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고결한 어부

이청(李青)

【정견망】

중화 상하 오천년에서 정사(正史)는 겨우 24부 뿐이다. 그러므로 역사가(史家)의 법안에 띄어 24사에 수록된 사람은 매우 드물고 또 뛰어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24사 중에서도 최고의 사서로 간주되는 《사기》에 한 작디작은 늙은 어부가 등장한다!

그렇다면 이 어부에 대해 한번 살펴보자.

춘추시대 초나라 평왕(平王 ?-기원전 516년)이 참언을 믿고 오자서(伍子胥)의 아버지와 형을 죽였다. 그리고는 오자서의 초상화를 그려 방을 내걸고 거액의 현상금을 걸었다. 오자서는 쫓기며 도망갔다. 그는 먼저 송(宋)나라, 정(鄭)나라로 도망갔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자 마지막으로 태자 건(建)의 아들을 데리고 함께 남방의 신흥 강대국 오(吳)나라로 도망가기로 했다.

오자서 일행이 조관(昭關)에 도착했을 때 관을 지키는 관리가 그들을 잡으려고 했다. 오자서 일행은 필사적으로 도망갔으며 추격자들이 쫓아왔다. 오자서는 강변으로 도망갔는데 강에는 마침 한 늙은 어부가 배를 끌고 왔다. 그는 오자서의 상황이 다급한 것을 알고 그를 태워 강을 건네주었다.

강을 건넌 후 오자서가 감격해서 몸에 차고 있던 검을 풀어주며 말했다.

“이 검은 백 냥의 가치가 있으니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어부가 말했다.

“초나라의 법령에 따라 오자서를 잡으면 곡식 오만 석을 내리고 규를 잡는 작위를 준다고 했습니다. 그 가치가 어찌 백 냥의 보검에 그치겠습니까!”

그러면서 어부는 결단코 오자서의 보검을 받지 않았다. 오자서는 할 수 없이 감사 인사만 하고 오나라로 갔다.

사실 이 어부는 초나라 왕이 거대한 현상금을 내걸고 오자서를 잡으려 한다는 소식을 알고 있었다. 또 오자서 일가의 억울한 사정도 분명 알고 있었다. 오자서가 위급할 때 그는 의연히 오자서를 강을 건네주었으며 결코 오자서의 진심어린 보답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얼마나 고결(高潔)한 인물인가! 사마천은 이 역사를 기록할 때 분명 이 어부에 대해 경의를 품었을 것이다!

오늘날 중공이 미친 듯이 선량한 대법제자를 박해할 때 양심 있고 진상을 아는 많은 사람들이 대법제자를 돕는다. 이들 중에는 관원, 국가공무원, 공안, 검찰, 사법계통의 인원이 있고 또 일반 백성들도 있다. 그들은 자신의 편리한 조건을 이용해 각종 방식으로 묵묵히 대법제자들을 도와주면서 보답을 바라지 않는다.

이 시대의 이들 ‘어부’들은 반드시 사서에 기록될 것이다! 역사가 이 한 페이지를 펼칠 때 인류는 이 어부들의 위대함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참고자료: 《사기・오자서열전》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736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