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신우(新宇)
【정견망】
귀곡자(鬼谷子)의 원래 성은 왕(王)씨고 이름은 후(詡) 또는 선(禪)이라고 하는데 전국(戰國)시기의 전설적인 인물이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이마에 4개의 사마귀가 났는데 마치 귀수(鬼宿 역주: 28수의 하나로 남방 주작 7수 중 하나) 모양이었다고 한다.
그는 제자백가의 학문에 정통했고 운몽산(雲夢山 역주: 지금의 하남성 학벽시에 위치) 귀곡(鬼谷)에 은거했기 때문에 자칭 귀곡선생이라고 했다. 전설에 따르면 귀곡자의 모친은 약혼자가 사망하자 무덤 앞에서 슬피 울다 기절했다. 비몽사몽간에 마치 약혼자가 나타난 것을 봤는데 무덤 앞에 난 벼 한 포기를 가져가라고 했다. 이에 정신을 차리고 옆에 있던 벼 한 포기를 집에 가져갔다. 벼에 있던 쌀을 먹은 후 임신했고 나중에 사내아이를 낳았다. 아이는 건강하게 성장했고 총명한 성인이 되었으니 이가 바로 후세에 광세(曠世)의 기재(奇才)라 불린 귀곡자였다.
귀곡자는 후세에 모성(謀聖 역주: 지모가 뛰어난 성인이란 의미로 ‘모성 귀곡자’란 드라마도 나왔다)으로 불리는데 문화의 역사에서 세상 밖에 은거하면서 천하를 바둑판 삼아 제자들이 출장입상(出將入相 나가면 장수가 되고 들어가면 재상이 된다)하며 열국(列國)의 운명을 좌우지하고 역사의 방향을 추동시켰다. 이에 후세에 자연법칙과 천도(天道)의 오묘함을 통달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그는 왜 하필 자신을 귀곡자라 했을까?
여기서 우선 귀곡자의 제자 중 하나인 손빈(孫臏) 이름의 내력에 대해 알아보자. 원래 그의 본명은 손빈(孫賓)이었다. 방연(龐涓)이 하산한 데 이어 귀곡자를 따르며 병법을 배우던 손빈 역시 곧 하산 준비를 했다. 하산 전에 귀곡자는 그에게 꽃을 한 송이 따오게 한 후 점(占)을 쳐주었다. 즉 손빈이 하산한 후의 운명과 길흉을 봐준 것이다.
손빈은 마침 귀곡자 탁자 앞에 있던 구리로 된 꽃병에서 국화를 한 송이 집어 귀곡자에게 바쳤다. 그러자 귀곡자는 손빈에게 4가지를 말해주었다.
첫째, 이 꽃은 이미 절단된 것이라 완전하지 않지만 국화는 서늘한 기운을 견뎌낼 수 있다. 즉 손빈이 비록 장애를 입긴 하지만 크게 흉하진 않다.
둘째, 구리 꽃병에 있던 꽃을 집었는데 구리는 고대에 종(鐘)이나 정(鼎)을 만드는 아주 성대한 일과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손빈이 나중에 청사(靑史)에 이름을 남기게 됨을 예시한다.
셋째, 이 꽃이 꽃병에서 뽑힌 것은 손빈이 처음 하산해서 재주를 펼치지 못한다는 것을 예시한다.
넷째, 이 꽃이 다시 꽃병에 돌아온 것은 손빈이 고향에서 공명을 성취하는 것을 예시한다. 손빈은 원래 제(齊)나라 사람이었다. 그런 후 귀곡자는 손빈(孫賓)의 이름에서 빈(貧)자 앞에 月을 더해 빈(臏)으로 만들었다. 이는 그가 장차 무릎을 잘리는 형벌을 받는다는 뜻이다.
손빈이 하산한 후 과연 이 모든 게 들어맞았다. 손빈은 또 확실히 무릎을 잘리는 형벌을 받았으니 그의 이름까지도 영험했던 것이다. 귀곡자는 손빈의 이름을 바꿔 손빈의 이후 운명을 예시해주었다.
그렇다면 귀곡자란 자칭에는 또 어떤 깊은 뜻이 담겨 있을까?
귀곡자는 세속에 개입하지 않았지만 그의 제자들은 전국시기 역사를 좌우지했다. 역사서에서 찾을 수 있는 그의 유명한 제자만 해도 네 명인데 즉 손빈, 방연,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다.
이중 손빈과 방연은 병법을 학습해 무관이 되었고 장의와 소진은 종횡가의 학문을 배워 문관이 되었다. 이 네 제자 중 소진의 이름은 직접적으로 역사발전을 예시한다. 소진(蘇秦)이란 즉 진(秦)나라를 소생시킨다는 뜻으로 이는 나중에 합종연횡 후 진나라가 강력해져서 중국을 통일한 것으로 사실임이 입증되었다.
