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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에 대한 고금의 논설 2: 음장생(陰長生)

이각(李覺)

【정견망】

음장생(陰長生)은 신야(新野) 사람으로 한나라 황실의 친척으로 귀족가문에 태어났으나 부귀 영화를 좋아하지 않고 수도(修道)에 뜻이 있었다. 이때 마명생(馬鳴生)이 세상을 제도한다는 말을 듣고 곧 그를 찾아가 가르침을 구했다. 스스로 하인의 역할을 맡아 직접 스승의 신발을 벗겨주는 노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명생은 도의 이치를 가르쳐주는 대신 늘 시정(時政)이나 농사에 대해서만 언급했고 이렇게 20년이 지났다. 당초 마명생을 따랐던 12명 중 오직 음장생 한 사람만 남았다. 명생이 그에게 “너는 진실로 도를 얻을 수 있겠다”라고 말했다. 마침내 청성산(青城山)에 올라가 황토(黃土)를 구워 금(金)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었고 서쪽에 단을 세우고 《태청신단경(太清神丹經)》을 전수해준 후 작별하고 떠났다.

장생은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단을 만들어 단을 성취했다. 하지만 반만 복용해 즉각 하늘로 올라가진 않았다. 황금 10만 근을 연마해 이유를 따지지 않고 천하에 가난한 이들에게 모두 나눠주었다. 세상을 두루 주유했는데 처자식이 따라다녔고 온 가족이 다 장수했다. 세상에서 300여 년을 살다가 나중에 평도산(平都山) 동쪽에서 백일비승(白日飛升)했다.

9권의 책을 저술했는데 책에서 “상고(上古)에는 신선이 아주 많아서 다 논할 수 없을 정도다. 한나라가 흥성한 이래 45명이 있었고 나까지 포함하면 모두 46명이다. 그중 26명이 시해(尸解)했고 나머지는 모두 백일승천했다.”고 썼다.

포박자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듣기에 언서(諺書)에 이르길 ‘밤에 다녀보지 않고 어찌 밤에 길을 다니는 사람이 있음을 알겠는가?’ 라는 말이 있다. 지금 신선이 되지 못한 사람이 또한 천하의 산림에서 도를 배워 신선이 된 사람이 있는 지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음장생군(陰長生君)은 이미 신약(神藥)을 복용했지만 다 먹지 않고 승천하지 않았다. 그러나 세간에서는 같은 부류가 모이고 같은 소리가 상응하듯이 곧 선인(仙人)들과 함께 서로 모여서 알았기 때문에 그 시대에 선인의 숫자를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여기면서 자신이 들어보지 못했으니 없다고 말하니 어찌 슬프지 않단 말인가? 무릇 초목에 숨어사는 은사들은 숨어서 안일하게 뜻을 이루고 경전을 읽으면서 스스로 즐길 뿐 이름을 날리고 고관대작이 되어 영달하는 것을 멀리한다. 은사도 일반인들이 알 수 없게 하는데 하물며 선인은 어떻겠는가?”

음장생은 자서(自敍)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나라 연광(延光) 원년(122년) 신야산 북쪽에서 내가 ‘신단요결(神丹要訣)’을 받았다. 도를 이루고 세상을 떠남에 이 요결을 명산(名山)에 맡겨 놓았으니 만약 얻는 사람이 있다면 능히 진인(真人)의 반열에 오를 것이다. 하지만 행동이 오락가락하는 속인에게 어찌 알려줄 수 있겠는가? 불사의 요결은 신단(神丹)에 있다. 행기도인(行氣導引)하고 몸을 단련하며 초목(草木)을 복용하면 수명을 연장할 수는 있지만 신선이 될 수는 없다. 무위에 도달해 신과 합일하도록 학습에 노력해야 한다. 상사(上士)는 이를 위해 부지런히 노력하지만 하사인 어리석은 자들은 비웃으며 그렇지 않다고 여긴다.”

음장생은 노란 비단을 찢어서 종이로 삼고 ‘단경(丹經)’을 써서 돌 상자에 봉해 숭고산에 놓았다. 하나는 황색의 노나무 목간에 옻칠을 해서 푸른 옥 상자에 봉해 태화산에 두었다. 하나는 황금판에 글을 새기고 백은(白銀) 상자에 봉해서 촉완산에 두었다. 하나는 비단에 썼는데 모두 합해 10편이다. 제자들에게 주어 세상에 대대로 전하게 했다. 또 시 3편을 써서 후세에 전하게 했다.

【평가】

1. 고생스런 수련과 ‘직지인심(直指人心)’

음장생의 첫 번째 시에서 우리는 그의 출신 가문이 아주 부귀해서 역사적으로는 순임금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후한 광무제의 음(陰)황후와 연결되지만 도를 좋아해서 벼슬을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에 대해 “삶을 탐하고 생을 얻었다”고 했지만 사실 그는 자발적으로 편안한 생활을 포기하고 “기쁜 얼굴로 즐겁게 (스승을) 모시며 얼굴에 때가 끼고 발에 굳은 살이 박혔다.” 또 “평소 고상한 뜻”을 위해 “추워도 옷 입을 겨를 없고 배고파도 먹을 틈이 없었으며, 그리워도 돌아가지 않았고 수고하며 감히 쉬지 않았다.”

