째 아들이었기 때문에 부친의 그의 이름을 중훼(仲虺)라고 한 것이다.
이처럼 명군(明君)에게는 반드시 유능한 신하가 있으니 중훼는 성탕 ‘혁명’에 참전한 인물이었다. 상조(商朝)가 성립될 때 성탕에게는 두 명의 뛰어난 재상이 있었으니 중훼가 바로 성탕의 좌상(左相)이었다.
참고문헌
1. 《상서정의》
2. 《사기》
3. 《통지》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3806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