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
【정견망】
명대(明代) 상숙(常熟) 소사(邵舍 지금의 강소 장가항張家港 양사진楊舍鎮)에 서사성(徐思省)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문각공(文恪公)의 8대손이다. 직업은 관청 소송대리인이었다.
만력(萬曆) 원년(1573년) 새 황제가 등극하면서 연호가 바뀌었다. 이 해 여름 현아(縣衙)에서 돌아가면서 임무를 맡았을 때 현령에게 곤장을 맞았고 집에 돌아오다가 병에 전염이 되어 죽었다. 사후에 가족들은 그의 유체를 입관했는데 가슴이 아직 따뜻한 것을 알고 관에 넣어두고 기다렸다. 삼일 후 그가 다시 살아나서 사람들에게 자기가 저승에서 본 것을 상세히 이야기 해주었다.
그가 막 사망했을 때 원신이 저승 관리 두 사람에게 끌려갔다. 약 4, 5리 정도 갔을 때 땅이 시커멓고 질퍽거리는 곳이었는데 어느 못 부근에 가자 날이 희미하게 밝아왔다. 더 나아가니 성과 해자 및 궁전이 있었다. 그는 궁의 대전으로 끌려가 심문을 받았는데 비로소 이곳이 염라왕이 있는 곳임을 알았다.
저승 관리가 그를 대전 앞 계단 아래에 무릎을 꿇리자 염라왕은 그의 평생의 기록을 본 후 그에게 형벌을 가하라고 했다. 즉시 소머리나 야차(夜叉)의 모습을 한 지옥 옥졸 몇이 그를 큰 수레바퀴 같은 곳으로 끌고 가서 형을 받게 했다. 바퀴의 모양은 인간세상의 물레바퀴 같았는데 주위에 무거운 칼이 무수히 달려 있었다.
그 앞에 이미 32명이 두 손이 바퀴에 묶여 있었는데 그가 오는 것을 보자 그도 묶었다. 그리고 네 명의 옥졸이 긴 창으로 바퀴를 돌렸다. 그의 몸은 주위의 칼에 베어졌는데 정말 아프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뼈와 살이 잘려 나갔다. 그 후 신체는 또 원상태를 회복하고 반복적으로 형벌을 받았다.
그가 형벌을 다 받은 후 또 옥에 가두라는 명령이 전해졌다. 감옥은 하나의 큰 성이었는데 입구에 ‘호두성(虎頭城)’이란 현판이 걸려 있었다. 성에 들어간 후 어느 곳에 가니 사면이 모두 철책 난간이며 그 속에 이미 400여 명이 갇혀 있었다. 그가 자신이 언제 풀려날 수 있는지 묻자 그 속의 사람들은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가 이곳에 온 지 얼마나 세월이 지났는지 모르는데 당신은 이제 막 죽은 사람이 벌써부터 나갈 날을 생각하는가?”
그는 자신이 오래 갇혀야 하며 어쩌면 나갈 날이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인간세상의 부모와 처자가 어떻게 되었는지 몰라 슬퍼 울었다. 그는 또 철책 난간 밖에 일부 흰옷을 입은 남녀들이 머리를 땋거나 상투를 틀거나 총각머리를 하고 자유롭게 오가는 것을 보았다. 그가 같은 감옥에 있는 사람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이 사람들은 어째서 감금되지 않나요?”
그러자 그가 말했다.
“이들은 세상에 있을 때 부처님을 믿고 선행을 한 사람들이라오. 그들은 죄가 없어서 오래지 않아 다시 좋은 곳에 태어날 것이오.”
그는 이 말을 듣고 감옥 안에서 배회하며 탄식했다.
‘나는 인간 세상에 있을 때 왜 바른 믿음이 없었던가?’
갑자기 그는 삽화이왕(插花李王 역주: 꽃을 꽂은 이 씨 성의 왕이란 뜻)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삽화이왕이란 당시 민간에서 믿던 일종의 신령인데 전설에 따르면 큰 선행을 한 사람이 사망 후 하늘로 올라가 신(神)이 되었다고 한다.
