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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이야기: 통현(通玄)

글/ 목목(木木)

【정견망】

통현(通玄)은 본래 성이 이(李)씨로 태원(太原) 동북 사람이다. 세상에서는 이 장자(長子) 또는 조백대사(棗柏大士)로도 불린다.

키가 7척 2촌에 이르렀으며 얼굴이 보라색이었고 눈을 덮을 정도로 눈썹이 길었으며 입술도 붉고 윤기가 있었고 치아는 고르고 치밀했다. 화피(樺皮)로 만든 모자를 쓰고 큰 천으로 만든 옷을 입었으며 허리에 띠를 묶지 않았고 신을 신지 않았다.

그의 행동거지는 예측이 불가능했다. 성격이 호방해서 얽매임이 없었다. 특히 사람들이 신기하게 여긴 것은 그가 고금에 두루 달통했고 유학(儒學)과 불학(佛學)에 모두 정통했다는 점이다.

특히 《역경(易經)》에 대한 이해가 깊었으며 40대부터는 본격적으로 불경을 연구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화엄경(華嚴經)》에 몰입했다.

현종 개원 7년(719년) 봄, 통현은 실차난타가 새로 번역한 80권 《화엄경》을 지니고 우현(盂縣) 서남쪽 동영향(同潁鄉) 대현촌(大賢村) 고산노(高山奴)의 집에 머물며 3년간 문밖을 나서지 않고 연구에만 몰두했다. 그는 매일 10개의 대추와 잣나무 잎으로 만든 떡만 먹었고 다른 것은 일체 원하지 않았다. 이에 고씨 집 사람들은 물론 이웃들이 아주 이상하게 여겼다.

한번은 통현이 경서를 지니고 한씨(韓氏)의 장원에 다녀오던 중 호랑이 한 마리를 만났다. 그가 호랑이 등을 어루만지며 경서를 토감(土龕)까지 지고 가라고 하자 호랑이가 동의했다.

당시 통현이 머물던 곳에는 마실 물이 없었다. 어느 날 폭풍우가 내리더니 한 노송(老松)이 뽑혀 나갔고 뿌리가 있던 자리에 넓이 백 척, 깊이 1장 가량의 연못이 생겼다. 이곳의 물이 아주 달아 지금 사람들은 장차천(長者泉)이라 한다.

이외에도 그의 방에는 촛불이 없었지만 매일 밤이 되면 방안에 늘 흰 빛이 나타나곤 했다. 통현이 토감에 온 후 늘 두 여인이 찬합을 보내주곤 했다. 그가 식사를 마치면 찬합 역시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5년간 종이며 먹을 부족하지 않게 공급해주었다.

개원 18냔 3월 28일 통현이 원적(圓寂)하자 정수리에서 흰 빛이 나와 태허(太虛)까지 뻗쳤다. 향년 96세였다.

자료출처: 《신승전》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43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