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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이야기: 지원(知苑)

글/ 사연(史然)

【정견망】

당대(唐代) 유주(幽州)에 지원(知苑)이란 승려가 있었는데 깔끔하면서도 학식이 있었다. 수 양제(煬帝) 대업(大業) 연간에 석실(石室)을 지어 모든 불경을 소장해 불법(佛法)이 단절되는 것을 막겠노라고 서원했다. 이때부터 유주(幽州) 서산(西山)에 암석을 굴착해 석실을 만든 뒤 네 벽에 경문을 새겼다. 또 사각형의 석판을 가져다 평평하게 다듬은 후 별도의 경문을 새겨 석실에 보관했다. 석실 한 칸이 가득 차면 돌로 문을 막은 후 다시 쇳물을 녹여 봉폐시켰다.

당시 수 양제의 어가가 탁군(涿郡)에 왔는데 내사시랑(內史侍郎) 소우(蕭瑀)는 소(蘇)황후의 동생으로 천성이 독실하고 불교를 신봉했다. 그는 지원화상이 석실을 만들어 불경을 소장하려 한다는 말을 황후에게 전했다. 그러자 소황후가 비단 천 필을 시주했고 소우도 비단 오백 필을 시주했다. 그러자 조정 안팎에서 이 소식을 듣고 앞을 다투어 시주하며 지원이 공덕(功德)을 이룰 수 있게 했다.

지원은 늘 많은 장인들과 지내다보니 승려와 속인들이 뒤섞이는 것이 불편했다. 이에 산굴 석실 바로 앞에 승려들이 머물 수 있는 불당과 속인 장인들을 위한 식당을 짓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밤에 잠자리에 들 때 계산해보니 공사를 하는데 필요한 많은 목재와 기와를 조달하기 어렵고 너무 큰돈이 들까 우려해 공사를 하지 못했다.

어느 날 밤 갑자기 폭풍이 불고 천둥과 번개가 쳤다. 이튿날 아침 날이 개자 산 밑에 수천 개가 굵은 소나무나 잣나무가 산사태로 떠내려 와 길 양쪽에 쌓여 있었다. 이를 본 승려와 장인들이 모두 놀라 멍해졌다. 대체 이 많은 나무가 어디서 떠내려 왔는지 알 수 없었다. 이 소문이 퍼지자 인근 도처에서 많은 사람들이 탄복했다.

지원은 곧 장인들을 불러 적당한 목재들을 선별하게 했고 나머지는 인근 향리(鄕里)의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러자 향리 사람들이 매우 기뻐하며 불전(佛殿)과 식당 짓는 것을 도우니 아주 빨리 공사가 끝났다. 마침내 지원의 소원이 이뤄진 것이다. 지원이 돌에 새긴 경문이 이미 일곱 칸의 석실을 가득 채웠다. 그는 당 태종 정관(貞觀) 13년(639년)에 세상을 떠났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21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