이는 무려 20년에 달하는 고통스런 과정이었고 12명의 동수들이 고험 속에서 다 떠나갔고 오직 그 한 사람만 남았다. 12대 1의 각도에서 보자면 도태란 잔혹한 것이다. 때문에 음장생은 “여러 제자들을 아파했지만” 또한 원래 명(命)이 그러함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부동한 층차 공간에 표준이 있기 때문에 “하늘은 함부로 주지 않으시니 도는 반드시 어진 이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음장생은 “몸이 죽어 아득한 땅에 묻히면 어느 때가 되어 돌아오랴?”라고 길게 탄식했다.

이와 비교해보면 오늘날 우리가 법(法)을 얻기란 얼마나 쉬운가! 방황하거나 추측할 필요도 없고 스승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으며 법을 얻지 못할까 근심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당신이 법을 얻으려 하는가 하지 않는가? 법을 배우려 하는가 하지 않는가?는 보아야 한다. 사람이라! 소중히 여겨야 함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집문 앞까지 법을 가져다주셨고 단번에 우리에게 ‘직지인심(直指人心)’으로 알려주셨다. 우리는 비록 세상의 미혹 속에 있지만 법리(法理)는 천상에 있다. 수많은 과정을 단번에 이를 수 있고 일사일념(一思一念)을 파악할 수만 있으면 곧 수련 성취할 수 있다.

이는 음장생이 줄곧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가 오늘날 우리 중에 있다면 지금은 알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당시의 그는 이를 운명으로 돌리고 자신의 항심(恒心)으로 돌렸으며 또 ‘세속’과 ‘부귀’를 수련 성취할 수 없는 원인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수련은 바로 ‘세속’ 안에 있고 어쩌면 많은 ‘부귀’한 수련인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두 가지 수련법은 왜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가? 왜냐하면 우주정법(宇宙正法)은 사람을 구하는 것을 위주로 하며 개인수련은 보조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수련자들이 최고의 예를 갖춰 경배한 것은 후인들에게 수련문화를 남겨주기 위함이었다. 만약 우리가 사부님을 도와 법을 실증할 수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도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전수하신 이렇게 큰 대법에 면목이 없을 것이다.

2. “근면하고 성실히 연마해” 속세에 이끌리지 말아야

이익의 득실 때문에 수련한다면 이는 속인에 불과하다. 그에게 상계(上界)의 일을 알려줄 순 없고 더욱 보지 못할수록 더욱 법이 없고 부처가 없고 도(道)가 없고 신(神)이 없다고 느낄 것이다. 또는 단지 자신이 아는 것만 인정하고 모르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수련은 일시적으로 견지할 수는 있지만 결국에는 떠나게 된다. 이런 도태의 과정은 우주의 표준인 천도(天道)가 그렇게 시킨 것이다.

고금 두 가지의 수련 중에서 요행으로 도태를 모면한 사람은 단 하나도 없다. 과거에 수련하다가 지금은 그만 둔 동수들이 중공 사당의 엄혹한 탄압 하에서 방향을 잃는 것을 보고 우리는 음장생과 마찬가지로 탄식하게 된다.

“윤회에 들어가면 어느 때나 기연을 이룰 수 있으랴!”

그들 중 어떤 이들은 마음속으로 여전히 ‘수련’을 내려놓지 못하고 스스로는 어느 문(門)의 ‘경서’를 받들든 모두 부처수련이라고 여긴다. 어찌 마음속에 “두렵거나, 도피하거나, 순응하거나, 이롭거나, 구하는 등등”이 모두 마음임을 알겠는가?

불법(佛法)의 소중함을 알면서도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마음을 낼 수 없는 것이다. 고층생명은 당신이 스스로에게 얼마나 많은 구실을 찾아내든 다 무시할 것이다! 이런 작은 차이로 인해 격차가 천리(千里)로 벌어지는데 비록 일념의 차이지만 후회해도 늦고 또 후회한다고 해도 할 수 없다. 자신은 아직도 부처수련을 한다고 여기겠지만 일찌감치 추락했음을 어찌 알겠는가? 혹은 반대로 불법을 비방하는 귀신이 될 것이다.

이런 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단지 그들이 돌이킬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수련이란 전진하지 못하면 후퇴하는 것으로 세속 중에서 진짜가 드러나니 용맹정진(勇猛精進)해야 한다.

3. 어리석은 하사가 비웃지 않으면 어찌 신선이 될 수 있는가

포박자는 “야행인(夜行人 밤길을 가는 행인)”설에서 수련계에 3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했다. 즉 속인, 은사(隱士)와 선인(仙人)이다. 음장생은 그들의 마음 씀의 크기에 근거해 그들의 위치를 놓았는데 득도한 사람은 진인(真人)의 반열에 오르고, 단지 연마만 하고 닦지 않으면 장수할 수 있지만 신선이 되진 못하며, 오락가락하는 사람은 속인이라고 했다.

