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신전문화 중국역사연구모임
【정견망】
“은인(殷人)들은 신을 존경해 백성을 이끌고 신을 섬겼고 귀신을 먼저 하고 예(禮)를 나중에 했다”라고 했다. 즉 상왕(商王)이 하늘을 존숭해 민중들을 이끌고 신명을 공경히 대했으며 조상에 대한 숭배를 몹시 중시해 이를 크게 보았다는 의미다. 여기서 귀신이란 바로 이미 세상을 떠난 조상을 말한다.
그런데 왜 세상을 떠난 이를 귀(鬼)라고 할까?
《설문해자》에서는 “사람이 돌아갈 바를 귀라 한다(人所歸爲鬼)”고 했다. 즉 사람이 다른 세계로 돌아갔다는 뜻이다.
상나라 사람들은 신을 존중하고 조상을 존중했는데 어떻게 존중했을까? 그들의 방법은 바로 제사(祭祀)였다. 성대한 제사를 끊임없이 지냈다.
상나라 사람들이 제사를 올린 신(神)은 아주 많아서 우주에 “머무는(住)” 수많은 신들이 다 그들의 제사 대상이었다. 해신, 달신, 바람신, 비신(雨神), 하신(河神) 등등이다. 또 그들의 조상신 즉 귀신(鬼神)이 있는데 세상을 떠난 선공(先公)이나 선왕(先王) 및 왕조에 공헌한 다른 이들로 예를 들면 이윤도 그중 하나였다.
모든 것을 “통치”하는 상제(上帝)는 너무나 위엄 있고 신성하기에 상왕은 이런 경외감을 품고 상제에 대해서는 오히려 함부로 하지 못했다.
후세인들에게 가장 놀라온 것은 상나라 사람들이 제사를 지낸 횟수다. 제사는 명목이 아주 복잡한데 전문적인 통계에 따르면 역대 상왕은 거의 매일 제사를 진행했고 각종 제사 이름만도 211개에 달했다.
상나라 사람들은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는데 기왕에 신(神)이 생명을 부여하셨다면 일상적인 제사 역시 자연히 없어서는 안 된다고 간주했다.
가령 한 가정으로 축소해서 말하자면 날마다 어른의 안부를 묻는 예의 바른 아이였고 또 늘 어른에게 선물을 주는 효순한 아이였다. 천하는 일찍이 하나의 큰 가정이 아닌 적이 없는데 이렇게 보자면 상조인(商朝人)들은 수많은 제사와 풍성한 제물로 신령을 모시는 착한 아이였다.
“나라의 큰일은 제사와 전쟁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중국 고대에 제사가 얼마나 중대하고 큰일인지 보여준다. 천하인들을 이끌어 하늘을 공경하고 조상을 본받아야 할 상왕은 당연히 아주 바빴다.
제사에는 희생을 사용하는데 특수한 사육을 거쳐야 한다. 특수하게 사육한 소는 그냥 소가 아니라 ‘뢰(牢)’라 했다. 또 특수하게 사육한 돼지 역시 일반적인 글자인 저(豬) 대신 ‘총(塚)’이라고 썼다. 신에게 바치는 것은 당연히 가장 좋은 것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같은 이치로 제사에 쓰는 과일 역시 가장 깨끗하고 큰 것을 사용했다.
제물(祭物)에는 가축 이외에도 청동기, 옥석기(玉石器), 도기 심지어 사람을 쓰는 경우도 있었다.
상족인이 신령에게 바친 제물의 풍성함도 후인들에게는 경이로울 정도다. 몇 백 마리 동물을 희생으로 쓰는 것이 흔했고 출토된 갑골문 중 많은 기록과 은허에서 나온 실물크기 골격(骨格) 역시 희생의 수자를 보여준다. 작으면 여러 마리에서 많으면 2~300마리에 달했고 심지어 상조에서 가축을 기르던 축사에는 늘 희생에 쓸 천 마리 이상의 소가 준비되어 있었다.
만약 갑골문에 이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았더라면 아무도 이 말을 믿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아득한 상고시대에 목축업이 과연 이 정도로 발달될 수 있었을까? 대답은 그렇다. 그들은 심지어 코끼리마저 길들여 전투에 사용하기도 했다.
《여씨춘추‧고악편(古樂篇)》에는 “은나라 사람들이 코끼리를 길들여 동이(東夷)를 학대하자 주공(周公)이 마침내 군대를 동원해 몰아냈다”고 했다.
