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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이야기: 담익(曇翼)

글/ 목목(木木)

【정견망】

담익(曇翼)은 원래 요(姚)씨로 강족(羌族 지금의 티베트) 출신이다.

열여섯 살에 출가해 도안(道安)을 스승으로 모시고 단계사에서 수행했다.

진(晋)나라 장사태수(長沙太守) 등함(騰含)이 강릉(江陵)에 있던 자기 집을 기부해 사찰로 만들기 위해 도안에게 승려를 추천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도안이 담익에게 말했다.

“형주(荊州)와 초나라의 백성들이 처음으로 스승을 찾는다고 하니 그대가 아니면 누가 교화를 할 수 있겠는가?”

담익이 이에 지팡이를 짚고 강릉에 가서 절을 세우니 이곳이 바로 장사사(長沙寺)다.

그 후 도적들이 번갈아 날뛰면서 한수(漢水) 남쪽 땅을 침략하자 강릉 사람들이 모두 상명(上明)으로 피난했다. 담익은 그곳에 절을 다시 세웠다. 도적 무리들이 소탕되자 다시 강릉으로 돌아왔다. 담익이 경건하게 기도를 올리자 하늘이 감동해 사리를 내려주었다.

그는 사리를 금병에 담아 재(齋)를 올리는 자리에 안치하고는 절을 올리고 맹세하며 말했다.

“만약 이것이 금강(金剛)이 남기신 음덕이라면 광명이 빛나게 해주십시오.”

한밤중이 되자 정말로 오색의 광채가 병 속에서 방사되어 나와 법당을 가득 비추었다. 모든 대중들이 놀라고 감탄하지 않는 이가 없었고 담익의 기도에 대한 신령한 감응이라고 여겼다.

나중에 담익이 파릉(巴陵) 군산(君山)에 나무를 하러 갔다. 산세가 신묘하고 기이해서 현지인들이 몹시 꺼리던 곳이다. 담익이 사람들을 거느리고 그 산으로 들어갔다. 길에 수십 마리의 흰 뱀이 누워서, 가는 길을 가로막았다.

그러자 담익이 물러나 머물던 곳으로 돌아왔다. 멀리 산신령을 청해 예를 올리면서 신에게 말했다.

“제가 절을 짓기 위해 이 산의 나무를 베고자 하니 부디 함께 공덕을 지읍시다.”

그 날 밤 꿈에 한 신인(神人)이 나타나 말했다.

“법사께서 기왕에 사철 건축을 위하여 사용하신다면 당연히 문제가 없고 도움을 드리는 게 기쁠 따름입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이 함부로 나무를 베는 일이 없도록 해주십시오.”

이튿날 다시 산을 찾아가니, 흰 뱀이 보이지 않았다. 이에 나무를 베서 강의 흐름을 따라 아래로 내려왔다. 그 가운데 벌목하던 사람들이 중간에 몰래 나무를 훔쳐가는 일을 피할 수 없었다. 사찰에 돌아오니 목재가 이미 그곳에 도착해 있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몰래 훔쳐 사유물로 취한 것은 모두 관가에서 가져갔다.

절을 만든 후 담익은 늘 이렇게 한탄했다.

“사찰을 세워 승려들은 충분하지만 불상(佛像)이 아직 적구나. 일찍이 아소카 왕이 조성한 불상이 신비롭고 단아하다고 하는데 아울러 각 지방에 두루 퍼져 있다. 그러니 어찌 그 불상을 모셔올 수 없겠는가?”

이에 경건한 기도를 올려 불상을 내려주십사 요청했다.

진(晋) 태원(太元) 19년(394) 갑오년 2월 8일 갑자기 불상 하나가 성 북쪽에 나타났는데 하늘 가득 빛이 나타났다. 당시 백마사(白馬寺)의 승려들이 먼저 그곳에 가서 불상을 영접하려 했으나 불상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에 담익이 직접 찾아가서 예불하고 여러 사람들에게 말했다.

“아마도 아소카 왕의 이 불상은 우리 장사사에 내려주셨을 겁니다.”

그리고 제자 3명을 시켜 받들어 영접하게 했다. 그러자 불상이 가볍게 날아오르더니 장사사로 왔다.

나중에 계빈국의 승가난타(僧伽難陀)가 촉(蜀) 땅에 와서 장사사에 와서 예배했다. 불상의 광배 위에 산스크리트 어로 새겨진 글자가 있는 것을 보고는 말했다.

“이것은 아소카왕이 조성한 불상입니다. 언제 이곳에 왔습니까?”

담익은 82세에 원적했다. 그가 원적하던 날 아소카왕 불상이 갑자기 사라졌다. 사람들은 이는 담익과 감응이 통했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출처: 《신승전(神僧傳)》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42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