[역주: 저자는 여기서 소진의 이름도 손빈과 마찬가지로 귀곡자가 새로 지어준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제자의 이름에 역사발전의 방향을 암시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귀곡자는 세외(世外)의 고인(高人)으로 천기(天機)와 우주변화의 법칙을 훤히 꿰뚫었다. 내 생각에 그가 자신을 귀곡(鬼谷)이라 부른 이유는 마땅히 그가 연기한 역사적인 배역을 분명히 알았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그가 처한 시대는 바로 전국시기였다.
전국 시기는 중원의 전통 강자 진(晉)나라가 셋으로 분열되면서 시작된다. 한(韓), 위(魏), 조(趙) 세 가문이 진나라를 분할하고 주나라 천자의 합법적인 승인을 받았다는 것은 이 시기가 도덕이나 예의명분이 더는 중요하지 않고 오로지 무력투쟁에 의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 역사상 황제(黃帝)부터 시작해 전국시기까지 돌이켜보면, 천하위공(天下爲公)의 선양(禪讓)을 제도로 했던 오제(五帝)시기와 한 가문이 제위를 세습하는 삼왕(三王)의 시대를 거쳐 주나라 춘추전국시기에 이르면 예악(禮樂)이 붕괴되는 상태에 이른다.
이 과정은 인류사회의 도덕수준이 점차 쇠락하는 과정이었다. 가령 춘추시기에는 설령 두 나라에 전쟁을 할지라도 늘 광명정대했고 속임수가 없었으며 도덕과 예의를 중시했다. 전쟁시기에도 백성들에게 큰 피해를 입히지 않았고 도의(道義)에서 우러나와 전쟁을 일으켰다.
하지만 전국시기에 이르면 전쟁은 자국의 이익과 남의 영토를 집어삼키기 위한 것으로 도덕과 예의를 중시하지 않았고 전적으로 무력에 의지했다. 때문에 전쟁 과정에 대량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늘 서로 속고 속이는 속임수의 방법을 썼다. 그러므로 이는 사회의 인심과 도덕이 쇠락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귀곡자는 자신의 제자들이 전국시기 역사를 좌우할 것을 알았고 사회도덕이 패괴(敗壞)되는 과정을 보았기 때문에 스스로 귀곡자라 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자신이 맡은 역할에 바른 위치를 부여해 후인들에게 알리려 했던 것이다.
전국시기 제후국들은 이익의 원칙에 근거해 전쟁하거나 동맹을 맺었으며 각국이 각자 귀태(鬼胎)를 품고 서로 속이면서 아귀다툼을 벌였다. 이는 사람에게 마땅히 있지 말아야 할 상태로 마치 저승의 귀신과 같았다. 그가 제자들에게 가르친 것은 이런 병법과 종횡가 등의 학설이었지 본성의 도덕에 기반해서 사람이 마땅히 배워야 할 그런 내용이 아니었다.
이런 것들은 사람이 타락한 후에 배우는 것으로 이런 것을 배우면 사람이 더 빨리 타락하게 된다. 그러므로 내 생각에 이 역시 《귀곡자(鬼谷子)》란 책이 역대로 ‘금단의 열매’로 간주된 원인이라고 본다. 《귀곡자》는 종횡가(縱橫家)의 유세술 경험을 총괄한 것으로 귀곡자의 저술이다.
이는 마치 서방 전통문화 속에서 성경에 나오는 금단의 열매처럼 먹어선 안 되는 것으로 일단 먹으면 타락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것과 같다. 소진, 장의가 배운 종횡술은 외교를 관장하고 화려한 말재주와 언변을 보여주는데 솔직히 말하면 둘 다 사기꾼이다. 상황에 따라 말이 바뀌고 수시로 입장을 바꿔가면서 자기 이익을 지키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적으로 보면 장의는 초나라를 속였고 소진은 비록 여섯 나라를 합종해 진나라에 대항한다고 했지만 그의 사후 연나라를 위해 제나라를 파괴했다는 많은 사실들이 폭로되었다. 또 손빈과 방연은 병법을 사용했는데 병법을 배워 한 나라의 군사를 통제했다. 《손자병법》의 36계에서는 계략과 음모를 중시한다. 때문에 용병(用兵)에는 속임수를 꺼리지 않는다고 했으니 역시 일종의 속임수다. 이익의 원칙하에 전쟁, 전투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모순을 해결하는 것으로 일종의 악(惡)이자 불선(不善)이다.
도덕의 본성에 근거한 사람이라면 마땅히 성실하고 진실하며 선량해야 하며 남에게 선해야 하며 모순에 부딪히면 마땅히 관용하고 인내해야 한다. 문제에 부딪히면 마땅히 진솔하고 선량하며 인내와 양보의 원칙에 따라 처리해야지 남을 기만하거나 투쟁해선 안 된다.
인간세상에는 상생상극(相生相克)의 이치가 있으니 정(正)이 있으면 사(邪)한 것이 있다. 음(陰)이 있으면 바로 양(陽)이 있다. 귀곡자란 이름은 바로 사람들에게 그런 병법이며 종횡술과 같은 종류는 좋은 사람이 배워야 할 게 아니며 음적(陰的)인 지혜이자 부면(負面)에 속함을 일깨워준다.
