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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이야기: 원대 저명한 번역가 안장(安藏)

이련(伊蓮)

【정견망】

안장(安藏)은 원나라 별실팔리(別失八裏 지금의 신장 지무싸얼吉木薩爾에 해당) 사람으로 자는 국보(國寶), 자호(自號)는 용궁노인(龍宮老人)이다. 원대(元代)의 위구르족 출신 뛰어난 번역가였다.

그의 부친과 조부 모두 경건한 불교신자였다. 한번은 부친이 가부좌를 하면서 관음보살을 관상(觀想)하는데 문득 보살이 한 동자를 품에 안고 나타나서는 그에게 건넸다. 이어서 그의 모친이 임신했다. 출산할 때가 되자 붉은 빛이 집을 비추며 이웃에서 불이 난 것으로 오해해 앞을 다퉈 불을 끄러왔다.

안장이 다섯 살 때 한번은 3일 밤낮을 자고 나서야 깨어났다. 가족들이 이유를 묻자 그가 대답했다.

“문수보살님이 저를 위해 설법해주셔서 저도 모르게 한참 있었어요.”

그 이후 안장은 부친이나 어른들이 경론(經論)을 말할 때면 곧바로 대의(大義)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홉 살 때 스승을 따라 불경을 배웠다. 십삼 세 때 불경을 외울 수 있었고 십오 세 때 유학과 불학을 배웠으며 여러 언어에 능통했다.

안장은 십구 세 때 원 헌종(憲宗 몽케)의 부름을 받았다. 원 세조(世祖 쿠빌라이)가 제위를 이은 후 《보장론원연집(寶藏論元演集)》 10권을 바치자 세조가 몹시 기뻐했다. 그는 세조에게 “경전과 사서를 가까이 해 고금의 치란(治亂)을 알고 마음을 바로 잡아 천하의 향배를 알리라고” 권했다. 아울러 한자로 된 《상서・무일(無逸)》, 《정관정요》, 《신감(申鑒)》 등의 서적을 몽골어로 번역해 세조가 정책이나 법령을 수립하는데 참고할 수 있게 했다.

안장은 여러 차례 세조에게 권고해 어질고 능력 있는 인재를 선발해 임용하되 두 마음을 품지 말고, 사악한 간신들을 몰아내되 의심하지 않도록 했다. 뜻이 있고 도(道)가 통하는 어진 신하를 임용해 나라를 다스리면 나라가 흥성하지 않을 수 없고, 아첨하는 난신(亂臣)을 임용해 나라를 다스리면 나라가 쇠망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세조는 그의 권고를 듣고 몹시 기뻐하며 그를 특별히 한림학사(翰林學士)・가의대부(嘉義大夫)・지제조(知制誥)동수국사(同修國史)에 임명했다. 아울러 중요한 나라 일이 있으면 늘 그를 불러 상의하곤 했다. 안장은 성지를 받들어 《상서》, 《자치통감》 등 유가 서적을 번역했고 《난경》이나 《본초》 등 중의학 경전을 번역했다. 이런 서적들은 역대 왕조에서 국사(國事)를 관리한 실록과 경험으로 경제 및 민생과 관련이 있다.

안덕은 덕이 높고 성망이 커서 황제의 큰 신임을 받았다. 매번 황제가 그를 불러 만날 때면 그는 늘 언로를 넓혀 다른 의견을 경청하며 형벌을 줄일 것을 간언했다. 황제는 그의 건의를 받아들이며 기뻐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지원(至元) 30년(1293년) 5월 22일 안장은 집에서 마치 선정한 듯이 가부좌했다. 가족이 부축해 자리에 눕혔다. 이날 저녁 집안에 기이한 향기가 나서 가족들이 살펴보니 그가 이미 원적(圓寂)했음을 발견했다. 이날 저녁 큰 별 하나가 정원에 떨어졌는데 발산하는 빛이 아주 오랫동안 흩어지지 않았고 흰 빛이 서남방으로 날아갔다.

세조가 이 소식을 듣고는 깜짝 놀라 대신을 파견해 제사를 지내게 했다. 6월 5일 황궁 서남문 밖에서 시신을 화장했는데 오색의 사리가 셀 수 없이 많이 나왔다. 아울러 완평현에 그를 위한 탑을 만들어 뼈를 보관하게 했다. 황제가 조서를 내려 그의 유서(遺書)를 수집하게 해 가(歌), 시(詩), 게(偈), 찬(贊), 송(頌), 잡문(雜文) 수십 권을 찾아냈다. 황제가 이를 인쇄해 세상에 전하게 했다. 인종(仁宗) 때 진국공(秦國公)으로 추봉하고 시호를 문정(文靖)이라 했다.

내가 처음 《설루집(雪樓集)》에서 안장의 전기인 《진국문정공신도비(秦國文靖公神道碑)》를 보고 안장의 출생과 원적에 대한 기록은 봉건 미신이며 봉건 사학자들이 그를 미화하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라고 여겼다. 하지만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한 후 수련의 도리를 진정으로 알게 된 후 전통 사서에 나오는 수많은 기록들이 모두 진실이며 결코 헛되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님을 알았다.

사람의 생명은 우주에서 온 것으로 사람이 세간에 온 것은 자신을 완벽하게 하고 사명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이지 향락을 추구하고 즐기는 과정이 아니다. 몽골인들이 원조(元朝)를 건립할 때 위구르족 출신의 안장은 불법(佛法)으로 자신을 수양했고 또 이를 통해 황제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다. 그는 마음에 창생(蒼生)을 품고 국가경제와 민생에 관심을 가졌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47693