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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정술】 상(商) 39: 은나라의 거울이 멀지 않다

글/ 신전문화 중국역사연구모임

【정견망】

달기를 총애

주 무왕이 상주왕(商紂王)의 문제를 지적한 첫 번째가 바로 “부인의 말만 따르는” 것인데 다시 말해 달기(妲己)를 총애하고 믿었다.

달기가 상주왕의 정처(正妻)인지 아니면 비(妃)인지 확인할 길은 없으니 여기서는 그냥 부인(夫人)이라고 부른다. 이 부인은 상주왕의 큰 환심은 샀지만 인심을 얻지는 못했다. 주왕이 후세에 악명을 떨치게 된 것의 적어도 절반은 그녀 때문이다.

달기가 상주왕의 부인이 된 것에는 두 가지 학설이 있다. 하나는 제신(帝辛) 9년 주왕이 유소(有蘇)부락을 정벌하고 전리품으로 데려왔다는 것이다. “9년 왕의 군대가 유소를 정벌하고 달기를 얻어 돌아왔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또 다른 설명은 유소의 수령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기 딸인 달기를 주왕에게 바쳤다는 것인데 일종의 정략결혼이다.

“은왕 신(辛)이 유소를 정벌하자 유소씨가 달기를 시집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두 가지 설은 달기의 혈통이 귀족인지 아니면 평민인지와 관련이 있고 달기의 출신지가 명확히 드러난다. 그녀는 상왕조 제후 중 유소부락 사람이었다. 유소의 지역은 지금의 하남성 초작(焦作)시 온현(溫縣) 소장(蘇莊)에 해당한다. 때문에 달기를 ‘소달기(蘇妲己)’라고도 부른다.

초기 역사서에 달기에 관한 기록은 아주 드물고 현대에 출토된 갑골문에서도 달기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지난 몇 천 년 간 그녀의 이미지는 오히려 아주 풍부해졌다. 주요 출처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서한의 유향(劉向)이 쓴 《열녀전‧얼폐전(孽嬖傳)》으로 사마천의 기록에 일부 이야기를 추가해 달기에 관한 소전(小傳)을 만들었다.

또 하나는 명나라 때 나온 소설 《봉신연의(封神演義)》인데 여기서는 달기에 대해 상조(商朝)를 화란(禍亂)시키기 위해 배치된 구미호 부체로 요염하게 그려진다.

선진(先秦)시기 사료 중에 달기에 관한 내용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사기》에서는 상주왕의 어리석음을 묘사하면서 “달기를 총애해 그녀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따랐다”고 했다.

《순자》에서는 “주(紂)가 달기와 비렴에 가려 미자 계를 알지 못했고 이로써 그 마음을 미혹시키고 그 행동이 어지러워졌다.”라고 했다.

《초사‧천문(天問)》에는 “은나라에 요염한 부인이 있는데 직간한 것이 무엇인가?”(殷有惑婦何所譏)라고 했다. 왕일(王逸)은 주석에서 요염한 부인을 달기라고 했다.

《여씨춘추‧선식(先識)》에서는 “상나라 임금이 크게 어지러워져 술주정에 빠져 있고 기자와 같은 충신을 멀리하고 여인과 간신배를 가까이 하며 달기가 정치를 하고 상벌(賞罰)을 행함에 일정한 기준이 없고 법도를 운용하지 않고 무고한 세 사람을 죽이니 백성들이 복종하지 않았고 법을 관장하는 신하가 빠져나와 주나라로 도망했다.”고 했다.

이들 기록을 통해서 대체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후기 상주왕이 달기의 말을 맹신해 심지어 조정 일까지 그녀에게 맡겼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의 가장 원시적인 기록이라 할 수 있는 《상서・목서》에서 주왕은 아주 유명한 말을 한다.

“옛 사람들이 말하길 ‘암탉은 새벽에 울지 않아야 하는데 암탉이 울면 집을 망친다’고 했다.”

상왕조에서는 여자도 관리가 되는 여관(女官)이 있고 여자 장수도 있었다. 가령 주왕의 선조 무정(武丁)의 처 부호(婦好)는 심지어 병사들을 이끌고 출병한 원수였고 자신의 봉지를 갖고 왕조에 조공을 바칠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했다. 같은 시기 주족(周族) 역시 마찬가지였다. 주무왕의 모친과 왕비는 모두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무왕은 “내게는 혼란을 다스리는 10명의 대신이 있다”는 말을 남겼는데 역시 10대신 중 여성이 한 명 있으니 바로 자신의 왕비 읍강(邑姜)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암탉’을 말한 것은 여자라서 문제라는 게 아니라 새벽을 알린 것이 문제라고 봐야 한다.

상조 여인들의 늠름하고 씩씩한 자태는 우리가 무정의 처 부호편에서 이미 살펴본 바 있다. 주왕은 “천부적으로 변별력이 있고 영리하고 민첩해 견문이 매우 빼어났는데” 그런 그가 믿고 맡길 정도라면 달기는 분명 평범한 인물은 아니다. 삼천년 후 명나라의 허중림(許仲琳)은 《봉신연의》를 쓰면서 달기를 구미호가 부체(附體)했다고 묘사했는데 당연히 아무런 근거가 없진 않았을 것이다.

