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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불 (11)

【정견망】

11. 라자그리하 전도와 상좌(上座)운집 

대웅(大雄) 세존(世尊)은 불의 신을 모시던 카샤파 형제의 외도(外道) 천명을 제도한 후 과거 빔비사라 왕과의 약속을 떠올렸다. 이에 라자그리하(왕사성)로 가서 그곳 신민(臣民)들을 구도하려 했다. 한편 우루벨라 카샤파는 많은 나이와 큰 덕으로 이전부터 국왕 및 신하와 백성들 사이에 높이 존중받고 신봉되었다. 때문에 빔비사라 왕은 인근 부락을 그에게 식읍으로 주었다. 그런데 나중에 사자가 와서 카샤파와 그 제자들이 모두 석가족 젊은 사문의 제자가 되었다고 했다.

국왕은 이 소식을 듣고 몹시 의아해했다. 일반 관리나 백성들도 모두 괴이한 일로 여겼고 소문이 와전된 것으로 보거나 또는 그 청년 사문이 카샤파의 제자가 된 것으로 알았다.

나중에 카샤파가 국왕에게 사람을 보내 곧 부처님을 따라 라자그리하로 가르침을 펼치러 가니 공양을 받들어 달라는 말을 전해 듣고 나서야 그가 정말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음을 알았다. 이에 빔비사라 왕은 신하와 백성들을 거느리고 길을 잘 닦고 성대한 의식과 웅장한 의장행렬로 세존을 맞이하러 나왔다.

부처님이 ‘차월수(遮越樹)’ 아래 앉아 계신 것을 보니 위엄 있는 빛이 넘치고 많은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이에 빔비사라 왕은 자신도 모르게 숙연해져서 멀리서 좌우를 물리치고 직접 부처님 앞에 나아가 예를 올리고 인사를 한 후 뒤로 물러나 앉았다.

그러자 카샤파가 게(揭)로 부처님을 찬양하고 신묘한 변화를 드러내며 여러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부처님을 따라 배우고 나서야 비로소 진정으로 도(道)를 얻고 생사의 번뇌를 영원히 끊었으며 진실한 평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는 생사의 고통과 환난(患難)이 정말 극심합니다. 그러니 오로지 빨리 부처님을 따라 배워야지만 비로소 생사고뇌의 고해(苦海)에서 벗어날 수 있고 열반(涅槃 니르바나)이란 안락한 피안(彼岸)에 오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들은 후 더욱 더 부처님을 우러러보았다.

부처님은 대중들의 선근(善根)이 이미 다 무르익은 것을 보시고 곧 그들을 위해 설법하셨다. 세존이 강론을 거듭함에 따라 빔비사라 왕과 수만에 달하는 신민들이 모두 법안(法眼)이 열렸고 초과(初果)인 수다원(須陀洹)의 지위를 얻었다. 이에 국왕은 다시 정수리를 땅에 대는 큰 예(頂禮)를 올리고, 지난날 부처님의 출가를 저지하며 나라를 나누어 다스리자고 했던 자신의 우매함을 참회했다. 아울러 평생 부처님과 승려들에게 음식과 옷을 제공하고 받들고자 했다.

부처님도 기뻐하시며 그를 찬탄했다. 이에 빔비사라 왕은 역사상 제왕으로서 호법(護法)한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그는 환궁한 후 부인과 모든 궁녀들에게 육재(六齋 매달 음력 8, 14, 15, 23, 29, 30 6일간 재계하는 것)를 석 달간 지키라고 분부했다.

당시 마가다국에 가릉(迦陵)이라는 큰 부자가 있었다. 그에게는 라자그리하 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대나무 숲이 하나 있었는데 조용하고 깨끗하면서도 광활하고 경치가 아름다웠다. 또 일 년 내내 무성했기 때문에 ‘한림(寒林)’이라 불렸는데 바로 이 대나무 숲을 세존께 바쳤다. 부처님과 승려들이 이곳에 머물며 살았기 때문에 가릉죽원(迦陵竹園)이라 했다.

