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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이야기: 축담유(竺曇猷)

목목(木木)

【정견망】

축담유(竺曇猷)는 법유(法猷)라고도 하는데 돈황 출신이다. 어려서 출가해 고행하며 선정(禪定)을 배웠다. 나중에 강동(江東) 지방을 떠돌아다니다 석성산(石城山)에서 걸식하며 좌선했다. 담유는 일찍이 독충을 기르는 사람의 집에 가서 음식을 구걸한 적이 있다. 막 음식을 먹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오공(蜈蚣 지네)이 음식에서 뛰쳐나왔다. 하마터면 계속 모르고 먹을 뻔 했다.

나중에 담유는 또 시풍(始豐)에 있는 적성산(赤城山) 석굴에 들어가 좌선했다. 이때 몇 십 마리 호랑이들이 담유 앞에 웅크리고 있었고 그는 여전히 경전을 읽었다. 그런데 호랑이 한 마리가 듣다가 참지 못하고 졸자 담유가 여의(如意)로 머리를 두드리며 “왜 경전을 듣지 않는 것이냐?”하고 물었다. 결국 호랑이들이 하나하나 떠났다.

그런데 뜻밖에도 또 크기 열 길 가량 되는 거대한 구렁이가 나타나더니 담유 주변을 왔다 갔다 했다. 머리는 줄곧 그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반나절 후에야 떠났다.

이튿날 한 신선이 담유에게 나타나서는 이렇게 말했다.

“법사님의 위덕(威德)으로 기왕 이 산까지 오셨으니 제자가 집을 바치겠습니다.”

담유가 말했다.

“내가 이 산에 왔다고 해도 그저 방촌(方寸 사방 한 치)의 땅만 차지했을 뿐입니다. 어찌 함께 할 수 없겠습니까?”

신선이 대답했다.

“제자는 할 수 있지만 제 부하들이 불법(佛法)을 들어본 적이 없기에 다스리기가 쉽지 않아서 아마 당신을 귀찮게 할 겁니다. 게다가 사람은 본래 신(神)과 같은 길을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떠나고자 합니다.”

그러자 담유가 어떤 신선이고 어디로 옮기려 하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 신선은 자신은 하나라 임금의 아들이며 이곳에 머문 지 이미 2천 년이 넘었는데 외삼촌이 다스리는 한석산(寒石山)으로 옮겨가려 한다고 말했다.

떠날 때 신선은 담유에게 3상자의 향을 선물로 주었고 또 칼집을 높이 치켜들더니 무리를 데리고 날아서 떠났다.

적성산은 천태산(天台山) 및 사명산(四明山)과 서로 연결되어 있다. 천태산에는 하늘을 찌를 듯 날카로운 절벽이 있는데 전설에 따르면 이 산 위에 아주 아름다운 정사(精舍)가 있다고 한다. 오직 도(道)를 얻은 사람만이 머물 수 있다.

그런데 이 정사는 계곡 맞은편에 있어서 돌다리를 건너가야 했다. 돌다리는 가로로 놓여 있는데 푸른 이끼가 아주 미끄러워서 자고로 이곳을 지나간 사람이 없었다.

어느 날 담유가 한번 시험해보고자 했다. 그가 막 돌다리를 걸어가는데 공중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대가 경건하게 불법을 믿는다고 들었지만 아직은 지나갈 수 없습니다. 10년 후에 다시 오시오.”

담유가 이에 실망해서 물러났다. 돌아오는 도중에 한 석실(石室)에서 쉬고 있는데 잠시 후 운무가 끼며 어두워지더니 석실 사방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담유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홑옷을 입고 두건을 쓴 한 신선이 찾아와서는 말했다.

“이곳은 누추한 사람이 머무는 곳입니다. 어제 제가 없을 때 당신을 불편하게 했기에 깊이 참회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담유더러 계속 이곳에 머물 것을 청했다. 이에 담유는 또 며칠을 묵었다.

한편, 담유는 자신이 돌다리를 건너지 못한 것을 몹시 유감스럽게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에 다시 목욕재계한 후 돌다리 근처로 갔다. 이번에는 가로로 놓여 있던 바위에서 문이 열려 곧 지나갈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전설에서 말하던 정사와 선인(仙人)이 보였다.

담유는 곧 그들과 함께 향을 피우고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친 후 선인이 담유에게 말했다. “십년 후 자연히 이곳에 오시게 될 겁니다. 지금은 아직 머물 수 없습니다.”

이에 담유가 돌아오자 횡석이 다시 닫혔다.

진(晉)나라 태원(太元) 연간(376~396년) 나라에 요성(妖星 요사스런 별)이 출현했다. 그러자 황제가 전국적으로 덕행(德行)이 뛰어난 승려를 불러다 불사(佛事)를 벌여 재앙을 없애려 했다.

담유가 경건히 기도하자 6일째 되는 날 새벽에 한 푸른 옷을 입은 아이가 앞에 나타나더니 “법사님을 번거롭게 했습니다.”라고 반성했다. 이날 이후 요성이 더는 출현하지 않았다.

원유는 태화(太和) 말년 산굴에서 원적했다. 시신 전체가 녹색을 띠었다. 나중에 어떤 사람이 산에 들어가 바위에 올라가서 보니 담유의 시신이 여전히 썩지 않고 있었다고 한다.

자료출처: 《신승전》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429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