상대의 건축물은 아무리 작아도 반드시 제단(祭壇)이 있었다. 제단은 간단한 것도 있고 복잡한 것도 있으며 임시적인 것도 있고 장기적인 것도 있었으며, 교외에도 있고 생활구역에 있는 것도 있었다.
제사에 사용한 물품은 불로 태워 천상(天上)의 신령에게 제사를 지내거나 또는 깊이 묻어 대지(大地)에 제사를 지냈으며 혹은 매달아서 산신(山神)에게 제사를 지냈다. 상나라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제물을 신령에게 바쳤는데 은허에서 출토된 제사장소는 그 면적만 약 10만 제곱미터에 달한다.
상나라 사람들의 제사를 말하자면 사실 인신공양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사람을 희생으로 삼아 하늘에 제사를 지낸 것이다. 오늘날의 관념으로 보자면 비인도적이지만 상조인의 관념 속에서는 오히려 당연한 것이었다. 이는 고인의 생사관(生死觀)과 관련이 있다.
상조 최고급 제물은 사람이었다. 가장 유명한 제물이 바로 성탕왕(成湯王) 자신이었다. 상조가 막 성립되었을 때 연속 7년간 큰 가뭄이 들었다. 무수한 기우제를 지냈지만 효과가 없자 마지막으로 성탕이 자신이 희생이 되기로 결심하고 자신을 하늘에 바쳐 상제(上帝)에 대한 경건함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에 수일간 목욕재계해 몸을 정결히 한 후 마른 장작더미 위에 올라갔다. 막 불을 붙이려는 순간에 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성탕이 비를 구한 일은 아주 많은 역사자료에 기록이 있다. 하지만 그를 만류하며 생명을 소중히 여기라는 간언은 오히려 기록이 없고 그가 세상을 떠나면 천하에 조성할 손실을 토론한 기록 역시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당시 사람들은 모두 그들의 왕이 상제(上帝) 그곳으로 가서 상제의 손님이 되어 천제 주변에서 경배(敬拜)받고 육체가 사라진다고 해서생명이 끝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하인들은 또 이구동성으로 그가 제물의 규격을 이렇고 높인 것에 대해 찬미했다. 소나 양도 아니고 강인(羌人 이민족)도 아니고 천하의 왕이 스스로 제물이 되었으니 상나라 사람들이 보기에 이보다 더 경건하게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은허 유적 중에는 대량의 순장된 사람과 사람 희생이 있고 갑골문 기록 역시 사람들에게 상조인들의 생명에 대한 인식을 분명히 보여준다. 사람이 죽으면 곧 공간을 바꿔서 살아갈 뿐이다. 상조인들은 술을 즐겼기 때문에 가족 묘에서 주기(酒器)나 개인물품을 놓아두었고 심지어 이 사람을 모시기 위한 사람을 순장했다.
순장의 형태는 비교적 복잡하다. 어떤 신하나 가족은 자발적으로 원해서 순장된 반면 또 강제로 순장된 경우도 있다. 이는 나중에 다시 논할 것이다. 만약 사람의 육신이 죽으면 모든 게 끝난다면 순장은 해서 무엇 하겠는가!
상조인들이 가장 많은 제사를 지낸 대상은 조상이다. 특히 이미 사망한 왕은 다른 형식으로 존재해 자손들에게 관심을 갖는다고 보았다. 때문에 자손들이 대를 이어가며 그를 제사지내고 기념하며 또 그에게 도움을 청했다. 가족이기 때문에 제사는 빈번했지만 또 좀 간략하게 했다. 상왕이 조상을 제사지낼 때는 열흘을 한 단위로 해서 5가지 제사를 올렸고 이 과정이 끝나면 다시 처음부터 진행했다.
중화문화에서 반포(反哺 역주: 까마귀 새끼가 자란 후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준다는 의미. 자식이 부모가 길러주신 은혜에 보답하는 것을 의미)와 효경(孝敬)은 상조인들의 신기(神祇 神은 하늘 신이고 祇는 땅 신)에 대한 제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연주하는 곡의 제목은 다르지만 근본은 같은 것이다.
중국인들의 조상에 대한 제사는 바로 여기서부터 문자기록의 내원을 찾을 수 있다. 현대인들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 때 닭, 오리, 생선, 고기를 모두 필수품으로 여기고 이중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조상에 대한 존경과 무게를 표현할 수 없다고 보는데 원래 3천 년 전 상나라의 유풍이 현대까지 이어져온 것이다.
참고문헌:
1. 《상대종교제사(商代宗教祭祀)》
2. 《갑골문합집(甲骨文合集)》
3. 《은상사복종술(殷商辭卜綜述)》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383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