빔비사라 왕이 이를 알고는 정원에 정사(精舍)와 전각(殿閣) 등을 높이 지어 당우(堂宇)가 맞닿게 했고 당번이 펄럭이며 웅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부처님과 승려들에게 이곳에 안거(安居)하며 설법해주실 것을 청했다. 이를 죽림정사(竹林精舍)라 하는데, 이는 부처님께 거처하실 장소를 제공하고 모신 최초의 승가람(僧伽藍, 바로 정사)이자 승려들이 머무는 사찰의 시작이다.

이때 라자그리하에 두 명의 바라문이 있었는데, 한 명은 사리푸트라(舍利佛 사리불)였고 또 한 명은 목갈라나(目乾連 목건련)였다. 두 사람 다 박학하고 재주가 많았으며 지혜와 언변이 뛰어나서 각각 백 명의 제자를 두고 현지인들의 존경을 받았다. 두 사람은 좋은 친구라 서로 깊이 사랑했고 또한 이렇게 약속했다.

“만약 우리 둘 중 한 사람이 먼저 지극한 도를 알게 되면 바로 와서 다른 이에게 알려주어야 하며 숨기거나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부처님의 제자 아슈바지트(阿舍婆耆 앗사지) 비구가 이 마을에 걸식하러 왔다. 몸에는 가사를 입고 손에 철 발우를 받쳐 들었는데 편안한 모습으로 천천히 걷는 것이 위의가 엄숙하면서도 단정했다.

길에서 사리푸트라와 마주치자 사리푸트라가 물었다.

“제가 보니 당신은 막 출가하신 것 같은데 이렇게 위의가 있고 차분한 것을 보니 실로 존경할 만합니다. 지금 당신께 묻고 싶은데 당신의 사부님은 누구십니까? 그는 어떤 가르침을 말하십니까? 제게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그러자 아슈바지트가 부드럽게 말했다.

“제 스승님은 석가모니 세존이시고, 그분의 자비·복덕·지혜·신통은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나이가 어리고 도를 배운 시간이 아직 짧아 부처님의 오묘한 법을 어찌 설파할 수 있겠습니까? 일단 제가 들은 것을 간략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어서 사구게(四句偈)를 말했다.

“일체 법의 근본은 인연에 따라 생겨난 것으로 주인이 없으며 만약 이를 해결할 수 있다면 진실로 도(道)를 얻은 것이다.”

당시 사리푸트라는 선근(善根)이 이미 무르익어 이 말 한마디에 바로 개오(開悟)해 수다원(須陀洹)과를 얻었다. 이에 비구와 헤어진 후 곧장 친구인 목갈라나를 찾아가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목갈라나도 게를 듣자마자 역시 초과(初果)를 증오(證悟)했다.

두 사람은 기뻐하면서 각각 백 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부처님이 계신 죽림정사를 찾아와 출가를 청했다. 부처님께서 그들을 위해 머리를 깎아주신 후 사성제(四聖諦) 널리 말씀하시니 두 사람과 여러 제자들이 함께 아라한과를 얻었다.

부처님은 여러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리푸트라는 지혜가 제일이고 목갈라나는 신통이 제일이다. 대중 중에서 가장 상수(上首)의 두 제자다.”

이때에 이르러 부처님의 아라한 제자가 일천이백오십 명이 되었다.

한편, 마가다국 마하띳타 출신으로 다양한 학문에 두루 능통한 카샤파란 바라문이 있었다. 그는 32상(相)의 단정한 외모와 풍부한 재산을 지녔으며 널리 주변 사람들에게 보시하기를 좋아했다. 그에게는 꽃처럼 어여쁜 아내가 있었지만 오히려 색욕(色慾)을 싫어해 홀로 청정하게 지내며 이곳저곳을 다니며 지극한 도를 찾았다.

나중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셨고 지금 죽림정사에서 설법하신다는 말을 들었다. 카샤파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급히 라자그리하로 향했다. 세존께서는 그가 올 것을 미리 아셨는데 대근기의 뛰어난 그릇이라 직접 라자그리하와 날란다 중간에 있는 니그로다 나무까지 마중나가 만나셨다. 카샤파는 부처님께 귀의하고 법을 들었다. 부처님과 함께 죽림정사로 돌아가 부처님을 따라 배우며 널리 도화했다. 당시 부처님 제자들 중에 카샤파란 이름이 많아서 보통 그를 마하카샤파(대가섭)라 부른다.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1/10/23/1822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