마음이 어리석은 이에게 이끌려 오락가락하며 스승을 바꾸고 모자를 바꾸는 것을 일러 거짓 수련이라 하며 당연히 정과(正果)를 얻을 수 없다. 오직 개인의 이익만을 꾀하며 오직 수명연장만을 바란다면 결국에는 윤회로 떨어질 것이다. 대법(大法) 이치를 장악하고 기꺼이 무사무아(無私無我)할 수 있어야만 세상에 올 때의 서약을 저버리지 않는 것으로 이번 생이 헛되지 않는 것이다.

지금 누가 누구를 비웃고 있는가? 지금과 그때 시공의 차이와 장단점을 논했다.

참고자료 – 음장생이 남긴 3편의 시

첫 번째 시

나의 선조는 요임금과 순임금을 도우셨고
한대(漢代)에 이르러 자색의 인끈을 드리웠네
내 유독 도를 좋아해 필부가 되었으니
평소 고상한 뜻으로 왕후에게 벼슬하지 않았노라
삶을 탐하여 생을 얻었으니 또 무엇을 구하랴?
푸른 하늘 멀리 밟아 용을 타고 구름수레를 모니
청풍(淸風)도 날개를 띄우며 나와 함께 짝이 되네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고 물을 밟아도 젖지 않으며
태극에서 소요하니 근심할 게 무엇이랴?
선도(仙都)에 노닐면서 뭇 어리석은 이들을 불쌍히 여기니
세월과 생명이 흘러 저 강물처럼 흐르는구나!
순식간에 얼마 안 돼 진흙과 짝이 되니
죽음을 찾아 분주히 치달리며 잠시도 쉬지 않는구나!

惟餘之先 佐命唐虞
愛逮漢世 紫艾重紆
我獨好道 而爲匹夫
高尚素志 不事王候
貪生得生 亦有何求
超叟蒼霄 乘龍駕浮
清風承翼 於我爲儔
入火不灼 蹈波不濡
逍遙太極 何慮何憂
遨戲仙都 顧憨群愚
年命之逝 如彼川流
奄匆未幾 泥土爲儔
奔馳索死 不肯暫休

두 번째 시

성스런 스승님은 도를 체득하신 진인(真人)으로
오르내리고 변화하며 왕자교 적송자와 이웃하셨네.
나와 함께 배운 이가 열하고도 두 명인데
추위의 고통에도 도를 구한지 어언 20년이 지났네
중도에 대부분 나태해져 지행(志行)이 굳지 못했으니
아 여러 제자들이여! 명이란 하늘에서 오는 것이라
하늘은 함부로 주지 않으시니 도는 반드시 어진 이에게 돌아가네
몸이 죽어 아득한 땅에 묻히면 어느 때가 되어 돌아오랴?
아 너희들은 장차 근면하고 성실히 연마해
세속에 빠지지 말고 부귀에 얽매이지 말라
신도(神道)가 한번 이뤄지면 저 구천에 올라가
수명이 삼광(해달별)과 같으리니 어찌 억 년뿐이겠는가?

余之聖師 體道之真
升降變化 喬松爲鄰
唯餘同學 十有二人
寒苦求道 曆二十年
中多怠墜 志行不堅
痛乎諸子 命也自天
天不妄授 道必歸賢
身沒幽壤 何時可還
嗟爾將來 勤加精研
勿爲俗流 富貴所牽
神道一成 升彼九天
壽同三光 何但億千

세 번째 시

나는 머리를 묶는 어려서부터 도덕을 좋아해
집을 떠나 스승님 따르며 동서남북을 떠돌았네
다섯 가지 더러움을 버리고 세상을 피해 스스로 숨어
30여 년간 명산에 있었다네
추워도 옷 입을 겨를 없고 배고파도 먹을 틈이 없었으니
그리워도 돌아가지 않았고 수고하며 감히 쉬지 않았노라
성스런 스승님 받들어 모시고 기쁜 얼굴로 즐겁게 모셨으니
얼굴에는 때가 끼고 발에 굳은 살 박혀서야 비로소 칭찬 받았네
마침내 요결을 받으니 그 깊은 은혜 헤아릴 수 없고
처자식도 수명이 늘어나 함께 무극을 누렸노라
황백술(黃白術 연단술)이 이미 성취되니 재화는 천억이고
귀신을 마음대로 부리고 옥녀가 시중을 드노라
지금 세상을 초탈할 수 있었던 것은 신단(神丹)의 힘이로다.

惟余束發 少好道德
棄家隨師 東西南北
委放五濁 避世自匿
三十餘年 名山之側
寒不遑衣 饑不暇食
思不敢歸 勞不敢息
奉事聖師 承歡悅色
面垢足胝 乃見誠實
遂受要訣 恩深不測
妻子延年 咸享無極
黃白已成 貨財千億
使役鬼神 玉女侍側
今得度世 神丹之力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500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