삽화이왕도 서사성을 보고는 이렇게 위로했다.
“자네는 삼세(三世) 전에 강가에 살았고 당시 나를 가묘(家廟 집안 사당)에 공양하고 향불을 끊지 않았었지. 그러니 지금 내 어찌 자네를 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면서 그를 감옥에서 데리고 나가려 했다. 간수(看守)가 난색을 표시했으나 삽화이왕이 화를 내며 야단치자 어쩔 수 없이 그를 놓아주었다.
삽화이왕은 그를 감옥에 넣도록 판결한 염라전을 찾아가더니 그에게 기다리라 하고 자신이 안으로 들어가서 교섭했다. 대략 한 식경이 지나자 삽화이왕이 다시 나와서 그에게 말했다.
“됐다. 염라왕이 이미 자네를 세상에 돌아가도록 허락했다. 아직 17년의 수명이 남았으니 만력 18년 2월 17일 오시에 죽을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부지런히 착한 일을 하고 절대 잊지 말라.”
그러면서 그에게 부적 하나를 주며 그를 데리고 온 저승 관리에게 그를 돌려보내게 했다. 관리는 그를 당초에 온 그 못 옆으로 데려가더니 그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자 그의 원신이 신체 속으로 돌아왔다. 다시 말해 그가 다시 살아난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부처님을 믿고 계율을 지켰으며 가산을 다 기울여 좋은 일을 했다. 만력 18년 (1590년) 2월 17일 그는 부처님을 믿는 사람들을 불러 함께 염불하며 불사(佛事)를 했다. 그날 정오 갑자기 중풍에 걸려 구토하고 나서 세상을 떠났다. 그날 어떤 사람이 그곳에 가려고 했으나 다른 일이 있어서 가지 못했다.
다음날 그는 서사성이 머리에 두건을 쓰고 푸른 도포를 걸치고 네모난 신을 신고 있는 것을 직접 보았다. 두 사람이 만나자 서사성이 말했다.
“당신은 어제 왜 염불하러 오지 않았습니까? ‘수행이란 세간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修行是世間第一事).’ 당신들 부부 두 사람은 노력해야 합니다.” 이 말을 마치고는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얼마 후 이 사람이 볼일을 마친 후 서 씨 집을 지날 때야 비로소 서사성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길에서 서사성을 만난 일을 말하면서 그의 시신을 잠깐 보고 싶어 했다. 그런데 시신의 복장이 자신을 만났을 때와 꼭 같았다. 이 일이 있은 후 현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두 따라서 부처님을 믿었다.
서사성이 겪은 것은 원신이 몸을 떠난 전형적인 사례다. 그는 다른 공간에서 그곳의 심판을 받고 처벌을 받아 감옥에 갇혔다. 하지만 또 전생에 선행을 했기 때문에 석방되었고 수명이 늘어나는 과정을 겪었다.
이 이야기는 사람에게 있어 육신(肉身)이란 껍질에 불과하고 원신(元神)이야말로 진실한 생명이며, 육신이 죽어도 원신은 다른 공간에서 심판을 받으며 그가 생전에 한 일, 심지어 더 오래 전에 한 선악(善惡)에 따라 그의 갈 곳이 판결됨을 알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원신불멸(元神不滅)과 인과응보의 진실성을 충분히 입증하며, 더 중요한 것은 신불(神佛)을 믿고 선을 행하며 수행하는 것은 사람에게 중요한 의의가 있고 특히 ‘수행이란 인간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임을 입증한다.
사실 불도신(佛道神)은 모두 진실하게 존재하지만, 단지 일반적으로 육안으로 볼 수 있는 표면의 시공간에 나타나지 않을 뿐이며, 고층의 시공간에 나타난다. 그러므로 유신론(有神論)이야말로 옳은 것이며 신불(神佛)은 우주 고층 공간 속에 진실로 존재한다. 반대로 무신론은 황당무계하고 사람을 해치는 사설(邪說)이다. 부디 독자 여러분들이 모두 무신론의 정신적인 족쇄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자료출처: 《회원(獪園)》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49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