가령 소진이 각고의 공력을 들여 공부한 《음부(陰符)》(《태공음모(太公陰謀)》라고도 한다)는 음(陰)을 체현하며 손빈이 학습했던 《손자병법》의 36계에서 육(六)은 도가 이론에 따르면 음(陰)에 속한다. 육육(六六)이 삼십육이니 36은 극음(極陰)에 속한다. 그렇다면 귀곡자의 병법과 종횡술은 어디에서 배운 것일까?
전설에 따르면 귀곡자의 사부가 신선이 되어 떠날 때 한권의 죽간(竹簡)을 남겼는데 그 위에 천서(天書)라는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책을 열어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글자도 없었다. 귀곡자가 한동안 사색한 후 우연히 이 천서는 원래 음성(陰性)에 속하는 것으로 해를 보면 드러나지 않고 달빛이나 등불 아래에서만 글자가 나타나는 금문(金門)임을 발견했다. 그야말로 보기 드문 기서(奇書)였다.
귀곡자가 병법과 종횡가의 책을 학습한 것은 모두 야간에 한 것이다. 때문에 귀곡자의 이 한 세트는 완전히 음성적인 것에 속한다.
역사란 연극이나 애니메이션과 같다. 이런 각도에서 역사를 본다면 귀곡자란 이름에는 또 보다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흔히 동주(東周) 시기를 춘추시대와 전국시대 둘로 나눈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노(魯)나라 사관이 당시 중대한 사건을 기록할 때 연, 계절, 월, 일의 순서로 기록했는데 1년 춘하추동(春夏秋冬) 4계절로 기록했기 때문에 이런 식의 편년체 역사를 가리켜 모두 춘추(春秋)라고 불렀다. 춘하추동은 1년의 1주기인데 주조(周朝)의 주(周)에는 이런 역사주기란 의미가 담겨 있다.
주나라 시기 역사를 춘추로 명명했다는 이 자체가 바로 역사는 마치 춘하추동처럼 순환하고 반복하는 것임을 드러낸다. 동주를 춘추와 전국 두 부분으로 나누는 것은 역하의 한 주기는 마치 일년의 춘하추동과 같으며 그럼 춘추(春秋)를 계승한 후에는 바로 겨울(冬)이 되는데 다시 말해 전국시기는 하나의 큰 역사 주기의 최후단계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1년에는 춘하추동이 있고 우주에는 성주괴멸(成住壞滅)이 있다. 춘추시기는 인류사회의 도덕수준이 비교적 좋은 시기임을 보여주고 전국시기는 상대적으로 도덕이나 예의는 따지지 않고 오직 무력정복만 중시하니 인류가 괴멸(壞滅)시기에 처해 도덕이 타락한 시기의 역사임을 보여준다.
귀곡자가 전국시기에 살았고 그 제자들이 전국시기 역사를 좌우한 것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인류 역사의 최후에 즉 종교에서 말하는 말법(末法)・말겁(末劫)・말세(末世) 시기에 지옥의 마귀굴 속에서 사악한 생명들이 인간으로 전생해 인간세상을 어지럽히는데 귀곡자란 이름에는 바로 지옥굴이란 의미가 담겨 있다.
때문에 역사적으로 귀곡자가 세간에 출현한 것을 볼 수 없었고 모두 그의 제자들이 세상에 나와 전국시기 형세를 좌우한 것이다. 그의 제자에는 바로 지옥의 마귀굴에서 나온 사악한 생명이란 뜻이 담겨 있다.
[이는 귀곡자와 그 제자들이 나쁜 사람이나 사악한 생명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들이 처했던 역사적인 역할이 표현한 의미를 말한 것이다.]
하지만 상생상극의 이치에 따르면 사악한 것이 있으면 바른 것이 있다. 귀곡자 안의 이런 속임수, 투쟁, 이기적인 금단의 열매와 정반대되는 것이 있으니 사람은 마땅히 성실하고 진실하며 선량하고 남을 생각해야 하며 모순에 부딪혀 관용하고 양보하는 것이다.
중공 통치하의 중국에서 진선인(真善忍) 파룬따파(法輪大法)가 전해져 나왔다. 이 진선인(真善忍) 3글자는 거짓・사악・투쟁이란 패괴(敗壞)되고 타락해 도덕이 미끄럼질 치는 중에서 사람을 애초의 도덕본성으로 되돌아오게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진선인은 구도(救度)이며 마귀가 인간세상을 어지럽히는 말법(末法)말겁(末劫)시기를 구도하는 것이다.
춘추(春秋)의 다음은 겨울(冬)이고 겨울은 또 다가올 봄(春)을 품고 있다. 역사는 순환 왕복하는 것으로 말법말겁(末法末劫)시기에 새로운 기원(紀元)이 이미 준비되어 있고 새로운 기원이 장차 도래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얼마나 되는 이들이 우담바라처럼 잠깐 나타나는 이 역사적인 기연(機緣)을 잡을 수 있는가? 우담바라 꽃이 피면 미래불인 미륵(彌勒 전륜성왕)이 인간세상에서 구도하기 시작해 선량한 사람들을 이끌고 미래 즉 새로운 기원으로 진입하게 된다.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node/2745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