다만 군권(君權)은 신(神)이 주신 것이라 천자만이 신권(神權)의 집행자가 될 수 있다. 천자의 배우자는 천자를 도와줄 수는 있을지언정 천자의 권력을 행사할 수는 없다. 역대로 후궁이 정치를 하면서 종종 이 이치를 똑똑히 몰라 많은 정치를 어지럽혔다. 역시 이 이치를 벗어나지 못한다.

위 문장들 중 《여씨춘추》의 기록이 좀 더 분명한데 달기가 정치를 관장하면서 상벌을 행함에 일정한 기준이 없고 법도를 운용하지 않고 무고한 세 사람을 죽이자 백성들이 복종하지 않고 법을 관장하는 신하가 빠져나와 주나라로 도망치게 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달기가 죽인 세 사람이 누구인지 사서(史書)에 따로 언급이 없는 것을 보면 이들이 아주 유명하거나 고위인사는 아닐 것이다. 상주왕이 술에 빠지자 그녀가 정사를 관장했고 그 결과 조정을 크게 어지럽혔다는 천년의 오명을 쓴다.

개인의 능력이 제아무리 뛰어날지라도 신의 당부를 저버리고 행동하면 그 결과는 뜻대로 되지 않다. 이 또한 필연이다.

상주왕에 대해 말하자면 자신에게 큰 복이 있었고 또 어깨에 큰 책임을 짊어졌음에도 “오직 부인의 말만 믿고 따랐으니” 이는 자신의 직무를 소홀히 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상주왕의 병사들이 패배한 후 달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사기에는 두 가지 설명이 나온다.

《사기・은본기》 “무왕이 조가성에 들어가 주왕이 투신한 곳에서 달기를 죽였다”고 했다. 반면 《사기・주본기》에서는 “무왕이 주왕의 처첩이 있는 곳에 이르자 두 부인이 스스로 자살했다”고 했다.

주 왕실의 역사서인 《극은해(克殷解)》에는 “이에 두 여자가 있는 곳에 이르니 이미 목을 맸다.”고 했다.

책마다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달기 역시 같은 날 죽은 것만은 확실하다.

덕이 없는 자들을 중용

아마 주왕은 무슨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그에게도 자신의 심복들이 있었다. 역사상 유명한 세 사람이 있는데 바로 비중(費仲), 오래(惡來), 숭후희(崇侯喜)다. 이 몇 사람은 사실 다 능력이 뛰어난데 “비중과 오래는 천리를 걸어갈 수 있었고 맨손으로 들소나 호랑이를 제압할 수 있었다.” 숭후희 역시 대장의 일원으로 주왕을 따라 멀리 출정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들의 품행에는 모두 결점이 있었다. 소위 혼군(昏君)과 간신(奸臣)이라고 하는데 역사가 바로 이런 연기를 하게 했다. 비중은 “아첨을 잘하고 이익을 탐했으며” 오래는 “비방과 참소에 능해 제후들이 은나라와 더욱 멀어지게 했다.” 나중에 묵자는 주왕이 후기에 혼군으로 변한 이유를 “은주왕이 숭후와 오래에게 물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주왕이 ‘소인(小人)’을 쓴 것은 아니지만 그는 죄 지은 자도 썼다. 심지어 중벌을 짓고 도망친 자들도 있는데 대부분 정도(正道)를 지키진 않지만 흔히 능력 있는 자들을 받아들였다.

“오직 사방에서 죄가 많아 도망 온 자들을 높이고 우대하며 믿고 부려서 이들을 대부와 경사로 삼았다.”(《상서・목서》)

“달아나 도망 다니는 자들이 모두 주왕을 주인으로 삼으니 주왕은 이들이 모이는 소굴이 되었다”(〈상서・무성〉)

주왕은 이렇게 점차 어리석어진 것이다.

상조(商朝) 최후의 장면은 다음과 같았다.

“그 뒤의 임금과 백성들이 천명을 받드는 일에서 종말로 치달아 지혜로운 자들이 몸을 숨기고 나쁜 자들이 자리를 차지하니 사람들이 이를 알고 처자식을 보호하고 안고 끌면서 슬피 하늘에 호소하고 주왕이 멸망하길 저주했습니다. 오호라! 하늘이 사방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둘러보아 노력하는 자(주나라)에게 천명을 바꾸게 하셨습니다.”(《상서・소고(召誥)》)

“덕(德)이란 하늘의 도(道)”다. 수백 년 전 상주왕의 조상인 성탕은 덕을 중시하고 인후(仁厚)하여 하늘의 명을 받았지만 상말(商末)에 이르자 점차 그 도를 잃고 벗어나게 되었다.

참고문헌:
1. 《금본죽서기년》
2. 《국어‧진어(晉語)》
3. 《열녀전》
4. 《상서・목서》
5. 《논어‧태백》
6. 《태평어람》
7. 《사기‧은본기》
8. 《묵자》
9. 《오행(五行)》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40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