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주일행 정리
【정견망】
당나라 때 낙양(洛陽) 천궁사(天宮寺)에 수선사(秀禪師)가 있었다. 선사의 속성은 이(李)씨로, 변주(汴州) 진류현(陳留縣) 사람이다. 그는 선종(禪宗)을 열심히 수행했다. 일찍이 형주(荊州)를 거쳐 나중에 천궁사로 거처를 옮겼다. 측천무후로부터 큰 존경과 예우를 받았다. 그가 깨달은 것은 항상 사실과 부합되었다.
중년에 낙양에 들어가 자성사(資聖寺)에 머물렀다. 어느 날, 그는 갑자기 선원 제자들에게 모든 등불을 없애라고 했다. 제자가 불상 앞을 비추는 장명등(長明燈)을 남겨놓자 그것도 없애라고 했다. 그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화재는 예측하기 어려우니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일찍이 사찰에서 촛불을 방비하지 않아 불전에 화재가 난 적이 있었고 또 어느 사찰에서는 종루에 화재가 발생했고, 한 사찰에서는 장경루(藏經樓)가 불에 타버렸으니 실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온 사찰의 승려들은 모두들 그가 이렇게 한 의도가 무엇인지 몰랐다. 밤 늦은 시간이 되자 사찰에 불이 나더니 과연 불전과 종루가 불타고 장경루 세 곳도 불타고 말았다.
당나라 현종이 왕으로 있을 때 늘 다른 왕들과 함께 절에 와서 선사를 예배하곤 했다. 또 피리 한 개를 절에 남겨 두었다. 나중에 현종이 절을 떠날 때 수선사가 제자들을 불러 말했다.
“이 피리를 잘 보관해 두어라. 나중에 필요 할 때가 되면 그때 바쳐라.”
나중에 현종이 황제에 오르고 나서야 제자 달마 등은 수선사가 한 말뜻을 깨닫고 이 피리를 황제에게 바쳤다.
수선사는 백 살 때 이 사찰 안에서 죽었고 용문산에 매장했다. 당시 그를 문상하러 온 승려와 백성들이 수천 명이었고 연국공(燕國公) 장열(張說)이 그를 위해 비문을 썼다.
자료출처: 《태평광기》
역주: 현종 즉위 초기 측천무후 이후 비대해진 불교 세력을 누르고 황권을 강화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억불책을 쓴 적이 있다. 수선사가 피리를 보관한 것은 이때를 대비한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209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